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45화 (45/182)

< Chapter 12. 활약 (3) >

무대 위로 올라온 남자.

“아아, 마이크 테스트.”

그는 앞에 놓인 마이크를 붙잡고 음성 테스트를 했다.

한편, 갑작스런 불청객의 등장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엥? 저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그때 한 여학생이 그를 알아봤다.

“야, 그 왜 있잖아. 13학번 선배, 그 사람 같은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네, 그 사람 맞습니다.”

마이크를 붙잡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13학번 공민호입니다.”

불청객의 정체는 다름 아닌 민호.

그는 늘 입고 다니는 녹색 야상을 걸친 채,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강현은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저, 민호 선배님. 죄송하지만 지금 공연 중이라······.”

“늦어서 미안합니다. 내가 민지랑 듀엣하기로 해서요. 그치?”

민호는 강현의 말을 끊고, 민지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깜박였다.

“네? 아, 네! 마, 맞아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인 민지.

강현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러나 워낙 짧은 순간이라, 이를 눈치 챈 이는 강현의 곁에 있던 민호밖에 없었다.

‘이 녀석 봐라?’

강현의 반응에 민호는 눈가를 씰룩였다.

곧이어 강현은 넉살좋은 말투와 함께 웃었다.

“하하,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다음부턴 조금 빨리 다녀주셨으면 하네요. 아쉽지만 만덕 후배님 노래 실력은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강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민호는 그에게 심안을 사용했다.

[쯧! 주제 파악도 못하고 나대기는.]

[민지한테 점수 좀 따보려고 온 거 같은데.]

[내가 아주 제대로 쪽팔리게 만들어줄게.]

뒤이어 보인 것은 노골적인 멸시와 비웃음.

찬혁이 말했던 것처럼 강현도 은미와 한패가 분명했다.

민호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물들던 그때, 민지의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일깨웠다.

“서, 선배님!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아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

소곤거리며 속삭이는 민지의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무대 코앞에 와있는 만덕을 가리켰다.

“그래도 쟤보단 내가 나을 것 같아서.”

“물론 그건 그렇지만······. 이 노래 잘 아세요?”

“그럼. 설마 이걸 모를까?”

민호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 여자, 이 남자>는 노래에 별 관심이 없는 그조차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민지는 그런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이 노래 부르기 너무 어려운······.”

민지는 말을 마저 잇지 못했다.

강현이 멋대로 곡을 틀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민지는 황급히 마이크를 붙잡고 입을 열었다.

“너는 예전부터 그랬었어~ 그때부터 우린~.”

민지는 안정적으로 노래를 이어나갔다.

의외의 모습에 학생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서민지 노래 꽤 하는데?”

“그러게. 의외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음의 후렴구가 이어졌다.

“우린 함께 사랑을 했고~! 하지만 너는~”

살짝 음정이 불안하긴 했지만 음 이탈은 없었다.

후렴구 부분은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잘 넘겼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간주.

<이 여자, 이 남자>는 간주가 무려 1분이 넘게 이어지는 걸로도 유명했다. 이에 민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이내 민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그 모습을 보며 민호는 싱긋 웃었다.

그런데 그때, 돌연 강현이 무대 위로 난입했다.

“아, 그러고 보니 민호 선배님이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신다면서요?”

“엥?”

뜬금없는 소리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래방도 가본 적 없는데 저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강현은 민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만을 이어나갔다.

“선배님들 사이에서 아주 소문이 자자합니다. 예전에 가수를 꿈꾼 적이 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어지는 강현의 말에 학생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민호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아니, 무슨 애도 아니고.’

관중에게 기대를 하게 만든 다음에, 실망을 안겨줘서 제대로 망신을 주려는 것.

그야말로 유치한 도발이었다.

심안으로 읽어낸 속마음과 일치하는 행동에 민호는 기가 찬 듯이 웃었다.

‘하지만······.’

민호도 당하고만 사는 성격은 아니었다.

유치한 도발엔 응당 똑같이 응해줘야 제맛이다.

한편 강현은 간주가 거의 끝나가는 와중에도 입을 털고 있었다.

“맞아요. 또 어떤 얘기가 있었냐면······.”

“강현아.”

그때, 민호가 돌연 강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고는 씨익 웃었다.

“닥치고 내 노래나 들어.”

=====

능력 발동: [가왕의 열창]

-원곡 가수의 실력으로 노래합니다.

-재현율: 100(+50)%

-공덕 소모량: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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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의 열창]은 단 1곡에 한해 원곡 가수의 실력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상급 증폭]으로 인해 재현율이 150퍼센트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간단했다.

원곡 가수를 뛰어넘는 실력이 나온다.

“널 사랑하는 만큼, 난 내 전부를 네게~!”

폭발적인 열창!

민호의 노래는 단숨에 광장을 압도했다.

학생들도, 교수도, 강현과 은미, 민지까지도 그저 멍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민호만을 바라봤다.

잠시 후, 민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뒤, 민호와 함께 호흡을 맞춰 노래했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우와아아아아아!”

광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으로 뒤덮였다.

“미쳤다. 와, 이건 진짜 미쳤어!”

“대박! 완전 소름!”

“와씨, 귀 녹는 줄 알았네.”

“가수를 꿈꾸는 게 아니라 가수들 다 씹어 먹고도 남을 정돈데?!”

“앵콜! 앵콜!”

순식간에 박수와 환호소리로 가득 찬 광장.

은미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격한 반응이었다. 곧이어 민호와 민지가 부른 노래의 점수가 스크린에 나타났다.

[10점], [10점], [8점]

총점 28점.

단숨에 1등을 찍었다.

“강현 후배님.”

“······예?”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강현이 얼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민호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한테 줄 서세요. 한 잔 정도는 드릴게.”

민호는 소주잔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유치한 도발에 대한 응수를 끝으로 민호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이후 공연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이를 능가하는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

장기자랑 공연은 이번 MT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MT가 으레 그렇듯 술 파티가 이어졌다. 처음엔 모두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술판은 하나둘씩 갈라졌다.

“선배님! 저희 여기 앉아도 돼요?”

그때 몇몇 후배들이 민호가 있는 곳을 찾아왔다.

냉큼 자리에 앉은 그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와, 무슨 노래를 그렇게 잘 하세요?”

“저는 중간부터 그냥 넋 놓고 봤어요.”

민호의 노래가 끝난 뒤부터, 그는 존재감이 옅은 선배에서 미친 가창력을 소유한 선배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민호는 후배들의 말을 들으며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민지가 있는 곳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민지와 은미가 있는 곳.

모두가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을 무렵, 은미는 웃는 얼굴로 민지에게 접근했다. 이어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곧 인적이 없는 펜션 뒷길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민호의 눈에 이채가 발했다.

“미안한데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한 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민지가 사라져간 곳이 아니었다.

바로 지도교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

터벅터벅-

인적이 드문 산길.

두 여학생이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은미와 민지였다. 은미는 폐자재가 쌓여있는 텅 빈 공터에 멈춰선 채, 몸을 빙글 돌렸다.

“민지야.”

방긋거리는 표정.

은미는 무대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줬던 얼굴로 웃었다.

“야, 이 쌍년아. 돌았어?”

하지만 그 순간!

은미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급변했다.

돌처럼 굳어진 표정. 두 눈에는 독기까지 맺혔다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던 목소리도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내가 끼 부리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녀의 입가에 냉소가 맺혔다.

은미는 민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선배는 또 언제 꼬드겼냐? 엉? 대답해봐.”

보통 여기까지 말하면 민지는 꼬리를 내린다.

아예 눈도 못 마주치고 벌벌 떨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민지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당돌하게 은미와 눈을 마주한 채, 무덤덤한 말투로 되물었다.

“뭐가?”

“하! 뭐가아아?”

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은미.

“너 지금 나한테 말대꾸한 거야? 이 년이 술 들어가니까 정신을 놨나?”

“술 마시지도 않았고, 아주 제정신이야.”

“후우, 우리 민지가 아직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거 같은데.”

은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구긴 채 민지의 뺨을 툭툭 쳤다.

“그만 까불어라. 또 끌려가서 뒈질 때까지 쳐 맞기 싫으면.”

몸이 흠칫 떨릴만한 협박에도 민지는 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은미를 쳐다봤다.

“너야말로 이제 그만해. 애도 아니고.”

“······뭐?”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은미는 멍하니 되물었다.

그러자 민지의 반격이 이어졌다.

“대학까지 와서 옛 버릇 못 버리고 일진 흉내나 내고. 찌질하지도 않아?”

“뭐? 찌, 찌질?”

“나도 이제 더 이상 안 참아. 그동안 너한테 당했던 거 다 까발려줄게. 인터넷에도 올릴 거고, 교수님께도 말씀 드릴거야.”

이어진 민지의 말에 은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녀는 얼굴을 구긴 채 날카롭게 소리쳤다.

“하! 듣다보니 웃기지도 않네. 인터넷? 그게 뭔 소용이 있는데? 그리고 교수님? 너, 내가 학생회 꽉 잡고 있는 거 잊었어? 그깟 허수아비들한테 네 말이 먹힐 거 같아?”

“누가 허수아비라고?”

“이제 귀까지 먹었어? 교수들 말이야! 귀찮은 일이라면 질색하는 양반들이 과연 네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

은미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던 그때.

민지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를 본 은미의 눈이 점점 커질 무렵, 민지가 결정타를 날렸다.

“지금까지 우리 대화, 전부 다 녹음했어.”

“······!”

“앞으로 귀찮게 굴지 마. 너야말로 대학 생활 꼬이기 싫으면.”

그 말을 끝으로 민지는 몸을 휙 돌렸다.

“아, 맞아. 중요한 걸 깜박할 뻔했네.”

그때 민지가 다시 은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말을 던졌다.

“앞으론 꼬박꼬박 언니라고 불러.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반말이야?”

그 말을 끝으로 민지는 펜션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등 뒤에서 멍하니 이를 보던 은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이! 야! 저 쌍년 잡아!”

은미의 외침에 민지는 순간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렸다.

길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아마 은미가 미리 불러둔 패거리인 듯했다.

“너, 너! 내가 절대 가만히 안 둬. 죽여 버릴 거야. 묻어버릴 거라고!”

달빛에 비친 은미의 두 눈은 분노와 광기로 가득했다.

그 모습은 흡사 마인(魔人)과 같았다.

그때, 수풀 쪽에서 은미 패거리들이 걸어 나왔다.

민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새파랗게 질렸다.

“으, 은미야······.”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검게 죽은 얼굴. 마치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뭐해! 빨리 안 잡아? 너네도 다 뒈지고 싶어?!”

이성을 잃은 은미가 버럭버럭 소리치던 그때!

“허허. 허수아비 주제에 엿들어서 미안한데.”

패거리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40대 초반의 중년 남성.

“뭐? 죽여 버려? 누구를 묻어버린다고?”

남성은 매서운 시선으로 은미를 노려봤다.

한편 그를 발견한 은미는 일순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교, 교수님?!”

지도교수 현강태.

난데없는 그의 등장에 은미가 벙 찐 표정을 짓던 그때.

교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신은미 학생. 뭐라고 말이나 좀 해보지?”

“저, 저 그게······.”

은미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말을 더듬거렸다.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할 말 없으면 따라와. 너희도. 그리고······.”

교수는 은미와 그녀의 패거리를 지목했다.

이어 민지를 바라보던 찰나, 누군가가 그의 말을 끊었다.

“교수님. 민지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조금 놀란 것 같아서요.”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

그의 등장에 민지의 눈은 달처럼 커졌다.

“서, 선배님······?”

바로 민호였다.

< Chapter 12. 활약 (3)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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