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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31화 (131/182)

131화

Chapter 36. 염원의 씨앗 (2)

집을 나선 민호는 곧장 카페 브란델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카페에는 이미 네 명의 신의 대리인이 와있었다.

미래와 진하, 그리고 혜진과 혜성.

메리와 이안은 자리에 없었다.

메리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임무가 있었고, 이안은 따로 맡은 일이 있었던 탓이었다. 이안과의 친분으로 한국을 찾은 영국의 토벌자들도 각자 마인들의 흔적을 쫓아 사라졌다.

하지만 미래는 그다지 개의치 않아보였다.

“얘기를 들을 사람은 전부 모인 것 같네.”

주스를 단숨에 들이마신 미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로 걸어 나간 그녀는 일행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우선 내가 받은 임무부터 공유해줄게.”

따악-

미래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일행의 눈앞에 토벌 임무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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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임무: 마인을 토벌하라.

*대상: 전대 전달자 남유석

*목격 장소:

-1. 서울 전역

*보상: [공덕+5,000], 병(丙)급 이하의 보물 3종, 병(丙)급 이하의 능력 3종.

*마감: 5일 21시간 25분

*해당 임무는 협동 임무로 전환되었습니다.

-참가자: [차미래], [강진하], [공민호], [서혜성], [소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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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 임무의 난이도는 4성급.

일행은 저마다 신음을 흘리며 임무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봤다. 그러던 중 혜진이 손을 살며시 들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은 덤이었다.

“출몰 지역이 너무 넓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4성급이지.”

미래가 어깨를 으쓱였다.

동시에 진하의 입술이 달싹였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에겐 유능한 관찰자가 있으니까.”

진하의 말에 혜성이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맞아. 또 마인에 대한 정보도 있지.”

그 한 마디와 함께 미래의 눈빛이 사납게 물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토벌 대상의 이름에 고정되어 있었다.

전대 전달자 남유석.

미래와 진하에게 있어선 옛 동료였던 자. 현재 연쇄 방화 사건의 진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최악의 마인.

거기에 이름도, 얼굴도 알고 있다.

혜성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으리라.

“근데 그 변절자는 왜 방화를 저지르고 다니는 걸까요?”

그때 혜성이 돌연 궁금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셋의 시선이 미래와 진하에게로 향했다. 옛 동료였던 만큼 이유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들의 기대대로 진하는 옛 기억을 더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불꽃놀이를 엄청 좋아한다고.”

“네?”

“불꽃놀이요?”

“에이, 설마요. 고작 그런 이유로······.”

황당한 대답에 셋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미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막의 모래처럼 메마른 미소였다.

“그런 건 몰라도 돼. 중요한 건 이 악마새끼를 끝장내는 것뿐.”

미래는 지독한 혐오를 담아 중얼거렸다.

이어 카페에 정적이 찾아왔다. 미래의 분노가 주변의 공기를 싸늘하게 식혔던 탓이었다.

“저도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때 민호가 정적을 깨뜨렸다.

“뭔데?”

“제 임무의 대상과 그 변절자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요?”

미래가 협력을 요청한 토벌 임무는 민호의 임무와 난이도가 똑같았다.

이에 민호는 분명 변절자와 모종의 관계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민호의 예상은 일부 적중했다.

“네 임무의 대상은 이 사람이다.”

진하가 휴대폰 화면에 사진 한 장을 띄웠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사내.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진하는 사진의 남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신동훈. 올해로 만 35살이고 직업은 소방관이야.”

“아, 소방관이면······.”

“확실히 방화범이랑 얽힐 수도 있겠네요.”

혜성과 혜진이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미래가 둘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문제는 소방관이라서 그런 게 아니지만.”

“네? 그럼 뭔데요?”

“대상이 선인(善人)이라서 그런 거야.”

미래의 말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둘의 얼굴에 궁금증이 깃들자, 미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후후,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우선 이것부터 얘기하고 가자.”

잠시 후, 미래가 꺼낸 것은 한 장의 서류.

일전에 변절자와 <백야>에 대해 설명할 때 봤던 것이었다. 각 변절자들의 명단과 그들의 고유능력이 적힌 서류. 미래는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

“여기 보면 알겠지만 남유석의 고유 능력은 포식(捕食)이야.”

“네, 예전에 말해주셨잖아요?”

“타인의 능력을 빼앗는 능력이라고 적혀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혜진과 혜성의 대답이 미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유능력 [포식].

을(乙)등급의 능력으로, 대상이 가진 능력 일부를 빼앗는 효과를 가졌다.

원래는 토벌자들에게 적합한 능력이었지만, 남유석은 뽑기 운이 좋지 않아 이런 능력을 뽑았다고 했었다.

“맞아. 근데 거기엔 타인의 능력을 어떻게 빼앗는지에 대해선 안 적혀 있었지?”

“네, 거기까진······.”

혜성이 말을 흐렸다.

“간단해. 대상을 굴복시키면 돼.”

“굴복시켜요?”

“응, 협박을 하든, 설득을 하든 상관없어. 뭘 하든 간에 대상이 ‘이 능력을 당신에게 넘겨주겠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바라게 만드는 거지. 그럼 능력을 뺏을 수 있어.”

[포식]은 민호가 가진 [흡수]능력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포식]이 좀 더 까다롭다는 점. 그리고 능력만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신 [포식]은 성공하면 능력을 온전히 빼앗아올 수 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셈이다.

한편 미래의 설명을 들은 혜성은 픽 웃었다.

“에이, 바보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해요?”

“그렇지? 그래서 다른 방법도 있어.”

“어떤 방법이요?”

혜성의 질문에 미래는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무감정한 눈동자를 한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상을 죽이면 돼.”

“······네?”

민호는 순간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잘못 말하지 않았다는 듯이 다시 한 번 힘을 주어 말했다.

“왜냐면 대상을 죽이는 것도 굴복의 일종이니까. 그래서 토벌자에게 좀 더 어울리는 능력이라고 했던 거야. 토벌자는 마인을 토벌한 다음, 능력을 빼앗으면 되잖아?”

미래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민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그래서 남유석은 협동 임무가 있을 때마다 ‘포식’으로 몇몇 마인의 능력을 빼앗았어. 물론 토벌이 완료된 마인들을 대상으로 하긴 했지만. [발화] 능력도 거기서 얻은 거야.”

설명을 끝마친 미래가 입을 꾹 닫았다.

곧이어 진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마인이 된 다음부터는 선인들을 노리기 시작했다. 같은 마인보다는 선인을 없애는 게 더 쉽고 편할 테니까.”

둘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혜성과 혜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의 설명은 방금 전, 혜성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도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때 민호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응? 뭐가?”

“선인에게서 능력을 빼앗는다는 건, 그 대상이 기적을 전달받은 선인이어야만 가능하잖아요? 그 변절자가 대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죠?”

일반인은 아무리 굴복시켜봐야 무의미하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남유석은 선인 중에서도 기적을 받은 선인만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그 선인들에 대해 파악고 있단 말인가?

민호의 질문에 미래와 진하는 낯빛을 돌처럼 굳혔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잔인한 진실을 입에 담아야만 한다는 게 끔찍하기 그지없어서 그랬다.

“남유석이 변절자가 되기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봐.”

“네? 변절자가 되기 전이라면······.”

가만히 말을 이어나가던 그때.

민호의 눈이 큼지막하게 변했다.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서, 설마······.”

“그래.”

동시에 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예전에 직접 기적을 전달했던 선인들을 찾아간 거다. 능력을 빼앗기 위해서.”

“······.”

민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도 끔찍해서 할 말조차 잃은 얼굴이었다. 씁쓸한 얼굴로 이를 보던 미래는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일행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번 임무 대상은 특이한 이력이 있어. 율이한테 이미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대상은 3년 전에 기적을 받았던 선인이야. 그리고······.”

“3년 전이면 남유석이 한창 전달자로 활동했을 시기였지.”

진하가 미래의 말을 받아 이었다.

남유석은 3년 전, 신동훈에게 기적을 전달했다. 그는 당연히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호가 이제껏 임무 대상이었던 선인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마인이 된 남유석은 그가 전달자였을 때, 기적을 전했던 선인들을 하나씩 찾아가 살해했다. 그들에게 줬던 기적을 모조리 빼앗기 위해서!

그 끔찍한 진실에 민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계 예측 시스템으로 보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사실 이것도 정확한 건 아니야.”

미래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민호도 저번에 한 번 겪어봤겠지만, 마인이 무슨 수작질을 부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때도 있거든.”

남은 시간은 5일 남짓.

하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남유석이 당장이라도 움직인다면 마감 시간은 당장 코앞까지 줄어들지도 모른다. 얼마 전, 기적을 전하지 못했던 그때 그 임무처럼.

그렇게 둘 수는 없다.

꽈아악-

민호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그때 진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상을 감시하는 건 우리가 맡을 거다.”

신동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하는 건 관찰자인 진하와 혜성이 할 일이었다. 미래와 혜진은 동훈의 주변을 탐색하며 행여나 다른 마인이 있는지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 제가 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대상에게 기적을 전해주는 일이야.”

민호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준 이는 미래였다.

“기적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선인은 흔치 않으니까.”

“녀석은 분명 바로 행동에 나설 거다.”

진하가 미래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다섯 신의 대리인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위해 흩어졌다.

***

신동훈은 올해로 6년차인 소방관이었다.

털털한 성격과 성실성으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정부에서 표창도 한 번 받았다고 했다.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언제나 제일 앞에 섰고, 많은 생명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만인에게 존경을 받는 그였지만, 동훈에게도 부족한 게 있었다.

바로 썩 좋지 않은 가정형편. 병든 노모를 모시고 있는 터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거기에 최근에는 아내의 몸도 좋지 않아져서 더욱 부담이 커졌다.

“그러니까 아마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길 바랄 거예요.”

율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일리가 있는 추측이었다. 현재 동훈에게 가장 간절한 건 경제적인 부담이 사라지는 것 외에는 없어보였으니까.

민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염원의 씨앗]이 대상의 염원에 반응해서 싹을 틔운다는 거지?”

“맞아요! 분명 돈과 관련된 능력이 생길 거예요.”

율의 대답에 민호는 호기심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과연 어떤 능력이 생길까?”

“우음,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율이 한 가지 추측을 꺼냈다.

“예를 들면 전귀(錢鬼)같은 능력이 생길지도 모르죠.”

[전귀]는 민호가 갖고 싶어 했던 능력이었다.

그래서 율은 저도 모르게 민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민호의 반응은 평범했다.

“오, 그러네. [전귀]정도면 경제적으로 풍족해질 수도 있겠다.”

“의외로 무덤덤하시네요? 아쉽지 않으세요?”

“당연히 아쉽지. 그렇지만······.”

잠시 말을 흐린 민호는 진하에게서 들었던 동훈의 정보들을 떠올렸다.

평판과 궁핍한 가정형편을 제외한다면 정보들은 대부분 동훈이 해온 활약들이었다. 하나하나 선행이 아닌 것이 없었다. 과연 기적을 두 번이나 받는 선인다웠다.

“이런 분에게 돌아가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

동훈은 충분히 [전귀]능력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민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헤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율은 민호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민호는 그런 율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율아.”

“네?”

갑작스런 부름에 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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