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Chapter 18. 조우 (3)
후문을 지나 떡볶이집으로 향하는 길.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가늘게 떨렸다.
혜성에게서 온 톡이었다.
[혜성]: 그럼 제가 한 번 확인해볼게요.
[혜성]: 목격 장소는 예종대. 이름은 주효진. 맞죠?
[혜성]: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마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발견한 직후.
민호는 혜성에게 제보를 넣어뒀다. 그가 가진 능력, [천리안]과 [탐색]이라면 분명 효진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혜성이한테 맡겨두자.’
그렇게 생각한 민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던 그때.
걸음을 옮기던 민지가 자리에 멈춰 섰다.
“아, 저기에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있는 건 아담한 크기의 분식집.
<덕자 분식집>이라는 간판명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를 본 민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얼마 전, 동석 삼촌이 일터를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던 탓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작은 분식집을 열거야.’
‘덕자 분식집이라고, 예종대 후문에서 할 거니까 놀러와.’
참고로 덕자는 동석 삼촌 어머님의 성함이라고 했다.
이를 떠올린 민호가 우두커니 서있을 무렵, 민지가 서둘러 가게 내부를 살펴봤다.
“와, 역시 사람이 엄청 많네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대임에도 분식집 안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학교 근처라 대학생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때 식사를 마친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본 민지는 황급히 민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앗! 한 자리밖에 안 남았어요. 얼른 가요.”
민지의 손에 이끌린 채, 자그마한 테이블에 앉은 민호.
그는 누군가를 찾듯 가게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십니까?”
곧이어 주방에서 푸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 남성이 나왔다.
그러자 민지는 메뉴판을 들며 입을 열었다.
“네. 사장님, 저희 즉떡 2인분에 순대랑 튀김 반씩 섞어주세요.”
“예예, 즉떡 2인분에 순대랑 튀김이요. 다른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 김밥도 한 줄 추가해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문이 끝나자 동석은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그의 시선이 민호의 시선과 맞닿았다. 동석은 단번에 민호를 알아본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모습에 민호는 씨익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삼촌, 안녕하세요.”
“어? 민호야!”
동석의 얼굴에 놀람과 반가움의 빛이 맺혔다.
“이야,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저야 뭐 늘 똑같죠. 삼촌은요?”
“보다시피 장사도 잘 되고 바쁘게 잘 살고 있다. 하하.”
동석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던 도중,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 내 정신 좀 봐라. 조금만 기다려. 떡볶이 맛있게 만들어줄게.”
말을 마친 동석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멍하니 앉아있던 민지가 놀란 듯 물었다.
“오빠. 여기 사장님하고 아는 사이에요?”
“응, 친한 삼촌이야.”
고개를 끄덕인 민호는 동석과의 관계를 간략히 설명했다. 일터에서 만난 친한 삼촌이고, 민호에게 있어선 거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까지 전부.
그의 이야기를 듣던 민지는 연신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던 중 동석이 돌아왔다.
“자, 음식 나왔다.”
주문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떡볶이와 함께.
“세상에······.”
민지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처럼 변했다.
떡볶이뿐만이 아니었다.
순대나 튀김, 김밥의 양도 무지막지했다.
성인 대여섯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정도의 푸짐한 양.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어. 부족하면 더 말하고.”
“부족하긴요. 그보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돼요?”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와줬는데.”
동석이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 그런데······.”
그때 동석의 시선이 민지에게로 향했다.
이어 그는 고개를 살짝 낮추더니, 민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혹시 네 여자 친구냐?”
“푸흡!”
별안간 민지가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어냈다. 이어 민지는 콜록거리며 연신 기침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민호의 대답이 이어졌다.
“에이, 설마요. 친한 후배에요.”
“아, 안녕하세요. 서민지라고 합니다. 민호 오빠랑 같은 과에요.”
그녀는 황급히 입 주변의 물을 닦아낸 뒤, 동석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하, 이거 실례했네요. 민호랑 잘 어울려보여서 무심코······.”
“에이, 저랑 엮으면 민지한테 너무 미안하죠.”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일순간 민지의 얼굴이 다소 시무룩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눈치 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자, 잘 먹겠습니다.”
“그래. 남으면 싸줄 테니까 걱정 말고 먹어.”
동석이 씨익 웃었다.
그때 다른 테이블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여기 주문이요!”
“예, 갑니다!”
동석이 몸을 돌리자 민호는 국자로 떡볶이를 그릇에 담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민지의 앞에 가져다놨다.
“자, 여기.”
“앗! 가, 감사합니다.”
민호의 배려에 민지는 방긋 웃었다.
이어 민호는 떡볶이를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밀떡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함께 매콤하면서도 달작 지근한 국물이 혀를 감싸 안았다.
이를 말로 간단히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았다.
“······맛있다.”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는 빈 말이 아니었다. 근래에 먹었던 떡볶이 중에 가장 맛있었다.
“와, 대박. 진짜 맛있는데?!”
“헤헤, 그렇죠? 여기 맛집이라니까요.”
민호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처럼 보이자 민지는 안도한 듯했다.
“여기 튀김도 진짜 장난 아니에요.”
“진짜? 오, 그러네. 엄청 바삭바삭해.”
민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에 민지는 배시시 웃었다.
만족스러움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나가던 중.
문득 민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나타났다.
바로 가게 어귀에 있는 TV. 좀 더 정확히 말하면 TV에서 한창 하고 있는 맛집 탐방 프로그램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지금 강동구 성내동에 나와 있습니다!
미모의 리포터가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시작했다.
이어 그녀는 능숙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 요즘 한창 쭈꾸미가 맛있을 때죠? 제철을 맞아, 살도 통통하게 오르고 알도 꽉 차서 맛있는 쭈꾸미. 이 쭈꾸미를 예술적으로 요리하는 맛집이 있다고 해서 제가 직접 찾아와봤습니다. 바로 이곳입니다!
리포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이 어느 식당으로 전환됐다.
“어? 저곳은······.”
동시에 민호의 눈이 가늘게 좁아졌다. 어딘가에서 봤던 장소였다. 저런 모습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낯이 익었다.
민호가 어디서 봤는지 떠올리려던 그때.
“앗! 저기 순자네 식당이잖아요!?”
잠자코 있던 율이 깜짝 놀란 듯 외쳤다.
그러자 민호는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도 순자네 식당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한 곳이자, 선인이었던 아주머니의 착한 마음씨도 인상이 깊었던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민호가 놀란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다.
“와, 식당이 엄청 커졌네요!”
바로 순자네 식당의 크기였다.
과거에는 테이블 서너 개만 놓인, 좁디좁은 곳이었지만 지금은 건물 1층을 전부 텄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게다가 이십여 개까지 늘어난 테이블에는 온통 손님들로 꽉 차있었다.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예이리라.
한편 리포터는 식사를 하러온 손님들을 붙잡고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1시간. 어떤 날은 2시간도 넘게 기다릴 때도 있었어요.
=근데 진짜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추천!
=대한민국에서 쭈꾸미는 여기만한 곳이 없습니다.
=날이 갈수록 맛있어지는 거 같아요.
=맞아, 올 때마다 새롭다고 해야 되나?
손님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가게 밖에서 대기를 하는 손님들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편집된 영상이 지나고, 리포터는 비교적 한산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포터의 곁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두 번째 임무의 대상이었던 우순자였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네, 안녕하세요. 호호.
순자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훨씬 밝아졌다.
살도 오른 거 같았고, 자글거리던 주름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착한 식당>에 나왔다는 사실! 사장님께서는 매주 주말마다 인근 독거노인 분들께 요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날 이후로도 순자는 봉사활동을 멈추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선행을 베푸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엔 일요일에만 봉사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매주 주말, 그것도 무상으로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니 말이다.
-매주 주말이면 한창 장사가 잘 될 때인데요. 매상을 포기하시면서 까지 봉사활동을 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특별한 것까진 아니지만 제가 예전에······.
순자는 웃는 얼굴로 사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민호가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그때.
율이 밝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네요. 주인님이 바랐던 대로 꽃길을 걷고 계신 거 같아요!”
이에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때였다.
“오빠, 뭐 보세요?”
말없이 TV만 보고 있는 모습이 신경 쓰였던 걸까?
민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 그냥. 저기 왠지 맛있어보여서.”
대답을 대충 얼버무린 민호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민호와 민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후, 배부르다.”
“저도요. 이제 한 조각도 못 먹겠어요.”
남기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동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벌써 다 먹었어?”
“네, 진짜 맛있었어요. 특히 떡볶이요.”
“오, 그래? 그럼 떡볶이 좀 더 갖다 줄까?”
동석이 주방으로 몸을 돌렸다. 진짜로 갖다 줄 모양새였다.
이에 민호는 황급히 손을 들어 동석을 만류했다.
“괘, 괜찮아요. 여기서 더 먹으면 진짜 배 터질 거 같거든요.”
“배부르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좀 남은 건 싸줄 테니까 가져가서 먹을래?”
“네, 감사합니다.”
민호가 씨익 웃었다.
이어 민호는 음식 값을 지불하려고 했지만 동석은 한사코 돈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음식에다 새로운 음식까지 싸줬다.
그리고 가게 바깥까지 나와서 민호를 배웅했다.
“그럼 다음에 또 놀러와. 공부 열심히 하고.”
“네. 잘 먹었어요, 삼촌.”
“저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민호와 민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둘은 분식집을 뒤로한 채, 다시 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놀랐어요. 설마 분식집 사장님이랑 그렇게 친한 사이셨을 줄이야.”
“나도 놀랐어. 네가 말한 맛집이 삼촌네 가게였을 줄은 몰랐거든.”
민호의 대답과 함께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민지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좁혔다.
“그보다 계획이 틀어져버렸네요.”
“계획?”
“네, 원래는 오빠한테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대접을 받아버린 상황이었다.
민지가 말을 흐리던 그때.
그녀의 시야에 예쁘장한 카페가 들어왔다. 이에 민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런 의미에서 안 바쁘시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제가 살게요.”
“나야 좋지.”
“헤헤, 그럼 가요!”
민지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카페.
작은 카페여서 그런지 자리는 대부분 꽉 찬 상태였다.
“남은 자리는 창가뿐이네요.”
“창가도 나쁘지 않지.”
바깥거리가 훤히 보이는 창가였지만 민호는 개의치 않았다. 잠시 후, 주문한 커피가 오자 둘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주로 서로의 근황과 전공 강의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민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우웅-!
“아, 잠깐만.”
민호가 휴대폰을 응시했다.
혜성에게서 온 톡이었다.
[혜성]: 민호 형!
[혜성]: 지금 카페에 계시죠?
시각을 보아하니 이제 막 보낸 것 같았다.
이에 민호는 곧장 답장을 보냈다.
[민호]: ㅇㅇ맞아.
[민호]: 능력으로 알아본 거구나?
답장을 보내고 얼마 후.
꽤나 다급해 보이는 내용의 톡이 이어졌다.
[혜성]: 네, 그보다 빨리 나오세요!
[혜성]: 거긴 위험해요!
‘위험하다고?’
뜬금없는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