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Chapter 21. 천계 행상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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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비서]
*등급: 을(乙)
*종류: 소모품
*지인(知人)을 즉시 소환할 수 있다.
*단, 지인이 소환을 거부하면 비서는 소멸한다.
*주의사항: 역소환은 불가능하므로 조심할 것.
*가격: 1,500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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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품치고는 꽤나 비싼 가격.
하지만 이어진 왕랑의 설명을 들어보니 충분히 납득할만한 가격이었다.
“소환 비서는 아는 사람을 소환할 수 있는 보물이야. 일회용이긴 하지만, 능력은 대단하지. 공간까지 초월해서 소환이 되니까.”
설령 대상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장소에 있어도, 이것만 사용하면 대상을 소환할 수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놀라운 능력에 민호는 신기하다는 듯 소환 비서를 응시했다.
“이건 5급 이상의 전달자들이라면 꼭 하나씩은 가지고 다녀. 마인 놈들이랑 마주치거나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친하게 지내는 토벌자를 소환하기 위해서 말이지.”
왕랑의 설명을 듣자 더더욱 쓸만해보였다.
호신용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토벌자가 소환에 응한다는 조건 하에 말이다.
“내 추천은 여기까지야. 다 도련님에게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떨까?”
왕랑이 추천한 세 가지 보물.
민호는 신중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보물의 능력을 살펴봤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비단아. 네 생각은 어때?”
“네? 저요?”
갑작스런 지목에 비단은 살짝 당황한 듯 되물었다.
“응, 저걸로 교환해도 괜찮을 거 같아?”
“으음, 망토는 임무하면서 자주 쓰일 거 같고, 소환비서도 만에 하나를 위해서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기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미미 스프레이는······.”
비단이 말을 흐렸다. 애매하다는 뜻이리라.
민호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임무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러자 둘의 갈등을 알아차린 것일까?
왕랑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에이, 기분이다! 이번만 특별하게 대용량으로 증정!”
그가 내놓은 것은 100ml짜리 스프레이.
이에 비단과 민호는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음, 왕랑을 봐서 이 정도는 해줘도 괜찮을 거 같네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민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랑은 행여나 민호의 마음이 변할 새라, 냉큼 보물들을 주워 담았다.
“좋아! 내 바로 포장해드리리다! 아, 500공덕 어치 보물은 도련님이 원하는 걸로 고르면 돼.”
왕랑의 말에 민호는 그제야 500공덕이 남는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후, 민호는 주황색 구슬 하나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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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용) 속독 강화
*단계: 중상급
*책을 읽는 속도가 꽤 상승한다.
*상승율: 30%
*가격: 500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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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하겠습니다.”
민호가 능력이 깃든 구슬을 내밀자, 왕랑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내가 파는 거긴 하지만 이걸 사서 어디에 쓰시려고?”
“책을 빨리 읽으려고요.”
최근에 공부하다가 느낀 거지만 민호는 남들보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아무리 기억력과 이해력이 강화됐다고는 해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리니까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를 보완할 방법을 찾던 중 문득 속독 능력을 발견했다.
‘운이 좋네.’
민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때, 왕랑이 혀를 낮게 찼다.
“쯔쯧, 모름지기 책은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게 제 맛이거늘.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 그걸로 가져가. 그리고 여기 보물들도 받고.”
보물들을 건넨 왕랑.
이어 [매력의 반지]를 챙긴 왕랑은 곧장 봇짐을 들쳐 멨다.
“내 종종 찾아오지요. 도련님은 꽤 좋은 고객이 될 거 같으니까.”
왕랑이 민호와 짧게 악수를 나눴다.
몸을 돌린 왕랑은 민호와 비단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럼 두 분, 좋은 하루 되시고 나중에 또 봅시다!”
“살펴가세요. 왕랑.”
비단이 그런 왕랑을 배웅했다.
잠시 후, 왕랑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러자 민호는 살짝 진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후우, 뭔가 정신없다가 순식간에 끝난 기분이네.”
“하긴 왕랑이 좀 수다스럽긴 하죠.”
비단은 입을 가린 채, 조용히 웃었다.
그러자 민호는 비단에게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그보다 고마워. 덕분에 싸게 잘 산 거 같아.”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배시시 웃는 비단의 모습에 민호도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공덕 상점도 한 번 둘러보실래요?”
“응, 그러자.”
왕랑에게 [매력의 반지]를 판매한 덕분에 공덕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이대로 가기엔 조금 아쉬웠기에 민호는 비단과 함께 공덕 상점을 둘러봤다. 하지만 왕랑이 가지고 있던 보물들에 비하면, 다들 조금씩 아쉬운 보물들뿐이었다.
“딱히 살게 마땅치 않네······.”
민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던 중 비단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민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한 상품을 멍하니 바라봤다.
비단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목걸이.
그 광경을 본 민호는 나직이 비단을 불렀다.
“비단아.”
“······네?”
“그게 마음에 들어?”
“아, 아니요. 그냥 조금 시선이 가서······.”
비단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녀가 넋을 놓고 보고 있던 목걸이는 피부개선 능력을 가진 보물.
가격도 330공덕밖에 하지 않았다. 이에 민호는 피식 웃으며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이걸로 할게.”
“네?”
“네게 주고 싶어서 그래.”
민호의 말에 비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괘, 괜찮아요! 전달자님에게 도움이 되는 걸 사셔야죠.”
“그럼 더더욱 너한테 줘야지. 여기서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너니까.”
민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비단은 멍한 눈으로 민호를 쳐다봤다.
“그리고 오늘 거래는 네 덕분에 엄청 많이 얻었잖아?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까 부담 없이 받아도 돼.”
그 말을 끝으로 민호는 비단에게 목걸이를 건넸다.
잠시 망설이던 비단은 이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헤헤, 정말 기뻐요.”
활짝 웃는 비단의 얼굴을 보자, 선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호가 그녀와 마주보며 미소를 짓던 중.
별안간 바깥에서 민호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율의 목소리였다.
“율이가 부르나보네. 슬슬 가봐야겠다.”
“네!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비단이 민호의 곁에 선 채 방긋 웃었다.
***
율이 민호를 부른 이유는 하나였다.
미래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공덕 상점에서 나온 민호는 그 길로 곧장 군자역 카페로 향했다. 대선배이자 3급 관찰자인 이미옥이 운영하는 카페.
역에서 내려 길을 걷던 중, 어깨에 앉은 율이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인님, 저 어떡하죠?”
“왜?”
“하이드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너무 터질 거 같아요.”
마치 아이돌을 만나기로 한 소녀 팬처럼.
율은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소한 모습에, 민호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야?”
“네! 전설적인 분이니까요. 역대 기록을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이요! 하이드님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냐면······.”
“어, 도착했다.”
율이 했던 말을 다시 반복하기 시작하자 민호가 황급히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길을 건너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라는 팻말이 달려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늘은 미리 가게를 비워뒀다고 들었으니까.
딸랑-
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카페 안에는 이미 선객이 와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
“형, 오셨어요?”
혜진과 혜성이 연달아 인사를 건넸다.
“응, 안녕. 미래 누나는 아직 안 왔나보네.”
“차가 좀 막힌다고 합니다.”
“그래도 거의 다 온 거 같긴 해요.”
둘의 대답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호가 자리에 앉자, 둘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때? 좀 알 거 같아?”
“······으으, 아니요.”
머리를 붙잡은 채 앓는 소리를 내뱉는 혜성.
그 모습에 민호는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어?”
“아, 그게······.”
혜성이 대답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닫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면 될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 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실은 저번 토벌 임무 때 이런 걸 얻었습니다.”
그녀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것은 수첩.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녹색 수첩이었다.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게 뭔데?”
“마인의 수첩입니다.”
“마인? 아, 혹시 문미영을 말하는 거야?”
“예, 맞습니다.”
혜진의 대답에 민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때 혜성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뭐가 적혀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요.”
그 모습에 민호는 호기심이 동했다.
“내가 봐도 돼?”
“얼마든지요.”
혜진이 민호에게 수첩을 건넸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의 얼굴 역시, 혜성처럼 변했다.
“······대체 뭐라고 쓴 거야?”
수첩에는 뭔가가 잔뜩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뭐라고 썼는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수첩에 적힌 것이 한글인지 아닌지도 잘 모를 정도로 악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부에게 여쭤보려고 합니다.”
“으음, 뭐 그래. 그러자.”
과연 미래라고 해서 이 악필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인 민호는 수첩에 관한 호기심을 거뒀다.
뒤이어 셋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주로 임무와 일상에 관한 이야기.
잡담을 이어나가던 무렵, 냉수를 들이 킨 혜진이 돌연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우······.”
“웬 한숨이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민호가 묻자, 혜진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긴장돼서 그렇습니다. 선배는 괜찮으십니까?”
“응? 그냥 별 생각 없는데.”
민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하이드라는 자가 전설적인 토벌자라고 해도, 민호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민호가 가진 감정은 오직 하나, 호기심뿐이었다.
“저도 7급 정도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걸까요?”
혜진이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던 그때.
“그건 그냥 민호가 특이한 거라고 생각해.”
누군가가 셋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앞치마를 한 미옥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선배님.”
“호호, 그러게. 자, 여기 커피.”
“앗, 감사합니다.”
민호가 조심스럽게 커피를 받아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을 무렵, 미옥이 입을 열었다.
“후후, 그나저나 하이드 씨라. 그립네. 이게 대체 몇 년 만이야.”
“대선배님께서는 그 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혜진이 호기심어린 얼굴로 묻자, 미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같이 임무도 했었지.”
“정말이십니까?”
“응. 그게 언제였더라? 벌써 이십 년도 더 됐구나.”
미옥의 눈빛이 아련하게 물들었다.
그러던 그때, 혜성의 휴대폰이 한 차례 진동했다. 미래에게서 온 문자였다.
“아, 이제 거의 도착하셨대요.”
“그래, 그래. 슬슬 준비해야겠네. 혜성아, 좀 도와주련?”
“네!”
씩씩한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혜성.
혜성과 미옥이 주방으로 향하고 얼마 뒤.
문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말하면서 문을 여는 게 좋을까? 아줌마! 당신의 딸이 돌아왔소?”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기나 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