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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32화 (132/182)

132화

Chapter 36. 염원의 씨앗 (3)

이어 그녀의 눈동자에 민호의 모습이 비쳤다.

현재 민호는 도깨비수염을 붙인 모습이었다. 즉, 노인으로 변한 상태였다.

동훈을 시험하고 기적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시험 내용도 진부하지만 나름 그럴 듯하게 계획해뒀다.

이제 동훈이 나타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이거 왜 이렇게 무겁냐?”

민호가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양팔에 들린 보따리를 쳐다봤다.

이에 율은 얄밉게 웃었다.

“보다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서니까 좀만 힘내세요!”

“끄응! 이딴 거 안 넣어도 실감나게 할 수 있는데······.”

“에이, 그래도 넣는 게 더 좋죠. 아, 내려놓지 마세요. 곧 대상이 올 거란 말이에요!”

참다못한 민호가 짐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율이 곧장 딴죽을 걸었다.

하지만 민호도 더 버티긴 힘들었다.

“아, 몰라. 일단 좀 쉬자. 오면 다시 들게, 오면.”

더 이상은 한계였다.

민호가 투덜거리며 보따리를 내려놓으려던 찰나!

돌연 율이 민호의 등을 퍽퍽 쳤다.

“앗, 주인님! 저기 대상이 와요.”

“이런 씁······.”

타이밍 한 번 끝내줬다.

민호는 얼굴을 와락 구기며 다시 보따리를 들어올렸다. 팔이 뽑혀나갈 것 같았지만 애써 참았다.

그러자 민호의 팔은 더욱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얼굴은 터질 것만 같이 붉게 물들었다.

“우와! 완전 진짜 같은 연기에요! 역시 주인님이세요!”

“연기가 아니라 진짜 힘든 거거든?!”

민호가 이를 악 문채 으르렁거렸다.

이제 슬슬 한계가 찾아오는 것 같다. 민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억, 허억! 그래서 지금 어디쯤······.”

“어르신!”

그때 정면에서 들려온 시원스런 음성.

민호는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멘 남자가 있었다. 민호에게 한달음에 달려온 사내는 대뜸 그가 들고 있던 보따리로 손을 뻗었다.

“그거 이리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남자는 다름 아닌 신동훈이었다.

그 행동에 민호는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이구, 됐어. 총각도 짐이 많아 보이는데······.”

“가방 하나밖에 없는데요, 뭐. 얼른 주세요.”

동훈은 빼앗듯이 보따리를 들었다.

곧이어 느껴진 묵직한 무게감에 동훈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셨던 거예요? 어르신 힘이 대단하신데요?”

“흘흘, 내가 왕년에 힘 좀 썼지. 그보다 고마우이.”

“뭘요.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세요?”

아예 민호의 목적지까지 동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민호가 세운 계획과 일치했다. 왠지 동훈이라면 그럴 것 같았기에.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민호는 옅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곁에 있던 율이 찬물을 끼얹었다.

“주인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한 거 아시죠?”

“······.”

그 말에 민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임무를 시작하기 전, 율에게서 들었던 게 있었다. 바로 기적을 두 번 받는 대상은,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좀 더 까다로운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이런 단순한 시험만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힘든 고난을 줄 필요가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요. 얼른요!”

율의 재촉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에 대한 계획도 짜 놓은 상태였다. 민호는 들리지 않게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살짝 쉰 목소리로 동훈을 불렀다.

“저, 총각.”

“예?”

조금 앞서 걷던 동훈이 뒤를 돌아봤다.

민호는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조금만 쉬었다갈 수 없을까? 내가 다리가 영 시원찮아서······.”

“하하, 그럼요. 저기 벤치에서 잠깐 쉬시죠.”

벤치를 향해 걷던 중, 동훈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덧붙였다.

“아, 혹시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있으신가요? 간단한 응급처치 정도는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마침 도구도 가지고 있구요.”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생각했던 것보다 과한 친절에 민호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그때, 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괜찮은 생각이네요! 불편한 곳이 없으면 만들면 되죠!”

“······!?”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민호의 예상은 적중했다.

“또 부축받으면서 가는 것보단 아예 업혀가는 게 주인님도 편하실 거 같구요. 에잇!”

불길한 생각에 말리려던 찰나!

율이 대뜸 민호의 발목을 걷었다. 겉보기에는 성냥개비가 발을 톡 건드린 것처럼 보였지만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콰직!

각목을 풀 스윙으로 휘둘러 발목을 후려친 것 같은 충격!

민호는 연기를 한다는 것조차 잊은 듯 짧게 비명을 질렀다.

“컥!”

“어, 어르신?”

한편 갑작스런 민호의 비명에 동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민호는 동훈의 말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저 허리를 숙인 채 고통에 신음하고만 있을 뿐.

“헤헤, 죄송해요. 조금 세게 쳤어요.”

율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함이라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 민호는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가 입술을 달싹여 ‘끝나면 두고 보자’는 말을 전하려던 그때, 동훈의 시선이 민호의 발목으로 가 닿았다.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오른 발목.

“세상에, 어르신 발목이······.”

“으응, 요 앞에서 넘어졌더니 그만 이렇게 됐나봐.”

민호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연기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동훈은 곧장 배낭을 내려놨다.

“잠깐만요. 저한테 파스 스프레이가 있거든요.”

치이이이-

희뿌연 연기가 민호의 발목을 휘감았다.

파스 냄새와 함께 찌릿하면서도 화끈거리는 고통이 민호를 덮쳤다. 이에 민호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율을 노려보며 고통과 싸웠다.

그렇게 얼마 후.

간단한 응급처치가 끝나자 동훈은 배낭을 앞으로 맸다.

그러고는 민호에게 등을 내주며 말을 이었다.

“어르신, 그 지팡이 저 주시고 등에 업히세요.”

“아, 아니야. 수고스럽게 뭘. 조금만 쉬었다 가면······.”

“이런 발로 무리하시면 안 돼요. 얼른요.”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동훈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민호는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이. 신세 좀 지겠네.”

“신세는요. 그럼 꽉 잡으세요!”

양팔에는 10킬로그램짜리 쇳덩이가 들은 보따리.

커다란 배낭은 앞에 매고, 등에는 민호를 업은 채, 동훈은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요즘 사람답지 않게 주말인데도 부지런하구먼.”

“따로 주말이 없는 직업이라 그렇습니다.”

“으응? 그런 직업도 있나?”

“소방관입니다. 관악구에 있는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아이고,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이었구먼.”

“하하, 아니에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뭘.”

그 이후로도 민호는 계속해서 동훈에게 말을 걸었다.

다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그래도 물어봐야만 했다. 이것조차 시험의 일부분이었기에.

다행히 동훈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민호의 질문에 모두 대답했다.

약 이십여 분이 지난 후.

동훈의 입에서 슬슬 단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얼굴과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된 지 오래였다. 그러나 동훈은 힘든 기색 없이 걸음을 옮겼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오히려 민호에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그 모습을 보던 율은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시험은 통과한 걸로 할게요.”

율의 승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저 멀리 군자역이 보였다. 민호의 목적지였다.

“저기서 내려주면 되네.”

“네? 어디요?”

“저기 횡단보도 앞에 있는 카페. 저기서 큰손녀랑 만나기로 했거든.”

“예, 알겠습니다.”

동훈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잠자코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신호가 녹색불로 바뀌자 동훈은 횡단보도를 건너 카페 앞으로 향했다. 그때 카페 앞에 서있던 한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전에 대기하고 있던 미래였다.

“앗! 할아버지!”

“아이구, 우리 손녀. 오랜만이구나.”

민호와 미래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때 미래가 민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더 세게 끌어안아야지. 그래야 더 다정하게 보이잖아?”

“······숨 막히니까 빨리 떨어져요.”

모기만한 목소리로 정겨운 대화를 나눈 뒤.

민호는 미래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미래는 능숙한 표정 연기와 함께 말을 이었다.

“여기 오실 거면 말씀 먼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럼 바로 나갔을 텐데······.”

“요 앞인데 뭘 수고스럽게.”

민호도 자연스럽게 미래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이 총각이 도와준 덕분에 편하게 왔다. 엄청 착한 총각이야.”

“하하, 뭘요.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동훈이 멋쩍게 웃었다.

손등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훔친 그는 이내 허리를 숙였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어르신.”

쑥스러웠던 탓일까?

동훈은 그 길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고 했다.

“총각! 잠깐만 기다려봐.”

그때 민호가 그를 붙잡아 세웠다.

잠시 후, 민호는 품속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것 좀 받아가게.”

그가 꺼낸 것은 초코바.

정확히 말하면 [염원의 씨앗]이 박혀있는 초코바였다. 민호는 동훈의 손에 초코바를 꼬옥 쥐어주며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 고마운데 이거밖에 줄 게 없어서 미안하이.”

“그런 말씀 마세요. 왜냐면 저 초코바 엄청 좋아하거든요. 없어서 못 먹죠.”

동훈이 씨익 웃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그러고는 민호가 보는 앞에서 초코바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보며 민호는 초코바 안에 박힌 ‘기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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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의 씨앗]

*등급: 갑(甲)

*종류: 소모품

*복용 후, 조건을 만족하면 싹을 틔운다.

*대상이 가장 바라는 염원을 이루어준다.

*100시간 이내에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시, 자연 소멸한다.

(경고: 씹어서 삼켜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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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어서 삼켜도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괜찮겠지?’

괜한 불안감이 들었지만 애써 꾹꾹 눌렀다.

그러던 중 동훈은 어느새 초코바를 전부 먹어치웠다.

“어르신 덕분에 잘 얻어먹고 갑니다.”

순박한 미소와 함께.

동훈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내일 병원도 꼭 가보시구요! 치료 받으면 훨씬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려, 그려. 정말 고맙네.”

민호가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었다.

짧은 배웅을 끝으로 동훈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래는 점점 사라져가는 동훈의 등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착한 사람이네.”

“맞아요.”

민호도 그녀의 중얼거림에 동의했다.

그러고는 눈앞에 떠오른 동훈의 상태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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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동훈

*나이: 35세

*공덕: 3,541

*악덕: 14

*성향: 극선(極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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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훈의 성향은 극선.

성직자인 혜란이나 한주와 같은 성향이었다.

종교인이 아니면서 극선의 성향을 가진 선인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민호는 신기한 눈으로 연신 상태창을 바라봤다.

“수고했어. 나머진 우리한테 맡겨줘.”

미래가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이에 민호는 그녀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해주시고요.”

“응? 의외로 의욕적이네? 보상이 없으면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예상지 못했던 반응에 미래는 신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번에는 지키고 싶거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굳은 결의가 깃든 목소리.

그런 민호의 모습에 미래도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부탁할 게 있으면 말할게.”

“감사합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그러던 중 미래의 시선이 민호의 발에 가 닿았다.

“근데 발은 왜 그런 거야?”

“아, 이건······.”

잠시 말을 흐린 민호.

이어 그는 번개처럼 빠르게 율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끼약!”

“율아. 우리 해야 할 얘기가 있지?”

민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율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헤헤. 아, 아까 그건 어쩔 수 없었던 일로······ 꾸엑!”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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