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5. 가장 빛나는 별 (1) >
Chapter 15.
가장 빛나는 별
우우웅-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연달아 진동했다.
민호는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빠, 죄송해요 ㅠㅠ
-제가 어제 술을 너무 마셔서······.
-사실 중간부터 기억이 잘 안 나서요.
-혹시 뭐 이상한 말 한 건 아니죠?
바로 민지였다.
민호는 문득 어제 뒤풀이에서 있던 일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답장을 보내기 위해 손가락을 놀렸다.
=ㅇㅇ 별 말 안했어.
-정말요?
-휴, 다행이다. =v=
민지는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는지, 곧바로 답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아, 오빠. 혹시 오늘 뭐하세요?
-바쁘지 않으시면 저랑 점심 같이 드실래요?
-제가 살게요! 오빠한테 도움도 많이 받았고······.
빠른 속도로 도착하는 메시지.
이를 읽어나가던 민호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미안한데 오늘은 내가 선약이 있거든.
=다음에 꼭 얻어먹을게.
-힝, 어쩔 수 없죠. ㅠㅜ
-네네! 그럼 나중에 꼭 같이 밥 먹어요. ㅇvㅇ!!
민지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민호는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와 함께 눈앞에 있던 문이 살짝 열렸다.
뒤이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 들어오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그 대답에 민호는 셔츠의 옷깃을 정리하고는 문 너머로 발을 옮겼다. 민호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곧 소리 없이 닫혔다.
상당히 넓어 보이는 방 안.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와 원목 테이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민호의 시선은 방 안에 배치된 가구들을 따라, 최종적으로는 소파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에게로 향했다.
4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
갈색 뿔테 안경을 낀 그는 이내 인기척을 확인한 듯 고개를 돌렸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민호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공민호입니다.”
“아, 어서 와요.”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옅게 미소를 지은 그는 민호에게 명함을 건넸다.
“하영이 외삼촌되는 한성철이라고 해요.”
어제 하영에게서 받았던 것과 같은 명함이었다.
민호는 성철에게서 받은 명함을 공손히 받아 지갑에 넣었다. 그러고는 그의 안내에 따라 소파에 몸을 기댔다.
성철은 미소를 띤 채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영이한테 일에 대한 설명은 들었나요?”
“네. 대충 듣긴 했습니다.”
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음, 그럴까?”
성철은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곧장 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네가 해줄 일은 간단해. 지은이를 픽업하고 드랍하는 게 전부야. 쉽지?”
설명은 이게 전부였다.
어제 하영에게서 들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대신 주의해야할 게 하나 있어.”
그 순간, 성철이 입가에 맺힌 미소를 지웠다.
그는 들고 있던 볼펜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난 운전 실력보다 입이 무거운 사람을 선호하지. 앞으로 2주 동안, 자네가 보고 들었던 모든 건 외부로 새어나가선 안 돼. 알겠나?”
성철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이를 똑바로 마주하며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훈훈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지은이를 소개시켜줄게.”
성철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어, 들어와.”
성철의 대답과 함께 문이 열렸다.
이어 아담한 체구의 여학생이 방 안에 들어왔다.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커다란 눈동자, 건강해 보이는 피부를 가진 여학생.
10대 중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는 비교적 수수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치고는 상당히 평범해보이는 얼굴.
그리고 민호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도 함께 보였다.
바로 지은의 상태창이었다.
=====
*이름: 유지은
*나이: -
*공덕: 1,914
*악덕: 1
*성향: -
=====
민호가 주목한 부분은 악덕 수치.
보다 정확히 말하면 괄호의 유무를 확인했다.
다행히 괄호 안의 악덕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자살은 아닌가.’
그럼 임무에 붙은 마감기간의 의미는 사고, 혹은 타살이라는 소리다.
민호가 눈을 차갑게 번뜩이던 그때.
지은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뜨렸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저 찾으셨어요?”
주뼛주뼛하게 입을 연 지은.
이에 성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발은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요. 다다음주면 다 나을 것 같다고······.”
“다행이네.”
성철이 씨익 웃었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끝으로 성철은 화제를 돌렸다.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서야.”
그 말과 함께 지은의 시선이 민호에게로 가 닿았다.
동시에 성철의 말이 이어졌다.
“이쪽은 2주 동안 네 통근을 도와줄 운전사 공민호 씨. 그리고 이쪽이 아까 말했던 우리 회사 연습생 유지은이야.”
“안녕하세요. 공민호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유지은입니다.”
지은이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서로 인사가 끝나자 성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저녁때니까 같이 식사나 하러가지. 순대국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지은이는?”
“히히, 없어서 못 먹죠.”
활짝 웃는 지은.
“좋아. 그럼 가자고.”
성철의 대답과 함께 셋은 함께 방을 나섰다.
***
식사가 끝난 뒤.
민호는 성철에게서 차키 하나를 받았다. 이어 지하주차장에 있던 차를 운전해, 회사 입구에 주차했다.
얼마 후, 저 멀리서 지은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보던 민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은이 뭔가 커다란 걸 매고 있던 탓이었다.
“저게 뭐지?”
“기타인 거 같은데요?”
옆에 있던 율이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그녀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커다란 기타를 등에 맨 채,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지은.
그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에 민호는 얼른 지은에게로 달려갔다.
“주세요. 제가 들어드릴게요.”
“앗, 감사합니다.”
지은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어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 편히 하셔도 돼요. 하영 언니한테 말 많이 들었거든요.”
하영은 지은에게 따로 말을 해두겠다고 하긴 했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말 편하게 해.”
“네, 오빠.”
지은이 배시시 웃었다.
차에 탄 민호는 기타를 뒷좌석에 가져다놨다. 그러고는 이내 시동을 걸었다.
지은이 사는 곳은 경기도 화성 시.
회사가 있는 곳에서 약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이제 출발할게.”
둘을 태운 차가 도로를 달렸다.
지은의 집으로 가는 도중, 민호는 그녀와 다양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춰 서자 민호는 지은을 쳐다봤다.
“그럼 지금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는 거야?”
“네, 그게 낫다고 판단했거든요. 하영 언니도 이쪽을 추천해줬구요.”
지은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데뷔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구나. 아, 그런데 발은 어쩌다 다친 거야?”
발이 다쳤다고 듣긴 했지만 이유까지 듣진 못했었다.
민호가 묻자 지은은 별 거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거요?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하다가······.”
지은의 가정형편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그녀가 일을 아예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하에게서 받은 정보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니까.
-대상의 이름은 유지은.
-가족은 할머니와 남동생 둘이 전부네.
-부모는 둘 다 사망신고가 되어 있어.
지은은 어렸을 적에 양친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는 그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어머니마저 지은이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 이후부터 지은은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도 올바르게 잘 컸네.’
상태창을 보면 알 수 있다.
딱 1밖에 되지 않는 악덕수치.
반면 공덕은 상당히 많이 쌓였다.
힘든 환경에서도 올곧게 자란 지은을 보며 민호는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던 그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차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공터.
저 멀리 가파른 언덕과 계단이 보였다.
온통 어둡게 물든 길 사이로 가로등 몇 개가 주황색 불빛을 반짝였다.
흔히 달동네라고 부르는 동네였다.
“여기야?”
“네, 맞아요. 아! 여기서 내려주시면 돼요.”
“여기서? 하지만······.”
“괜찮아요. 여기서부터는 차가 못 들어가거든요.”
지은이 언덕 너머를 가리켰다.
경사도 경사였지만 문제는 계단과 언덕이 섞여있는 좁은 길.
차로 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차에서 내린 지은은 뒷좌석에 있는 기타를 들쳐 맸다.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내일도 잘 부탁드릴게요!”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
“네!”
밝은 미소와 함께 지은은 언덕을 올랐다.
비틀거리면서도 뚝심 있게 올라가는 모습.
민호는 그녀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중 여태껏 입을 닫고 있던 율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씩씩한 아이네요.”
“그러게.”
민호가 동의한다는 듯이 답했다.
“그나저나 기적은 오늘 바로 전달하실 거예요?”
“일단 계획부터 세워야지.”
민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전 임무, 그러니까 민지에게 기적을 전달할 당시.
그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그땐 미래 누나가 도와줘서 살았지만······.’
지금은 그를 딱히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급해도 계획은 철저하게 세워야만 했다.
‘그래도 모레까진 전달해야 돼.’
지은의 마감기간은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서두르되 허술하게 세우진 말자.
그렇게 생각한 민호는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곧 진하 형도 만나야 되니까.”
“네!”
율의 대답을 끝으로.
민호는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다.
***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밤.
민호는 오후 11시를 훌쩍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
“후우, 은근히 피곤하네.”
오랜만에 운전을 한 탓일까?
민호는 어깨가 결리는 걸 느끼며 대문을 열었다.
이어 옥탑 방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딛던 찰나!
별안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민호야.”
“어? 형!”
방문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진하였다.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물었다.
“설마 여기서 계속 기다리셨던 거예요?”
“아니, 나도 방금 왔어.”
진하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민호의 귓가를 간질였다.
-민호 도령!
수박이였다.
율이 말했던 것처럼 수박이는 어찌나 잘 먹었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상태였다. 민호에게 다가온 수박이는 이내 머리를 부비며 웃었다.
-도령, 내가 없어서 외롭진 않았어?
“일이 바빠서 외로울 틈도 없었어.”
-아니지! 거기선 외롭다고 말해야지!
혀를 차는 수박이의 말을 뒤로한 채.
민호는 다시 진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서있는 것도 뭐하니까 일단 들어가요.”
“그래. 실례할게.”
계단을 올라가는 발소리.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옥상에 도착했다.
넓은 옥상에 비해 상당히 작아 보이는 옥탑 방의 모습에 진하는 일순간 당황한 듯했다.
“그동안 이런 곳에서 살았던 거야?”
“나름 살만해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것만 빼면요.”
“······그건 집이 제 기능을 못하는 거 아냐?”
한숨을 쉰 진하가 중얼거리던 그때.
돌연 민호의 시선이 그의 양손으로 향했다.
“형, 그런데 그건 뭐예요?”
진하의 양손에 들린 봉투.
봉투 안에는 뭔가가 가득 들어있었다.
“아, 이거?”
봉투를 내려놓은 진하가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캔 맥주였다.
“임무 완료 기념으로 맥주나 한 잔 하려고 사왔다. 그리고 이것도 받아.”
진하는 맥주 하나를 민호에게 건넨 뒤, 다른 봉투를 펼쳤다.
그러자 각종 식료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일과 채소, 과자, 게다가 고기까지.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민호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이렇게 많이 사오셨어요?”
심지어 그가 가져온 선물 중에는 최고급 개 사료도 있었다.
그러자 진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 Chapter 15. 가장 빛나는 별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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