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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48화 (48/182)

< Chapter 13. 마인 토벌 (3) >

“이거나 먹어라!”

“······!”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미래는 황급히 팔을 들어 액체를 막아냈다.

치이이이이-!

후끈한 통증에 미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

그러던 중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어가는 포도 냄새. 미래는 이 냄새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을 휘둥그레 떠졌다.

“설마······.”

“크흐흐! 흑마수(黑魔水) 맛이 어때? 힘이 쫙 풀리지?”

성원이 비릿하게 웃었다.

한편 미래는 흑마수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흑마수는 신의 대리인들에게 있어선 쥐약이나 다름없는 독약이다. 단 한 방울이라도 몸에 닿게 되면 일시적으로 몸이 굳고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마인과 함께 있을 때 흑마수에 중독되면, 죽은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네가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

미래가 표독스럽게 외쳤다.

흑마수는 중급 마인 따위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최소 상급 마인, 아니면 그보다 위에 있는 [간부]급은 되어야 얻을 수 있었다.

“흐흐, 더럽게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오리]의 말을 듣길 잘했어. 설마 그 미친 토벌자가 내 앞에서 이렇게 굳어있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성원의 입가가 귀까지 찢어졌다.

광기가 깃든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두 눈은 살기로 번들거렸다.

“여기서 널 없애면 더 이상 저 걸레 같은 년이랑 붙어먹지 않아도 돼. 어쩌면 나도······.”

은미를 힐끗 쳐다본 성원은 탐욕스런 미소를 지었다.

철컥-

그는 이어 주머니칼 하나를 꺼냈다.

예기(銳氣)로 번뜩이는 칼.

“여하튼 작별이다. 차미래.”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끝으로.

성원은 미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던 그때였다.

“······일격필살.”

“······?!”

별안간 들려온 제 3자의 목소리.

이에 성원이 당황하던 순간, 커다란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산을 뒤흔드는 강한 충격!

곧이어 사방으로 비산하는 흙과 돌멩이가 성원과 미래의 사이를 갈라놨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비처럼 쏟아지는 흙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미안해요, 누나.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하회탈을 쓰고 있는 20대 중반의 남자.

바로 민호였다.

“상황이 영 안 좋아보여서요.”

미래의 앞을 가로막은 민호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성원과 은미의 위치를 파악했을 당시.

미래는 민호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마인은 위험해. 그러니까 절대 먼저 나서지 마.’

‘하지만 만약 나서야할 것 같으면 이걸로 얼굴을 가려.’

‘둘 전부 너랑 아는 사이일 거 아냐?’

처음에는 미래의 말을 충실히 지켰다.

그러나 미래가 자리에 주저앉고, 성원이 칼을 빼들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민호는 하회탈을 쓴 채, 그대로 [일격필살]을 사용해 성원의 공격을 저지했다.

한편 민호의 등장에 성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그는 이내 얼굴을 구긴 채, 거칠게 울부짖었다.

“이런 젠장! 토벌자가 둘이란 얘기는 없었잖아!?”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는 성원.

그러던 중 문득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깐, 설마······.”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성원의 눈이 차츰 떨렸다. 얼마 후,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날 미끼로 써?!”

쾅!

그의 주먹이 애꿎은 나무를 강타했다.

이어 성원은 분노한 외침을 연신 퍼부어댔다.

“어쩐지 학과 새끼들 다 끌고 MT 가라고 했을 때부터 수상했어. 젠장, 젠자아앙!”

“혼잣말을 좋아하는 마인인가 봐요.”

거칠게 울부짖는 성원을 보며 율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민호는 웃지 않았다. 그는 성원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있었으니까.

‘뭐지?’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미래는 분명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표정.

‘멀쩡해 보이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도무지 독에 당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묘한 뿌듯함까지 느껴지는 표정에 민호는 심안을 사용했다.

[후후, 날 구하러 오다니 조금 감동인데?]

[그래도 이걸로 확실해졌네.]

[시험은 통과했어. 얘는 믿을만해.]

‘시험?’

민호가 미간을 좁혔다.

속마음만으로 보면 민호는 미래에게 시험을 당했다. 왜 시험을 봤는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시험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 설마······.’

독에 당한 척 했던 게 연기였다는 소린가?

민호가 그렇게 의심을 품던 그때.

“후우, 후우! 뭐, 됐어. 아직 흑마수도 조금 남았으니까.”

성원이 정신을 차렸다.

그는 검은색 액체가 조금 남은 병을 꽉 쥐었다.

“이참에 둘 다 한꺼번에 처리해주······. 컥!”

“누굴 처리한다고?”

하지만 성원은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민호와 같이 있던 미래가 갑자기 벼락처럼 다가와 그의 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벌써 회복을······!?”

성원은 불신이 담긴 눈으로 미래를 쳐다봤다.

흑마수에 중독되면 최소 반나절은 아무것도 못한다. 하지만 미래는 쌩쌩하기만 했다. 마치 처음부터 중독되지 않은 것처럼.

“너희 정보력이 참 늦구나.”

그때 미래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이어 성원의 손에 들린 흑마수를 빼앗은 뒤, 그대로 얼굴에다 부었다. 그 행동에 성원과 민호는 두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미래는 둘의 놀란 얼굴을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이딴 건 3급 이하의 토벌자한테만 통하는 거잖아.”

“서, 설마 너······!”

경악으로 물드는 성원의 얼굴.

곧이어 미래의 사형선고가 이어졌다.

“작별이다, 중급 마인 새끼야.”

콰직!

“크헉!”

코뼈가 뭉개지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성원의 몸이 비틀거렸다. 뒤이어 미래가 턱을 거세게 후려치자, 성원은 그대로 자리에 쓰러졌다.

이를 본 미래는 품속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성원의 등에 붙였다. 그러자 성원은 몸을 몇 차례 들썩거리더니 이내 죽은 생선처럼 축 늘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성원의 몸을 타고 희뿌연 뭔가가 새어나왔다.

“저건······.”

“얘가 가지고 있던 기적이네. 어디보자.”

미래가 성원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민호의 팔을 잡은 뒤, 싱긋 웃었다.

“자, 이제 너한테도 보일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성원이 가지고 있던 능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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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가의 사념]

*등급: 병(丙)

*고대 최고의 달변가의 사념.

*흡수 시, 어휘력이 대폭 증가한다.

*흡수 시, 설득력이 대폭 증가한다.

*설득력: 100%(MAX)

*설득한 사람이 많을수록 설득력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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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기적이었구나······.”

기억 속의 성원을 떠올린 민호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성원이 가지고 있던 능력은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저건 회수하지 않아도 괜찮나요?”

“응, 당분간 쓸 일이 없는 기적이니까.”

미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어 그녀는 가위 하나를 꺼냈다. 민호에게는 익숙한 가위였다.

“이건 인연을 자르는 가위야. 이래야 사람들한테서 얘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거든.”

민호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걸까?

미래는 열심히 가위질을 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후우, 이걸로 다 됐다.”

미래가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한편 그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기억이 그대로 있는데요?”

“그야 넌 신의 대리인이니까 당연하지.”

미래가 별 싱거운 소리를 한다는 듯이 웃었다.

그때 성원의 등에 붙어있던 부적이 한 차례 떨렸다. 잠시 후, 부적은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검게 그을리더니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저 부적은 뭐예요?”

“아, 저거? 너 저승사자 알지?”

“네? 네.”

“걔들을 부르는 부적이야.”

그 말에 민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저승사자를 부른다고요?!”

“응. 마인들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으니까.”

미래가 방긋 웃었다.

미소를 띤 얼굴과는 달리, 섬뜩한 목소리였다.

“연옥에 쳐 넣어서 피똥 쌀 때까지 굴린 다음에 윤회에 고리 속에 던져 넣는 게 이 새끼들에게 베풀 수 있는 유일한 자비야.”

그녀는 성난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아무리 마인을 사냥하는 토벌자라고 해도, 지금 미래의 모습은 조금 과해보였다. 마치 과거에 마인과 뭔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럼 설마 신은미도······.”

“아, 걔는 예외야. 아직 마인 후보잖아?”

미래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마인 후보는 갱생의 여지가 있어. 그래서 가진 힘을 모두 소멸시키고 기억을 지워. 그리고 일상으로 돌려보내지.”

어깨를 으쓱인 미래.

“솔직히 개인적으론 마인 후보도 연옥으로 보내버리고 싶지만······. 정해진 법이 그렇다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녀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던 그때.

“근데 그 신은미라는 사람이요.”

잠자코 있던 율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녀는 산 중턱이 있는 부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서 슬금슬금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도망이라는 말에 미래의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실제로 은미는 아까 쓰러진 위치에서 꽤 벗어난 위치에 엎드려 있었다. 낮은 포복 자세로 기어간 듯했다.

그 광경에 미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래서 마인 새끼들한테는 방심을 할 수가 없다니까.”

그 말을 끝으로 미래는 단숨에 은미를 향해 쇄도했다.

그러고는 대뜸 그녀의 허리를 걷어찼다.

퍼억!

“꺄아악!”

“얌전히 있어. 너도 같이 연옥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미래는 은미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협박하듯 중얼거렸다.

그때 어느새 나타난 민호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뭐, 그래. 마음껏 물어봐.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니까.”

“감사합니다.”

미래가 비켜서자 민호는 곧장 은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은미가 돌연 빽 소리를 질렀다.

“나,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은미는 간절한 눈빛으로 민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억울하다는 듯이 호소했다.

“다 걔가 잘못한 거예요! 서민지가 나쁜 거라고! 걔가, 걔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고!”

“민지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내 껄 뺏어갔어요. 가, 감히 그딴 게. 별 것도 아닌 게!”

은미의 얼굴이 표독스럽게 일그러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꽉 움켜쥔 은미.

“······오늘도 그래. 다 뺏어갔잖아! 그 거지같은 년이 가졌던 건 전부 나한테 왔어야했어! 전부 내 껀데 그 년이 다 가져갔다고!”

관심, 혹은 주목이나 시선.

은미가 말하는 ‘내 것’은 바로 그런 걸 말하는 듯했다.

이에 민호는 담담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니야. 애초에 물건도 아니고.”

“아니야!”

은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건 내 초능력으로 얻은, 오직 나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야! 걔는 자격이 없어!”

그녀에게 깃든 기적이 뭔지는 모른다.

하지만 관심이나 주목을 받는 기적을 가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은미는 지금까지 그녀가 얻었던 모든 관심들을, 스스로가 가진 기적으로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일 터다.

그때 잠자코 있던 미래가 입을 열었다.

“슬슬 그만해도 될 거 같은데? 이제 별 의미도 없어 보이고.”

그녀의 말처럼 은미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추하게 발버둥치는 은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 Chapter 13. 마인 토벌 (3)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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