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Chapter 27. 스토커 (3)
‘뭐야? 왜 저 둘밖에 없지?’
뒤뜰에 있는 손님은 양성호와 채상혁이 전부.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가까이 가기가 어려운데······.’
아무리 모습이 투명해진다고 해도 목소리와 인기척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감시를 하거나, 아니면 인파에 섞여서 기척을 감춰야만 했다.
‘으으, 역시 안 들리잖아.’
최대한 귀를 기울여봤지만 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메리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좀 더 가까이 가야 되나?’
그때 잠자코 있던 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추천하고 싶진 않아. 그 이상 가까이 가면 들킬 수도 있어.”
‘하지만······.’
애써 쫓아왔는데 정보를 듣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메리가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괜찮아. 가만히 있어도 돼.”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민호의 손바닥이었다.
그는 성호와 상혁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부터 다 듣고 있으니까.”
민호는 현재 여우 귀를 발동시킨 상태였다.
눈을 반짝인 민호는 또렷하게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상혁의 음성이 들려왔다.
‘······대체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한 거지?’
불평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
반면 맞은편에 앉은 성호는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요? 여기 요즘 아웃스타에서 핫한 곳인데.’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신 인형은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데려왔죠.’
‘인형도 인형 나름이지, 이런 장난감 같은 건······.’
얼굴을 구긴 상혁이 커다란 인형의 배를 쿡쿡 찔렀다.
그러더니 이내 성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보다 일은 어때?’
‘무난해요. 어지간한 정보는 다 알아냈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혁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상혁은 곧장 성호에게 손을 뻗었다.
‘내놔.’
‘아니죠, 보수 먼저 주셔야죠.’
두 남자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붙었다.
얼마 후, 상혁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보수는 일 끝내고 지불하기로 했을 텐데?’
‘계약금 말이에요, 계약금. 제가 시킨 거 있잖아요.’
성호가 싱긋 웃었다.
이에 상혁은 뭘 의미하는 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군. 그걸 말하는 거였나.’
그 말을 끝으로.
상혁은 별안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었다. 이에 민호와 메리는 재빨리 벽 뒤로 몸을 숨겼고, 다행히 상혁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한편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상혁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자, 여기 있다. 얼른 받아.’
뭘 건네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든 민호가 고개를 배꼼 내밀었다.
상혁이 건넨 것은 휴지 뭉텅이.
정확히 말하면 휴지에 감싸인 ‘무언가’였다. 그때 테이블 위로 그 ‘무언가’가 몇 개 굴러 떨어졌다. 상혁은 재빨리 이를 주워들었지만, 민호는 그게 무엇인지 보고야 말았다.
“저, 저건 대체······.”
휴지가 감싸고 있던 것.
그건 마치 사람의 이빨처럼 보였다.
그때 성호가 휴지 속에 있는 걸 확인했다.
‘총 스무 개 정도네요. 네, 확인했습니다. 아주 잘 하셨어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 성호.
그에 비해 상혁은 어딘가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진짜 뒤탈은 없는 거 맞지?’
‘걱정 마세요. 제가 확실히 처리할 테니까.’
‘그 년이랑 관련된 것도?’
‘물론입니다.’
성호가 미소를 띤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웃음기와는 거리가 먼, 섬뜩한 내용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뉴스에 나올 정도는 아니니까요. 하물며 그게 장님이라면 더욱이요.’
“······!”
민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그가 말하는 이가 누군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언제쯤 움직일 생각이십니까?’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요. 혹시 압니까? 제게 알려주셔서 도움을 받을지.’
‘······정보만 준다면 오늘이라도 움직일 거다.’
‘하하, 그렇군요. 그럼 얼른 드려야겠네요.’
뒤뜰에 울려 퍼지는 성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민호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둘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상혁은 분명 은희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이리라.
이에 민호는 다급히 동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둘의 위치를 공유하고, 한시라도 빨리 토벌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성호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자, 여기 원하셨던 물건입니다.’
그가 꺼낸 것은 몇 장의 사진과 서류 한 장.
상혁은 이를 빼앗아가듯 낚아챘다.
무례한 행동이었음에도 성호의 낯빛에 불쾌한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다른 물건들까지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이건 전에 말씀드렸던 도구입니다. 유용하게 쓰셨으면 좋겠네요.’
야구공만한 돌멩이와 하늘색 액체가 담긴 물병.
성호는 두 물건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볼 땐 좀 더 조용한 곳에서 뵙도록 하죠.’
작별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혁은 두 눈을 벌겋게 물들인 채, 연신 사진을 보기에 바빴으니까.
‘아무쪼록 즐거운 해후의 시간을 보내시길.’
그 말을 끝으로.
성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정신없이 사진을 보는 상혁을 지나쳐, 그대로 담을 넘어 밖으로 향했다.
그 광경에 민호도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내가 쫓아갈게.”
‘괜찮겠어?’
“해가 떠있는 한은 들키지 않을 거야.”
민호가 하늘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에 메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저 남자를 감시하고 있을게. 이안도 불러놨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각자 할 일이 정해졌다.
민호는 메리와 눈빛을 교환한 뒤, 곧장 성호의 뒤를 쫓았다.
***
“흐으응, 흠흠.”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는 성호.
그는 꽤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는 옅은 미소마저 띠고 있었다.
민호는 그런 성호의 뒤에 바싹 따라붙었다.
평범한 사람조차도 인기척을 느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성호는 민호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새삼스럽게 [햇볕으로 짠 비단 망토]의 능력을 실감하던 그때.
쿵짝 쿵짝-
요란스러운 벨소리가 들렸다.
성호의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뭐야? 누가 전화를······. 헉!”
발신인을 확인한 성호는 헛숨을 들이켰다.
잠시 후, 그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일은 끝났나?
수화기 너머에서 묵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여우 귀를 발동시킨 상태라 민호도 똑똑히 들었다.
“방금 끝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얼마나?
“어, 모레 정도면 결판이 날 듯합니다.”
-알겠다. 그때 얼굴이나 한 번 보지.
“예, 기다리겠습니다.”
뚝-!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통화가 끝났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보였다.
“후우, 이 사람과 전화하면 늘 긴장된단 말이지.”
30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통화 시간.
그런데 성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얼굴.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호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걸로 나도 권속을 만들 수 있겠어. 그럼 이제······.”
‘권속?’
생소한 단어에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그때, 성호가 별안간 도로로 뛰어들었다.
“어이, 택시!”
이윽고 택시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췄다.
그 모습에 민호는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그를 쫓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 그를 만류하는 이가 있었다.
“너무 위험해요, 주인님. 쫓는 건 관찰자에게 맡겨요.”
민호의 생각을 읽은 듯, 율이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무턱대고 쫓아가는 건 위험했다.
부르릉-
그 사이 성호를 실은 택시가 이동을 시작했다.
택시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무렵.
민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리에게서 온 문자였다.
-미안, 이쪽은 놓쳤어.
-포스트잇이 다 떨어졌거든. T.T
-진작 충전 좀 해놓을 걸······.
메리의 말에 따르면 그녀가 모습을 감출 때마다 사용하는 포스트잇은 일일 사용 횟수 제한이 있다고 한다.
물론 충전을 하면 다시 쓸 수 있지만 어제와 오늘, 너무 바빴던 탓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듯싶었다.
-아, 대신 좀 특이한 걸 봤는데.
-서류를 보면서 계속 욕을 내뱉더라고.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년’이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들렸어.
분명 은희를 지칭하는 단어일 터다.
왜 상혁이 그녀에게 원한을 품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민호는 율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문자를 작성했다.
=알겠어. 그럼 일단 집결지에서 보자.
=어차피 오늘 보기로 했으니까.
-응, 알겠어.
-이따가 봐~
메리의 답장을 끝으로 민호는 몸을 돌렸다.
군자역에 있는 미옥의 카페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
오후 5시 30분.
민호와 메리를 비롯한 모든 신의 대리인이 카페에 모였다.
“일단 모아온 정보부터 전부 공유해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미래가 수첩과 볼펜을 꺼냈다.
마인과 관련이 된 임무였기에 미래도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우선 스토커는 총 두 명. 양성호와 채상혁. 맞지?”
“넵.”
“채상혁은 채은희의 의붓아버지고?”
“네, 맞습니다.”
민호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두 남자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그러고는 선 하나를 그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지?”
마인과 악인.
비록 성향은 비슷하나, 두 남자 사이에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다.
미래는 양성호와 채상혁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또 양성호가 왜 채상혁에게 협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한 듯했다.
그때 민호는 단서가 될 만한 내용을 하나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양성호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응? 어떤 말?”
“나도 권속을 만들 수 있겠다고.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요.”
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미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권속? 진짜 그렇게 말했어?”
“네? 아, 네. 확실히 들었습니다.”
“으, 쉽게 생각했는데 좀 골치 아프네.”
얼굴을 와락 구긴 채 머리를 벅벅 긁는 미래.
이때 잠자코 있던 혜진이 손을 들었다.
“사부, 권속이 뭘 말하는 건가요?”
“말 그대로의 의미야. 같은 식구라는 뜻이지.”
미래가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마인이 상대를 마인으로 만들 거라는 뜻이고.”
상대를 마인으로 만든다?
그럼 제일 가까운 후보는 채상혁 뿐이었다.
그는 언제 마인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악덕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편 이를 들은 혜진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인으로 만들면 특별한 이득이라도 있는 건가요?”
“응. 나도 들은 얘긴데 권속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능력이 강해진대.”
미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떤 마인들은 악덕을 쌓는 것보다 권속을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도 한다고 해. 물론 마인은 숨만 쉬어도 악덕을 쌓는 놈들이지만.”
미래가 사나운 말투로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이안이 손을 들었다. 그는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하지만 고작 중급 마인이 권속을 만들 수 있습니까? 제가 배운 바로는······.”
“상급 마인부터 가능하다고?”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물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데 여기는 여기에만 있는 특별한 게 있잖아?”
미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맺혔다.
여기에만 있는 특별한 것. 이안은 그게 뭔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