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Chapter 34. 승급 (1)
Chapter. 34
승급
==
[임무 보류]
-임무창이 임시 봉인됩니다.
-담당자의 심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
임무를 실패했을 때와 비슷한 메시지.
민호는 일순간 긴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임무가 아니었으니까.
그로부터 십여 분 후.
[전달자님, 안녕하세요.]
비단이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저, 괜찮으시겠어요?]
[그게 임무 대상의 소원이 성취되긴 했는데요.]
[이대로 가면 보상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한 임무가 아니기에 보상도 지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단은 걱정스런 마음에 이런 말을 건넨 것이리라.
이에 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잠시 입을 닫은 그가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덕우가 보였다.
그는 오늘도 땀을 뻘뻘 흘리며 지하실에서 택배상자를 꺼냈다. 그러자 택배 주인으로 보이는 주부가 별안간 상자 하나를 개봉했다.
그 안에 든 것은 탐스럽게 잘 익은 토마토.
“아저씨, 이것 좀 드셔보세요.”
주부가 토마토를 꺼내 봉지에 담았다.
눈대중으로 본 것만 벌써 열 개가 넘었다. 묵직한 봉지를 건네받은 덕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주십니까.”
“호호, 시골에서 올라온 건데 양이 많아서요.”
입을 가린 채 웃는 주부.
덕우는 미소를 띤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네, 맛있으면 나중에 또 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주부는 작은 수레에 상자를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광경을 지켜본 민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보상은 이미 받았거든.”
천계의 기적 없이도 소원을 이뤘다.
그것도 대상만이 아닌, 모든 경비원들에게 더 큰 기적을 안겨줬다. 그로인해 만들어진 저 풍경 자체가 민호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큰 보상이었다.
[후후, 그러네요.]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전달자님!]
비단의 대답이 끝나자.
다시 노란색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
[임무 무산]
-대상의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기적이 회수됩니다.
==
화르륵-
향수는 시퍼런 불꽃에 휩싸여 사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민호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비록 임무는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마음에 있던 짐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기에.
하지만 아직 메시지는 끝나지 않았다.
==
[알림]
-담당자가 임무 기록을 공유합니다.
-당신의 행적이 천계에 널리 퍼집니다.
-천계의 선녀, [려비단]이 당신을 추천합니다.
==
“엥?”
민호는 얼빠진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눈앞에 나타난 건 처음 보는 유형의 메시지였던 탓이었다. 이때 민호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율이 깜짝 놀란 얼굴로 외쳤다.
“오, 선녀가 주인님을 추천했네요!”
“추천? 그건 또 뭐야?”
“임무와 상관없이, 훌륭한 일을 해내거나 달성한 신의 대리인들을 치하할 때 쓰는 방법이에요. 이걸 사용하면 주인님의 최근 행적이 천계에 공유되거든요.”
잠자코 율의 설명을 듣던 민호는 비슷한 걸 하나 떠올렸다.
“어, 그러니까 SNS같은 거야?”
“맞아요! 대신 훨씬 까다롭지만요.”
“뭐가 어떻게 까다로운데?”
“그야 기본적으로 백 년에 한 번씩만 추천을 할 수 있고, 또 공덕도 상당히 소모하거든요. 그래서 잘 안 쓰는 방법인데 선녀가 주인님을 엄청 마음에 들어 하나 봐요.”
백 년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추천.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근데 그런 걸 나한테 써도 되는 거야?”
“뭐, 되니까 썼겠죠. 사실 주인님도 선녀한테 많이 친절하시기도 했고요.”
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던 중 별안간 민호의 눈앞이 환하게 물들었다.
태양처럼 노란빛이었다.
“이건······?”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순간.
별안간 그의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
[알림]
-당신의 행적이 더욱 더 널리 퍼집니다.
-당신의 행적을 읽은 이들이 반응을 보입니다.
-천계의 선녀, [수련]이 당신을 존경합니다.
-천계의 신선, [선하]가 당신을 칭송합니다.
-천명의 천군, [진천대왕]이 웃으며 박수를 칩니다.
-천산의 신령, [소천]이 당신을······.
==
수십, 수백에 달하는 메시지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미처 다 읽을 틈도 없었다. 민호가 눈을 휘둥그레 뜰 무렵, 율이 놀란 듯 외쳤다.
“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읽었네요.”
“많이 읽으면 좋은 거야?”
“그럼요! 어쩌면 특별한 보상이 내려올 지도 몰라요.”
율의 두 눈이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때 다시 들려온 비단의 목소리.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많이 읽으실 줄은 몰랐는데······.]
[다 전달자님이 덕을 많이 쌓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비단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아 민호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아, 그리고 또 말씀드릴 게 있어요.]
[방금 전에 기록자가 말한 것처럼 보상이 내려왔거든요.]
“진짜?”
“정말요?”
민호와 율이 동시에 되물었다.
비단은 웃음기가 깃든 음성으로 대답했다.
[후후, 네. 기뻐하실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럼 보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떤 보상이 내려올까?
민호는 기대어린 얼굴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비단의 대답이 이어졌다.
[축하드려요, 전달자님.]
[오늘부로 6급으로 승급하셨어요!]
“버, 벌써요?”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율이었다.
그녀는 얼마나 놀랐는지, 입을 멍하니 벌린 채 연신 진짜냐고 되묻고 있었다.
“6급······.”
놀란 건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7급으로 승급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또 미옥이나 진하, 메리에게 듣기로 6급으로의 승급은 시간이 길게 걸리는 편이라고도 들은 적이 있었다.
“평균적으로 1년은 넘게 걸린다고 들었는데······.”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리자 비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이 정도로 빠른 승급은 저도 처음이에요.]
[역시 전달자님은 최고에요! 헤헤.]
비단은 쑥스러워하는 대답과 함께 웃었다.
정신을 차린 민호는 본인의 상태창을 눈앞에 띄웠다.
==
*등급: 6급
*이름: 공민호
*나이: 만 24세
*직책: 신의 대리인: [전달자]
*공덕: 1,014 [봉인]
*악덕: 55 [봉인]
*성향: 중선(中善)
*달성도: 43/100
*고유능력: [자세히 보기]
==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성향이 소선에서 중선으로 변한 걸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 그리고 6급부터는 타인의 상태창 중에서 ‘성향’이 해금돼요.]
[이후, 인간에 한해서 성향을 파악하는 게 가능해지죠.]
“그렇구나.”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전달자님은 충분히 자격이 있으셨어요.]
진심으로 기뻐하는 목소리로.
비단은 재차 축하인사를 건넸다.
***
꾸깃-
종이컵이 와락 구겨졌다.
메리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어깨를 부들부들 거리며 떠는 메리.
잠시 후, 그녀는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어떻게 나보다 먼저 6급이 될 수 있어?! 임무는 내가 더 많이 했는데!’
“역시 선배님의 주인님이십니다! 대단하세요!”
억울함의 깃든 외침과 함께, 벨이 두 눈을 반짝였다.
뒤이어 커피를 내온 미옥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구나. 반년도 안 돼서 6급이라니, 이 속도라면 오랜만에 1급 전달자가 탄생할 수도 있겠는걸?”
“하하, 그때까지 전달자를 하고 있다면요.”
거듭되는 칭찬에 민호는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던 중 테이블 위에 있던 미옥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하에게서 온 전화였다.
“네, 여보세요. 응, 그래. 지금? 민호랑 메리만 있어. 왜?”
진하와 대화를 주고받던 그때.
별안간 미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뭐? 미래가 깨어났다고?”
“······!”
그 외침과 함께 민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미옥을 바라봤다.
“······알겠다. 응. 지금 바로 갈게.”
진하와 통화가 끝났다.
그리고 카페 브란델엔 라는 팻말이 걸렸다.
***
셋은 택시를 불러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했다.
곧이어 엘레베이터를 타고 미래가 입원한 7층에 도착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앉아있는 미래가 보였다.
“아, 와어?”
“······.”
정확히 말하면 치킨을 뜯고 있는 미래가 있었다.
셋의 얼굴이 황당하게 물들자, 미래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하하, 오랜만에 일어났더니 배고파서 하나 시켰지. 너희도 먹을래?”
“······남은 게 없어 보이는데요.”
“어, 그러네. 언제 다 사라졌지?”
미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미옥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몸은 좀 어때? 아픈 곳은 없고?”
“하하, 네. 지금은 괜찮아요.”
걱정이 듬뿍 묻어나는 목소리에 미래는 씨익 웃는 걸로 답했다.
뒤이어 민호와 메리도 그녀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러고 보니 대체 뭐하다가 이렇게 된 거야?’
“별 거 아니야. 진하에게 대충 들어서 알겠지만 토벌을 하려다가 실패했어.”
미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말 대수롭지 않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사롭지 않은 귀물을 숨기고 있더라고. 난생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고······. 아야!”
철썩-!
그때 미옥의 손바닥이 미래의 등을 후려쳤다.
그녀는 짐짓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왜 무모하게 혼자 달려들었어? 도움이 필요할 땐 말하라니까.”
“그게 그 자식을 보니까 눈이 확 뒤집혀서 그만······. 헤헤.”
미래가 혀를 살짝 내밀며 웃었다.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고, 미옥도 더 이상 나무라진 않았다. 그저 혀를 차며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아, 그리고 민호도 할 말이 있다고 했어.”
그때 가만히 있던 진하가 입을 열었다.
이에 민호는 그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뭔데? 혹시 술이 고파진 거야?”
“아뇨.”
고개를 가로저은 민호.
그는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강태진을 만났거든요.”
“뭐······?”
그 순간, 미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물었다.
“어, 언제? 아니, 어떻게 만난 거야? 설마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요. 그게 언제냐면······.”
민호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잠시 후, 이야기가 끝나자 미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런 짓을 하는구나. 역시 하나도 안 변했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요?”
“많았지. 강태진은 그 역겨운 짓거리를 ‘수확’이라고 말하곤 했거든.”
미래가 눈살을 찌푸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확이라는 행위는 간단했다.
먼저 선인에게 접촉한 뒤, 그가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다. 그 다음 선인을 조금씩 자신의 입맛대로 조종한다.
시간이 흘러 선인이 완전히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면, 그때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선인에게 있는 공덕, 혹은 악덕을 야금야금 빼앗는다.
오랜 시간을 들여 신뢰를 쌓아간 다음, 목적을 이루는 행위.
그래서 수확이라 불렀다.
미래의 설명에 메리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