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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96화 (96/182)

96화

Chapter 25. 마인 집단 (3)

“아, 선배.”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혜진.

그녀는 학교 체육복 바지에 목장갑을 낀 상태였다. 또 산더미처럼 쌓은 상자더미를 든 채, 위태롭게 서있었기에 민호는 손을 뻗으며 물었다.

“엇, 도와줄까?”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가볍거든요.”

혜진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그녀는 주방 구석에 상자를 내려둔 뒤, 다시 몸을 돌렸다. 이후로도 몇 번이나 상자를 운반한 뒤에야 혜진은 장갑을 벗었다.

그때, 주방에서 혜진과 비슷한 복장을 한 이가 나타났다.

영국의 토벌자, 이안 기어드였다.

“앗, 안녕하세요.”

“으응. 안녕.”

어색한 얼굴로 인사를 받은 민호.

그는 곧장 둘을 향해 물었다.

“근데 너희들 뭐하는 거야?”

“대선배님이 잠깐 일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요.”

혜진이 무뚝뚝하게 대답하던 그때.

마지막으로 미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힘 쓸 일이 좀 있었거든. 토벌자들은 힘이 좋으니까.”

미옥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서있지 말고 앉아있어. 커피 금방 타줄게.”

그 말을 끝으로 미옥은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자리를 잡고 앉은 민호는 혜진과 이안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너희들밖에 없어? 미래 누나랑 메리는?”

그 질문에 혜진과 이안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는 늦잠을 자서 조금 늦는다고 합니다.”

“하하, 저희 누님도······.”

“······.”

보아하니 둘이서 밤새 술 파티를 벌인 것 같다.

민호는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어제 토벌은 어떻게 됐어?”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진하에게서 들은 정보.

미래를 포함한 토벌자들이 바로 어제, 마인 토벌에 나섰다는 정보였다. 진하가 전해준 건 그게 다였기에 민호는 궁금하다는 얼굴로 혜진을 응시했다.

“저는 보충수업 때문에 못 갔습니다. 그래도 이안은······.”

혜진이 이안을 돌아봤다.

그러자 민호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에게로 향했다.

“어때?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애석하게도 특별한 건 없습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아예 얻은 게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변절자들이 조직을 이루고 있다는 것과 조직의 주요 구성원, 그리고 조직의 이름 정도만 알아냈습니다.”

“뭐? 아니, 그것만 해도 충분히 알아낸 거 아냐?!”

민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한편 이안은 못내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변절자 하나 정도는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에이, 그렇게 쉽게 잡혔으면 미래 누나가 진즉에 토벌했겠지.”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이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어제 있었던 토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으려던 찰나!

딸랑-

카페 문이 열렸다.

뒤이어 나타난 것은 걸어 다니는 두 명의 시체.

낯빛이 누렇게 변한 미래와 메리였다.

“쿨럭, 쿨럭!”

‘······좋은 아침, 우욱!’

둘은 상태가 상당히 안 좋아보였다.

두 여성은 벽을 짚은 채, 비틀거리며 민호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에 민호는 메리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뭐야? 죽었냐?”

‘우으, 건드리지 마. 머리 울려······.’

메리가 곧 꺼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그때 다시 종소리가 들려왔다.

진하와 하이드였다.

어제 미래와 함께 마신 진하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숙취에 잔뜩 찌든 얼굴이었다.

반면 하이드의 상태는 멀쩡했다.

잠시 후, 모두가 자리에 앉자 미래가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오, 오 분만 쉬다가 해요. 우욱, 속 안 좋아······.”

“······찬성한다.”

진하가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중얼거렸다.

곧이어 풍겨오는 고약한 술 냄새.

혜진과 민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코를 틀어막았다.

“사부, 술 냄새나요. 선배 옆에 가서 앉으세요.”

“안 돼. 일어나면 토할 지도 몰라······.”

앓는 소리를 내는 미래.

토할 지도 모른다는 말에 혜진이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던 무렵.

“어휴, 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민호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때 엉뚱한 곳에서 대답이 들렸다.

“허허, 술 마시면서 양을 세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니, 보통은 세거든요?”

하이드의 대답에 민호는 황당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던 중 미래와 메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히잉, 나도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마시다가 눈 떠보니 아침이 돼서······.’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댔다는 소리였다.

할 말을 잃은 민호가 멍하니 있던 그때, 손바닥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짝-!

이어 들려온 짧은 비명.

“아얏!”

“허이구, 아주 새벽까지 술 마시고 잘 하는 짓이다. 잘 하는 짓이야.”

미옥의 손바닥이 미래와 메리의 등을 차례대로 강타했다.

과일 주스와 함께 나온 그녀는 테이블 위로 주스를 올려뒀다.

“이거 한 잔씩 마시고 빨리 술들 깨!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들이나 설명해. 혜성이 곧 학원 갈 시간이니까.”

미옥의 말이 끝나자 구석에 앉아있던 혜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후우, 이제 좀 살겠네.”

과일 주스를 원샷한 미래가 씨익 웃었다.

이어 그녀는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곧장 이안에게 서류를 건넸다.

“그럼 이안, 부탁할게. 자, 여기 정리해둔 자료.”

“······역시 제가 하는군요.”

이안은 예상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표정을 추스른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큼큼! 그럼 제가 대신 보고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어제 오후 2시 30분 경, 저희는 마인의 일기장을 해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마인 토벌이 시작된 계기.

그것은 바로 혜진이 가져온 마인의 일기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워낙에 악필이라 읽을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미옥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석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것 중에서 유의미한 정보는 하나.

“저희는 여기 계신 세 관찰자 분들의 협력을 얻어, 집회 장소를 특정했습니다.”

바로 마인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다는 집회 장소.

이를 알게 된 토벌자들의 다음 행보는 불 보듯 뻔했다.

“이후 저를 포함한 토벌조가 현장을 급습, 마인들을 토벌하려고 했습니다만······.”

이안이 어색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

그때 잠자코 있던 하이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하여간 눈치도 빨라. 그세 장소를 옮겼을 줄이야.”

그의 대답으로 민호는 어제 토벌이 실패했음을 눈치 챘다.

하지만 완벽한 실패라고 하긴 어려웠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습니다.”

마인의 일기장, 그리고 집회 장소에서 추가적인 정보를 얻어낸 것.

변절자들을 주축으로 한 마인 조직과 그들의 명단이었다.

“우선 변절자들을 중심으로 한 조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짧게 헛기침을 한 이안.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백야(白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쯧, 웃기지도 않는군. 실상은 연옥에 가장 가까운 녀석들이 선인들 중에서도 극소수만 갈 수 있는 백야를 언급하다니······.”

하이드의 낯빛에 불쾌감이 번져갔다.

이안도 이에 동의하듯 사나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백야라는 조직에는 간부급 마인이 총 열 명 존재합니다. 여기서 사흘 전, 토벌했던 변절자 ‘왕영훈’을 제외한다면 이제 아홉 명이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홉 명의 간부.

분명 그들이 백야를 움직이는 실체이리라.

꿀꺽-

마른침을 삼킨 민호는 곧 이어질 이안의 말을 기다렸다.

“백야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안은 서류 한 장을 뽑아 일행들에게 건넸다.

그곳에 적힌 명단은 단순했다.

==

0) 보스: [???]

1) 간부: [용], [곰], [범]

2) 부관: [펭귄], [오리], [돼지]

3) 간부급: [올빼미], [족제비], [두더지]

==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혜성이었다.

“어라? 다 동물 이름이네요?”

“백야의 보스가 붙여준 별명이라고만 알고 있고, 저도 더 이상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안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간부급에 있는 [두더지]를 가리켰다.

“여기 보이는 ‘두더지’가 바로 저희가 토벌했던 왕영훈입니다.”

토벌했다고 표시라도 해두듯, 두더지에는 빨간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때 혜진이 손을 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보스는 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는 거야?”

“어, 그건······.”

잘 모르는 게 나온 탓일까?

이안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이때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미래가 고개를 들었다.

“정보가 없어서 그래. 아무것도.”

“아무것도요?”

“응, 천계의 기록을 열람해 봐도 정보가 많지 않아.”

미래의 대답에 혜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신(神)과 가장 근접한 천계조차 알지 못하는 존재라니?

황당한 기분이 들만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비워뒀어. 그래도 조만간······.”

숙취에 찌든 얼굴 너머로, 미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미래는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크흠! 그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테이블 근처로 다가온 이안이 두 번째 서류를 건넸다.

“이 중에서 일곱 명이 변절자 출신의 마인이라고 합니다. 토벌을 완료한 왕영훈을 제외하면 여섯 명이네요.”

이안이 내민 서류에는 각 변절자들의 정보가 간략히 기재되어 있었다.

==

[보스]

*직급: 전직 1급 전달자

*이름: 류화연(추정)

*나이: 불명

*능력: [각인(刻印)]

[용]

*직급: 전직 토벌자 대장

*이름: 강태진

*나이: 37세

*능력: [천무(天武)]

[곰]

*직급: 전대 관찰자 대장

*이름: 신창우

*나이: 49세

*능력: [감시(監視)]

[펭귄]

*직급: 전대 토벌자

*이름: 주효진

*나이: 28세

*능력: [괴력(怪力)]

[오리]

*직급: 전대 토벌자

*이름: 서승현

*나이: 19세

*능력: [빙의(憑依)]

[돼지]

*직급: 전대 전달자

*이름: 남유석

*나이: 25세

*능력: [포식(捕食)]

==

그 중에서 민호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는 [펭귄].

실제로 마주친 적이 있는 변절자, 주효진이었다.

“이전 세대의 토벌자였구나······.”

민호가 나직이 중얼거리던 무렵.

이안이 말을 이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능력에 대한 설명은 추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어제 실시했던 토벌조의 보고를 마칩······.”

“아, 잠깐만. 끝내기 전에 할 말이 있어.”

손을 든 미래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제 숙취가 제법 사라졌는지 그녀의 얼굴엔 혈색이 돌았다.

“솔직히 다른 애들은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전직 토벌자만 아니면 혜진이도 토벌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해. 왕영훈처럼.”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미래는 서류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녀의 시선은 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만 이 녀석만큼은 조심해.”

쿡-!

미래의 손가락이 박힌 곳.

거기에 있는 이는 [용]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직 토벌자 대장.

강태진이었다.

“이 양반, 마인이 되기 전에 3급 토벌자였거든.”

“3급이요?!”

“응, 그러니까 지금은 나랑 비슷할 정도로 강할 거야.”

“마주치지면 무조건 도망가야겠네요.”

혜진이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미래와 비등할 정도로 강하다면 승산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미래는 한술 더 뜬 경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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