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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35화 (35/182)

< Chapter 9. 동료 (2) >

[보상은 전부 확인하셨나요?]

비단의 목소리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응. 아, 잠깐 공덕 상점 좀 열어줄래?”

[알겠습니다.]

비단은 흔쾌히 민호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윽고 눈부신 빛으로 물든 방 안.

잠시 후, 눈을 뜨자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 공덕 상점이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비단이 무표정한 얼굴로 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뭐, 겸사겸사 와봤어. 궁금한 게 있기도 했고.”

“궁금한 거요?”

비단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호는 즉각 입을 열었다.

“그 영물을 왜 그렇게까지 돕고 싶어 했는지 궁금했거든.”

“······아.”

비단의 무표정한 얼굴에 일순간 균열이 일었다.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한참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는 이윽고 입술을 달싹였다.

“우선······.”

비단은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저는 그 영물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정말?”

“네. 그런데 그런 부탁을 드린 건······. 조금 안타까운 기분이 들어서요.”

그 말을 시작으로 비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어제 민호가 만났던 영물.

그는 수백 년 동안 서른 번이 넘는 환생을 하며 공덕을 쌓은 수행자였다. 앞으로 조금만 더 공덕을 쌓으면 신선이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영물이었다.

하지만 정환의 만행으로 인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지경에 놓였다. 영물은 정환에게 살심(殺心)을 품었고, 악덕을 쌓을 각오까지 했다.

그러자 천계에서 이를 보던 비단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왜냐면 저도 영물 출신이었거든요.”

이어진 비단의 고백에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야 그녀가 왜 영물에게 마음을 썼는지 이해가 됐다. 같은 영물 출신이었기에 괜히 더 마음이 간 것이리라.

민호가 속으로 납득하던 그때, 비단이 돌연 허리를 숙였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순전히 그녀 자신의 욕심으로 일어났다.

심지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민호가 다칠 뻔했다.

비단은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하며 민호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옷깃을 꽉 움켜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호된 꾸지람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민호의 대답은, 그녀가 예상했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어쨌든 결과는 좋게 끝났잖아?”

민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대수롭지도 않다는 표정은 덤이었다.

“앞으로도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줘. 동료끼린 서로 돕고 살아야지.”

비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민호가 씨익 웃었다.

그러자 그녀는 멍한 얼굴로 민호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달싹였다.

“······전달자님.”

“응?”

“전달자님은 절 동료로 봐주시는 건가요?”

비단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에 민호는 뭔 그런 당연한 소릴 하냐는 듯 대꾸했다.

“당연하지. 어, 잠깐.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야?”

“아, 아니에요!”

그녀는 답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저 전달자님에게서 동료라고 들은 건 처음이라서 당황해서······.”

“······도대체 다른 전달자들은 널 어떻게 대했던 거야?”

민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민호는 진지한 표정과 함께 비단을 바라봤다.

“난 다들 동료라고 생각해. 너도, 그리고 율이도.”

오히려 동료가 아닌 게 이상할 정도다.

왜냐면 민호를 포함한 셋은 선인에게 기적을 전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으니까. 아직 얼굴도 모르는 토벌자보다 이쪽이 훨씬 한 팀에 가깝다고 민호는 생각했다.

그러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비단은, 이내 민호를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기뻐요.”

기습처럼 들어온 아름다운 미소.

목석같은 사내도 단숨에 녹여버릴 정도로 예쁜 미소였다. 민호는 마치 홀린 것처럼 그녀의 미소를 바라봤다.

[주인님!]

그러던 중 별안간 빛 너머에서 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당황한 듯한 음성.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걸까? 고개를 갸웃거린 민호가 몸을 돌렸다.

“미안, 잠깐 다녀올게.”

“괜찮아요. 천천히 오세요.”

비단의 배웅을 받으며 민호는 다시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잠시 후, 방 안에 도착한 그는 곧장 율에게 물었다.

“왜 불렀어?”

“손님이 온 것 같아요.”

“손님?”

민호가 미간을 좁혔다.

오늘 올 손님이 마땅히 없던 탓이었다.

쿵쿵-!

그러자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나갑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민호가 현관으로 향했다.

혹시 집 주인 아주머니가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끼이익-

낡은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하지만 눈앞엔 아무도 없었다.

“뭐야? 아무도 없잖······.”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 순간!

-한참을 불렀는데 이제야 나오네.

발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제법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에 민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그곳엔 목소리만큼이나 낯이 익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엥?”

민호의 얼빠진 목소리와 함께.

낯익은 강아지가 입을 열었다.

-좋은 저녁이야, 민호 도령.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는 귀여운 강아지.

어제 그와 만났던 영물(靈物)이었다.

***

노을빛으로 물든 옥상.

옥탑 방 앞의 평상에 세 명의 존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민호와 율,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영물이었다.

“어, 그러니까······.”

민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무릎을 두드리던 민호.

그는 방금 전, 영물이 한 이야기를 요약해서 정리했다.

“지금 나랑 같이 살고 싶다는 거야?”

-맞아.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영물.

그 모습에 민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왜?”

-도령에게 은혜를 입었으니까.

“무슨 은혜?”

-내 대신 복수를 해줬잖아? 그것에 대한 보답이야.

영물의 말에 민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내 개인적인 원한이었다고······.”

“괜찮아요, 주인님! 이미 악덕 정산은 끝났거든요.”

그때 율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정환을 폭행한 것에 대한 악덕은 이미 민호에게 쌓였다. 그렇기에 영물에겐 더 이상 피해가 갈 일이 없었다.

졸지에 핑계거리가 없어지자 민호는 율을 한 차례 흘겨봤다.

“후우, 솔직히 말할게.”

민호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어 영물과 시선을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네 마음은 진짜 고마운데 난 지금 난 동물을 기를 처지가 못돼.”

-난 평범한 동물이 아니야.

“그건 알지. 그래도 사료라거나 예방접종이라거나 그런 문제들이······.”

-밥은 아무거나 잘 먹고 예방접종도 필요 없어.

과연 영물은 영물이었다.

핑계거리가 전부 막혀버리자 민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닫았다. 그러자 이번엔 영물 쪽에서 말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날 곁에 두면 쓸모가 많을 거야.

“맞아요! 영물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점이 꽤 많거든요.”

“어떤 면에서?”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영물이 즉각 입을 열어 답했다.

-잡귀를 쫓아주지.

“잡귀?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렇게 따지면 저희는요?”

“어, 그건······.”

그도 그랬다.

다시 말문이 막힌 민호.

그때 돌연 영물이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더니 민호 뒤편에 쌓아둔 폐지더미를 가만히 응시했다.

-도령 뒤에 있는 쓰레기더미에도 한 놈이 앉아있는데?

“뭐?”

-방금 나랑 눈 마주쳤어.

“······야, 무서우니까 그만해라.”

민호가 팔에 돋아난 소름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어 영물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어필했다.

-또 도령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지. 난 마인을 감지할 수 있으니까.

“확실히 그건 꽤 쓸 만한 능력이지만······.”

영 탐탁지 않은 민호의 얼굴.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율이 영물에게 다가갔다.

“그러지 말고 이런 걸 어필해 봐요.”

-아하.

율의 속삭임에 영물은 몇 차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영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또 도령의 임무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영물이 있으면 임무가 편해질 거예요. 진짜에요!”

이번엔 율까지 합세했다.

그녀는 마치 강아지 키우는 걸 허락받는 아이마냥 민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여전한 민호의 표정에 영물은 꼬리를 축 내렸다.

-······이래도 안 되나?

유독 처량해 보이는 모습에 민호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결국 양손을 들었다.

“끄응, 어쩔 수 없지. 알겠어. 같이 살자.”

-정말?

“그래. 대신 좋은 사료는 못 사줘.”

-먹다 남은 밥이라도 괜찮아!

영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그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옥상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보자, 집은 어디쯤에 만드는 게 좋을까?”

-집? 무슨 집?

“네가 살 집이지. 왜? 집도 필요 없어?”

-아니, 뭐 있으면 좋긴 하지.

시큰둥한 목소리와는 달리, 영물의 꼬리는 맹렬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집이 생긴다는 게 내심 기쁜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이름을 지어줘.

“이름?”

-도령이 이름을 지어줘야만 나와 도령의 인연이 묶이니까.

“하긴 부를 이름이 필요하긴 하지.”

민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흔하디흔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초코?”

-민호 도령.

그때 영물의 입에서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민호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난 환생을 서른 번도 넘게 했어. 이 나라가 조선이라 불렸을 때부터 있었지. 그런 내게 그런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해?

어딘가 화가 난 모습이다.

그래서 민호는 조금 더 토속적인 이름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개똥이?”

-내가 잡종이긴 해도 그건 좀 너무하지 않아?

“으음, 누렁이는 어때?”

-소한테 붙이면 딱 어울릴 거 같은 이름이네.

이후로도 몇 차례 후보를 내놔봤지만 영물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끄응, 개를 키워본 적이 있어야 이름을 짓지.”

민호가 신음을 흘렸다.

그러던 그때, 별안간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텅텅 텅-!

철제 계단 위로 울려 퍼지는 발자국 소리.

이어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학생! 집에 있나?”

바로 집주인인 영자였다.

그녀의 등장에 민호는 곧장 계단 쪽으로 향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이거 좀 받아봐. 아이구, 무거워.”

영자는 사람 머리보다 커다란 수박 한 통을 들고 왔다.

얼핏 봐도 1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특대 수박.

민호가 놀란 듯 물었다.

“오, 수박이 벌써 나와요?”

“그러게 말이야. 요새 날이 더워 그런지 원.”

옥상에 올라온 영자가 손부채로 땀을 식혔다.

그녀는 민호의 손에 들린 수박을 통통 두드렸다.

“실한 놈으로 골라왔으니까 맛있게 먹어.”

“네? 이걸 다요?”

“괜찮아. 선물로 들어왔는데 꽤 많이 받아서.”

“하지만······.”

“왜 저번에 등 갈아줬잖아.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학생만 먹어. 알겠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민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더운데 몸 잘 챙기고. 어머?”

계단을 내려가려던 그때.

돌연 영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은 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멍멍!”

옅은 갈색 털을 가진 개, 영물이었다.

못 보던 개의 등장에 영자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민호를 쳐다봤다.

< Chapter 9. 동료 (2)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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