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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112화 (112/182)

112화

Chapter 30. 방해 (2)

그로부터 사흘 후.

두 남녀가 사진 하나를 마주한 채 앉아있었다.

리트리버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환히 웃고 있는 사진.

여성은 눈을 감은 채, 한 없이 사진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곁에 있던 남자는 아련한 얼굴로 그런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던 중 여성의 입술이 달싹였다.

“······영훈씨.”

“네, 은희씨.”

“우리 소망이, 잘 찍혔어요?”

“그럼요. 엄청 행복한 얼굴이에요.”

영훈의 대답에 은희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소망이의 사진을 쓰다듬자, 영훈은 넌지시 말을 걸었다.

“계속 생각나시나 봐요.”

“네, 지금이라도 부르면 바로 달려와 줄 것 같은데······.”

은희가 말을 흐렸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영훈은 크게 당황한 듯, 안절부절 못했다.

잠시 후, 은희가 눈물을 닦아내자 영훈은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큼큼! 너무 걱정 마세요.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어떤 이야기요?”

“반려동물은 저승에서 주인을 기다린대요. 저승사자와 염라대왕한테 주인이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면서요.”

영훈의 이야기와 함께.

은희는 문득 잊고 있던 걸 떠올린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강 앞에서 기다려준다고······.”

“네? 강이요?”

영훈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묻자 은희는 얼마 전, 꿈에서 소망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걸 입 밖에 꺼냈다.

얼마 후, 모든 이야기를 들은 영훈은 미소를 지었다.

얼어붙은 마음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미소였다.

“그럼 행복하게 살아야겠네요. 행복하게 살아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줄 수 있게.”

“네, 꼭 그럴 거예요. 꼭······.”

그 말을 끝으로.

은희와 영훈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멀리서 이런 광경을 지켜보는 두 남녀가 있었다.

“많이 괜찮아진 것 같네.”

민호가 씨익 웃었다.

그는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이걸로 소망이도 좀 더 안심하고 기다릴 수 있겠어.”

‘응, 정말 잘 됐어. 훌쩍!’

민호의 곁에 있던 메리가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하염없이 은희와 영훈을 바라봤다.

“원래는 이걸 써서 반응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낸 민호.

그가 꺼낸 것은 평범해 보이는 선글라스였다.

이번 임무를 완수하고 받은 보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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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사념 재생기]

*등급: 을(乙)

*종류: 소모품

*특정한 매개체에 깃든 사념을 추출해, 재생한다.

*단, 최근 24시간 이내의 사념만 추출이 가능하다.

*사용조건: 매개체와 접촉할 것

*사용횟수: 3/3

*재생시간: 10분

*사용횟수를 초과하면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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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사용하면 은희가 떠난 소망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으리라.

혹은 영훈의 태도가 진심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 둘의 모습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보였다.

민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릴 무렵, 메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좋은 반려동물과 좋은 주인이었어. 훌쩍!’

여전히 울음이 섞인 목소리.

그러자 잠자코 있던 벨이 짜증난다는 듯 소리쳤다.

“그만 좀 울어! 이런 거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흑! 그치만 눈물이 계속 나오는 걸? 우리 릴리도 나중에 날 기다려 줄까?’

“네가 잘 했으면 기다려주겠지. 아니면 그냥 스틱스 강을 건너버렸을 거고.”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나도 우리 릴리, 또 보고 싶은데······.’

듣자하니 메리는 일전에 소망이와 비슷하게 생긴 리트리버를 기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번 임무에 좀 더 감정이 이입된 것 같았다.

“분명 또 볼 수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응. 꼭 그랬으면 좋겠어.’

민호의 위로에 메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

그러던 그때였다.

[전달자님, 안녕하세요.]

[새로운 임무가 들어와서 연락드렸어요.]

비단의 목소리였다.

임무를 해결한지 사흘 만에 하달된 새로운 임무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엔 임무가 꽤 자주 있네?”

[그, 그간 쌓인 게 많아서······.]

[앞으로 두 개 정도만 더 해결하면 당분간은 괜찮을 거예요!]

그녀의 대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방학이기도 했기에 임무를 할 시간은 넘쳐났다.

“이번 임무의 기적은 뭐야”

이번에는 또 어떤 선인을 돕게 될까?

민호는 별 생각 없이 물었다. 그러자 비단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으음, 뭐라고 해야 될까요.]

[왠지 전달자님이 엄청 탐낼 거 같은 기적이에요!]

“내가 탐낼 거 같은 기적?”

민호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비단이 곧장 외쳤다.

[네! 무조건 탐낼 거 같아요.]

[아, 그렇다고 해서 가져가진 마세요. 물론 전달자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만요.]

이쯤 되면 슬슬 궁금해진다.

“어떤 기적인데 그래?”

민호는 호기심이 잔뜩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헤헤, 직접 보시면 알 거예요!]

비단의 밝은 음성과 함께.

임무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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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52년 5월 23일생

-술시戌時에 태어난 박영호(朴瑛浩)

*기적: 로또 2등 당첨용지

*마감: 6일 14시간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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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일단 기적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임무 대상에게 전해야할 기적.

그것은 로또 2등 당첨이 확정된 복권이었다.

***

덜컹 덜컹-

지하철이 빠른 속도로 달렸다.

세찬 바람소리와 함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이번 역은 정자, 정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잠시 후, 열차 문이 열렸다.

이어 얇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바로 민호였다.

계단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오자 후끈한 열기가 그를 감쌌다.

“후우, 덥다. 더워.”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민호.

그때 율이 말을 걸었다.

“오늘은 주인님 혼자 하는 임무네요.”

“그러게. 오랜만이네.”

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최근 그의 곁에는 늘 메리가 함께 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메리에게도 임무가 하달됐기 때문이었다.

“쓸쓸하진 않으세요?”

“전혀. 오히려 혼자 하는 게 임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

단호한 대답을 내뱉은 민호.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민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가 꺼낸 것은 모레 발표될 예정인 복권 당첨 용지.

“그나저나 로또 2등 당첨용지라니······.”

“주인님, 빼돌리시면 안 돼요.”

“······안 빼돌려. 대체 날 어떻게 보는 거야?”

민호가 율을 흘겨봤다.

“그냥 신기해서 그래.”

“뭐가요?”

“지금까진 대부분 특별한 능력이나 보물을 전해줬잖아. 근데 이번 임무는 꽤나 현실적인 기적이라 놀랐거든.”

금전적인 혜택이 주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율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기적에 현실과 비현실은 없어요. 대상이 간절하게 바라는 게 곧 기적이죠.”

몸을 빙글 돌린 율이 로또 당첨 용지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번 임무 대상은 그 무엇보다 돈을 간절히 원한 거구요.”

“하긴 형편이 어려워 보이긴 했지.”

민호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진하에게서 전해 받았던 정보를 떠올렸다.

-이번 대상은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이다.

-나이는 만 67세. 근무한지는 올해로 4년차.

-부인 되시는 분과 함께 일했는데 작년에 별세하셨다고 해.

-일하시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임무 대상, 박영호의 삶은 기구했다.

궁핍한 형편. 거기에 부인은 작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거기에 아들까지 말썽을 부렸다.

-지금은 아들인 박인범과 같이 사는 중이라고 해.

-그리고 박인범은······.

인범은 장애인이었다.

그것도 정도가 꽤 심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성격도 난폭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경찰서를 수시로 들락날락했다고도 했다.

-대상의 개인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박인범은 조만간 감옥에 들어갈 거 같아.

-사람을 때렸는데 합의가 잘 안 된다고 하네.

여기까지 떠올린 그때.

문득 민호의 뇌리를 스친 것이 있었다.

“설마 로또 당첨금으로 하려는 게······.”

합의금으로 사용하려는 게 아닐까?

민호가 그렇게 추측하자, 율은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어요. 대상에게 남은 가족은 아들이 유일하니까요. 아, 주인님. 저기인 거 같아요. 저 거북이 그려진 아파트요.”

대답을 잇던 율이 횡단보도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를 가리켰다.

박영호가 일하는 곳인 동북 아파트였다.

“어디보자, 3단지 쪽에서 일하신다고 했으니까······.”

단지 내로 들어간 민호가 목적지로 걸음을 옮겼다.

멈칫-

그러던 중 돌연 민호의 걸음이 멈췄다.

3단지 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던 탓이었다.

“무슨 소리지?”

“글쎄요. 어차피 가는 방향이니까 한 번 들러봐요.”

민호는 율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착한 곳에는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시끄럽게 소리치는 광경이 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왜 근무복을 안 입고 일하시냐고.”

그의 앞에는 아버지뻘 되는 60대 후반의 남성이 쩔쩔매고 있었다.

이를 본 민호는 대뜸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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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영호

*나이: 67세

*공덕: 2,105

*악덕: 31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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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은 임무 대상인 박영호였다.

영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변명했다.

“그게 저, 지금은 휴게시간이라······.”

“휴게시간이면 근무복을 안 입어도 된다? 누가 그러랬어요? 관리소장이 그랬나? 내가 가서 한 번 물어볼까?”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입겠습니다.”

남자의 싸늘한 태도에 영호는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이봐요, 아저씨. 사람한테는 품위라는 게 있어요. 쉴 때 쉬더라도 지킬 건 지키면서 쉬어야지. 저렇게 근무복 벗고 쉬고 있으면 다른 방문객이 우리 아파트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건 벌점 사유야. 동의하죠?”

“네, 네.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걸리면 그땐 봐주는 거고 뭐고 없어요. 일 좀 똑바로 하고.”

툭툭-

남자의 손이 영호의 머리를 건드렸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민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남자가 사라지자 영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두꺼운 근무복을 갖춰 입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민호가 다가가려던 그때.

그보다 먼저 영호에게 접근한 이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저씨?”

세미 정장을 입은 30대 중반의 사내.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잘생긴 남자였다.

“으응, 괜찮아요.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뭘.”

“힘들면 말씀하세요. 제가 언제든 돕겠습니다.”

걱정스런 눈빛을 빛내던 사내가 손수건을 꺼내 영호의 땀을 닦아냈다. 아기자기한 뱀 캐릭터가 그려진 손수건이었다.

당황한 영호가 몸을 피하려던 그때,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늘 말하는 거지만 말씀 낮추셔도 됩니다. 제가 한참 어린데요.”

“아이구, 아닙니다. 변호사 선생님이신데 제가 어떻게······.”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에요. 다 똑같은 사람인데.”

사내가 씨익 웃었다.

잠시 후, 영호의 이마에 맺힌 땀이 다 사라지자 사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제 나누다만 얘기, 마저 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그럼요. 아, 그런데 드릴 게 믹스커피 밖에 없는데······.”

“하하, 없어서 못 먹습니다. 자, 가시죠.”

그 말을 끝으로 사내와 영호는 자리를 옮겼다.

이때 민호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상태창을 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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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강도성

*나이: 37세

*공덕: 2,715

*악덕: 46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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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에 비해 월등히 높은 공덕.

심지어 임무 대상인 영호보다도 공덕이 높았다. 도성은 명백한 선인이었다.

‘그런데······.’

하지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민호의 눈빛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민호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를 본 순간, 손에 땀이 흥건하게 맺혔다.

‘······왜 이렇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거지?’

민호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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