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Chapter 22. 특별한 손님 (1)
Chapter. 22
특별한 손님
딸랑-
현관문에 매달아둔 작은 종이 청명한 울음소리를 냈다.
곧이어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이리 오너라!”
카페 안을 울리는 호탕한 목소리.
곧이어 미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올려 쓴 채, 카페 안을 가볍게 둘러봤다.
“어라, 다들 미리 와있었네? 앗, 민호도 오랜만이야.”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드는 미래.
그때 그녀의 귓가로 미옥의 꾸지람이 날아들었다.
“문 부서지겠다. 살살 좀 다녀!”
주방 밖으로 배꼼 얼굴을 내민 미옥.
그 모습에 미래는 반갑다는 듯이 웃었다.
“오, 아줌마 오랜만에 보네요. 크, 피부 고우신 것 좀 봐.”
“호호, 그래?”
“그럼요. 오십대라고 해도 믿을 거 같아요.”
“입 발린 소리 그만하고 앉아. 밖에 있는 분들도 들어오라고 하고.”
“옛!”
우스꽝스럽게 경례를 한 미래가 밖에 있는 이들에게 손짓을 했다.
잠시 후, 카페에 낯선 외국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남성과 여성.
혜진 또래로 보이는 소년과 민호와 연배가 비슷한 여성이었다.
둘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주뼛주뼛 발을 들여놨다.
이에 민호는 반사적으로 둘의 상태창을 띄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둘보다 먼저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여긴 뭐 이리 좁담. 다 들어갈 수나 있겠어?”
고운 미성과는 달리 투덜거리는 말투.
날개를 팔랑거리며 날아온 이. 바로 율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존재였다.
율 이외의 기록자는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민호는 멍하니 소녀를 응시했다. 그러자 곧이어 소녀의 상태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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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링커 벨
*나이: -
*공덕: 849
*악덕: 0
*고유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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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민호의 시선을 의식한 걸까?
눈을 살짝 찌푸린 링커 벨이 민호에게 말을 걸었다.
“뭘 봐? 기록자 처음 봐?”
가시가 돋아난 말투.
민호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보지 마. 괜히 신경 쓰이니까.”
링커 벨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지 못한 차가운 반응에 머쓱해진 탓인지, 민호는 뺨을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던 그때, 별안간 율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벨.”
“아씨, 귀찮게. 이번엔 또 누구······.”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을 잇던 벨.
하지만 그녀는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유, 유, 유유유율 선배님!?”
율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벨은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소스라쳤다.
그러자 율은 느긋하게 벨에게 다가갔다.
“이야! 나한테 말도 놓고. 우리 벨, 많이 컸네?”
“아니, 저, 그게 선배님께 말을 놓은 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더듬거리는 벨.
그때 율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쌌다.
“우리 저쪽에 가서 오붓한 시간 좀 가져볼까?”
“히익!”
“그럼 말씀 나누고 계세요, 주인님!”
율은 민호를 향해 방긋 웃었다.
그러고는 벨과 함께 카페 구석으로 사라져갔다.
민호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손님이 카페를 찾았다.
“누님, 저 왔습니다.”
진하였다.
그리고 진하의 뒤에는 그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노신사 한 명이 서있었다.
2미터에 육박하는 키와 듬직한 체구를 가진 노신사.
“흘흘, 여긴 천장이 좀 낮군.”
노신사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때, 주방에서 미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큰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하하, 그것도 그렇군.”
노신사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미옥을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먼, 제인.”
“오랜만이야, 하이드씨.”
하이드라는 말에 민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노신사를 바라봤다.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율이 하이드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토벌자인지에 대하여 노래를 불러왔었으니까.
‘저 사람이 1급 토벌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벌자의 등장.
민호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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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하이드 제르코펜
*나이: 만 72세
*공덕: 199,187
*악덕: 99[고정]
*고유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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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드의 상태창은 놀라웠다.
공덕 수치가 미래보다 세 배는 더 많았던 탓이다.
그 놀라운 수치에 민호가 입을 떡하니 벌리던 그때, 미옥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 편하게 앉아있어. 금방 마실 거 내올 테니까.”
“그럼 실례하지. 너희들도 서있지 말고 앉아.”
“네.”
하이드의 말에 주뼛주뼛 서있던 두 남녀가 의자에 앉았다.
그러던 중 여태껏 입을 다물고 있던 혜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부.”
“엉?”
“저 분들, 한국어가 엄청 유창하시네요?”
“어? 그러고 보니······.”
혜진은 호기심이 어린 눈빛으로 하이드와 두 남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민호도 그제야 그들이 영어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아, 그거? 보물 덕분에 그런 거야.”
“보물이요?”
혜진이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단다. 언어의 장벽을 없애주는 보물이지.”
그때 하이드가 대답을 대신했다.
이어 그가 보여준 것은 조개 장식이 달린 투박한 목걸이. 착용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언어의 장벽을 없애주는 능력을 가진 보물이었다.
“공덕 상점에서 산 것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기도 하고.”
하이드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미래가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나도 필요한데 왜 입고가 안 되는 거야?”
“허허. 공덕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거 가격 3만 공덕 밖에 안 하는 거 다 알거든요?!”
미래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때 미옥과 혜성이 주방에서 나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올라왔다.
아홉 명의 신의 대리인들은 커피를 홀짝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하이드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제인이야. 여전히 커피 맛이 좋군.”
“후후, 그러니까 카페를 차렸지.”
칭찬이 싫지는 않은지, 미옥이 옅게 웃었다.
그때 민호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왜 선배님을 제인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내 본명은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마음대로 부르라고 했더니 저렇게 부르더라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린 미옥.
뒤이어 그녀는 하이드의 우측에 앉은 소년을 바라봤다.
밝은 갈색머리를 가진 미소년이었다.
“그나저나 그쪽이 새로 들인 제자야?”
“맞아. 이안.”
하이드의 말이 끝나자, 이안이 불린 소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그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6급 토벌자, 이안 기어드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안은 올해로 만 17세라고 했다.
혜진보다 두 살이 많았다.
한편 그의 소개가 끝나자 미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안의 곁에 있는 여성에게로 향했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과 녹색 눈동자를 가진 여성.
“그럼 이쪽 아가씨가 영국의 전달자인가?”
“예, 맞습니다. 7급 전달자인 메리 기어드입니다. 제 누이이기도 합니다.”
이안이 대신 대답했다.
그러자 미옥은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어머, 신기하네. 가족이 함께 신의 대리인이 되다니······.”
“할머니, 그렇게 따지면 저희도 마찬가지잖아요.”
혜성이 딴죽을 걸자, 미옥은 그를 흘겨봤다.
그때 잠자코 있던 메리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잠시 후, 수첩에 뭔가를 끄적거린 메리는 한국의 신의 대리인들에게 수첩을 펼쳐보였다. 그곳에는 영어로 ‘메리 기어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메리는 말을 하지 못하거든. 양해 좀 부탁하네.”
그 행동을 이해시켜준 것은 바로 하이드였다.
하이드는 쓰게 웃으며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 소개를 하지.”
달그락-
커피 잔을 내려놓은 하이드.
그는 동네 할아버지처럼 푸근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하이드 제르코펜. 유럽에서 활동하는 1급 토벌자일세. 나이는 다들 상태창으로 봤을 테니 굳이 말하지 않겠네.”
하이드의 소개는 간단했다.
그의 소개를 끝으로 한국의 신의 대리인들도 짤막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서로에 대한 정보를 밝히고 나자, 어느 정도 어색한 분위기가 가셨다.
그리고 커피를 거의 다 마셨을 무렵.
테이블이 두 개로 나뉘어졌다. 나이대가 달랐기에 어찌 보면 자연스런 변화였다.
“커피 한 잔 더 줄까?”
“고맙지. 사실 비행기에서 마신 건 영 맛이 없었거든.”
하이드가 씨익 웃으며 빈 잔을 내밀었다.
잠시 후, 미옥이 새로 커피를 내왔다.
이어 그녀는 커피를 마시는 하이드를 보며 궁금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온 거야? 미래는 관광 때문이라고 했지만 저 계집애 말은 도통 믿을 수가 있어야지······.”
미옥이 미래를 흘기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미래는 입술을 삐죽이며 되물었다.
“쳇, 제가 그렇게 신용이 없어요?”
“당연한 걸 왜 물어?”
“아, 왜요? 제가 뭘 했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한테 물어봐.”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에 하이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반은 맞아. 요즘 은퇴 준비다 뭐다 하면서 바빴거든. 잠깐 쉬다 가려고 들렀지. 오랜만에 옛 전우도 만나고.”
하이드의 대답에 미옥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매서운 눈빛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럼 나머지 반은?”
“음,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
입을 닫은 하이드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잠시 후, 그는 비슷한 말을 찾아낸 듯 입술을 달싹였다.
“유학을 왔다고 말해야 되나?”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하이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미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하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안은 내 제자인 이상, 완전무결할 필요가 있어. 장차 영국을 넘어서 유럽을 종횡무진 할 토벌자가 되어야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상황을 겪어봐야지.”
젊었을 적, 하이드는 완벽주의자였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미옥은 그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는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미 중국에서 충분히 많이 겪지 않았어?”
“물론 그렇긴 하지.”
사실 대규모 마인 토벌이라는 건 그리 자주 있는 게 아니다.
10년, 혹은 20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사건.
그 정도 토벌에 참가했다면 어지간한 경험은 필요 없으리라.
특히 최근에 있었던 중국 마인 토벌은 거의 전쟁 수준이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하이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여기서만 겪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게 있지 않나?”
한국에서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
미옥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좀처럼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설마······.”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요소.
그녀가 알기로 그런 것은 오직 하나 뿐이었으니까.
한편, 미옥의 표정을 읽은 하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변절자들을 상대하게 할 생각이야.”
변절자라는 단어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래와 진하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둘에게 있어선 옛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옛 동료였기 때문에, 진하는 변절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마인인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에 진하는 걱정스런 얼굴로 멀리 있는 이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하이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후, 진하가 입술을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