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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14화 (114/182)

114화

Chapter 31. 전하지 못한 기적 (1)

Chapter. 31

전하지 못한 기적

‘벼, 별 4개짜리 임무라고?’

그 말에 민호의 시선도 ‘난이도’로 향했다.

메리의 말처럼 임무 난이도는 4성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아니, 그보다 시간이 계속 줄잖아?!’

바로 임무 마감 시간.

분명 사흘 이상이 남았어야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그마저도 빠르게 줄고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4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메리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그녀의 말에 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비단의 음성이 이어졌다.

[천계 예측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어요!]

[이, 이런 경우는 임무 대상이 악의를 품었을 때뿐인데······.]

가늘게 떨리는 비단의 목소리.

민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른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알았다.

한시라도 빨리 영호에게로 가야한다는 걸!

-이번 역은 정자, 정자역입니다. 내리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지하철이 멈추기가 무섭게 민호의 발이 지면을 박찼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메리도 군말 없이 민호를 먼저 보냈다.

타다다다다-

단숨에 계단을 올라 보도를 질주했다.

지금도 시간은 빠르게 줄어갔다.

횡단보도 너머, 동북 아파트가 보였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변하고 민호는 다시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순간적으로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삐이이-

일정하고도 불길한 전파음.

심전도검사에서 심장이 멎었다는 걸 알리는 것처럼 들리는 소리.

동시에 민호의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나타났다.

==

[임무 마감 시간 초과.]

-임무창이 임시 봉인됩니다.

-담당자의 심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십시오.

==

“뭐, 뭐······?”

민호가 당황한 듯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던 중 멀리서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엄청 모여 있었다.

인파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차에 구급차, 소방차까지 와있었다.

검게 물든 불길함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터벅터벅-

민호가 걸음을 옮겼다.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보였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구급대원들이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할머니!”

“빨리 옮겨! 빨리!”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제 영호에게 상한 밤을 먹으라고 했던 노파.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채 들것에 실려 나왔다. 옷과 머리 일부가 불에 그슬린 것처럼 변해있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자 심장이 거칠게 요동쳤다.

불길한 기분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그때.

민호의 귓가로 동네 주민들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세상이 왜 이러는지. 이거 흉흉해서 살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야. 그 아저씨, 설마 그런 사람일 줄은 몰랐는데······.”

아저씨?

그 말에 민호는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다른 이가 그 대화에 합류했다.

“뭔데? 무슨 일이야?”

“말도 마. 칼로 찔렀대!”

“카, 칼?!”

“세상에, 대체 누가?”

“누구겠어? 그 박씨 아저씨야. 3단지에 있던 경비.”

“······!”

그 순간,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새하얗게 변한 민호의 머릿속으로 주부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거기다 휘발유까지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대.”

“칼 휘두르고 몸에 불까지 붙였다고 들었어.”

“정말? 이게 갑자기 무슨 난리야?”

“잠깐만. 그럼 찔린 사람은 누구야?”

“왜 있잖아? 409호에 머리 좀 이상한 할머니.”

“아, 그 할망구?”

“하긴 평소에 사이 안 좋긴 했지.”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원수 괴롭히듯 괴롭혔었지.”

“그래도 사람을 찌르는 건 좀······.”

“그러게 말이야.”

“아휴, 흉흉하기도 해라.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주부들은 일제히 혀를 찼다.

뒤이어 민호의 눈앞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

[경고]

-임무 대상: 박영호가 사망했습니다.

-기적이 회수됩니다.

==

그 짧은 메시지를 끝으로.

민호의 손에 있던 기적이 불에 휩싸여 사라졌다.

***

아파트 단지를 가득 메우던 인파가 모습을 감췄다.

경찰차와 구급차, 소방차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지만 민호는 발을 떼지 못했다.

벤치에 멍하니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잿더미로 변한 로또 당첨용지를 손에 꼭 쥔 채.

‘민호야······.’

뒤늦게 도착한 메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민호에게 반응은 없었다.

민호는 황망한 눈으로 그저 멍하니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메리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저, 전달자님.]

비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죄송하지만······.]

어떤 말이 나올지 눈치챈 걸까?

메리가 그녀의 말을 대신 받았다.

‘알고 있어. 임무 실패했다는 소식이지? 민호한테는 내가 전해둘게.’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올게요.]

메리에게 감사를 전한 비단이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메리는 민호를 가볍게 껴안았다. 그러고는 아이를 달래듯이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멈칫-

민호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잠시 후, 그는 머리를 쥐어짜며 중얼거렸다.

“왜, 왜. 어째서 이렇게······.”

이해할 수 없었다.

고작 하루였다.

이제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까지 변한단 말인가?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민호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의문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메리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카페로 돌아가자. 여기 있어봐야 해결되는 게 없어.’

“맞아요. 가서 다른 분들께도 조언을 구해 봐요.”

율이 민호의 팔을 잡아끌었다.

***

달그락-

“자, 여기 커피.”

“······감사합니다.”

민호는 미옥에게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뜨거운 탓일까? 아니면 마시고 싶지 않은 걸까?

민호는 멍하니 커피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미옥은 민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중, 미옥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들었다. 임무 실패했다면서?”

“······.”

“신경 쓰지 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잖니?”

‘맞아. 어쩔 수 없었어. 네 탓이 아냐, 민호야.’

메리도 가세해서 민호를 위로했다.

둘의 위안 덕분일까? 민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아요.”

‘거짓말. 전혀 괜찮은 얼굴이 아닌걸.’

메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알아. 그래서 지금 당장 괜찮아지라고는 말 못해.’

걱정이 듬뿍 묻어나는 눈빛으로.

메리는 민호의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이것만 알아둬. 절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넌 계획까지 세우고 기적을 전해주고자 하는 의지까지 품었잖아? 그러니까 네 탓이 아니야. 그 마인 때문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사고야.’

메리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미옥이 말을 이었다.

“당분간은 임무 생각하지 말고 푹 쉬렴. 아, 그리고 어제 말했던 그 변호사에 대해선 나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민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민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카페를 나섰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혜진이 입을 열었다.

“따라가 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가볼까요?”

“소용없어. 저건 누가 곁에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니까.”

미옥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유리문 너머로 사라지는 민호의 뒷모습을 지그시 응시했다.

“임무 실패는 잦아. 오히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를 겪지 않았다는 게 놀라운 거지. 그렇기에 이런 일은 스스로 납득하고 받아들여야 돼. 그걸 하지 못하면······.”

미옥의 입을 비집고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 신의 대리인으로 살기는 어려울 거야.”

***

카페를 나선 민호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어느 공원.

민호는 나무 아래에 있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민호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툭- 투둑!

얼마 후, 빗줄기가 떨어졌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어졌다. 민호의 옷도 점점 물기로 젖어갔다.

율은 안절부절 못하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민호를 쳐다봤다.

“주인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우산이라도 구해올게요!”

율이 세찬 날갯짓을 하며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민호.

그때 차가운 빗방울이 그의 이마를 톡- 하고 두드렸다.

일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뿌연 안개가 조금 걷힌 기분.

그 틈을 비집고 이성이 자리를 되찾았다. 그러자 단번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영호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까 전, 경찰들이 나눈 대화에 의하면 영호는 칼을 들고 직접 노파가 사는 집까지 걸어 올라갔다고 했다.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채, 노파의 집에 쳐들어 그녀의 배와 어깨를 찔렀다. 이후 몸에 불을 붙인 다음, 괴성을 지르다가 쓰러졌다.

그로부터 십 여분 후.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다.

노파는 의식을 잃었지만 죽진 않았다.

반면 영호는 심각한 화상을 입고, 구급차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숨이 끊어졌다.

경찰은 영호가 노파를 찌르고 몸에 붙일 정도라면 상당한 원한이 있을 거라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기억을 떠올린 민호는 괴로운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왜 갑자기······.”

민호는 영호의 괴로움을 몰랐다.

모르는 게 당연했다.

영호는 임무 대상으로 본지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여태껏 잘 참아왔던 영호다.

또 아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을 할 정도로 의욕적으로 살았다. 그랬던 그가 고작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사람을 찌르고 분신을 시도한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을 거다.

민호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현재로썬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이에 민호가 한숨을 내쉬던 그때, 우산을 쓴 한 여성이 그의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왜 화를 내냐고? 아니,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그녀는 휴대폰 너머에 있는 상대에게 화를 냈다.

붉게 물든 얼굴로,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쳤다.

“그래서 걔랑 밤에 만나서 대체 무슨 얘기를 했는데! 어?”

밤?

그 순간, 민호의 어깨가 움찔하고 떨렸다.

어제 스치듯 들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던 탓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따 밤에 다시 뵙죠.’

‘살펴가세요, 선생님. 밤에 뵙겠습니다!’

도성과 영호가 헤어지기 직전 나눴던 대화.

민호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변했다.

“······그래, 밤.”

생각해보니 민호가 모르는 변수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밤. 도성과 영호는 밤에 한 차례 더 만났다.

그리고 거기서 도성에게 뭔가 수작을 당했다면?

그럼 이런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충분했다.

또 민호에게는 도성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물건에 깃든 사념을 볼 수 있는 선글라스.

“이것만 있으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민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스윽-

민호의 발아래로 그늘이 졌다.

이어 더 이상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우산을 씌워준 덕분이었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들었다. 우산을 가지러갔던 율이 벌써 왔나 싶어서였다.

“비 그렇게 맞고 있으면 감기 걸려.”

“어······?”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는 처음 보는 소녀.

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노란색 우의를 입은 채 민호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민호의 눈이 소녀에게로 향하자, 그녀는 생긋 웃었다.

햇살처럼 눈부신 미소였다.

“오랜만이야, 민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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