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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68화 (68/182)

68화

Chapter 18. 조우 (4)

[민호]: 혹시 그 주효진이란 사람 때문에 그래?

[혜성]: 네네, 맞아요.

[민호]: 역시 마인이었구나.

[혜성]: 맞아요. 그것도 보통 마인이 아니에요.

보통 마인이 아니다?

그 말과 함께 혜성은 잠시 뜸을 들였다.

잠시 후, 그의 톡이 이어졌다.

[혜성]: 무려 변절자 중 하나라고요!

“······!?”

그 내용을 본 민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변절자란 마인의 길을 택한 전대(前代) 신의 대리인들을 일컫는 말.

즉, 마인 중에서도 거물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분명 어르신이 말씀하시길······.’

미옥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변절자와 마주치면 임무고 뭐고 일단 도망부터 가라고.

그만큼 변절자는 위험한 존재였다. 적어도 지금의 민호가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혜성]: 형이 있는 방향으로 직진하고 있어요.

[혜성]: 현재 거리는 300미터 정도에요.

[혜성]: 만약 마주치면 바로 피하세요!

곧이어 도착한 톡의 내용에 민호의 얼굴은 급격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던 그때!

“······아!”

문득 민호는 그가 가진 능력 중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강의실에서 사용했던 [신령한 뾰족 여우 귀].

민호는 재빨리 오른쪽 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주변의 온갖 소음이 그의 귀를 가득 메웠다.

‘이따 끝나고 소주 한 잔 콜?’

‘후우, 퇴근하고 싶다.’

‘으아아앙! 엄마!’

‘오빠, 우리 주말에 뭐할까?’

카페에 있는 사람들부터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대화소리.

원두를 볶는 소리와 커피를 마시는 소리까지도 들렸다.

하지만 모두 민호가 찾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효진의 목소리를 찾고 있었다. 그녀와 스치듯 지나던 찰나, 일순간 효진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후우, 젠장!’

민호가 눈을 매섭게 빛냈다.

아저씨처럼 걸쭉한 말투.

효진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허탕치고 돌아갈 거 같아?’

그녀의 목소리는 제법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다른 목소리들과의 거리를 생각해봤을 때, 약 150미터에서 200미터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다시금 효진이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서민지라도 찾아내야겠어.’

그 내용에 민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민지를 찾고 있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효진은 분명 민지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녀가 왜 민지를 찾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민호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드르륵-

“민지야, 미안한데 테이블 쪽으로 자리 옮기지 않을래?”

“네? 하지만 자리가······.”

그녀의 말대로 빈자리는 없었다. 민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그때!

창밖 너머에 있던 모퉁이에서 후드티를 입은 여성이 튀어나왔다.

펭귄 캐릭터가 그려진 후드티.

“······!”

곧이어 효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분명 이 어딘가로 지나간 거 같다고 했는데······.”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들키고 만다.

민호는 초조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민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별안간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오, 오오오빠?”

갑작스러운 접촉에 민지는 화들짝 놀란 듯이 외쳤다.

하지만 민호의 돌발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민지의 팔을 자기 쪽으로 거세게 끌어당겼다.

그러자 민지는 자연스럽게 민호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됐다.

“······!?”

민지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황급히 민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민호가 그녀의 어깨를 조금 세게 잡았다.

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여 중얼거렸다.

“······잠깐만 이러고 있자.”

진지한 목소리에 민지는 순간 행동을 멈췄다.

민호의 품 너머에서 그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심장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빠른 것 같았다.

그 사실에 민지는 입 꼬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평상시보다 빨리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듣기 좋았다.

“후우우······.”

한편 민호는 짧게 숨을 내뱉었다.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얼굴.

‘민지를 찾고 있는 걸로 봐선, 날 모를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 민호는 효진과 스치듯 지나갈 때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지 않았다.

또 마인들은 전달자나 관찰자를 쉽게 특정해낼 수 없다는 말도 들었으니, 분명 민호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리라.

‘반면에 민지는 옷차림까지 파악하고 있을 수도 있어.’

민호는 결코 마인을 얕보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는 변절자 중 하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민호는, 민지를 끌어안은 채로 등을 창가 쪽으로 내보였다. 이 상태라면 효진이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에야 들킬 일이 없으리라.

저벅 저벅-

효진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입 안이 바싹바싹 타들어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우뚝-

효진은 정확히 카페 창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귀로 들리는 바깥 풍경의 모습에 민호는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효진은 지금, 창가 앞에 멈춰 서서 이곳을 보고 있었다.

‘제발······.’

민호가 민지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꽉 줬다.

긴장감으로 인해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그리고 그때, 효진의 입이 열렸다.

“에휴, 쯧쯧.”

이윽고 흘러나온 건 한심하다는 듯한 한숨소리.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은 벌건 대낮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쯧, 말세다. 말세야.”

민호가 예상한대로 효진은 그를 보고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상황만을 보고,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아, 진짜.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효진은 연신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발소리.

이윽고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자, 민호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효진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민호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

민지가 아직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이에 민호는 황급히 그녀를 품에서 떼어냈다.

“미, 미안해. 많이 놀랐지?”

“조, 조조조금. 아, 아주 조금 놀랐어요. 네, 정말이에요. 헤헤.”

아무래도 엄청 놀란 것 같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귀까지 빨갛게 변한 상태였다.

민호는 재차 사과했다. 그러자 민지는 조금 진정이 된 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웬 땀이······.”

민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민지는 놀란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를 닦았다.

“아, 그게······.”

“잠깐만요. 땀 좀 마저 닦구요.”

잠시 후, 민지가 땀을 다 닦자 민호는 입을 열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을 봤는데, 민호가 이곳에 있는 걸 들키면 좀 곤란하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런 행동을 했다.

구멍투성이인 변명이었지만 다행히 민지는 그냥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민호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 번 사과했다.

“불쾌했다면 미안해.”

“아, 아니에요.”

민지가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어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불쾌하진 않았어요. 다만 그런 이유라고 하시니 조금 아쉽······.”

“응? 뭐라고?”

불쾌하지 않았다는 말 이후로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민호가 되묻자 민지는 어딘가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헤헤.”

민지의 어색한 미소와 함께.

민호의 돌발행동은 일단락이 됐다.

그러던 중 이번엔 민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앗, 언니다. 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와도 될까요?”

“응, 다녀와.”

민지가 카페 내부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홀로 남은 민호는 창밖을 응시하며 방금 전, 들었던 효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대체 왜 민지를 노리는 거지?’

마인과 민지 사이에는 접점이 없었다.

민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잊고 있던 접점 하나를 기억해냈다.

‘······신은미.’

민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신은미는 기적을 빼앗기면서 기억을 잃었어.’

MT에서 돌아온 이후, 민호는 신은미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민호는 알게 됐다.

신은미의 기억이 예상보다 많이 소실되었다는 걸.

채강현과 사귀었던 것도 잊어버릴 정도면 말은 다 한 셈이리라.

그렇기에 그녀가 동료 마인에게 민지의 정보를 갖다 바쳤을 가능성은 없었다.

‘그럼 대체 어떻게 민지를 알고 있는 거지?’

민호의 미간이 의문으로 좁혀졌다.

‘잠깐, 그러고 보니 마인 중에 [오리]라고 했던 사람이······.’

그러던 중, 불현 듯 미래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오리]라는 마인이 가진 능력.

‘분명 빙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었지.’

마인에게 빙의해, 주변 풍경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능력.

미래는 신은미의 기적을 회수했을 때에도 [오리]가 엿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미래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마인들이 민지를 특정한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의문도 있었다.

‘그렇다면 마인들이 민지를 노리는 이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민호가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그때!

문득 한 가지 추측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민지를 통해 누군가를 찾으려고 하는 건가?’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만약 민호의 추측이 정답이라면, 마인들은 과연 민지를 통해 누구를 찾으려고 하는 걸까?

‘민지와 접점이 있고, 마인들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사람.’

민호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방금 전, 그가 떠올린 조건에 적합한 이는 오직 하나 뿐이었으니까.

‘······설마 나를 찾고 있나?’

미래는 [오리]와 아는 사이다.

변절자인 [오리] 역시, 미래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인 토벌 당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민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민호가 신은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민지를 괴롭혔냐고.

거기서 [오리]는 떠올렸을 거다. 민지를 찾으면, 가면을 썼던 민호의 정체를 캐낼 수 있다고. 그렇기에 [오리]는 민지를 쫓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민호가 떠올린 추측.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아니, 이것 외엔 답이 없어.’

하지만 민호는 이게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추측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너무 잘 맞아 떨어졌으니까.

그럼 이제 뭘 해야 할까?

‘일단 혜성이랑 혜진이한테 알리자.’

둘뿐만이 아니라 미래와 진하, 미옥에게도 알려야만 했다.

변절자가 개입한 이상, 민호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힘들었다.

‘그리고 민지를 보호해야 돼.’

민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안일함으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한 것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민호는 민지를 지켜야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그때 전화를 받으러 갔던 민지가 돌아왔다.

민호는 조금 굳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민지야.”

“네?”

“혹시 무슨 일 생기거나 낯선 사람이 접근하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 알겠지?”

민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민지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어, 왜요?”

그것은 많은 의미가 함축된 반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거나 낯선 누군가에게서 위협을 받으면 일단 제일 먼저 부모님이나 경찰에게 이를 알리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민호는 구태여 그에게 연락하라고 말했다.

민지가 그 이유에 대해 묻자, 민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걱정돼서 그러지.”

그에게서 돌아온 건 정석적인 대답.

하지만 민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이유이든 간에, 민호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다는 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일까?

민지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히히, 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꼭 연락해야 돼. 꼭이야.”

“네네!”

민지의 밝은 대답과 함께.

민호는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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