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11. MT (2) >
“형!”
목소리의 주인은 용석이었다.
“점심은 조별로 해결하라네요.”
민호에게 다가온 용석이 각 조의 구성원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둘이 속한 조는 9조.
조원은 총 다섯 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박찬혁입니다!”
“박찬미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먼저 두 남녀가 자기소개를 했다.
반팔 티에 면바지를 입은 남학생과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에 띄는 점 하나가 있었다.
바로 둘의 이목구비가 상당히 닮았다는 것.
용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실례지만 혹시 남매이신가요?”
“넵! 쌍둥이입니다.”
“제가 누나에요.”
찬혁과 찬미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용석은 남은 한 명을 돌아봤다.
“그리고 이쪽 분도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지입니다.”
“네?”
용석이 되물었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 잘 들리지 않은 탓이다.
“서, 서민지입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잘 부탁해요.”
민지의 소개를 끝으로 용석과 민호도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조원들 사이에는 친밀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도 그럴 것이, 9조의 조원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아싸들끼리 모아뒀네.’
바로 다른 학생들과 그리 친하지 않다는 것.
무슨 이유에선지 쌍둥이 남매는 다른 이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조들을 돌아보니, 배정된 조에 구애받지 않고 화목하게 어울리는 광경이 보였다.
뻔히 보이는 조원 배치에 민호는 피식거리며 웃었다.
“우리는 점심 뭐해먹을까?”
그러던 중 용석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조원들은 저마다 가져온 재료들을 꺼냈다. 달걀 10개와 신 김치, 라면과 두부, 그리고 햇반이 전부였다.
이걸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썩 많지 않았다.
“으음, 재료만 놓고 보면 라면 아니면 김치찌개네요.”
“전 김치찌개가 좋을 것 같습니다!”
찬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혁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그러자 찬미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를 흘겨봤다.
“또 김치찌개야? 아침에도 먹었잖아?”
“왜? 김치찌개가 어때서? 인류가 개발한 최고의 요리······.”
“에휴. 하긴 이 재료로는 김치찌개가 최선이겠네. 전 찬성이요.”
두 명의 찬성에 이어 민지도 소심하게 손을 들어 찬성 의견을 표했다. 민호와 용석 역시 별다른 이견이 없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자. 찌개는 내가 만들 테니까 밥 좀 데워 와라. 아, 생수도 좀 가져와줄래?”
“네, 형.”
“알겠습니다!”
용석과 찬혁이 차례로 대답했다.
“저도 도울게요.”
찬미가 둘의 곁에 붙었다.
민지도 슬그머니 그들을 따라가려던 찰나!
“민지는 김치 좀 썰어줄래?”
“네? 아, 네.”
자리에 멈춰선 민지는 주뼛거리며 민호의 곁으로 다가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김치를 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민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보려고 했다. 임무에 대한 추가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민호가 입술을 달싹이던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방해꾼이 등장했다.
“민지야~”
그녀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의 여학생.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성과 조금 통통한 여학생이었다.
둘은 민지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네.”
“우리랑 카레 만들기로 했잖아. 까먹었어?”
민지의 양옆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누가 봐도 친한 사이처럼 보였지만 민호는 그 광경에서 일말의 위화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호는 위화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친근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여자와는 달리, 민지에게선 조금도 반가운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던 것.
오히려 민지는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성이 민지의 팔을 잡아끌었다.
“자, 빨리 가자. 은미가 기다려.”
은미라는 이름이 나오자 민지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두 눈이 일순간 크게 떠졌고, 얼굴에선 핏기가 조금 가셨다.
그리고 민호는 그녀의 반응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그만, 그만해.]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왜 여기까지 와서도······.]
민호의 예상은 적중했다.
심안을 통해 읽은 그녀의 속마음도 잔뜩 겁에 질려 있었으니까.
‘설마······.’
순간적으로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민호는 민지의 팔을 잡아끈 여성을 쳐다봤다.
김주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의 속마음을 읽기 위해서였다.
[은미년 지랄하기 전에 빨리 가야지.]
[근데 오늘 걔 기분 안 좋아 보이던데.]
[뭐 MT까지 왔는데 심하게 하겠어?]
주현의 적나라한 속마음에 민호는 얼굴을 구겼다.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으응. 아, 알았어.”
그때 민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주현은 생긋 웃으며 민호를 돌아봤다.
이어 애교가 가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배님~ 민지 좀 잠깐 데려가도 되죠?”
“안 돼.”
“감사합니다. 그럼······ 네?”
생각지 못한 대답이 돌아온 탓일까?
멍하니 되묻는 주현의 모습에 민호는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지금 같이 요리하는 거 안 보여?”
민호에게는 그들이 민지를 데려가지 못하게 할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두 여성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은 재료들을 훑어본 둘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이 정도면 다 하셨잖아요.”
“맞아요. 이제 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반응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다해?”
“네?”
“김치찌개 만드시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근데 김치찌개만 할 건 아니거든.”
민호는 잘린 김치의 절반을 냄비에 담았다.
그러고는 민지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민지야, 계란 좀 풀어줄래?”
“······네.”
멍하니 서있던 민지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녀가 커다란 그릇에 계란을 깨기 시작하자, 민호는 우두커니 서있는 두 여성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너희도 계속 알짱거리지 말고 가라. 방해된다.”
민호의 반응에 주현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더니 돌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민지를 불렀다.
“서민지.”
딱딱하게 굳은 말투.
그녀의 부름에 민지도 덩달아 몸이 굳었다.
“너 지금 안 오면 은미가······. 꺅!”
하지만 주현은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돌연 그녀의 앞에 시뻘건 김칫국물이 뿌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칫국물을 뿌린 장본인, 민호는 그녀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야? 아직도 안 갔어?”
“뭐, 뭐하는 거예요?! 꺄악!”
“김치 국물이 너무 많아서 좀 버리려고.”
“선배님!”
민호의 행동에 주현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러던 중 그녀들의 뒤로 검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졌다.
밥을 데우러 갔던 용석 일행이 돌아온 것이었다.
“형, 밥 다 데워왔습니다. 그런데······.”
미간을 좁힌 용석이 주현을 쳐다봤다.
너넨 누군데 여기서 길을 막고 있냐는 표정으로.
그때 생수통을 들고 있던 찬혁이 천연덕스런 얼굴로 말했다.
“야, 김주현.”
“······왜?”
주현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찬혁은 궁금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은미 무슨 일 있었냐? 얼굴 완전 개빡쳐 보이던데······.”
“아씨, 진짜!”
그의 말에 주현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홱 돌려 민지를 쳐다본 그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현은 이내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이에 민호는 찬혁을 향해 심안을 사용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나보네.]
[으휴, 쟤들은 질리지도 않나?]
[대학까지 와서 웬 일진놀이를······.]
마치 어떠한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한 찬혁의 속마음.
이를 본 민호는 눈을 반짝였다.
그러던 중 민호에게 다가온 용석이 질겁하며 물었다.
“형, 설마 김치찌개에 계란 넣는 취향이셨어요?”
“아니, 김치를 너무 많이 꺼내서 계란말이도 하려고.”
피식 웃은 민호는 곧 능숙하게 요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가 가진 능력 중 하나가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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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발동: [요리사의 손]
-요리의 맛이 +20(+10)% 향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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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요리가 완성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와 볶음 김치가 듬뿍 들어간 계란말이.
“잘 먹겠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조금 늦은 시각이라 일행은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자,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우리 엄마가 한 것보다 맛있다.”
“그건 나도 인정.”
자연스럽게 집밥을 디스하는 남매부터.
“······맛있다.”
말수가 적던 민지까지 맛있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형, 혹시 라면스프 넣으셨어요?”
“아니. 면만 넣었는데?”
“진짜요? 근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용석은 연신 신기해하며 찌개를 흡입했다.
그러던 중 찬미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실력이면 블라인드 푸드 서바이벌 나가셔도 될 것 같은데요?”
“블라인드······ 뭐?”
“이거요. 여기 일정표에 쓰여 있는데.”
찬미는 주머니에서 프린트된 일정표를 꺼냈다.
그러자 이를 받아든 용석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엥? 우리가 받은 일정표랑 다른데?”
찬미에게서 받은 일정표와 민호와 용석이 가진 일정표의 내용이 사뭇 다른 탓이었다.
“어라? 그건 초안인데요?”
“뭐지? 강현 선배가 잘못 전달했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두 남매.
그 모습에서 민호는 조금 싸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물 먹은 기분인데······.’
민호와 용석은 18학번 과대인 강현에게서 직접 일정표를 받았다.
그것도 바로 어제.
그런데도 초안을 건넸다는 건 일부러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심안을 써볼 걸 그랬나?’
속마음을 통해 강현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볼 걸.
민호가 뒤늦은 후회를 하던 무렵, 식사가 끝났다.
“크, 잘 먹었다.”
“진짜 맛있었어요.”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
민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씨익 웃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민호가 빈 그릇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이를 본 찬미와 민지가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설거지는 저희가······.”
“아니야. 쉬고 있어. 찬혁이만 좀 도와줄래?”
“넵! 선배님.”
시원스러운 대답과 함께 찬혁이 민호의 뒤를 따랐다.
쏴아아아아-
워낙 빨리 밥을 먹은 터라 벌써부터 설거지를 하는 이들은 없었다. 단둘이서 그릇을 씻고 있던 그때, 돌연 민호가 입을 열었다.
“MT까지 왔는데 노땅들이랑 있으니 심심하지?”
“아닙니다. 선배님 요리도 맛있었고, 오히려 동기들보다 좋습니다.”
찬혁이 씨익 웃었다.
솔직함으로 가득한 미소였다.
민호는 마찬가지로 피식 웃은 뒤, 다시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함께.
민호가 말을 이었다.
“아까 온 여자애들. 민지랑 무슨 일 있었어?”
“아, 그게 저······.”
난데없는 말에 찬혁은 다소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그러자 민호는 대뜸 돌직구를 날렸다.
“분위기만 보면 뭔가 따돌림 시키는 거 같은데. 혹시 은미라는 애가 주동자인가?”
이어진 말에 찬혁의 어깨가 움찔거리며 떨렸다.
정곡을 찔린 듯한 반응.
한참 후, 그릇을 든 채로 굳어있던 그는 곧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네, 맞아요. 비슷합니다.”
찬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Chapter 11. MT (2)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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