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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57화 (57/182)

57화

Chapter 15. 가장 빛나는 별 (4)

“내가 깎아 만들었어. 학생 마음씨가 착해서 주는 거니까 가져가.”

“우와, 정말요? 제가 가져도 돼요?”

“고마워서 주는 거야. 학생 덕분에 오늘 일찍 들어갈 수 있게 됐으니까.”

“헤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오늘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그녀는 곧장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반지는 놀랍게도 그녀의 손가락에 딱 들어맞았다.

지은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선물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공손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지은은 몸을 돌렸다.

집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노인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걸로 임무완료!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그때 그의 귓가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율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노인이 수염을 떼어내자, 얼굴에 자글거리던 주름이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다.

“후우.”

도깨비 수염을 품 속에 넣은 민호.

그는 지은이 사라져간 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기세로 끝까지 잘 풀리면 좋겠는데······.”

“잘 될 거예요. 여태까지 모두 그래왔잖아요?”

율이 앙증맞은 주먹을 움켜쥐며 웃었다.

“그래. 여태까지 다 잘 되어왔으니까.”

민호도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근처에 놔두었던 상자를 들어 안았다. 이곳에 오기 전, 인근 빵집에서 산 케이크였다.

“그럼 다음 임무를 하러 가볼까?”

“네? 다음 임무요?”

율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묻자 민호는 씨익 웃었다.

“생일날인데 냉이만 먹게 할 순 없잖아.”

***

지은이 집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

평소보다 많은 짐을 들고 온 탓일까?

지은의 이마는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읏차! 다녀왔습니다.”

“앗, 누나다.”

“누나!”

제일 먼저 지은을 반긴 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 두 명.

그녀의 남동생인 동현과 동우였다.

“학교는 잘 갔다 왔어?”

“응!”

“이거 누나 주려고 만들었어.”

그때 동우가 지은에게 색종이로 만든 고깔모자를 건넸다.

지은은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와, 예쁘다. 우리 동우, 손재주도 좋네?”

“나도 같이 만들었거든!”

“동현이 손재주 좋은 건 누나가 아주 잘 알지. 고마워. 잘 간직할게.”

지은은 밝게 웃으며 두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선물 받은 고깔모자를 머리에 쓴 채로 손에 든 비닐봉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누나가 주는 선물!”

“우와 과자다!”

“지금 먹어도 돼?”

동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지은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지은은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그럼. 대신 한 봉지만 먹자. 너무 늦게 먹으면 속 안 좋으니까.”

“응!”

“이건 내가 먹을 거야!”

“그럼 이건 내꺼.”

동현과 동우는 과자 봉지를 든 채 방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노파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녀는 지은의 손에 가득 들린 비닐봉투를 보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애들 거는 사오지 말라니까.”

“제가 사오고 싶었어요. 그리고 할머니 꺼도 사왔어요. 커피 다 떨어졌죠?”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믹스커피.

하지만 노파가 가장 선호하는 커피이기도 했다.

“그래도 네 생일인데······.”

“괜찮아요. 전부 다 제가 사고 싶어서 산거니까요.”

지은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던 그때, 노파의 시선이 검은 봉지로 향했다.

“그런데 손에 든 그건 뭐여?”

“아, 이거요? 냉이에요.”

“아이고, 그러지 좀 말라니까.”

지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파는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또 웬 이상한 노인네들한테 속아가지고는. 너 좋아하는 거 사먹으라고 했잖여!”

“헤헤, 저 냉이 좋아해요. 아시잖아요.”

“으휴, 하여간 순해 빠져가지고는.”

재차 한숨을 내쉰 노파.

그녀는 졌다는 듯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

“부엌에 갖다 둬. 내일 된장국 끓여 줄 테니깨.”

“네!”

밝은 대답을 끝으로 지은은 주방을 향해 몸을 돌렸다.

딩동-

그때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

“어? 오늘 누구 올 사람 있어요?”

“아니, 아무도 없을 텐디.”

노파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에 지은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렵, 또다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딩동-

“네, 나가요!”

지은은 기타를 마루에 내려놓은 뒤, 곧장 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끔 찾아오는 옆집 아줌마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나타난 이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

지은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녹색 야상 잠바를 걸친 채, 씨익 웃고 있는 청년.

“민호 오빠?!”

다름 아닌 민호였기 때문이었다.

민호는 지은이 놀란 듯 외치자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늦은 밤에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

“오, 오빠가 여긴 왜······.”

“대표님한테 들었어. 오늘 생일이라면서?”

민호의 말에 지은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호는 미리 준비해둔 케이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별 거 아니지만 동생들이랑 나눠먹어.”

“앗!”

“우와, 케이크다!”

그때 귀신처럼 나타난 두 동생이 민호의 손에서 케이크를 빼앗았다.

“동우야!”

그러나 두 동생들은 부리나케 주방으로 도망친 뒤였다.

그 모습에 지은은 당황한 얼굴로 민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오빠. 동생들이 아직 어려서······. 제가 나중에 타이를게요.”

“괜찮아. 나도 저만할 땐 저랬으니까.”

민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었다.

“그럼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푹 쉬고 내일 보자.”

늦은 밤에 찾아와 계속 있는 것도 민폐다.

그렇게 생각한 민호가 몸을 돌리려던 그때, 등 뒤에서 노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했더니 낮에 봤던 총각이구먼.”

“안녕하세요, 어르신. 늦은 밤에 실례했습니다.”

“실례는 무슨, 거기 서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게.”

“네?”

민호가 멍하니 되묻자, 노파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 케이크까지 사온 손님을 그냥 보내면 좀 그러니깨.”

“맞아요! 잠깐만 있다가 가세요. 제가 금방 타올게요!”

지은도 민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에 민호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다시 집 안에 발을 들여놨다.

그러던 그때, 주방으로 사라졌던 두 동생이 다시 돌아왔다.

“누나!”

케이크에는 초가 꽂혀있었다.

아마 초를 꽂기 위해 부엌으로 간 것 같았다.

“얼른 생일 축하 노래 부르자!”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두 동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 귀여운 모습에 민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덩달아 노래에 동참했다.

한밤중에 시작된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난 뒤, 동생들은 케이크를 든 채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지은과 노파도 커피를 타온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민호는 문턱에 걸터앉았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이네요.”

“그러게.”

민호가 율의 중얼거림에 짧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은의 발소리였다.

“오빠. 여기 커피요.”

“오, 땡큐.”

민호가 커피를 받아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몸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은은 민호의 곁에 앉아 함께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 커피를 절반 정도 마셨을 때.

별안간 지은이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오빠. 케이크까지 사다주시고······.”

“생일이면 이 정도 대접은 받아도 돼.”

민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때 부엌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 동생들이 다투는 소리.

“그런데 동생들이랑 나이 차가 꽤 나네?”

“네, 엄밀히 말하면 사촌 동생들이거든요.”

지은이 어색하게 웃었다.

두 남동생은 지은의 친동생들이 아니었다.

막내 고모의 자식들인데, 고모는 아이들이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집을 나갔다.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아이들을 맡아 키우게 된 건 지은의 할머니였다.

“그래도 지금은 제 동생이나 마찬가지에요. 아니, 제 동생들이에요.”

지은은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모습에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민호의 잔에 남아있던 커피가 동이 났다. 이에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슬슬 집에 가야했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디리링-

어느새 기타를 꺼내든 지은이 줄을 가볍게 튕겼다.

상당히 익숙한 포즈였다.

마치 수백, 수천 번도 넘게 해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중, 민호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기타는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야?”

지은은 기타 연주와 노래에 재능이 있다.

민호가 알아낸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한편 민호의 질문을 들은 지은은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가 좋아하셨거든요.”

일찍이 세상을 뜬 지은의 아버지.

아버지는 소싯적에 기타를 꽤나 잘 쳤다고 했다. 지은의 재능도 아버지를 물려받은 거라고 할 정도라고 했으니까.

“엄마는 아빠가 기타 치는 모습에 반해서 결혼한 거라고 하셨을 정도였어요.”

지은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이후.

엄마는 홀로 그녀를 키우느라 점점 지쳐갔다. 고단한 삶에 짓눌려 웃음을 잃어갔다. 그러던 차에 지은은 우연히 기타를 접하게 됐고, 아버지의 유품이었던 기타로 간단한 연주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그때였어요. 엄마가 저한테 미소를 지어줬던 게.”

지은이 기타를 칠 때마다 엄마는 미소를 지었다. 아마 예전에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지은은 엄마가 기뻐해주는 게 좋아서, 그래서 기타를 계속했다. 동영상을 찾아보며 노래도 하고 서툴지만 작곡도 했다.

“근데 잠깐 기타를 놨던 적이 있어요.”

말을 잇던 지은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녀의 낯빛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요.”

“······.”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왜 살아야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죠.”

지은은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근데 우습게도 다시 기타를 들었어요. 들 수밖에 없었어요. 왜인 줄 아세요?”

그녀는 민호를 바라본 채, 손가락을 튕겼다.

줄이 튕기는 소리와 함께 듣기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기타를 칠 때만 유일하게 엄마가 웃는 얼굴이 떠올랐거든요.”

지은이 미소를 지었다.

조금 슬퍼 보이는 미소였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을 땐 늘 기타를 쳤어요. 예를 들면······. 오늘 같은 날이요.”

그녀는 매년 생일 때마다 홀로 기타를 쳤다.

엄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엄마에게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오빠.”

그때 지은이 민호를 돌아봤다.

“케이크 사주신 보답으로 한 곡 들려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민호는 말없이 박수를 쳤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중들의 박수소리처럼. 지은도 이를 알아차린 건지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디리링-

시작은 단순했다.

맑은 호수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 그 이후로도 곡은 크게 튀지 않았다. 화려한 기교도, 음색도 없었다.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음색에, 지은은 가만히 노래가사를 덧붙였다.

마치 시를 읊듯 담담한 목소리로.

지은은 그녀의 추억을 담은 것 같은 가사를 멜로디 안에 녹여냈다.

두 눈을 감은 채 이를 듣던 민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

‘편안해.’

듣기 좋은 노래라기보다는 듣기 편안한 노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지은의 노래는 바람이 그치듯 자연스럽게 멎었다.

그러자 민호는 문득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커피를 마셨을 때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가만히 여운을 느끼던 민호는 이내 눈을 떴다.

짝짝짝-

“좋은 노래네. 네가 만든 곡이야?”

“네, 엄마한테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지은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언젠가 데뷔 무대가 마련되면, 제일 먼저 엄마한테 이 노래를 들려드릴 거예요.”

그녀의 대답을 들으며 민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때, 지은은 깜빡 잊었었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맞다. 그리고 제목은「가장 빛나는 별」이에요.”

“가장 빛나는 별?”

“네, 엄마가 떠나기 전에 말씀하셨거든요. 가장 빛나는 별이 돼서 언제나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넌 혼자가 아니라고······.”

지은은 눈을 감은 채 기타를 톡톡 두드렸다.

잠시 후, 눈을 뜬 그녀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을 붙였어요. 헤헤, 좀 촌스럽나요?”

“촌스럽긴. 엄청 잘 어울려.”

“히히, 다행이에요.”

지은이 배시시 웃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기타를 들었다.

뒤이어 시작된 즉흥적인 연주.

민호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엄마라······.’

그때 몇 없는 별들 중에서 유독 가장 또렷한 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었다.

그 별을 가만히 바라보며 민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속으로 기도했다.

꼭 그녀가 엄마에게 노래를 들려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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