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39화 (39/182)

< Chapter 11. MT (1) >

Chapter. 11

MT

5월 초, 금요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대형버스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렸다. 대학생으로 가득한 버스. 그 안에는 민호도 있었다.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민호.

그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쉴 새 없이 진동했다.

웅! 우웅! 우우웅!

전화가 온 건 아니었다. 그저 문자가 계속해서 오고 있을 뿐. 얼마 후, 진동이 멎자 민호는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어쩜 그럴 수가 있어.

-우리 지난주엔 정말 좋았잖아.

-함께 뜨거운 밤도 보내고.

-근데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ㅠ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 보이는 문자.

민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문자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차미래.

진하의 소개로 알게 된 토벌자였다.

한편 민호가 문자를 보며 계속 한숨을 내쉬자, 곁에 앉아있던 용석이 말을 걸어왔다.

“형. 아까부터 누구랑 그렇게 문자하세요? 혹시 여자친구 생기셨어요?”

“아니, 술주정 쩌는 사람 있어.”

민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즉답했다.

이어 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던 그때, 돌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신입생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맨 앞좌석에 앉아있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훤칠한 키와 서글서글한 외모를 가진 훈남.

18학번의 과대인 채강현이었다.

“네, 노래 잘 들었습니다. 우리 19학번 후배님, 어 이름이 뭐라고 했죠?”

“정한솔입니다!”

“자자, 우리 한솔 후배님에게 박수!”

그의 말이 끝나자 버스 안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중.

“형.”

민호의 귓가로 용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저희는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죠?”

“······그러게 말이다.”

민호는 한숨과 함께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민호와 용석이 탄 버스는 가평으로 가고 있는 버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8, 19학번들을 주축으로 한 MT였다. 그래서 복학생인 민호와 용석은 당연히 MT참여를 거절하려고 했다.

그들도 눈치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새로 바뀐 지도 교수가 문제였다.

‘뭐라고? MT를 왜 안 가?’

‘화석 같은 소리하고 있네. 가서 어울려야 친해지고 그러지.’

‘이 참에 선배 노릇도 좀 하고 그래.’

새로운 지도 교수는 융통성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학과 전체의 단합을 강조하며, 이번 MT부터는 학번을 불문하고 모두 참여하라고 했다.

물론 민호는 일부러 핑계거리를 만들어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뭐, 정 가기 싫으면 안 가도 상관은 없다.’

‘앞으로 내 수업 안 들을 거면.’

협박에 가까운 한 마디.

아직 학교 다닐 날이 많이 남았기에 민호는 어쩔 수 없이 MT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호가 MT에 참가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가 시선을 건너편으로 돌리려던 그때, 복도에 나와 있던 강현이 돌연 민호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다음으로는 저희 자랑스러운 선배님을 한 번 모셔볼까 합니다. 저기 휴대폰 하고 계시는 장용석 선배님!”

“······엥?”

갑작스럽게 지목당한 용석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용석에게 다가온 강현이 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선배님, 노래 한 곡 하시죠.”

“내가 왜 노래를······.”

“다 돌아가면서 하고 있거든요. 선배님 차례신데 혹시 불편하시면······.”

강현이 어색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때 그를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편하긴 뭘 불편해. 가서 한 곡 뽑고 와.”

민호가 용석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러자 그는 애써 못이기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요즘 노래 잘 모르는데.”

용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민호가 굳이 그를 내보낸 이유.

그건 바로 심안을 사용해 그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이야.]

[미리 연습해오길 잘했네.]

[후후, 내 가창력을 보여주마!]

용석은 내심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오죽했으면 연습까지 해왔을까?

민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복도 건너편에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앉아있는 건 두 여학생. 하나는 창문에 기대어 자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그저 잠자코 앉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 민호의 시선이 향한 건, 고개를 숙인 여학생.

주변의 다른 여학생들이 한껏 꾸미고 온 반면, 그녀는 비교적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와 커다란 안경, 거기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한 기분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새것처럼 보이는 민트색 운동화가 전부였다.

“날 사랑해주는 너에게~!”

그때 용석의 노래가 시작됐다.

동시에 여학생의 상태창이 민호의 시야에 맺혔다.

=====

*이름: 서민지

*나이: -

*공덕: 1,367

*악덕: 3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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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상태창을 보면서.

민호는 진하에게서 받은 정보를 떠올렸다.

-대상의 이름은 서민지. 나이는 21살.

-너랑 같은 학교다. 학과는 일어일문학과.

-그리고 조금 소심한 타입인 것 같네.

진하가 말한 바에 따르면 민지는 남들과 어울리는 걸 썩 즐기지 않는 타입인 듯했다.

원래 성격대로였다면 MT에 참가하지 않았겠지만 지도 교수의 만행으로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것이리라.

‘진하 형 말대로 좀 소심해보이긴 하네.’

민지는 버스에 탄 이후,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이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이는 그녀의 성격이 소심하다는 걸 충분히 뒷받침해줬다.

‘하긴 그러니까 이런 기적이 내려온 거겠지.’

고개를 가만히 끄덕인 민호는 민지에게 전달한 기적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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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혼(魂)]

*등급: 정(丁)

*어느 장수의 사념이 정제된 기운.

*용기와 자신감이 대폭 상승한다.

*전달 방법: 대상의 손을 통해 불어넣는다.

*지속 시간: 최대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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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적은 조금 특이했다.

지금까지 대상에게 전한 기적은 모두 어떠한 형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임무의 기적은 형체가 없었다.

그저 희뿌연 연기 같은 게 민호의 손에서 일렁이고 있을 뿐.

‘문제는 이걸 어떻게 전하냐는 건데······.’

민호가 고민하는 건 시험에 관해서였다.

지금 가는 펜션은 산 속 깊숙한 곳에 있다.

그런데 대학생들만 있어야할 그곳에 난데없이 노인이 튀어나온다면? 게다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이 과정에서 과연 의심을 사지 않고 진행할 수 있을까?

민호의 미간이 점점 좁아지던 그때, 길게 이어지던 용석의 노래가 끝났다.

“크, 역시 선배님. 노래 진짜 잘하시네요.”

강현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에 용석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오랜만이라 좀 긴장해서······.”

“아닙니다. 최고였습니다. 지금까지 장용석 선배님이셨습니다!”

다시 한 번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용석은 나름 뿌듯한 얼굴로 자리에 돌아왔다.

“어디보자, 그럼 다음은······. 아, 공민호 선배님!”

주변을 훑던 강현의 시선이 용석의 옆에 앉아있던 민호에게서 멈췄다. 화색을 띤 얼굴로 다가온 그는 이내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선배님. 혹시 저 기억하십니까? 그 일본사 수업 같이 듣는······.”

강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억합니다. 채강현 후배님.”

“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현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희가 뭐 남인가요?”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친해지면 차차 놓겠습니다.”

“하하, 그럼 제가 내일까지 말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넉살좋게 웃음을 터뜨린 강현.

그는 곧 민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럼 선배님, 노래 한 곡 부탁드려도······.”

하지만 강현의 말은 마저 이어지지 못했다.

버스기사가 돌연 그의 행동을 제지한 탓이었다.

“여긴 산길이라 위험하니까 자리에 앉아주세요.”

“아쉽네요. 선배님 노래는 다음에 듣도록 하겠습니다. 또 천장에 머리 박고 싶진 않거든요.”

허둥지둥 자리로 돌아가는 강현의 모습에 버스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얼마 후.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일행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와, 진짜 크다!”

“저기 계곡도 있어!”

생각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펜션.

거기에 뒤편에는 널찍한 계곡도 흘렀다.

기대한 것보다 멋진 광경에 학생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자자, 일단 짐 정리부터 하고 밥부터 먹죠.”

그때 강현이 능숙하게 학생들을 이끌었다. 민호 역시, 강현을 따라 펜션에 짐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주인님!”

색동저고리를 입고 봇짐을 멘 자그마한 소녀.

바로 율이었다.

“히히, 저 보고 싶으셨죠?”

그 귀여운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갔던 일은 잘 됐어?”

“네. 제가 따끔하게 말하고 왔으니, 이제 임무가 동시에 내려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

활짝 웃는 얼굴로 대답한 율.

그녀는 약 사흘 동안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천계를 방문해 보고할 것도 있고, 또 얼마 전에 내려왔던 동시 임무에 대해 항의할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속 시원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아하니, 다행히 일은 전부 무사히 끝난 듯했다.

“수박이는 잘 지내고 있고?”

자리를 비우는 이틀 동안, 수박이는 진하에게 잠시 맡겨둔 상태였다.

이에 율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 먹고 지내서 살이 좀 찐 것 같았어요. 그래서 관찰자한테 먹을 것 좀 작작 주라고 말하고 온 참이에요.”

아무래도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

민호에게 보고를 마친 율은 날개를 팔랑거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펜션 주변에 가득한 학생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두 눈을 별처럼 반짝거렸다.

“그보다 이제 다들 모여서 노는 거죠? 그렇죠?”

기대감으로 가득 찬 얼굴을 보며 민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다. 나도 MT는 오랜만에 와봐서······. 그래도 노는 건 저녁에나 놀지 않을까?”

“그렇군요. 아, 요즘도 술 마시면서 시 짓고 그러나요?”

“······넌 대체 어느 시대에서 살다 온 거냐?”

민호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게 율과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웅! 우우우웅!

민호의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야호!

-우리 민호, 가평 도착했구나?

문자를 보낸 이는 차미래였다.

곧이어 미래의 문자가 연달아 도착했다.

-후후. 누나도 지금 가평이야.

-지금 네 뒤에 있어. ^^

마지막 문자에 민호는 설마 하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하게도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또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우리 민호, 두리번거리는 게 참 귀엽네. >_<

“······!?”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러던 중 다시 도착한 문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밤에 약속한 건 잊진 않았겠지?

미래와 한 약속.

그것은 바로 그녀가 말했던 ‘토벌 임무’와 관련된 일이었다.

‘마인이 가평에 나타난다고 했지.’

민호는 갑작스럽게 MT에 참가하게 돼서 미래와 함께 임무를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민호의 생각은 기우에 그쳤다. MT장소가 가평이었기 때문이었다.

‘임무 시작일은 오늘 밤.’

정확히는 자정 무렵.

그 정도면 애들이 전부 고주망태가 될 시간이다.

혼자 몰래 빠져나가긴 충분하리라.

민호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케이! >ㅁ< //

-그럼 이따 내가 펜션으로 찾아갈게!

-뿅뿅!

해괴한 인사를 마지막으로 대화가 끝났다.

그러자 함께 문자를 읽던 율이 물었다.

“토벌자님이에요?”

“어. 임무에 관해서 잠깐 얘기했어.”

고개를 끄덕인 민호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던 그때,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Chapter 11. MT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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