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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17화 (117/182)

117화

Chapter 32. 심기일전 (1)

Chapter. 32

심기일전

그날 밤.

끼이익-!

택시가 대학병원 앞에 멈췄다.

한 남자가 택시에서 내렸다. 바로 민호였다.

그는 다급한 얼굴로 곧장 병원 계단을 질주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가 도착한 곳은 병실.

뒤이어 그의 시야에 비친 이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있는 미래였다.

“······!”

멈칫-

잠시 걸음을 멈춘 민호가 천천히 미래에게 다가갔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는 그녀는 마치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순히 잠든 사람치고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이, 이건······.”

미래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또한 팔과 다리에도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었다.

민호의 얼굴에 놀람의 감정이 번져갈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인에게 당했다고 하는구나.”

목소리가 들린 곳은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

그곳에는 미옥을 비롯한 신의 대리인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때 메리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체 어떤 마인이 이런 짓을 한건가요? 아니, 애초에 여기서 미래를 이렇게 만들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가쁜 숨을 몰아쉬는 메리.

그녀는 이제 막 도착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 메리의 말을 들은 민호는 별안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사념을 읽는 선글라스를 통해 본 두 번째 광경.

그곳에서 민호는 두 마인을 봤다. 하나는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익히 알고 있는 이였다.

그리고 그 남자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어제? 아, 차미래 말하는 거지?’

‘놓쳤어. 붙잡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지.’

‘그래도 당분간은 까불지 못할 거다. 한 방 크게 먹여줬거든.’

남자의 얼굴에 번져가는 미소를 떠올리자.

뿌드득-!

민호는 이를 갈았다.

그러던 중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 남자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강태진이다.”

진하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네?”

“강태진이라면······.”

메리와 혜진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미래가 경고했던 최악의 마인이라는 걸 떠올린 탓이었다.

“잠깐.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

그때 미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녀가 알기로 미래는 혼자 따로 행동하다가 이런 부상을 입게 된 것이었다.

병원에서도 그렇게 연락이 왔었고.

무엇보다 미옥과 진하는 어제부터 줄곧 함께 있었다. 미래를 습격한 마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일행의 시선이 한 군데로 모아지자, 진하는 착잡한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미래와 함께 녀석을 쫓고 있었거든요. 1년 전부터 줄곧······.”

진하의 설명은 이랬다.

지난 1년 전부터 진하와 미래는 임무와는 별개로 강태진의 뒤를 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의 목적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미제사건의 중요 피의자였습니다.”

진하가 강태진을 쫓는 이유는 직업적인 사명이었다.

또 그가 담당한 사건의 중요한 피의자였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미래가 강태진을 쫓는 이유에 대해서는 짧게 일축했다.

“복수입니다.”

“복수요?”

“응, 미옥 누님은 아시겠지만······.”

진하가 어색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 이후는 설명하기 곤란한 것처럼 보여서 민호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리고 최근에 녀석의 위치를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전이네요.”

1년을 넘게 추적한 결과.

미래는 드디어 강태진의 위치를 특정해, 그를 토벌하려고 했다.

하지만 토벌은 실패했고 미래는 중상을 입었다.

진하의 이야기가 끝나자 미옥은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런 중요한 일을 대체 왜······!”

“미래가 원치 않았습니다.”

진하가 미옥의 말을 끊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태진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는 미래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진하의 입이 굳게 닫혔다.

그 모습에 미옥은 더 이상 진하를 나무랄 수 없었다.

“······후우,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한숨을 내쉰 미옥.

그녀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미래를 내려다봤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건만······.”

“괜히 휘말렸다가 예전처럼 또 동료를 잃게 될까봐, 그게 무서웠던 거겠죠.”

진하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심야 면회 시간이 끝났다.

카페로 돌아온 일행은 저마다 입을 닫은 채 고개를 숙였다.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던 그때.

여태껏 잠자코 있던 민호가 입을 열었다.

“······강태진이었습니다.”

“네?”

‘갑자기 무슨 소리야?’

혜진과 메리가 동시에 물었다.

곧이어 민호는 고개를 들어 일행과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다시 한 번 그 남자의 이름을 내뱉었다.

“제가 말했던 변호사. 그 남자가 강태진이었어요.”

“뭐?!”

진하와 미옥의 눈이 점점 커다래지는 걸 보며.

민호는 선글라스를 통해 그가 보고 들었던 모든 걸 털어놨다.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 정도가 지난 뒤.

진하가 민호의 이야기를 듣다가 돌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면을 벗었다고? 일곱 개의 뿔이 돋아난 가면을?”

“아, 네. 분명 여기랑 여기, 그리고 이쪽에 뿔이 있었어요.”

민호가 가면에 돋아난 뿔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러자 진하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그럼 강태진이 맞다. 칠각(七角)의 가면을 가진 이는 오직 그 녀석뿐이니까.”

진하가 강태진의 존재를 인정했다.

이때 잠자코 있던 혜성이 의아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마인이 어째서 그런 짓을······.”

“모른다. 녀석의 사고는 예전부터 종잡을 수 없었거든.”

진하의 입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시 분위기가 우울하게 변하려던 그때.

혜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협회의 화력지원? 그건 어떻게 됐나요?”

“맞아. 듣기로 이안이 부탁을 해뒀다고 했는데······.”

혜진도 이를 떠올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의 시선은 메리에게 가 닿았다.

이안이 자리에 없는 지금, 그의 소식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이가 바로 메리였으니까.

그러나 메리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해서 미안하지만, 반려됐어.’

“뭐? 어째서······.”

“저번에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잖아요?”

혜성이 놀란 듯이 묻자 메리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랬는데 시리아에서 일이 하나 터졌거든.’

메리가 짧게 설명했다.

시리아에서 테러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내전이 발생했는데, 그 테러단체의 뒤를 조종하는 게 바로 마인들이었다.

메리는 얼마 전, 중국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마인 토벌과 비슷한 규모로 흘러가고 있다는 설명도 함께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순위에서 밀렸어. 오히려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더라고.’

“······후우,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진하가 막막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안과 친한 토벌자들이 도와주러 온다고 했어. 미래가 저렇게 됐으니까 협회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일부 인지한 모양이야.’

그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단은 미래가 빨리 눈을 뜨길 바라야겠구나.”

미옥의 중얼거림에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강태진과 직접 접촉해, 그와 전투를 펼친 건 오직 미래뿐이었으니까.

***

그로부터 약 이틀 후.

공원의 벤치에 앉은 민호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잠시 후, 민호의 눈동자가 휴대폰으로 향했다.

문자가 몇 통 와있긴 했지만 그가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후우.”

재차 한숨을 내쉰 민호.

그의 시선은 연락처에 적힌 ‘미래 누나’에게로 가 닿았다.

미래는 여전히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담당의사의 말에 따르면 신체는 거의 회복됐지만, 아직 정신적인 부분에서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설마 같이 술 먹자는 말이 그리워질 줄은 몰랐는데······.”

민호가 쓰게 웃었다.

그때 수박이와 함께 놀던 율이 뒤를 홱 돌아봤다.

“토벌자님이 걱정되시나 봐요.”

“뭐 그렇지. 좀 허전하기도 하고.”

어깨를 으쓱거린 민호.

하지만 여기서 죽치고 있어봐야 해결되는 건 없다.

이를 인지한 민호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던 찰나.

[똑똑]

[저, 안녕하세요. 전달자님.]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조심스러운 말투가 들려왔다.

비단의 목소리였다.

[저번에는 죄송해요.]

[위로 먼저 해드렸어야 했는데 임무 실패 통보부터 해서······.]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음성이었다.

비단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기에 민호는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마. 이제 괜찮아졌어.”

[정말요?]

[정말 괜찮아지셨어요?]

“응,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

민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그게 맞는 말이기도 했고.

[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다른 게 아니라 사실 임무가 하나 내려왔거든요.]

비단이 우물쭈물거렸다.

그녀도 지금 신의 대리인들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알고 있는 탓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거절하셔도······.]

“할게.”

민호가 비단의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분명 상황은 좋지 않았다.

미래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협회에서의 지원은 거절됐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선인이 기적을 받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선인이 기적을 받는 것은 그가 지금껏 쌓아온 공덕에 대한 당연한 대가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임무창을 보여드릴게요.]

민호의 결의를 느낀 탓일까?

비단의 진지한 목소리와 함께 임무창이 나타났다.

==

*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58년 9월 21일생

-해시(亥時)에 태어난 이덕우(李德優)

*기적: 안개의 향수

*마감: 없음

==

[그럼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구요.]

비단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르륵-

민호의 손바닥 위로 기적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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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향수]

*등급: 병(丙)

*종류: 소모품

*존재감을 완벽하게 지워주는 향수

*향수를 1회 뿌리면 1시간 동안 존재감이 사라진다.

*최대 5회까지 중복 사용이 가능하다.

*용량: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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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백색의 액체를 담은 조그마한 크기의 향수.

설명을 읽어봤지만 도통 어디에 쓰는 보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우우웅-!

그의 휴대폰이 가늘게 떨렸다.

진하에게서 온 문자였다.

-바로 또 임무하느라 고생이 많다. 일단 정보부터 줄게.

-공교롭게도 이번 대상도 경비원이다.

-나이는 만 61세. 근무한지는 올해로 13년차.

-근무지는 경기도 수원시의 서남 아파트야.

멈칫-

민호의 손가락이 일순간 멈췄다.

대상의 직업이 경비원이라고 적혀 있었던 탓이었다.

이를 보자 문득 얼마 전, 실패했던 임무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서남 아파트는 현재 경비원 인원감축을 계획 중이라고 해.

-그리고 대상의 가정형편은 썩 좋지 않다.

-만약 대상자에 포함돼서 일터를 잃게 된다면 곤란하겠지.

-이번 임무는 이를 막는 내용인 거 같아.

-그럼 수고해라. 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연락하고.

진하의 문자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민호는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경비원이라는 단어를 본 다음부터 줄곧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실패했던 지난 임무가 떠올라서, 눈앞을 붉게 물들였던 경고창이 떠올라서 숨이 잘 쉬어지지가 않았다.

또 실패하면 어떡하지?

또 마인이 간섭해서, 대상이 죽는다면?

수많은 상상이 떠올랐다.

거기에 따라 민호의 손도 조금씩 떨렸다. 그러자 이상함을 눈치 챈 걸까? 민호에게로 다가온 율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주인님, 힘드시면 이번 임무는 포기하는 게······.”

포기.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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