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Chapter 19. 망자의 부탁 (3)
이어 민호의 눈동자에 그녀의 상태창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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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장소현
*나이: 만 59세
*공덕: 1,994
*악덕: 8(+100)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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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민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바로 보조 임무의 대상인 장소현.
곧이어 그의 시선이 소현의 악덕 수치로 향했다.
‘잠깐, 저건······.’
괄호 안에 있는 100이라는 숫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명료했다.
‘······살인이나 자살.’
민호의 낯빛이 어둡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호는 주먹을 꽉 움켜 쥐었다.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그러던 그때!
별안간 태민이 여성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어이, 장씨 아줌마! 잠깐 일로 와보쇼.”
자연스러운 하대.
소현의 연배가 훨씬 있어보였음에도 태민은 마치 아랫사람을 부리듯 말했다.
안하무인적인 태민의 태도에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태민은 웃는 얼굴로 민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여기 신참한테 일 좀 알려줘. 청소랑 분리수거. 아, 그리고 그 강의실 의자 옮기는 거 있지? 그것도 알려주고.”
“예예, 사장님.”
소현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 모습에 태민은 민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기 아줌마한테 잘 배워. 일 열심히 하고.”
“······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 하루도 힘내자고!”
자리에서 일어난 태민이 요란스럽게 박수를 쳤다.
민호 역시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소현의 뒤를 따라 사무실을 나섰다.
***
업무는 크게 어려울 게 없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기에, 민호는 빠르게 업무에 적응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일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었다.
“······이걸 나 혼자 다 하라고?”
민호는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청소업무를 끝마친 그에게 주어진 일은 아주 단순했다.
인문대 건물 3층의 강의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같은 건물의 7층으로 옮기는 것.
이것만 놓고 본다면 굉장히 쉬운 일이었다.
문제는 책상과 의자의 숫자가 무려 백여 개를 훌쩍 넘긴다는 것.
“임무만 아니었으면 절대로 안했을 텐데······.”
민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책상을 옮겼다.
그렇게 작업을 하던 도중, 눈살을 찌푸리는 광경이 몇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몇몇 학생들이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강의실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강의실에 커피를 쌓아두고 나가는 건 기본이요, 과자나 음식을 먹고 제대로 치우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빈 강의실에서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배달음식을 먹는 학생들도 보였다.
그러던 중 배달음식을 먹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남은 음식을 강의실 구석에 대충 던져놓았다.
그때 한 학생이 찜찜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야, 근데 이거 치우고 가야되는 거 아니냐?”
“왜? 어차피 청소하는 아줌마가 치우잖아.”
“맞아. 저것도 등록금에 다 포함된 거야. 그냥 가자. 늦게 가면 자리 없어.”
“야! 같이 가!”
그들은 그대로 강의실을 나섰다.
강의실 한 구석에 음식물 쓰레기를 남긴 채.
그 모습은 늘 깨끗하던 강의실의 어두운 이면을 엿본 기분이 들어서, 민호는 쓰게 웃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는 주어진 작업을 모두 완료한 뒤, 강의실에 놓였던 쓰레기들을 처리했다.
잠시 후, 깨끗하게 변한 강의실을 뒤로한 채, 민호는 시계를 쳐다봤다.
“후우, 이제 쉴 시간이네.”
청소부들에게는 2시간을 일하면 15분의 휴식 시간이 보장되어 있었다.
이에 민호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마땅히 쉴만한 장소를 찾지 못한 탓이었다.
철컥-!
“엥?”
하지만 사무실은 굳게 잠겨있었다.
졸지에 쉴 곳은 잃어버린 민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정보나 좀 모아볼까.”
이 알바를 하게 된 이유는 소현에게 유품을 전달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인의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기지개를 핀 민호는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돌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잖아요!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2층 끝에 있는 화장실 앞.
정확히 말하면 행정실 직원들이 사용하는 전용 화장실이었다. 그 앞에서는 한 젊은 여성이 누군가를 나무라고 있었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이딴 휴지 쓰지 말라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치는 여성.
민호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가 이내 눈을 커다랗게 떴다.
“······!”
여성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는 사람.
청소부 복장을 한 그녀는 다름 아닌 소현이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기억 좀 해요. 아니면 메모를 좀 해서 잊질 말던가!”
한편 여성은 어머니뻘 되는 소현에게 삿대질까지 해가며 연신 폭언을 퍼부었다.
이유는 단 하나. 변기 칸에 비치된 휴지를 지정된 것이 아닌, 공용 화장실과 똑같은 걸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소현은 어둡게 물든 얼굴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해요. 제가 실수로······.”
“아씨, 진짜 짜증나. 저리 비켜요!”
소현을 밀친 여성은 이내 화장실로 향했다.
안하무인처럼 행동하는 그녀의 태도에 민호는 곧장 여성의 상태창을 띄웠다.
그녀가 마인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호의 예상은 빗나갔다.
‘저 사람도 꽝이네.’
물론 악덕 수치가 100을 조금 넘기긴 했지만, 마인이라고 할 만한 수치는 아니었다. 태민보다 조금 낮은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민호가 여성에게서 시선을 거두던 그때.
“언니!”
홀로 남겨진 소현에게 다가가는 이가 있었다.
소현과 똑같이 청소부 복장을 한 여성.
좌측 가슴에 ‘문미영’이라는 명찰을 단 여성은 이내 소현의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는 화장실을 노려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괜찮아요, 언니?”
“으응, 괜찮아. 내 잘못인걸 뭐.”
소현은 애써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미영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엄마뻘 되는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대해요? 저 사람들, 분명 언젠가는 다 천벌 받을 거예요!”
미영은 연신 소현을 대신해서 화를 냈다.
그러고는 이내 소현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언니, 맘 많이 상했죠? 이따가 커피 한 잔 하면서 다 풀어요.”
“고마워. 동생 덕분에 힘이 나네.”
“뭘요. 제가 도와줄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전 언제나 언니 편이니까요.”
친한 언니동생처럼 보이는 모습.
그러나 민호는 그 모습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그것은 미묘한 이질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어디선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민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아, 맞아. 분명 예전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새천사 보육원에서 지내던 시절.
그가 있던 보육원이 방송에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왔던 연예인들은 민호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몇몇 여자 연예인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부 가식이었지.’
처음엔 정말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지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가운 태도를 보이는 이도 있었고 ‘빌어먹을 고아새끼들’라고 욕설을 내뱉는 이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민호는 한 가지 능력이 생겼다.
바로 상대의 태도가 가식인지 아닌지를 본능적으로 판별하는 게 가능해진 것. 물론 백퍼센트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열에 일곱 정도는 맞았다.
그리고 지금.
민호는 미영이 가식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판단했다.
‘어디 한 번 확인해볼까.’
민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미영을 응시했다.
곧이어 그녀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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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문미영
*나이: 만 42세
*공덕: 1,009
*악덕: 1,513(+500)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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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호는 입을 크게 벌렸다.
동시에 율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주인님! 마인이에요!”
율의 외침과 함께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모순적인 수치를 가진 건 오직 마인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민호가 놀란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악덕이 한 번에 500이나 쌓일 거라고?’
살인이나 자살을 저지르면 악덕이 100이 쌓인다.
그럼 악덕이 한 번에 500이나 쌓일 만한 일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민호가 놀란 눈으로 미영을 쳐다보던 그때, 순간적으로 미영이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허공에서 얽힌 둘의 시선.
잠시 후, 미영은 어색한 얼굴로 소현을 쳐다봤다.
“그런데 언니, 혹시 저 학생이랑 아는 사이에요? 아까부터 계속 여길 보고 있는데······.”
“으응, 민호 학생? 아르바이트하러 온 학생이야.”
소현의 대답에 미영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소현이 민호에게 손짓했다.
“학생! 거기 있지 말고 이리 와.”
소현의 부름에 민호는 정신을 추슬렀다.
곧이어 그녀에게 다가가자, 소현이 미영에게 민호를 소개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일하기로 했대.”
“안녕하세요. 공민호라고 합니다.”
민호는 태민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수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미영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호호, 반가워요. 문미영이에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잘 부탁해.”
“네, 잘 부탁드립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자 미영은 다시 소현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민호는 눈에 힘을 가득 줬다.
그러자 곧 심안이 발동했다.
[상태를 보니 좀만 더 몰아붙이면 되겠네.]
[후후, 슬슬 중급으로 승급할 수 있겠어.]
[이제 악덕 상점도 이용할 수 있겠지?]
속마음을 읽은 결과, 미영은 확실히 마인이 맞았다.
악덕 상점이라는 단어가 강력한 증거였다.
그러자 민호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물들었다. 그러던 그때, 민호의 시선을 느낀 걸까? 미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학생,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그 말에 민호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닙니다. 엄청 젊어 보이셔서요.”
변명처럼 내뱉긴 했지만 빈 말은 아니었다.
미영은 마흔 둘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상당히 젊어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민호의 말을 들은 미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머, 정말? 몇 살처럼 보여?”
“으음, 한 서른 쯤······.”
사실은 서른 중반으로 보였지만 민호는 좀 더 나이를 낮춰 불렀다.
그러자 미영은 기분이 좋은 듯 입을 가린 채 웃었다.
“호호, 이래 보여도 내가 마흔이 넘었어. 그래도 기분은 좋다, 얘.”
미영은 민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 시계가 오후 6시 정각을 알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언니, 그럼 이따 커피나 한잔해요.”
“응, 이따 봐.”
손을 흔들며 미영은 곧장 계단을 올랐다.
미영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민호는 휴대폰을 꺼냈다.
마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채팅방에 정보를 올리고 있을 무렵, 소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학생, 일하는 중에 휴대폰하면 안 돼. 벌금 물 수도 있어.”
“앗, 네. 죄송합니다.”
그 말에 민호는 곧장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미 필요한 정보는 전부 올린 뒤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뒷일은 혜성과 혜진에게 맡겨도 좋으리라.
이제 남은 건 민호가 맡은 보조 임무.
민호는 반대쪽 주머니 속에 있는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중 소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