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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58화 (58/182)

58화

Chapter 16. 게릴라 콘서트 (1)

Chapter. 16

게릴라 콘서트

“······그러니까 왜 그렇게 된 거였냐면요.”

민호는 운전대를 잡은 채, 잠자코 지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어젯밤, 민호가 집을 들렀다간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제 남동생들이 왜 싸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휴, 그래서 둘 다 울고불고 난리난 거 있죠?”

남동생들이 다툰 이유는 다름 아닌 케이크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케이크 위의 초콜릿 장식.

하나밖에 없는 장식을 서로 먹겠다고 하다가 싸움이 났다고 했다. 그 광경을 상상한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구나. 다음엔 두 개 있는 걸로 사줘야겠네.”

“네? 다음에도요?”

“어? 응.”

깜짝 놀란 듯 묻는 지은.

그 말에 민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호를 멍하니 바라보는 지은.

“뭘 그렇게 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헤헤.”

지은이 멋쩍게 웃었다.

얼마 후, 차가 회사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지은은 기타를 어깨에 멘 뒤, 민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고 올게요!”

“그래, 잘 다녀와.”

민호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지은이 모습을 감추자 민호의 뒤에 숨어있던 율이 튀어나왔다.

그녀는 지은이 사라져간 곳 지그시 응시했다.

“흐음, 기적은 잘 녹아든 것처럼 보이네요.”

“그래? 난 잘 모르겠던데.”

“왜요?”

“3초 이상 눈을 마주쳐도 딱히 두근거리거나 그러진 않았거든.”

지은에게 전해준 기적.

[매력의 반지]에는 한 가지 특수능력이 붙어있었다.

바로 상대의 눈을 3초 정도 바라보면 일시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

그리고 민호는 이곳까지 오면서 지은과 3초 이상 눈을 마주쳤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하지만 민호는 딱히 지은에게 마음을 빼앗긴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냥 평소랑 똑같았어.”

이어진 민호의 말에 율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주인님은 신의 대리인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신의 대리인은 타인의 기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율은 그렇게 설명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미래와 협동 임무를 하던 당시.

그녀는 인연을 자르는 가위로 성원의 인연을 모조리 끊어냈다.

일반인이라면 인연의 실이 끊기자마자 기억이 사라져야 정상이었지만 민호는 달랐다. 그는 성원이 과거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온전히 기억했다.

“그렇구나. 이해했어.”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습관처럼 임무창을 띄웠다. 기적도 전달했겠다, 임무의 진척도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임무 내용을 본 민호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건 왜 안 사라지는 거지?”

분명 어제 기적을 제대로 전달했음에도 마감 기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율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직 이렇다 할 변화가 없으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변한 건 없었다.

지은의 퇴출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이에 민호는 걱정스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중 돌연 회사 입구 부근이 소란스러워졌다.

“앗,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회사에 소속된 연습생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로 한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 잘들 지냈어? 이야, 넌 진짜 오랜만이다. 아직도 여기에 있냐?”

선글라스를 쓴 통통한 체구의 남자.

민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그를 응시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그러던 중 남자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

*이름: 윤시혁

*나이: -

*공덕: 1,107

*악덕: 29

*성향: -

==

남자의 이름을 본 순간!

민호는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맞아, 윤시혁!”

“잘 아시는 분이에요?”

율의 질문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시혁. 그는 연예인에 대해 무지한 민호조차도 알 정도로 유명한 남자였다.

톱스타를 줄줄이 만든 프로듀서이자 국내 최정상급의 작곡가. 숱한 히트곡을 만들어냈으며 한때 TV에도 엄청 나왔다.

민호의 설명에 율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시혁을 바라봤다.

“그런데 저 사람이 여긴 왜 왔을까요?”

“그러게. 여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민호도 덩달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사이 시혁은 인파에 휩쓸려 회사 안으로 사라졌다.

***

뚜벅 뚜벅-

대표이사실로 향하는 복도.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벽면을 타고 울렸다.

“오, 여긴 늘 그대로네.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발소리의 주인은 바로 윤시혁.

그는 그립다는 듯 회사 복도를 둘러보며 대표이사실 앞까지 다가갔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다소 경망스럽게 들리는 노크소리였다.

쿵쿵-

“형, 나 왔수다!”

시혁은 대뜸 문을 벌컥 열었다.

방 안에 있는 건 대표이사인 성철과 처음 보는 얼굴의 소녀.

그 광경에 시혁은 머쓱하게 뺨을 긁적거렸다.

“이크, 손님이 계셨구나. 죄송함다. 좀 있다가 올게요.”

“거기서 기다려. 거의 다 끝났으니까.”

그때 성철이 시혁의 발을 붙들었다.

시혁이 뻘쭘하게 서있는 사이, 그는 다시 눈앞의 소녀를 바라봤다.

“아무튼 생일이었는데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지은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성철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레슨 열심히 받고.”

“네!”

밝은 대답과 함께 지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방금 전에 들었던 낯선 목소리가 지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잠깐만.”

벽에 등을 기댄 시혁이 지은을 불러 세웠다.

“못 보던 얼굴인데? 연습생인가?”

“네? 네, 맞아요.”

지은의 대답에 시혁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윤시혁이에요. 아, 여기 명함.”

“앗, 감사합니다. 저는 유지은이라고 해요.”

지은은 시혁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으며 그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한편 시혁은 그저 우두커니 선 채 지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이었을까?

지은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저,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그제야 시혁은 정신을 차린 듯 시선을 거뒀다.

“하하, 이거 미안해요. 괜히 눈이 가서 그만.”

넉살좋게 웃음을 터뜨린 시혁.

그는 씨익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소개는 나중에 천천히 받을게요. 앞으로 오래 볼 것 같으니까.”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나중에 또 봐요.”

“네에, 그럼 얘기 나누세요.”

고개를 갸웃거린 지은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자 시혁은 곧장 소파에 가 몸을 기댔다.

“으쌰! 역시 여기 소파가 최고라니까. 아주 몸에 착착 감겨.”

시혁이 시답잖은 소리를 중얼거리던 그때.

돌연 성철이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다.

“······오래 볼 일 없을 거다.”

“엥? 갑자기 뭔 소리야?”

“지은이 말하는 거야.”

성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착잡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음 달에 계약 해지할 예정이니까.”

“뭐? 진짜?”

시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체 왜? 무슨 사고라도 쳤어? 아니, 그럴 얼굴로는 안 보였는데?”

당황한 얼굴로 소리치는 그를 보며, 성철은 또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노래 실력은 좀 있는데, 그게 전부야. 2년 동안 이것저것 시도는 해봤는데 더 이상은 힘들 거 같다. 어제가 생일이어서 말은 못했지만 다음 주에는 정식으로 계약 해지 통보를······.”

“하지 마.”

“하지 않는 걸로······. 뭐?”

자연스럽게 말을 받아 잇던 성철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시혁은 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지은이라고 했지? 걔, 내가 한 번 키워볼게.”

자신만만해 보이는 얼굴.

하지만 성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 낭비다. 아무리 너라도······.”

“느낌이 왔어.”

“무슨 느낌?”

“어,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시혁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대답하기에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을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걔한테는 뭔가 특별한 게 있어. 확실해. 내 감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거든.”

“······.”

성철은 아무 말 없이 시혁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고집스럽게 빛나는 눈동자.

아무래도 한순간의 동정심으로 저지르는 일처럼 보이진 않았다.

시혁의 눈빛은 진지했다.

“나한테 한 번 맡겨봐. 내가 언제 형 실망시킨 적 있어?”

진지한 눈빛만큼이나 진지한 목소리.

시혁은 그동안 수많은 톱스타를 만들었다. 평소에는 경망스럽지만 잠재력이 있는 원석을 보는 눈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성철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알겠다. 퇴출은 일시적으로 보류할게.”

하지만 그도 그냥 물러나진 않았다.

성철은 조건 하나를 추가했다.

“그 대신,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예정대로 진행할 거다.”

그럼에도 시혁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방금 그 판단, 올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줄게.”

자신만만한 미소를 끝으로.

시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그 무렵.

민호는 회사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영과 실시간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오늘 일은 어떠셨어요?

-힘든 건 없으셨나요?

-만약 있으시면 뭐든 말해주세요!

걱정이 듬뿍 묻어나는 하영의 문자에 민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놀려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ㅋㅋㅋ괜찮아. 노가다에 비하면 천국이야.

=이렇게 돈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ㅎㅎ

문자를 보내고 얼마 뒤.

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휴, 다행이네요.

-혹시 외삼촌이 오빠 막 부릴까봐······.

멈칫-

외삼촌이라는 말에 민호는 순간 손가락을 멈췄다.

잠시 후,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다시 손가락을 놀렸다.

=하영아.

-네?

=혹시 어제 외삼촌께 따로 들은 말 없어?

-따로 들은 말이요?

-네, 딱히 없는데······.

그 답변에 민호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은이 퇴출될 거라는 사실을 하영은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민호가 쓰게 웃던 그때, 그녀의 문자가 이어졌다.

-무슨 일 있으세요?

=별 일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렇군요. 네, 알겠어요.

하영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러고는 곧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참, 오빠.

=응?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되세요?

-제가 밥 살게요.

-오빠 너무 고생하게 만든 것 같아 죄송해서······.

하영이 보내온 문자를 보며.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 식사 복이 터졌네.”

최근 들어 유독 밥 사주겠다는 제의를 많이 받는다.

얼마 전에 민지에게서도 비슷한 제안을 받았으니 말이다. 어깨를 으쓱인 민호는 시간이 되면 목요일 쯤 연락을 주겠다는 답장을 보내던 무렵.

별안간 누군가 복도를 질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다다다-

드르륵!

“오빠, 오빠!”

벌컥 열린 문과 함께 등장한 이는 다름 아닌 지은.

난데없이 나타난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저, 저 어떡해요. 으아, 어떡하지?!”

“일단 진정해. 자, 여기 물도 좀 마시고.”

민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생수를 건넸다.

지은은 아이처럼 그의 말에 따랐다.

그녀가 물을 꿀꺽꿀꺽 들이키자 민호는 다시 물었다.

“좀 괜찮아졌어?”

“후우, 네. 괘, 괜찮아요.”

아직 진정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은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저, 지금 홍대 가야 돼요.”

“홍대는 왜?”

“그게, 홍대에서 연습생들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데, 저도 같이 가서 공연하자고······.”

횡설수설거리며 말을 이어나가는 지은.

이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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