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Chapter 19. 망자의 부탁 (5)
오늘 할 일은 지하 주차장을 청소하는 것.
주차장을 청소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오늘은 소현과 함께 일하기로 한 민호였다.
“둘이서 일하면 금방 끝나겠어요!”
율이 배시시 웃으며 소리쳤다.
청소 정도야, 어제 했던 책상 나르는 일에 비하면 껌이지.
민호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의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저게 뭐야?”
건물이 작아서 주차장도 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넓었다.
게다가 청소구역은 여기가 전부가 아니었다.
아래에 한 층이 더 있었고, 심지어 해당 층의 청소는 민호 혼자서 해야만 했다.
소현은 따로 업무가 있다고 했으니까.
“저, 이모.”
“으응?”
“이걸 둘이서 해야 된다고요?”
“응, 원래는 나 혼자서 했지만 요즘 허리가 영 안 좋아져서······.”
이어진 소현의 대답에 민호는 입을 떡 벌렸다.
이건 도저히 둘이서 청소할 규모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진 혼자서 일을 해왔다고 하니, 놀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 평점이 왜 안 좋은지 알 거 같네요······.”
심지어 율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
막막한 기분에 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호는 소현과 함께 주차장 청소에 돌입했다. 한숨만 쉰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개 층의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멀리서 소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학생! 잠깐만 쉬었다가 해.”
“네, 이모.”
민호는 허리를 피며 스트레칭을 한 뒤, 곧장 소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지하에 있는 작은 보일러실.
음습한 곳이었지만 의외로 아늑했다.
“배고프지? 이거라도 좀 들어.”
“앗,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허기가 진 참이다.
민호는 소현이 건네는 삶은 계란을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허겁지겁 계란을 먹어치우고 있을 무렵, 돌연 소현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신기하구먼.”
그녀는 미소를 띤 얼굴로 민호를 쳐다봤다.
“다른 학생들은 하루도 못 채우고 그만뒀는데.”
“그럴 만도 하죠. 이건 완전 노비에요, 노비!”
그때 율이 소현의 말에 동조하듯 분통을 터뜨렸다.
두 여성의 반응에 민호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돈이 좀 궁해서요. 저도 기간만 채우고 그만 둘 거예요.”
“그치. 이건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은 못 돼. 공부 열심히 해서 더 훌륭한 일 해야지.”
만약 민호가 계속 일한다고 했으면 뜯어말렸을 기세였다.
이후로도 민호와 소현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청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민호의 시선이 곰 인형 열쇠고리로 향했다.
볼품없어 보이는 잡동사니.
하지만 소현은 이를 소중히 들고 있었다. 마치 보물을 다루기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민호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모.”
“응?”
“그 곰 인형 열쇠고리는 뭐예요? 직접 만드신 건가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진 민호.
그러자 소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묘하게 변했다.
“이걸 용케 곰이라고 알아보는구나. 난 처음 봤을 때 수세미인 줄 알았는데.”
“하, 하하. 그렇군요.”
민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린 소현은 곰 인형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이건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선물 받은 거야.”
그녀의 눈빛이 그리움으로 젖어 들어갔다.
“꽤 옛날이야. 벌써 20년도 더 됐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련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소현은 성영대학교 인근에 있는 빌라 촌에서 살았다. 비록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남편 덕분에 가난하게 살진 않았다. 부족한 것도 딱히 없었다.
딱 하나, 아이가 없는 걸 제외한다면 말이다.
결혼한 지 벌써 7년이나 됐지만 소현은 아이를 갖지 못했다. 남편은 괜찮다며, 둘이서 잘 살면 된다고 했지만 소현은 아이를 가지고 싶었다. 고민 끝에 결국 입양까지 고려하던 그때, 별안간 사건 하나가 터졌다.
“끔찍한 사고였어. 트럭이 일가족을 덮쳤거든.”
소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당시, 그 사고로 인해 부모가 현장에서 즉사하고, 두 아이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치료를 받던 중 여자아이도 결국 부모의 뒤를 따랐다.
남겨진 것은 고작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남자아이뿐.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지, 보육원에 보내진다고 했었지.”
친척들은 하나같이 아이를 맡길 거부했다.
이제 고작 여섯 살.
부모를 잃은 아이는 모두에게서 버림받았다. 그러던 그때, 소현이 나섰다. 홀로 남겨진 아이가 안쓰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아주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거든. 장보러 갈 때마다 몇 번 마주친 적도 있고.”
아이가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소현은 아이를 정식으로 입양했다.
“하지만 충격이 컸던 탓인지 말을 못하게 됐어.”
소현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겪은 탓일까?
아이는 입을 굳게 닫았다. 마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린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소현은 정성껏 아이를 키웠다. 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사랑으로 키웠다.
그리고 약 3년 후.
소현의 마음씀씀이에 하늘이 감동한 걸까?
그녀의 생일날, 아이가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그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나.”
소현은 눈시울을 살짝 붉혔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그 말과 함께 아이는 은색 열쇠고리를 건넸다.
책을 보고 따라 만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곰 인형과 함께.
“마치 3년간의 시간에 보답을 받은 기분이었어.”
소현은 곰 인형 열쇠고리를 소중하게 껴안았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아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져버린 것. 순식간에 길바닥에 내앉을 위기에 처한 그때!
멀리서 아이를 찾아온 이가 있었다.
미국에서 온 수려한 외모의 여성.
아이 엄마와 사촌지간이라고 밝힌 그녀는 매우 비싼 자동차를 타고 아이를 데리러 왔다. 아이는 소현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했지만, 소현은 눈물을 머금고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거든.”
함께 길바닥 생활을 전전하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렇게 생각한 소현은 아이를 보내줬다.
눈물이 나왔지만 아이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애써 참았다.
“그 이후로 나도 이사를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지.”
그녀는 열쇠고리에 매달린 곰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옅게 웃었다.
이를 마지막으로 소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에 잠자코 소현의 이야기를 듣던 민호는 눈에 힘을 살짝 줬다. 그녀의 입가에 맺힌 미소의 의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땐 참 행복했지. 셋이서 오순도순 지내고.]
[그러고 보니 용진이도 딱 민호 학생만큼 컸을 텐데.]
[휴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을지······.]
아이는 용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듯했다.
그리고 소현은 아직까지도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맺혔던 달콤 쌉싸름한 미소의 정체는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과 미처 털어내지 못한 미련이었으리라.
“괜히 우울한 얘기만 했네. 자, 이제 다시 일이나 마저 하자.”
감정을 추스른 소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미영의 목소리.
이를 들은 민호는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현재 혜진이 눈에 불을 켜고 쫓고 있는 토벌 임무의 대상, 마인이었으니까.
“호호, 여기 계셨네요. 찾았어요.”
“응? 무슨 일이라고 있어?”
“별 일 없어요. 그냥 쉬는 시간이시면 저랑 커피나 한 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때!
별안간 미영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고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자리에 멈췄다. 갑작스런 모습에 소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응?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속이 좀 메스꺼워져서······.”
미영의 얼굴은 점점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현이 들고 있는 곰 인형 열쇠고리를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본 민호는 곧장 심안을 사용했다.
[뭐야? 저게 왜 여기 있지?]
[분명 갖다 버리라고 했었는데.]
[우욱! 아, 안되겠어.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비틀거리던 미영은 황급히 소현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핼쑥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언니. 커피는 이따 저녁 먹고 마셔요.”
“으응, 그래. 힘들면 사장님한테 말씀드리고 좀 쉬어.”
“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고개를 숙인 미영은 황급히 모습을 감췄다.
이를 보며 민호는 꼴좋다는 듯 웃었다.
미영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악화된 이유는 아마 곰 인형 열쇠고리가 가진 특별한 힘 때문이리라.
‘분명 마인의 접근을 막는다고 했었지.’
열쇠고리의 능력을 떠올린 민호가 피식 웃었다.
확실히 끝내주는 효과였다.
그런데 그때, 미영의 속마음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갖다 버리라고 했다고?’
곰 인형 열쇠고리가 가진 또 하나의 능력.
그것은 바로 중급 미만의 마인이 만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하급 마인인 미영은 당연히 열쇠고리를 만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시켜서 갖다 버리라고 했으리라.
‘그럼 그 누군가는······.’
둘 중 하나였다.
중급 이상의 마인. 혹은 마인이 아닌 일반인.
그리고 이는 곧 미영의 동료가 근처에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 변절자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전직 신의 대리인 주효진.
그녀를 떠올린 민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
그로부터 약 두 시간이 더 지난 후.
지하 주차장 청소가 전부 끝났다. 민호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으으, 이걸로 끝이네.”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율이 밝은 목소리로 박수를 쳤다.
허공에서 빙그르르 몸을 돌린 그녀는 율의 어깨에 다소곳이 내려앉았다.
“그럼 이제 저녁 드시러 가는 거예요?”
“아니, 조금만 더 쉬고.”
자리에서 일어난 민호가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적당히 몸을 푼 민호는 곧장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따로 할 일도 있거든.”
민호가 오른쪽 귀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곧 신령한 뾰족 여우 귀가 발동했다. 민호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중에서 오직 하나의 목소리만 찾았다. 마인, 문미영의 목소리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았다.’
민호가 씨익 웃었다.
천장 너머에서 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그녀가 바로 위층에 있다는 소리였기에 민호는 곧장 그녀의 뒤를 쫓았다.
‘후우, 역겨워서 죽는 줄 알았네.’
‘대체 그런 건 어디에서 구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이 돼지새낀 이런 것도 하나 못 처리해?’
누군가의 험담을 하며 미영은 이내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철컥-!
‘문을 잠갔어?’
민호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의 본능이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속삭였다.
민호는 사무실과 가장 가까이 있는 빈 강의실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청력에 모든 감각을 집중해, 사무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엿듣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신을 집중하자 사람의 음성이 들렸다.
그 중에서도 제일 또렷하게 들린 건 바로 태민의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평소답지 않게 다정한 말투.
이에 민호는 귀를 좀 더 기울였다.
그러자 곧이어 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