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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22화 (122/182)

122화

Chapter 33. 선행은 선인을 만든다 (2)

“아니, 지금 저게 무슨 소리에요?”

“이미 협의를 했다고? 그럼 주민 투표가 무슨 소용이 있어!”

“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냐?”

화를 참지 못한 몇몇 주민들이 방송실이 있는 관리사무소로 몰려갔다.

각 동마다 몇 명씩 나온 주민들은 어느새 수십여 명까지 늘어났다. 사무소 앞을 가득 메운 인파는 방송실 창문을 에워싸고 격렬한 외침을 토해냈다.

“해명해! 해명해라!”

“야! 너희 뒷돈 처먹은 거 아니야?!”

“운영 예산 사용내역부터 공개하세요!”

상황이 점점 악화되자 부광철은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지지하는 몇몇 관리인들과 함께였다.

“여러분!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

“다른 주민분들에게 민폐가 되니 조금만 조용히······.”

“자자, 다들 진정하세요.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광철과 관리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짜증이 듬뿍 묻어나있었다. 인파 사이에서 이를 보던 민호는 두 눈에 힘을 가득 줬다.

그러자 곧 심안이 발동했다.

[아니, 예산 조금 가져간다고 그게 뭐 큰 잘못이라고.]

[내 생활이 좀 편해지면 그게 다 아파트에도 도움이 될 거 아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쯧!]

민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한 이가 없었다.

경비원 인원감축을 하는 이유가 예산을 따로 챙기기 위해서인 것도 놀랐지만 예산을 가져가는 걸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더욱 놀랐다.

무엇보다 저런 인간이 주민 대표라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주민 여러분! 쓸데없는 선동에 놀아나지 마시고 진실을 보세요!”

광철은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주민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선동이라니요! 인터넷에도 파다하게 퍼졌어요!”

“아이고, 만원 아끼려다가 집값 다 떨어지게 생겼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다 거짓말이라고······. 어?”

연신 땀을 닦아내며 해명하던 그때.

광철의 눈에 익숙한 이가 보였다. 인파에 섞여있는 여학생.

바로 미진이었다.

“거기, 저, 저기! 야! 너!”

광철이 침을 튀기며 미진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미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광철은 더욱 커다란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저 아이입니다! 쟤가 퍼뜨린 헛소문이라고요! 야! 너 이리 안 와?”

“뭐라는 거야?”

“누구? 저 여자애?”

광철의 말이 이어질수록 주민들이 하나둘씩 미진을 쳐다봤다.

곧이어 수십 개의 눈빛이 미진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에 미진은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야 부담이 될 만도 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을 테니까.

“당장 나와서 해명해! 떳떳하면 이리 나와서 말해보라고!”

한편 광철은 더욱 의기양양해진 모습으로 외쳤다.

상황을 지켜보던 관리인들도 하나둘씩 미진에게 말을 던졌다.

애가 뭣도 모르고 루머를 퍼뜨린 거라고. 나와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용서해 줄 거라고는 말 등등.

이에 민호는 관리인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들의 추악한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여간 이 양반도 잔머리 하나는 잘 돌아간단 말이야.]

[딱 봐도 중학생인데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불러내서 겁 좀 주다가 마무리하면 되겠네.]

관리인들도 다 한패였다.

저들은 주민들이 아파트 운영에 관심을 갖지 않길 원했다. 이에 민호가 이를 뿌득 갈던 그때, 한 관리인이 미진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끌었다.

“빨리 나와! 나와서 얘기하라니까!”

“······!”

미진의 몸이 종이인형처럼 휘청거렸다.

하지만 관리인은 더 이상 무례한 짓을 하지 못했다.

민호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당신?”

“······.”

민호는 말없이 관리인을 노려봤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잡아끌어 옆으로 밀친 뒤, 미진에게 다가갔다.

“미진아.”

“아, 아저씨······.”

미진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민호를 쳐다봤다.

겁에 질려있는 얼굴. 그럼에도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후회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 눈빛에 민호는 안심했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말을 입 밖에 꺼냈다.

“여기 있는 분들은 모두 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준 사람들이야. 너희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들도 있어. 네가 지키려고 했던 경비아저씨들도 보고 있고. 전부 네 편이야. 그러니까······.”

민호가 잠시 말을 흐렸다.

잠시 후, 그는 미진의 등을 격려하듯 토닥였다.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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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발동: [장수의 격려]

-대상에게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용기 증폭률: 300%

-지속시간: 40분

-공덕 소모량: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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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의 말이 끝나자 미진은 차츰 떨림이 멎는 걸 느꼈다.

놀란 가슴이 빠르게 진정됐다. 경직됐던 다리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머리도 차분해졌다.

냉정을 되찾은 모습에 민호는 씨익 웃었다.

“가서 확실하게 말해주고 와. 모두 네 편이니까.”

“······네!”

미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광철은 여전히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여러분! 저거 보세요. 떳떳하지 못하니까 나오지 못하는 거 아닙니까! 저 애 말만 믿고 이렇게 몰려오셔서 소란을 피우시면······.”

“거짓말 아니에요.”

“어, 뭐?”

“나오라고 하셔서 나왔어요. 마이크 이리 주세요.”

미진은 광철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았다.

평소였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민호에게서 [장수의 격려]를 받은 상태였으니까.

“안녕하세요. 저는 116동 302호에 사는 배미진입니다.”

마이크를 통해 미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긴장이라고는 조금도 깃들지 않은 음성.

미진은 우선 서남아파트의 경비원들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또 많은 도움을 주는 이들인지에 대해 설명했다.

“저희 아파트가 주변 다른 곳에 비해 유독 치안이 좋은 것도 경비아저씨들이 새벽까지 순찰을 돌아주시는 덕분입니다. 또 불편한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와 주세요. 그런 경험은 많이들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비아저씨가 중간까지 마중 나와 주셔서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어요.”

“맞아요! 저도 경비아저씨 덕분에······.”

미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수진이 열렬하게 반응했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지은 미진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또 경비아저씨들은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항상 도와주세요. 택배가 오면 물건이 상하지 않게 항상 지하실에 보관해주시고, 또 등이 나가거나 변기가 막혔을 때도 흔쾌히 도와주십니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괜찮다고 해도 웃으면서 도와주세요.”

“과일이 유독 시원하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맞아, 생각해보니 그랬어.”

몇몇 주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도 미진은 경비원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어렸을 적부터 경비원들과 함께 자라온 그녀였기에, 그들의 노고를 가장 잘 알고 있던 탓이었다.

“저희 서남아파트에 계시는 스물여섯 분의 경비아저씨는 주민들에게 있어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를 떠나, 가족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작 만 원을 아끼자고 가족 분들을 차가운 길바닥에 내쫓는 건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고, 고작 만원이 아닙니다! 1년이면 12만원이라는 액수가······.”

한 관리인이 재빠르게 반박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주민들의 시선은 모두 미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150cm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에서 뿜어지는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내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입니다. 또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주민 투표에 참가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주민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미진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주민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경비아저씨들을 내쫓지 말아주세요. 저 같은 학생들에게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세요. 제가, 그리고 주민여러분들의 아들딸들이 사람답게 자라기 위한 교과서가 되어주세요.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미진의 말이 끝나자 좌중은 일순간 정적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하고자 했던 말은 전부 다 했다.

미진은 광철에게 마이크를 건넨 뒤, 원래의 자리로 향했다. 그러자 광철은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중얼거렸다.

“미친, 애새끼가 무슨 헛소리를 저렇게 장황하게······.”

그리고 그는 두 번째 실수를 저질렀다.

마이크가 아직 꺼지지 않았던 걸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뒤늦게 이를 알아차린 광철이 황급히 마이크를 껐지만, 주민들은 이미 그의 막말을 들은 뒤였다.

“우우!”

“우우우우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야유.

곧이어 성난 외침도 함께 이어졌다.

“뭐? 애새끼? 너 지금 우리 딸한테 뭐라고 했어?!”

“저 뚱땡이가 미쳤나! 야! 안 내려와!”

그 중에서 제일 격분한 건 미진의 부모님이었다.

딸의 대견한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고 있던 차였는데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하다니! 부모로서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관리사무소를 찾은 노인들도 여론에 가세했다.

“인원을 반으로 줄이자고 했었다고?”

“만원 때문에? 아니, 어떤 멍청이가 그런 말을 했어!”

“그럼 우리 같은 노인들은 어떡하라고!”

여론은 빠르게 기울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당차게 연설을 한 미진과 비교해, 광철은 무척이나 부족해보였으니까.

“저딴 놈이 주민 대표라니, 난 인정 못해!”

“내려와라! 당장 내려와!”

“사임해라!”

점점 격해져가는 상황에 광철과 관리인을 결국 꼬리를 말고 관리실로 도망쳤다.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봤던 주민들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미진을 바라봤다.

“어떻게 저렇게 야무지게 컸을꼬. 아직 어려 보이는데.”

“다 부모가 교육을 잘 시킨 덕분이지. 부럽다, 부러워.”

광철이 사라지자 주민들의 관심은 미진에게로 집중됐다. 미진은 주민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하며 다시 한 번 경비아저씨들을 해고하지 말아달라며 부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번 사건의 당사자들도 있었다.

경비원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미진을 바라보았다.

“허허, 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

“나이 먹어서 괜히 눈물만 많아져서는······.”

“고마워서 그래. 고마워서.”

“우리를 이렇게 생각해주는 아이들이 있는 게······.”

“애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어른보다 낫네. 훨씬 나아.”

덕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직 주민 투표는 시작되지도 않았다. 결과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덕우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수많은 주민들에게 둘러싸인 미진을 바라보며.

그저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

한밤중에 일어난 소란은 경찰들이 출동하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

서남아파트 경비원 인원감축에 대한 주민투표가 시작됐다.

총 투표율 63퍼센트.

그 중에서 반대표는 94퍼센트에 달했다. 찬성표는 2퍼센트에 불과했다. 압도적인 기록과 함께 경비원 인원감축에 대한 건은 보류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주민 대표의 교체 건에 대한 주민 투표가 예정됐다.

“와,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는데······.”

율이 감탄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임무 대상인 이덕우에게 전할 기적은 아직도 민호에게 있었다. 즉, 이번 임무는 기적을 전하지 않고도 대상의 소원을 이뤘다는 소리였다.

이 사실에 율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그때, 민호의 눈앞에 노란색 메시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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