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93화 (93/182)

93화

Chapter 24. 축제에서 생긴 일 (5)

“아, 맞아. 다음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분이 있어요.”

제이가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친한 동생인데, 이 친구가 노래를 진짜 잘 하거든요. 가끔 저보다 더 잘할 때도 있다니까요? 아하하,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요.”

제이보다 노래 실력이 좋다?

관중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이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들에게 소개도 시켜주고, 또 같이 공연도 해보려고 해요. 그래도 될까요?”

양해를 구하듯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제이.

그 모습에 관중들은 운동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소리로 화답했다.

이에 제이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무대로 보답할게요!”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몇몇 스텝들이 무대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세팅된 검은색 피아노.

곧이어 피아노 연주자처럼 보이는 이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연주자의 얼굴이 꽤나 낯이 익었다.

“어?”

민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

제이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미모를 자랑하는 그녀는 민호에게 있어 굉장히 익숙한 인물이었다.

“하영이?”

연주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민하영.

피아노 앞에서 가볍게 손을 푸는 그녀를 보며, 민호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설마 제이의 친한 동생이라는 사람이······.”

“으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때 율이 딴죽을 걸었다.

그녀는 제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만약 친한 동생이었다면 먼저 소개부터 시키지 않았을까요?”

율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제이는 관중들에게 친한 동생을 소개시킨다고 말했으니까.

“그럼 하영이는 왜 저기에 있지?”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문득 몇 시간 전, 소혜에게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아, 맞아요. 오늘 공연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친한 동생이 온다고 했었나?’

소혜는 하영이 친한 동생의 공연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이는 하영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 말은 곧, 제이와 하영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제이에게 친한 동생이, 곧 하영에게도 친한 동생일 수도 있다는 것.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영이 ‘친한 동생’이라 부르는 이는 오직 하나 뿐이었으니까.

“······설마!”

그러던 그때, 무대 세팅이 끝났다.

동시에 제이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럼 여러분! 제 사랑하는 동생을 소개할게요. 지은아!”

무대를 비추는 조명이 꺼졌다.

이어 아담한 체구의 소녀가 나타났다.

조명은 소녀에게로 가 닿았고, 민호의 얼굴은 놀람으로 물들었다.

“······!”

소녀는 민호도 잘 아는 이였다.

노래를 좋아하고 가수를 꿈꾸는 씩씩한 소녀.

바로 유지은이었다.

“와, 깜짝 놀랐어요. 설마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율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지은을 바라봤다.

지은을 바라보는 둘의 얼굴엔 어느새 놀람이 사라지고 반가움의 빛이 맺혔다.

반면 지은을 발견한 관중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뭐야? 평범하게 생겼네.”

“그러게. 제이 친한 동생이래서 연예인일줄 알았는데.”

“에이, 실망이다.”

대부분이 이런 반응인 가운데.

간혹 지은을 알아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어? 잠깐만. 근데 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

“혹시 걔 아냐? 그 홍대 기타녀!”

수는 적지만 그래도 지은을 알아보는 모습.

민호는 괜스레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곧이어 제이와 지은의 합동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곡은 난이도가 제법 높다고 알려진 노래, <당신 속의 비>.

하지만 지은은 특유의 가창력으로 노래를 훌륭히 소화했고, 관중들은 어느새 그런 지은의 노래에 빠져 들어갔다.

민호도 잠시 임무를 잊고 노래에 정신을 빼앗겼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율이 민호의 정신을 일깨웠다.

“주인님, 주인님.”

“응?”

“마인의 반응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요?”

율은 조금 기분 나쁘다는 듯이 영훈을 가리켰다.

영훈의 얼굴은 아까 전, 제이의 공연을 볼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환희와 흥분에 젖은 얼굴.

무대를 바라보는 눈에는 묘한 집착과 광기까지 느껴졌다.

그러던 중 민호의 귓가로 들려온 영훈의 중얼거림.

‘하아, 정말 최고야.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아.’

‘제이는 이제 됐어. 더 이상 빛나지 않으니까.’

‘대신 넌 1초도 놓치지 않고 찍어줄게. 지은아.’

거기까지 들은 순간!

민호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영훈이 말했던 ‘다음 무대’는 남자 아이돌이 아닌, 제이와 지은의 합동 공연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영훈의 이번 목표는 바로 지은인 듯했다.

“저 새끼가······.”

민호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간 고된 길을 걸어왔던 아이다. 지은에게 해코지를 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얼굴을 구긴 민호가 주먹을 불끈 쥐던 그때!

우우웅-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혜진]: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혜진]: 순찰 도중, 마인 하나를 발견해서요.

[혜진]: 퇴치하느라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혜진에게서 온 톡.

이에 민호는 재빨리 답장을 보냈다.

영훈을 발견했으니 빨리 이쪽으로 오라는 내용의 톡이었다.

잠시 후, 혜진에게서 지금 당장 가겠다는 톡이 도착했다.

“좋아. 이걸로······.”

남은 공연 시간은 10여분 남짓.

반면 혜진은 5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호는 그제야 초조한 기색을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공연에 집중하던 영훈이 별안간 휴대폰을 꺼낸 것.

‘이런 씨발.’

짧은 욕지거리와 함께.

영훈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나 더 이상의 중얼거림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보던 민호는 본능적으로 두 눈에 힘을 줬다.

그러자 곧이어 심안이 발동했다.

[쯧! 하필 이 타이밍에······.]

[미끼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쓸모없는 새끼.]

[어쩔 수 없지. 일단 물러서는 수밖에.]

영훈의 속마음에 민호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흥분에 젖은 눈빛은 반짝이던 영훈.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영훈은 이내 몸을 돌렸다. 공연장을 빠져나갈 생각이리라.

그 모습에 민호는 돌연 지면을 박차고 영훈에게 다가갔다.

“주인님? 어쩌시려구요?”

율이 놀란 얼굴로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민호와 영훈의 거리는 5미터 남짓.

그때 민호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일격필살.”

작지만 또렷하게 들려온 음성.

이를 들은 율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 주인님! 저희가 먼저 공격하면······!”

말을 마저 이을 시간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호가 영훈에게 손을 뻗었으니까.

율이 짧은 비명과 함께 눈을 질끈 감던 찰나!

퍼억-!

돌연 들려온 둔탁한 충격음.

민호의 주먹이 꽂힌 곳은 영훈이 아니라 그가 들고 있는 휴대폰이었다.

“으윽!”

영훈의 입술을 비집고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반쯤 박살난 휴대폰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한편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탓일까?

“뭐, 뭐야?”

영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민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하지만 민호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짧은 사과를 끝으로 그를 스쳐지나가는 민호.

영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인파에 섞여 사라지려는 민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새끼가, 지금 어딜 도망치려고······.”

영훈이 민호의 어깨를 잡아채려던 그때!

그보다 먼저 영훈의 팔목을 잡아챈 손이 있었다.

탁-

“실례합니다.”

“잠깐 괜찮을까요?”

그곳에 있는 건 검은색 정장을 입은 두 명의 남녀.

경호원처럼 보이는 둘의 모습에 학생들은 관심이 없다는 듯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에선 아직 공연이 한창이었으니까.

한편 갑작스럽게 제지를 당한 영훈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대꾸했다.

“뭐, 뭔데?”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잠시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신고? 영훈의 얼굴은 순식간에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 씨발, 누가 신고를······. 컥!”

하지만 그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별안간 남자 경호원이 영훈의 목을 거칠게 움켜쥔 탓이었다. 그 충격으로 영훈은 목이 막힌 듯 켁켁거렸고, 두 남녀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협조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둘은 양쪽에서 영훈의 팔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민호의 곁을 스쳐 지나는 순간.

두 남녀는 그를 향해 눈을 찡긋거렸다.

경호원들의 정체는 바로 혜진과 이안. 감사의 의미가 담긴 윙크를 끝으로 셋은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후우우.”

이제 끝났다.

나머진 혜진과 이안이 해결할 문제다.

민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율이 민호의 귓불을 살짝 잡아당겼다.

“정말, 일을 저지르기 전에 귀띔 먼저 해주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나도 몸이 먼저 반응해서······. 다음부턴 말해줄게.”

율의 반응에 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후우, 그래도 이제 다 끝났네.”

여기서 민호가 할 일은 없었다.

미래와 메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공연을 조금 더 볼까?

고민을 하며 기지개를 피던 순간.

펄럭-

돌연 민호의 손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응?”

민호가 팔을 내렸다.

이어 그의 손에 잡힌 건 하늘색 손수건.

“이게 뭐······.”

난데없이 나타난 손수건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렵.

별안간 무대 위에서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네! 거기 제이 씨의 손수건을 잡으신 분, 무대 위로 모시겠습니다!”

“······엥?”

민호가 얼빠진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그 순간, 사방에 있는 관중들의 시선이 민호에게로 향했다. 수많은 시선의 압박에 민호는 머쓱한 얼굴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뒤늦게 민호를 발견한 지은과 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 민호 오빠?”

“여긴 어떻게······.”

민호는 당황하는 두 여성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친한 척을 하기엔 곤란했던 탓이었다.

그때 사회자의 말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건넨 마이크를 받아든 민호.

그는 좌중을 한 번 훑어본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어, 일문학과 13학번 공민호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기 죄송한데······.”

민호가 어색한 얼굴로 뺨을 긁적였다.

“······제가 왜 여기에 불려온 거죠?”

“앗, 설명 못 들으셨나요?”

“네.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민호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그러던 중 제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나보다 노래 더 잘할 자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했거든.”

“······네?”

“공민호 학생이라고 했죠? 기대할게요.”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를 하는 제이.

민호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때 또 다시 들려온 사회자의 목소리.

“자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럼 13학번 선배님! 어떤 노래로 하실 건가요?”

이미 노래를 하는 건 확정인 것 같다.

민호는 관중들을 본 뒤, 고개를 돌려 지은과 하영을 바라봤다.

기대가 반씩 섞인 눈빛으로 민호를 응시하는 둘.

그런 둘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민호는 각오를 다진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아직 이별>로 하겠습니다.”

“네?”

사회자가 당황한 듯이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노래는 굉장히 부르기 어려운 곡 중 하나였다.

남성 가수 중에서도 <아직 이별>을 완벽히 소화하는 이는 몇 없을 정도였으니까.

민호 역시 원래 실력으로는 도전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 하나가 있었다.

“큼큼!”

헛기침을 한 민호는 마이크를 잠시 입에서 뗐다.

그러고는 아무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닥치고 내 노래나 들어.’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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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발동: [가왕의 열창]

-원곡 가수의 실력으로 노래합니다.

-재현율: 100(+50)%

-공덕 소모량: 15

==

“괘, 괜찮으시겠어요?”

“네.”

사회자가 당황하며 묻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키 하나만 높여주세요.”

오히려 더 난이도를 높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능력의 힘을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잠시 후, <아직 이별>의 멜로디가 흘러나왔고, 민호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전설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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