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Chapter 20. 재회 (1)
Chapter. 20
재회
5월 15일, 수요일.
오전 강의를 마친 민호는 곧장 성영대학교로 향했다.
‘오늘이 마지막 기회야.’
임무 마감 시간은 수요일 밤.
자칫 잘못했다간 토벌 임무 실패에다가 소현의 목숨까지 보장할 수 없었다.
‘반드시 성공시킨다.’
민호의 눈빛이 결의로 번뜩였다.
그러던 중 민호는 정문 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와 조우했다.
“선배.”
숏 컷으로 자른 머리카락.
예쁘장한 미모와 함께 무표정한 얼굴을 가진 소녀.
바로 혜진이었다.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민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어? 네가 왜 여기 있어?”
“임무를 해야 하니까요.”
“학교는?”
“하루 정도는 쉬어도 상관없습니다.”
혜진이 쿨하게 대꾸했다.
“지금 제게는 학교보다 임무가 더 중요하니까요.”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어머니의 건강이 다시 악화된다.
혜진은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민호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전폭적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알겠어. 그럼 같이 잘 해보자.”
“예, 선배.”
“일단 여기서 계속 서있는 것도 눈에 띄니까, 저기 카페에 가있어.”
혜진은 지금 교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눈에 띄어도 너무 띄었다.
“내가 발견하면 바로 문자해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혜진이 카페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민호는 곧장 몸을 돌려 사무실로 향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온 민호가 오른쪽 귀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럼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까.”
현재 최우선 목표는 미영을 찾는 것.
민호가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별안간 그의 발을 잡아채는 음성이 들렸다.
“민호 학생.”
소현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민호는 냉큼 고개를 숙였다.
“앗, 이모. 안녕하세요.”
“으응, 안녕. 근데 지금 어디 가려고 했어?”
“네? 그야 당연히 청소하러······.”
민호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다.
차마 미영을 찾으러 간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구나. 하지만 오늘은 이쪽으로 가야 돼. 저기 저 차들 보이지?”
그러던 중 소현이 주차장 부근을 가리켰다.
평소라면 텅 비어있을 지상 주차장이 오늘따라 꽉 차있었다.
그것도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들로 즐비했다.
“가끔 저렇게 외부에서 손님들이 올 때가 있어. 근데 우리는 손님들 눈에 띄면 안 되거든. 학교 품격이 떨어진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래서······.”
“걸리면 또 벌금인가요?”
“맞아, 이젠 잘 아네.”
소현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잠자코 대화를 듣던 율이 고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제가 봤을 땐 여긴 떨어질 품격도 없는 거 같네요.”
민호는 속으로 율의 말에 동의했다.
학생과 마주치면 안 돼, 편의점도 마음대로 못가.
청소부들과 마주친다고 해서 병이 옮는 것도 아닌데, 별꼴이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랑 같이 일해야 되거든.”
“아, 네. 그럼요.”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그녀와 함께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서와. 아, 혹시 오늘 정문으로 온 거 아니지?”
“뒷문으로 돌아왔어요. 계단으로요.”
“좋아, 잘했어.”
소현의 말에 태민은 씨익 웃었다.
그러던 그때, 그의 낯빛이 일순간 굳었다.
“어이, 잠깐만. 아줌마. 거기 잠깐 서봐.”
태민의 시선은 소현의 주머니 쪽을 향해 있었다.
민호는 그가 갑자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했다. 바로 소현의 주머니 밖으로 배꼼이 얼굴을 드러낸 곰 인형 열쇠고리 때문이었다.
“그거 뭐야? 우리 근무 중에 악세사리 금지인 거 몰라?”
“네? 그,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쓰읍!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어디서 토를 달아?”
태민이 위협적인 표정을 짓자 소현은 몸을 움츠러뜨렸다.
“죄송해요. 오늘 퇴근하면 집에 두고 올게요.”
그녀의 대답에 태민은 고민하듯 입을 닫았다.
잠시 후,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알겠어. 오늘은 봐줄 테니까 다음부턴 가져오지 마. 알겠어?”
“네, 네네.”
“그리고 민호도 잠깐 이리 와봐.”
태민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민호가 곁으로 다가오자, 태민은 벽에 걸린 학교 내부 지도를 가리켰다.
“오늘 여기랑 여기는 청소하지 마. 아니, 그냥 얼씬도 하지 마.”
그가 가리킨 곳은 법대 건물과 총장실이 있는 본관.
민호는 눈치 빠르게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외부 손님이 방문하는 곳인가요?”
“맞아. 여긴 내일 청소해도 상관없으니까 오늘은 저쪽 건물에서 일하라고.”
“알겠습니다.”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민은 그의 등을 토닥였다.
“아, 맞아. 그리고 거기 초코파이 있지?”
그가 입구 근처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 있는 건 초코파이 몇 개.
“뭔 봉사 동아리? 거기서 주고 갔어. 숫자 모자라니까 하나씩만 가져가.”
바닥에 있는 빈 상자에 비해 초코파이의 숫자는 상당히 적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청소부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자 그때, 율이 한 마디를 던졌다.
“으휴! 숫자가 모자랄 만도 하네요.”
그녀가 바라본 곳은 태민의 앞에 있는 책상.
그 앞에는 초코파이 십여 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
오늘 할 일은 건물 내 강의실과 화장실 청소.
민호는 담당 구역은 경영대 건물로 향했다.
계단을 올라 13층에 도착한 소현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냈다.
“이런 곳은 꼭대기 층부터 청소하면 편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뻔했다.
청소부들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에 최상층까지 올라온 다음에 한층, 한층씩 내려가며 청소를 하는 편이 나았다.
“그럼 오늘도 힘내자.”
옅게 미소를 지은 소현이 청소를 시작하려던 찰나.
잠자코 있던 민호가 입을 열었다.
“이모, 그런데 그 분은 오늘 안 오세요?”
“누구?”
“그, 이모랑 친해 보이는 분 있잖아요. 매일 커피마시자고 오시는 분이요.”
“아, 미영 동생?”
이어 소현이 말을 이었다.
“오늘 무슨 병원 들렀다가 온다고 좀 늦게 출근한다네. 근데 왜?”
“아, 아니요. 오늘따라 안 보이셔서······.”
민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잠시 후, 청소가 시작되자 민호는 몸을 돌려 휴대폰을 꺼냈다.
채팅방 대화를 보아하니, 혜성도 아직 미영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아무래도 귀물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에 민호는 그가 얻은 정보를 채팅방에 공유했다.
그러던 그 순간!
갑자기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쿠당탕! 쿵!
시선을 돌린 곳에는 소현이 쓰러져 있는 광경이 보였다.
“이모!”
깜짝 놀란 민호가 황급히 소현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아. 좀 어지러워서. 요즘 들어서 가끔 그래.”
소현의 안색은 영 좋지 않았다.
낯빛은 다소 창백했고 숨소리도 불안정했다. 몸살 기운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민호는 그녀를 부축해서 강의실 구석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잠깐 쉬고 계세요. 일은 제가 좀 하고 있을게요.”
“아니야. 나도 도와줄게.”
“괜찮아요. 저도 이제 어떻게 일하는지 감 잡았거든요.”
민호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고집에 소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강의실에 남겨둔 민호는 곧 옆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 복도 끝자락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보였다.
고급 양복을 걸친 서너 명의 남자들.
보아하니 오늘 학교를 방문한 중요한 외부 손님들처럼 보였다.
“뭐야? 이쪽으로는 안 오는 거 아니었나?”
민호가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구겼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들은 마치 관광을 온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걸어왔다. 이에 민호는 소현을 힐끗 쳐다봤다.
“지금 모시고 내려가면 어떻게 피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바로 요 앞이 계단이다.
남자들이 걸어오는 속도를 고려하면 피하는 게 나아보였다.
잠시 후, 결정을 내린 민호가 다시 소현에게로 몸을 돌리던 찰나!
“주인님!”
별안간 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가오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저 앞에 있는 남자! 대상과 붉은 실로 이어져 있어요!”
“뭐?”
“이러면 보일 거예요. 에잇!”
율이 민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그 순간, 붉은 실이 생겨났다. 소현에게서 시작된 붉은색 실은, 벽을 뚫고 한 남자에게 도달했다.
“이건······.”
예전에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가 살던 옥탑방의 집주인과 그녀가 키우던 개 사이에도 이런 실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붉은 실이 의미하는 것은 오직 하나.
“전생에 인연이 있다는 소린가?”
“맞아요. 그리고 실이 굵으면 굵을수록 인연이 강하다는 뜻이에요.”
율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소현과 남자를 잇는 실은 거의 사슬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굵었다. 또 피보다 더욱 짙고 선명한 붉은 빛을 띠었다. 이에 율은 나름의 추측을 던졌다.
“이 경우에는 거의 부모자식 사이였다고 봐도 좋을 거 같네요.”
그녀의 대답에 민호는 다시 남자를 쳐다봤다.
삼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민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
잠시 후, 그의 상태창을 본 민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이름: 손용진
*나이: 만 29세
*공덕: 1,378
*악덕: 23
*성향: -
==
공덕만으로 봤을 때 남자는 선인(善人)이었다.
그리고 민호가 놀란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남자의 이름.
“용진이라면······.”
소현이 말해준 곰 인형 열쇠고리에 얽힌 이야기.
그녀가 아들처럼 키웠던 아이.
소현은 아이의 이름까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안으로 알아본 그녀의 속마음에서는 아이의 이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용진이도 딱 민호 학생만큼 컸을 텐데.’
민호의 눈이 점차 커다랗게 변했다.
“설마······.”
소현과 전생의 인연이 이어진 남자.
이름도 그렇고, 나이도 소현이 말했던 것과 거의 비슷했다.
“주인님, 이건 제 추측인데요.”
그때 함께 남자를 보던 율이 입을 열었다.
“혹시 대상이 저 남자랑 만나게 하는 게 보조 임무의 목적이 아닐까요?”
소현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바라는 것은 있었다. 이십여 년 전, 헤어졌던 용진을 다시 만나는 것. 심안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었다.
일리가 있는 추측이었기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톡톡-
그러고는 곧장 오른쪽 귀를 두드려 여우 귀를 발동했다.
남자들의 대화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 그보다 먼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아, 짜증나! 왜 다들 날 방해하지 못해 안달이야?’
멈칫-
신경질적인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미영이었다.
민호는 곧장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집중했다. 미영의 현재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재수 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년!’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어차피 오늘 처치하고 잠수 탈 생각이었으니까.’
연달아 들려오는 표독스러운 목소리.
그 내용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위치를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잠시 후, 민호는 눈을 번뜩였다.
‘찾았다!’
바로 사무실 근처였다.
그리고 지금은 사무실을 벗어나 경영대 건물 쪽으로 오고 있었다.
남은 마감 시간을 고려해봤을 때, 아마 소현에게 오는 것 같았다.
이를 파악한 민호는 즉각 채팅방에 미영의 위치를 공유했다.
그러자 곧장 혜진에게서 답장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