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89화 (89/182)

89화

Chapter 24. 축제에서 생긴 일 (1)

Chapter. 24

축제에서 생긴 일

시끌벅적한 분위기. 수많은 인파.

이를 앞에 두고 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현재 그가 있는 곳은 예종대학교 정문.

민호는 고개를 들어 정문 위에 걸린 플랜카드를 쳐다봤다.

<2019년 예종대학교 축제>

지금 시각은 오후 4시.

평소라면 학생들이 하나둘씩 빠질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부터 모레까지가 바로 대학 축제 기간이었으니까.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인데.”

“그래도 잘하면 변절자를 잡을 수도 있잖아요.”

“뭐, 그건 그렇지만······.”

율의 대답에 민호는 말을 흐렸다.

그러고는 사흘 전, 카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지금으로부터 사흘전, 금요일.

일행은 미옥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모임을 가졌다.

짝짝-

“온 사람은 다 온 것 같으니까 슬슬 시작할게.”

박수소리로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래가 옅게 웃었다.

그때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그 하이드씨는요?”

영국의 1급 토벌자, 하이드가 보이지 않았다.

그 질문에 미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자에게 전부 일임하겠대. 비상시에만 도와줄 거라는데?”

미래의 말과 함께 이안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궁금증이 해소되자 민호는 별 말 없이 손을 내렸다.

모두의 이목이 미래에게로 쏠리자 그녀는 준비해둔 것을 꺼내들었다.

“일단 이 사진을 주목해줘.”

미래가 꺼낸 것은 한 장의 사진.

그 안에 찍혀있는 건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짙은 회색 후드티를 입은 마른 체형의 남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저 사람은······?”

“변절자 중 하나다. 우리들의 동료였던 녀석이지.”

민호의 말에 대답한 이는 진하였다.

그러자 그때, 미래가 질색하듯 손을 내저었다.

“어우, 나랑 엮지는 마. 난 이 녀석을 동료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미래는 유독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주방 쪽에 앉아있던 미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예전부터 미래와는 안 맞았지.”

“안 맞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었죠. 일방적으로.”

진하가 미옥의 말을 일부 정정했다.

둘의 대화로 미루어보아 변절자는 미래와 사이가 썩 좋지 않은 듯했다.

그 증거로 미래는 얼굴을 구긴 채, 검지와 엄지만으로 사진을 잡고 있었다.

마치 더러운 것을 들고 있는 것처럼.

“아무튼 이 녀석의 이름은 왕영훈. 7급 관찰자였던 ‘마인’이야.”

대상의 이름은 왕영훈.

관찰자 출신이다 보니 전투와 관련된 능력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유능력 또한 관찰자로서는 좋은 능력이었지만 전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있었다.

영훈은 스스로 타락해서 변절자가 된 것이 아닌, ‘류화연’의 제안을 받아 마인의 길을 택했다.

그렇기에 그는 분명 류화연에게서 받은 귀물을 가지고 있을 터.

문제는 그가 가진 귀물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또 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미래는 영훈을 ‘상급 마인’으로 분류했다.

이에 혜진과 혜성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아직까지 상급 마인을 상대해 본적이 없었으니까.

반면 이안은 여유로운 얼굴로 씨익 웃었다.

“괜찮습니다. 상급 마인은 중국에서도 상대해 본적이 있으니까요.”

“맞아, 그랬지. 믿음직하네.”

미래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던 무렵.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혜진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사부, 질문이 있는데요.”

“응? 뭔데?”

“변절자의 고유 능력은 위협적이지 않더라도 알아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장 혜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녀석의 능력은 ‘염사(念寫)’이라는 능력이야.”

“염사요?”

“눈으로 보고, 떠올린 생각을 사진으로 만드는 능력이지.”

고유능력 ‘염사(念寫)’

특정 대상을 3초 이상 보면 대상을 촬영할 수 있는 능력.

게다가 해당 능력을 사용해 만들어진 사진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즉, 염사라는 능력은 카메라가 없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이해하면 편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관찰자로서는 좋은 능력이지만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아. 대신 녀석에게 사진이 찍히면 정보가 새어나갈 수도 있으니까 그 점에 대해선 알아서 조심하고.”

혜진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인에게 정보가 팔리면 분명 곤란할 테니까.

그때 미래가 뭔가를 떠올린 듯,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아! 맞아. 다른 애들은 괜찮은데 혜진이는 진짜 조심해야 돼.”

“왜요?”

“그 녀석, 예쁜 여자에 환장한 변태 새끼거든.”

갑자기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해되지 않는 말에 혜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진하가 설명을 보충했다.

“몰카다.”

“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몰카를 찍은 적이 있어. 고유능력으로.”

일행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이어진 진하의 말에 따르면 영훈은 관찰자로 활동할 때부터 줄곧 몰카를 찍었다고 했다.

그것도 예쁜 여자만 골라서.

그 노골적인 행동에 미래는 몇 번이고 주의를 줬다.

그럼에도 행동을 멈추지 않자, 결국 격분한 미래에게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마음 같아선 반 죽여 놓고 싶었는데. 그 새끼도 꼴에 신의 대리인이라고 천계에서 나한테 경고를 주더라.”

토벌자들은 마인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영훈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다른 이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런 짓을 벌인 것이리라.

“다른 애들은 둘째 치더라도 그 새끼는 언젠가 마인이 될 거 같더라고. 아니, 오히려 마인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뿌드득-

미래가 이를 갈았다.

곧이어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천계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껏 팰 수 있으니까.”

그냥 패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미래는 마주치기만 해보라는 듯, 서슬 퍼런 눈빛을 빛냈다.

하지만 그것도 영훈을 잡은 이후에나 가능한 일.

평정을 되찾은 미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이니까 조심해. 도깨비 가면도 꼭 쓰고.”

“······예, 주의하겠습니다.”

혜진은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설명이었지만 민호는 그것만으로 영훈이 어떤 마인인지 파악했다.

신의 대리인이었을 때부터 악덕을 일삼던 자.

토벌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예,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잠자코 앉아있던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와 위치를 바꾼 그는 안경을 고쳐 쓴 채 일행을 둘러봤다.

“대상을 최초로 발견한 건 지금으로부터 4일 전입니다.”

때는 민호와 메리가 임무를 시작하던 무렵.

이안을 포함한 토벌조는 광진구에서부터 서울 전역으로 변절자 탐색을 넓혀갔다. 하지만 변절자들은 모두 귀물을 소지한 탓에 탐색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거짓말처럼 흔적 하나를 찾았다.

“대상의 흔적이 발견된 곳은 서울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서였습니다.”

흔적을 토대로 토벌조는 미옥과 미래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대상의 정체가 전직 관찰자, ‘왕영훈’이라는 걸 파악했다.

“하지만 추적은 실패했습니다.”

서울 광장으로 이동하려던 찰나!

대상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분명 귀물을 사용한 것이리라.

그리고 토벌조는 무리해서 그를 쫓지 않았다.

변절자 조직의 미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틀 뒤, 대상은 신촌에서 열린 축제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이후로도 영훈은 여기저기서 출몰했다.

물론 출몰시간은 평균 10분 정도로 길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훈을 나타나게 할 만한 조건 하나를 찾았다.

“축제만 열리면 참가하는 거야?”

“맞습니다. 그리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녀석은 ‘어느 누군가’가 참가하는 축제에만 반응해.”

불쑥 끼어든 미래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누군가요?”

“응. 잠깐만 기다려봐.”

그 말을 끝으로 미래는 휴대폰을 꺼냈다.

잠시 후, 그녀는 민호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찾았다. 여기 이 사람.”

화면에 비친 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적갈색 머리카락이 잘 어울리는 미녀였다.

그리고 민호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제이? 설마 가수 제이에요?”

국내 여성 보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파.

또 최근에는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배우로 출연해 출중한 연기력을 뽐내기도 했다. 제이는 TV를 잘 보지 않는 민호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였다.

“그 변태 새끼가 제이 광팬이거든. 그래서 제이가 참가하는 축제에는 무조건 참가해.”

말을 잇던 미래가 별안간 팔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고유능력으로 실컷 몰카를 찍어대지. 제이를 포함해서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들까지 전부.”

“으, 진짜 최악이네요.”

민호도 덩달아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마인이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정보를 기반으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이안이 준비해둔 서류 하나를 민호에게 건넸다.

영훈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은 불과 10여분.

그것도 서울 전역에서 랜덤하게 출몰한다.

순간이동 능력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 그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 답은 한 가지.

영훈이 갈만한 장소에 미리 가서 그를 기다리면 된다.

“그 자료는 제이가 참가할 예정인 축제들입니다.”

이어진 이안의 한 마디에.

일행의 시선은 일제히 민호의 손에 들린 서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빠른 축제는 바로 이곳.”

이안의 손가락이 서류 최상단을 짚었다.

“예종대학교 축제입니다.”

“······엥?”

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단어.

민호가 얼빠진 얼굴로 되묻자, 이안은 전단지 하나를 꺼냈다.

“여기 일정표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뿌렸던 축제 관련 전단지였다.

이를 받아든 민호가 멍한 표정을 짓자, 미래가 뒤늦게 깨달은 듯이 물었다.

“응? 그러고 보니 너네 학교잖아. 몰랐어?”

“네, 별로 관심이 없다보니······.”

민호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래서 저희는 예종대학교에 미리 잠복해서 대상을 토벌하려고 합니다.”

“선배, 도움을 요청해도 될까요?”

일행 중에서 예종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민호였다.

민호도 이를 잘 알고 있던 탓인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오후부터라도 괜찮다면 협조할게.”

“감사합니다.”

이안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끝으로.

“후우우.”

회상을 끝마친 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흘 전에는 기꺼이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다.

“그냥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도와준다고 할 걸 그랬나?”

일정표에 따르면 제이의 공연은 오후 여덟 시부터였다.

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굳이 지금부터 축제에 참여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민호가 재차 한숨을 내쉬던 그때!

머릿속으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미안, 오래 기다렸어?’

시선을 돌린 곳에 있는 이는 영국의 전달자.

메리 기어드였다.

“응, 정확히 21분 기다렸다.”

시계를 본 민호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그러자 메리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치. 그럴 땐 ‘나도 이제 막 왔어.’라고 하는 게 멋진 대답이라구.’

“그게 무슨 멋진 대답이야? 똥 같은 대답이지.”

투덜거린 민호가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인파로 북적이는 정문 너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들어가자. 다들 기다릴라.”

‘잠깐 기다려.’

“왜?”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

그 말과 함께 메리는 갈색 스카프 하나를 꺼냈다.

노인으로 변할 수 있는 보물이었다.

“아아, 맞아. 그랬지.”

메리의 의도를 파악한 민호는 마찬가지로 도깨비 수염을 꺼내 들었다.

대상에게 얼굴이 팔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허허, 사람이 많구먼.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

“콜록, 콜록!”

“······지금은 굳이 기침 안 해도 돼.”

별안간 모습을 드러낸 두 명의 노부부.

둘은 정문을 지나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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