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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92화 (92/182)

92화

Chapter 24. 축제에서 생긴 일 (4)

“저, 실례합니다.”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여학생들.

그녀들은 방금 전까지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학생들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줄곧 하이드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이들이기도 했다.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합석해도 될까요?”

“원래 이런 성격 아닌데, 그쪽 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요······.”

머뭇거리며 합석을 제안하는 여학생들.

그 모습에 하이드는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 피앙세와 단 둘이 오붓하게 보내기로 했거든요.”

“네?”

“피앙세라면······.”

하이드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미래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시, 실례했습니다!”

그 모습에 여학생들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사라졌다.

잠시 후, 미래는 어깨에 둘린 하이드의 팔을 쳐내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우웩! 오그라들어서 토할 뻔 했네.”

“허허, 거절하는 건 익숙하지가 않아서 핑계 좀 대봤네.”

“익숙지 않기는 개뿔, 엄청 잘 하잖아요!”

미래가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녀가 하이드와 티격태격 거리고 있던 그때.

“다녀왔습니다, 사부.”

“다녀왔습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던 혜진과 이안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둘의 복장이 똑같다는 점이었다.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웬 정장차림이야?”

“토벌할 걸 생각했을 때 편해보여서요.”

혜진은 특유의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했다.

확실히 교복보다는 편해보였다.

“그보다 얼른 먹어. 배고프겠다.”

“네, 사부. 잘 먹겠습니다.”

미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혜진이 냉큼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미래는 빈 의자 하나를 들어 혜진 옆에 가져다놨다.

“이안이는 이쪽에 앉아. 여기 물도 한 잔 하고.”

“아, 감사합니다.”

이안이 공손히 컵을 받아들었다.

목을 축이던 그는 잠시 후, 별안간 컵을 도로 내려뒀다.

이어 이안은 어딘가 미묘한 표정과 함께 입술을 달싹였다.

“······저, 죄송한데 이거 술······.”

“아하하, 러시안 보드카에 비하면 소주는 물이지.”

미래가 씨익 웃으며 소주병을 흔들었다.

“그리고 원래 일하기 전에 한 잔 해줘야 힘이 나지. 아저씨, 안 그래요?”

“허허, 그럼. 임무 전에 와인 한 잔은 미덕이지.”

하이드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토벌자의 악마 같은 모습에 이안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그때.

‘그럼 제가 같이 마셔드릴게요.’

뜻밖의 구원자가 나타났다.

여태껏 입을 굳게 닫고 있던 메리였다.

“누님!”

“으음, 네가?”

그녀의 등장에 이안은 이제 살았다는 듯 얼굴을 밝게 물들였다.

반면 미래는 영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 메리를 훑어봤다.

그러자 메리는 수첩에 이에 대한 대답을 적었다.

‘네. 간만에 한 잔 하고 싶기도 했고, 또 이안은 임무가 있으니까요.’

“흐응, 괜찮겠어? 날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데.”

미래는 빈 소주병을 장난스럽게 돌리며 웃었다.

하지만 메리는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그럼요. 어리니까 감당할 수 있는 거예요.’

메리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맺혔다.

심지어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반격까지 날렸다.

‘늙어서 축 늘어진 누구랑은 다르게요.’

콰직-!

미래의 손가락이 소주병을 뚫었다.

그녀는 입가를 뒤틀며 웃고는 새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후후, 이거 재밌네. 자, 한 잔 받아.”

순식간에 새로운 술판이 벌어졌다.

그 광경에 하이드는 흥미롭다는 듯 술판을 지켜봤고, 혜진은 별 관심이 없는 얼굴로 안주를 먹는데 열중했다. 그리고 민호는 걱정스런 얼굴로 이안을 툭툭 건드렸다.

“저거 안 말려도 돼?”

“괜찮을 겁니다. 누님은 ‘영국의 차미래’라고 불리니까요.”

“······.”

이안의 말에 민호가 황당한 듯이 입을 벌렸다.

그러던 중 문득 메리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괜히 같이 마신다고 했나?”

메리가 미래와 주량이 비슷하다고 하니,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피슈우우웅-

펑! 퍼엉!

하늘을 가로지르는 주황색 불꽃.

곧이어 검은 호수에 꽃이 만개하듯,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그때.

[2019년 예종대학교 축제! 그 첫 번째 밤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와아아아아아-!

일행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의 함성소리를 시작으로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혜진과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응, 그러네.”

어느덧 시간은 오후 7시.

민호의 시선이 운동장 한 가운데에 설치된 무대로 향했다.

***

무대 앞 운동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정문에서 본 인파는 약과라고 생각될 정도로.

“잠깐만요. 윽! 잠시, 죄송합니다.”

민호는 가까스로 무대 근처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했다.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벌써 녹초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임무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후우, 빨리 찾았으면 좋겠는데.”

짧은 한숨을 시작으로.

민호는 눈에 힘을 줬다.

상태창과 심안을 발동시키기 위함이었다.

곧이어 그의 시선에 제일 먼저 잡힌 이들은 바로 후드티를 입은 남성들.

“으음, 저 사람은 아니고, 저 남자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훈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민호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 오기 직전, 혜성과 미옥, 진하에게서 얻은 정보였다.

‘그간 관찰해본 바에 따르면 대상은 항상 무대 근처에 있었어요.’

‘그 아이는 예전부터 눈을 잘 깜박이지 않았지. 최대한 많은 사진을 찍으려고 말이야.’

‘예민한 성격이라 사람들이랑 거리를 곧잘 두곤 했어.’

무대 근처에 있으면서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사람과 거리를 둔 인물.

인파로 가득 찬 이곳에서 그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를 찾는 건 어려웠다. 그럼에도 민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의심이 되는 이들에게는 모조리 심안을 사용했다.

그러던 중 율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 사람은 어때요?”

후드를 입은 왜소한 체구의 남성.

뒷모습만 보면 얼추 사진 속 영훈과 비슷해보였다.

이에 민호는 말없이 두 눈에 힘을 줬다.

[말 더럽게 많네, 진짜.]

[그만하고 연예인이나 빨리 보여 달라고.]

[근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늦어?]

“······저 사람은 아니야.”

민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인, 그 중에서도 변절자를 보면 왠지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촉이 온다고 해야 할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면 저번에 우연히 스치듯 만났던 주효진이 그러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에게선 그런 느낌을 조금도 받지 못했다.

또 심안으로 알아본 속마음도 마인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툭-

생각에 깊게 잠겨 있던 탓일까?

미처 앞을 보지 못한 찰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꽤나 불쾌한 모양이었다.

“······앞 좀 잘 보고 다니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들릴까 말까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남성.

이에 정신을 차린 민호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민호의 사과에도 남성은 연신 혀를 차며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오싹-!

순간적으로 전신에 오한이 들었다.

주효진과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

황급히 고개를 돌린 민호는 무대 쪽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

*이름: 왕영훈

*나이: 만 30세

*공덕: 1,981

*악덕: 4,217

*성향: -

==

“······!”

심안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남자는 민호가 찾는 변절자, 왕영훈이 맞았다.

한편 민호가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이를 느낀 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저 사람이 변절자에요?”

“응, 그런 거 같아.”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의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좀 이상한데.”

“왜요?”

“귀물을 가지고 있을 텐데, 상태창에 정보가 그대로 보여.”

“귀물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니까요. 그보다 빨리 연락하는 게 좋겠어요.”

이어진 율의 말에 민호는 곧장 휴대폰을 꺼냈다.

혜진과 이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함이었다.

변절자를 상대하는 건 토벌자들의 몫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혜진과 이안이 문자를 읽지 않는 것.

괜스레 초조해진 민호는 급기야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통화 중이오니······.

“······젠장.”

민호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러고는 다시 영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가슴이 답답했다.

기껏 대상을 발견했는데 일이 뜻대로 돌아가질 않았던 탓이다.

“네, 지금까지 기계공학과 15학번 박한성 학우님이었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 와중에 무대 위에서 펼쳐지던 공연이 끝났다.

현재 시각은 7시 30분.

이제부터는 연예인들의 공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정확히 8시부터 가수 제이의 무대가 열린다.

그녀의 공연 시간은 약 30분 남짓. 영훈은 제이의 공연이 끝나면 바람처럼 사라진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남은 시간은 1시간 정도인 셈이다.

‘그 전까지는 연락이 돼야 할 텐데······.’

민호는 초조한 듯 손톱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곧이어 무대 위의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다음 무대는 학우 여러분이 고대하시던······.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돌연 사회자가 마이크로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회자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학우 여러분, 죄송하지만 일정에 변동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래서 1부 공연은 순번을 한 차례씩 앞당기도록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일대가 술렁였다.

하지만 술렁거림이 멎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명이 꺼지고 누군가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온 탓이다.

뒤이어 익숙한 멜로디가 민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 잠깐만. 그럼 다음 순번은······.”

뭔가 잘못됐다.

민호는 황급히 일정표를 바라봤다.

동시에 조명이 하나둘 씩 켜졌다. 그리고 들려온 사회자의 목소리.

“<아직 이별>로 최고의 여성 보컬의 자리에 오른 가수! 제이의 무대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와아아아아아!”

우렁찬 함성이 무대를 뒤흔들었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열광하며 소리를 질렀다.

“젠장, 왜 벌써······.”

반면 민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혜진에게선 아직 답장이 없었다.

그 와중에 공연이 끝나면 영훈은 지금껏 그랬듯이 홀연히 자취를 감출 터. 민호는 초조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거리며 씹었다.

그런데 그때, 율이 별안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님,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민호가 되묻자 율은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영훈을 가리켰다.

“저게 좋아하는 가수를 보는 팬의 얼굴인가요?”

그 말에 민호의 시선은 즉각 영훈에게 가 닿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도 율과 비슷하게 변했다.

“······!”

영훈은 가수 제이의 광팬이다.

그래서 제이가 공연하는 무대마다 따라가 사진을 찍는다.

미래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영훈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아무리 좋게 봐도, 광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보일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뭐지?’

민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지금 무대 위에선 제이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제이 특유의 애절한 보이스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녀의 팬이라면 누구라도 빠져들 법한 노래.

하지만 영훈의 얼굴엔 무료한 표정이 맺혔다.

그는 의미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정보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 민호가 의아해하던 그때!

제이의 첫 곡이 끝났다.

노래를 마친 그녀는 마이크를 뽑아들더니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와아아아아!”

“안녕하세요!”

“언니, 사랑해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열띤 환호성.

제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대학 축제에 온 건 엄청 오랜만이네요. 예전엔 곧잘 다녔는데 요즘은 체력이 영 부실해서······.”

허리를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제이.

그녀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때, 돌연 영훈이 혀를 낮게 차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이를 본 민호는 즉각 여우 귀 능력을 발동했다.

잠시 후, 민호는 수많은 소리 중에서 영훈의 목소리를 정확히 찾아냈다.

‘쯧, 진짜 말 많네.’

‘널 보러 온 게 아니야. 빨리 다음 무대나 시작해.’

‘오늘 나오는 거 다 알고 왔으니까.’

내용만 들어도 호의적이지 않은 태도.

하지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다음 무대? 오늘 나온다고?”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곧장 일정표를 쳐다봤다.

제이에게 주어진 공연시간은 약 30분.

이후에는 생소한 이름의 남자 아이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를 확인한 민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혹시나 하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설마 다른 쪽이 취향이었나?”

다른 새로운 쪽에 눈을 뜬 게 아닐까?

불현 듯 시작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가려던 찰나!

다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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