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Chapter 30. 방해 (3)
무더운 햇볕이 아스팔트를 달구는 대낮.
섭씨 37도가 넘는 폭염에도 일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삿짐센터 직원들. 물론 살이 타들어가는 더위 앞에서 장시간 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은 3~40분 단위로 그늘이나 천막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물론 잦은 휴식만큼이나 한 번 일할 때는 확실하게 일했다.
민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끙차!”
민호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이삿짐을 옮겼다.
그로부터 십여 분 후. 멀리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학생!”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바로 이삿짐센터 직원이었다.
“수고했어. 좀 쉬었다 해.”
민호에게 생수병을 건넨 직원은 간이 천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민호는 어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 저 그런데 여기서 쉬어도 될까요?”
“여기서? 안 덥겠어?”
“괜찮습니다. 더위에 강한 편이거든요.”
“뭐, 그래. 마음대로 해.”
고개를 갸웃거린 직원이 천막을 향해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민호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관리실을 응시했다.
그러던 중 율의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진짜 이것도 능력인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임무 대상 근처에서 알바를 구할 수가 있어요? 그것도 이렇게 빠른 시간에?”
“원래 고된 일은 수요가 많으니까. 그보다 이제 조용히 해봐.”
민호가 귀를 톡톡 두드렸다.
잠시 후, 여우 귀가 발동했고 이내 사방의 소음이 들려왔다. 그 중에서 민호가 집중한 건 관리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두 남자의 대화소리.
‘그,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정말로요?’
‘네. 나머진 제가 알아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영호와 도성의 목소리.
‘저, 선생님. 그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형편이······.’
‘나중에 천천히 주셔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드님부터 생각하세요.’
‘아이구,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둘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였다.
아마 아들 문제로 함께 만나는 것 같았다. 이로써 의심할만한 여지가 사라지자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영 기분이 안 좋은 듯 미간을 구겼다.
“들리는 걸로만 봐선 좋은 사람인데······.”
“그런데요?”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서.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나? 좀 오싹한 느낌?”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관찰자라거나, 토벌자들한테요.”
“그러고는 싶은데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어서······.”
도성을 볼 때면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인을 발견했을 때와는 묘하게 다른 기분이었기에 뭐라고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민호가 말을 흐리던 그때.
끼이익-
관리실 문이 열렸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따 밤에 다시 뵙죠.”
밖으로 나온 도성이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서, 선생님! 잠깐만요.”
그때 영호가 도성의 팔을 붙잡았다.
잠시 후, 그가 건넨 것은 초코파이 두 개.
“가다가 드세요. 죄송합니다. 드릴 게 워낙 없어서······.”
“와, 이거 정말 맛있는 건데. 하하 잘 먹겠습니다. 아, 커피도 잘 마시고 갑니다.”
“살펴가세요, 선생님. 밤에 뵙겠습니다!”
영호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도성이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민호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때 율이 다시 말을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마음 같아선 저 남자 뒤를 쫓아가보고 싶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민호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임무가 먼저였으니까.
“그럼 관찰자한테 추적해보라고 하면 어때요?”
“응, 한 번 부탁해보자.”
혜성이라면 도성의 뒤를 쫓는 게 가능하리라.
민호는 휴대폰을 꺼내 혜성에게 톡을 보냈다. 강도성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인상착의에 대해 설명하던 찰나, 별안간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등이 조금 굽은 70대 중반의 노파.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관리실 문을 두드렸다.
“박씨, 안에 있나?”
“예, 옛!”
영호가 재빨리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보였다.
“저, 어르신. 오늘은 무슨 일로······?”
쩔쩔매는 태도.
마치 껄끄러운 사람과 마주한 이처럼 보였다.
“다른 게 아니라 엊그제 밤이 좀 들어와서 나눠주려고.”
“바, 밤이요?”
“응. 내가 맛있게 삶았어.”
노파가 비닐봉지를 건넸다. 그 안에는 물기가 젖은 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영호는 순간적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녀에게서 비닐봉지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그려. 한 번 먹어봐.”
“지금요?”
“그래. 뭐하고 있어? 얼른.”
영호를 재촉하는 노파.
묘하게 수상한 느낌을 받았기에 민호는 시선을 고정했다.
한편 영호는 반쯤 깐 밤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얼마 후.
“욱! 우웩!”
돌연 헛구역질을 하는 영호.
그는 입 안에 넣었던 밤을 모조리 뱉어냈다.
“우욱, 이, 이거 쉰내가 엄청······.”
상한 밤처럼 보였다. 삼키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리라.
여기까지만 봤을 때 민호는 노파가 영호에게 사과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노파의 태도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예?”
“내가 직접 삶아왔다고 했잖아. 근데 그걸 뱉어?”
“아, 아니요. 어르신, 이건 상한 음식이라······.”
“상해? 뭐가 상해! 오늘 받아서 방금 삶은 건데! 빨리 먹어. 빨리!”
노파가 빽 소리를 질렀다.
주변을 지나는 이가 힐끗거리며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영호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 황당한 모습에 민호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어휴, 저 할망구는 또 저러네.”
그때 들려온 목소리.
천막에서 쉬고 있던 직원들이었다.
“아시는 분이에요?”
“유명해. 여기 살진 않아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직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저 노파는 평소에도 다른 경비아저씨나 청소부들을 괴롭히는 걸로 유명했다고 했다. 참다못한 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해고 통지서였다.
“저 할망구 아들이 이 아파트 단지 자치 회장인가? 뭐 그렇다더라고.”
“그래서 그만둔 분도 많다고 들었지. 아주 악질 중에 악질이야.”
직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던 그때, 길을 지나던 한 주부가 노파를 말렸다.
“할머니, 그만 하세요. 사람한테 상한 음식을 주면 어떡해요?”
“사람? 여기 사람이 어디 있어! 집 지키는 개지! 개!”
빽 소리를 지른 노파.
그녀는 시뻘겋게 물든 얼굴로 마구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니가 뭔데? 어? 야 이 년아! 어디가! 이리 안 와!”
노파의 정신 나간 태도에 주부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노파는 사라져가는 주부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해댔다.
“쯧,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 어휴.”
직원이 혀를 낮게 찼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다른 단지의 경비원들과 몇몇 주민들의 만류로 상황은 마무리됐다. 노파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고 홀로 남겨진 영호는 잔뜩 굳은 얼굴로 연거푸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민호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잔뜩 움츠러든 영호의 어깨가 너무도 안쓰러워보였다.
***
영호에 대한 탐색이 끝난 뒤.
민호는 그 길로 곧장 카페로 향했다.
딸랑-
“안녕하세요, 선배.”
‘아, 민호 왔네. 어서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혜진과 메리가 민호를 반겼다.
듣자하니 메리는 벌써 임무를 완수한 모양이었다.
‘네 임무는 어때? 순조로워?’
“내일 시험을 치르고 기적을 전달할거야. 근데······.”
‘근데?’
“으음, 좀 꺼림칙한 게 있어서.”
민호가 말을 이었다. 강도성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선배, 그거 혹시······.”
‘뭐야? 설마 마인 아니야?’
메리와 혜진이 놀란 듯 소리쳤다.
하지만 민호는 애매모호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마인치고는 선해보였어. 다른 꿍꿍이가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꺼림칙한 느낌만 제외한다면 도성은 그야말로 선인이었다.
그러자 혜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제가 한 번 뒤를 파볼까요?”
“괜찮겠어? 요즘 시험기간이라고 들었는데?”
“평소에 틈틈이 공부해둬서 괜찮습니다. 그럼 일단 혜성이한테 협조 요청을······.”
“아, 그건 이미 해뒀어.”
민호가 대답을 하던 그때, 누군가 카페를 찾았다.
바로 혜성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앗, 민호 형!”
“어서와. 학원 다녀오는 거야?”
“네. 아 그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책가방을 내팽개친 혜성이 후다닥 달려왔다.
혜성은 민호에게 그와 나눴던 톡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민호 형, 그 변호사라는 아저씨 이 이름 맞아요?”
“응. 왜?”
“없어요.”
“뭐?”
“찾아봐도 없어요. 아, 몇 명 있긴 했는데 전부 다른 사람이었어요.”
혜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민호와 혜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말은······.”
“귀물을 쓰고 있는 마인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민호는 촉이 좋았다. 이는 다른 신의 대리인들도 인정했다. 그런 민호가 위화감을 느꼈고, 또 혜성의 능력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존재.
그런 이는 오로지 마인뿐이었다.
‘상태창까지 속일 수 있는 귀물을 가졌다면 최소 상급 마인일거야.’
마인은 목적이 있을 때만 움직인다. 그런 녀석이 선인인 영호 주변을 맴돈다는 것은 곧 영호에게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는 소리였다.
민호가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던 그때.
“미래 누나한테 연락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혜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재 여기서 상급 마인을 상대할 수 있는 이는 둘. 미래와 이안뿐이다.
‘하지만 미래는 지금 여기 없잖아?’
메리의 말대로 미래는 부재중이었다.
마인 집단인 백야에 대한 단서를 찾으러 자리를 비웠다. 오지에 있기라도 한 건지 휴대폰도 잘 받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연락은 해두겠습니다.”
‘응. 나도 동생한테 말해둘게.’
고개를 끄덕인 메리가 휴대폰을 꺼냈다.
이를 본 민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토벌자들이 도와준다고 하니 안심이 된 탓이었다.
두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이러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
다음날.
민호는 다시 동북 아파트로 향했다.
오늘은 메리와 함께였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미래의 조언을 따른 것이었다.
또 계획도 제대로 세워뒀다.
일전에 택배기사에게 기적을 전달했던 것처럼, 메리와 노부부로 변장해 시험을 치를 거다. 그리고 선인이라는 게 입증되면 바로 복권을 전하고 나오면 끝. 이후 복권 당첨자 발표를 하면 상황은 종료되리라.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면 민호의 계획은 모조리 부서졌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하던 중.
비단의 다급한 목소리가 민호의 귓가를 찔렀다.
[저, 전달자님! 큰일이에요!]
[임무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
“뭐?”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비단의 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건 비단의 목소리가 아닌, 붉은색으로 물든 메시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붉은색 임무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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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긴급]
*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52년 5월 23일생
-술시戌時에 태어난 박영호(朴瑛浩)
*기적: 로또 2등 당첨용지
*마감: 0일 1시간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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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무창을 본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함께 곁에 있던 메리도 마찬가지였다.
임무 내용을 본 그녀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