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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94화 (94/182)

94화

Chapter 25. 마인 집단 (1)

Chapter. 25

마인 집단

한편 그 시각.

혜진과 이안에게 붙들린 영훈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읍! 읍읍!”

빠져나가려 몸부림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영훈을 붙잡고 있는 둘의 힘이 상당히 강했던 탓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를 붙잡고 있던 힘이 순간적으로 풀렸다.

그리고 영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콜록, 콜록! 이, 이거 놔!”

황급히 이안의 손길을 뿌리친 영훈.

둘에게서 벗어난 그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러고는 이내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소리쳤다.

“이, 이 새끼들! 각오해. 나한테 주먹 휘두른 거 다 찍어놨어. 당장 경찰에······!”

“웃기지도 않네. 경찰에 가야할 게 누군데?”

혜진이 냉소적인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지. 그보다 먼저 가야할 곳이 있잖아?”

“어디?”

“마인이 갈 곳은 하나뿐이지. 연옥.”

이안이 차갑게 웃었다.

이를 들은 영훈은 정신이 번쩍 드는 걸 느꼈다.

둘에게서 들려온 익숙한 단어, 바로 ‘마인’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 마인이란 단어를 내뱉으면서 저런 표정을 짓는 부류는 하나 밖에 없었다.

“너, 너희들. 설마······!”

영훈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상황을 파악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터엉-

“크헉!”

보이지 않는 벽에 얼굴을 처박은 영훈.

그 고통에 영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우리가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안을 그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혜진이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잡담은 그만해. 이제 일할 시간이야.”

“하긴. 이 이상 적에게 정보를 주는 것도 곤란하니까.”

이안은 어깨를 으쓱인 뒤, 영훈을 지그시 노려봤다.

둘의 모습에 영훈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던 그때, 토벌자들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왕영훈, 왕영훈, 왕영훈.”

“변절자 확보 완료. 지금부터 토벌을 시작하겠습니다.”

두 토벌자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번뜩였다.

곧이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면을 박차고 영훈에게 달려들었다.

“오, 오지 마! 으아아아아아-!”

그 이후, 들려온 것은 어느 변절자의 처절한 비명소리 뿐이었다.

***

위잉-

같은 시각. 혜진과 이안이 있는 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

한 여성이 소형 망원경으로 그 광경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혜진과 이안의 모습을 촬영한 뒤, 사진을 어딘가로 전송했다. 그러고는 곧장 누군가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철컥!

한 번의 통화음이 끝나고.

전화가 연결되자 여성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올빼미]. 관찰 보고 드립니다.”

무미건조한 음성.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말을 이어나갔다.

“오후 8시 17분경. [두더지]가 토벌됐습니다. 사진에 나온 것처럼 토벌자는 두 명의 남녀입니다. 정확한 정보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남자 쪽은 외국인으로 보입니다.”

[올빼미]의 보고를 끝으로.

수화기 너머에서 변조된 음성이 들려왔다.

-철수해.

“예, 알겠습니다. 바로 철수하겠습니다.”

여성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축제 속 인파에 뒤섞여 모습을 감췄다.

***

뚝-

[올빼미]와의 통화가 끊겼다.

휴대폰을 손에 든 이는 샤프한 인상의 남성.

[곰]이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신창우였다.

창우는 곧바로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화면 속에는 혜진과 이안이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 보였다.

그러던 중 이를 확인한 한 여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헐! 뭐야? 여자였어?”

황당함에 물든 음성이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다.

펑퍼짐한 박스티를 입은 여성.

그녀는 [펭귄]이라 불리는 변절자, 주효진이었다.

한편 효진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TV 너머에서 누군가가 반박했다.

-아니, 확실히 남자야.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고.

아기자기한 잠옷을 입은 소녀.

[오리]의 반박에 효진은 얼굴을 구긴 채로 대답했다.

“근데 쟤는 외국인이잖아.”

-완벽한 도깨비 가면을 얻었을 수도 있지. 그럼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잖아.

“야, 생각을 좀 해봐라. 이제 막 토벌자가 된 애가 어떻게 그런 걸 손에 넣겠냐?”

-뭐? 하, 웃기지도 않네. 진짜 생각 없이 사는 애한테 이런 소릴 들을 줄이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효진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이때 상황을 지켜보던 창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쓸데없이 싸우지 마라.”

둘을 중재시킨 창우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창우의 맞은편에 앉은 남성이 입을 열었다.

“흐음, 일단 저 녀석은 아니다.”

50대 초반의 남성.

[범]이 심드렁한 음성으로 중얼거리자 효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누구?”

“저 외국인 말이야.”

효진이 되묻자 [범]은 화면 속의 이안을 가리켰다.

한편 확신어린 그의 목소리에 창우는 곧장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는 녀석인가?”

“어. 오히려 모르는 게 더 신기한데? 토벌자들에 대한 정보는 나보다 너희들이 훨씬 잘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타국의 토벌자까지 파악하는 건 힘들다.”

“뭐, 하긴 신의 대리인은 겁나게 많으니까.”

[범]이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효진이 다시 화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래서 저 녀석이 대체 누군데 그래?”

“쟤? 그렇게 중요한 애는 아닌데.”

머리를 긁적인 [범].

잠시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이드 제르코펜이 키우고 있는 제자.”

“······.”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 일대가 정적으로 가라앉았다. 침묵만이 감도는 공간.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입을 연 이는 효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괴물, 여기에 와있다고 했지?”

-서, 설마 여기 온 이유가 제자한테 경험치 좀 쌓게 해주려고······?

TV속의 [오리]가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지. 우리나라는 변절자가 가장 많은 곳이니까.”

창우가 어둡게 물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다시 주변의 분위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효진이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그냥 대장이 말 좀 잘 해주면 안 되나? 그럼 설득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맞아, 맞아. 언니가 나서면 당장이라도······.

‘대장’의 이야기가 나오자 효진과 [오리]의 목소리가 제법 밝아졌다.

그러자 [범]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말을 길게 늘어뜨린 [범].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냥 보자마자 이야기 들을 생각도 안 하고 칼부터 휘두르지 않을까?”

-그, 그건 안 돼!

[오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이는 효진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럼 어떻게 하지? 그 괴물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데······.”

-으으, 얌전히 머물다가 돌아가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그 누구도 맞서 싸우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평소 호전적인 성격인 효진조차도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정도였으니까 말은 다 한 셈이리라.

그러던 그때, [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신경 안 써도 괜찮은 거냐?”

“그 녀석? 누구?”

“너희들이 [두더지]라고 부르는 동료 말이야. 왕영훈이라고 했던가?”

그의 입에서 영훈의 이름이 튀어나오기가 무섭게!

효진과 [오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저씨,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 녀석은 우리 동료가 아니야. 그냥 많고 많은 마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둘의 반응은 일관됐다.

오히려 [오리]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몸서리까지 쳤다.

-거기에 몰카나 찍어대는 기분 나쁜 녀석이었지.

“어? 그거 아직도 그러던데?”

-으엑, 진짜?

“엉. 최근에 찍은 거 웹하드에 올려서 팔더라.”

-진짜 상종 못할 녀석이네. 여자의 적이야!

효진과 [오리]는 일제히 영훈을 씹어댔다.

둘의 의견이 일치하는 광경은 굉장히 드문 것이었기에 [범]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이를 지켜봤다.

짝짝-!

그때 창우가 박수를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럼 이 외국인은 제외하고, 다시 차미래의 제자에 대한 건을 얘기해보지.”

이안은 후보에서 제외됐다.

그렇다면 남은 건 혜진 뿐. 이에 효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뭐 답은 정해져있지. 이 여자밖에 없잖아.”

-하지만 내가 본 건 남자였다니까?

“네가 잘못 본 거겠지.”

-진짜야.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대화.

이 광경에 [범]은 재미있다는 듯이 낄낄거렸고 창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후보가 없잖아! 그냥 네 눈이 단춧구멍인 거라고!”

-뭐? 지금 말 다 했어?

점점 격해지는 대화.

창우가 다시 둘을 말려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때.

저벅-

낯선 발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이어진 나직한 음성.

“둘 다 아니야.”

그리고.

주변은 고요한 침묵으로 뒤덮였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세 명의 변절자와 한 명의 마인은 숨을 죽인 채, 어느 한 곳을 빤히 쳐다봤다.

그곳은 어둠으로 뒤덮인 방 안.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번에도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효진이었다.

“대, 대장? 대장이에요?”

“응.”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들려온 대답.

이에 TV 속의 [오리]가 반갑다는 듯이 소리쳤다.

-언니! 언제 일어나신 거예요?

“하이드의 제자 얘기를 할 때부터.”

다시 들려온 나른한 목소리.

하지만 목소리만 들려올 뿐, 방의 주인은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때, 창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질리도록. 덕분에 많은 걸 떠올렸어.”

그 말과 함께 목소리는 하품을 내뱉었다.

동시에 방 안에서 한줄기 빛이 반짝거렸다. 휴대폰 화면에서 뿜어지는 불빛이었다. 방의 주인은 비틀거리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범]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그건 무슨 얘기야? 둘 다 우리가 찾는 녀석이 아니라고?”

“그래, 맞아.”

-그럼 제 3의 인물, 새로운 토벌자인가요?

[오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모두가 숨은 죽인 채. 방의 주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방의 주인은 특유의 나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토벌자가 아니야. 전달자지.”

“······엥?”

“저, 전달자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온 탓일까?

일행은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전달자.”

방의 주인은 쐐기를 박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창우가 떨리는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호, 혹시 알고 계신 분입니까?”

하지만 그녀는 창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있는 휴대폰을 응시했다.

화면에 비친 건 우튜브에 올라온 어느 동영상.

‘예종대 축제 레전드 탄생 ㄷㄷ’라는 제목의 동영상이었다. 영상 안에는 녹색 야상을 입은 한 청년이 열창을 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본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련하고도 애틋한, 그리움의 미소.

“그야 물론이지.”

강한 확신이 서린 대답.

방의 주인은 영상 속의 청년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나의······.”

그녀가 말을 흐렸다.

그러나 굳이 뒷말을 잇지 않아도, 방의 주인이 영상 속 청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왜냐면 그녀의 두 눈은 마치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이처럼 반짝거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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