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34화 (34/182)

< Chapter 9. 동료 (1) >

Chapter 9.

동료

일요일 오후.

중천에 뜬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민호는 눈을 떴다.

“끄응.”

꽤 오래 잤음에도 아직 피로가 덜 풀렸는지 온 몸이 쑤셨다.

눈살을 찌푸린 민호가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오후 4시 50분.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꼬르륵-

“배고파······.”

토요일 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일까?

허기를 느낀 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주인님, 일어나셨네요?”

그때 율이 인사를 건넸다.

민호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 인사에 답한 뒤, 끊는 물에 라면을 집어넣었다.

꽤나 수척해보이는 얼굴.

이에 율은 안쓰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많이 피곤하시죠?”

“······죽겠다.”

“에휴, 그럴 만도 하죠.”

어제 민호는 총 3개의 임무를 완료했다.

게다가 비는 시간엔 아르바이트까지 뛰었다.

끙끙 앓아눕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제가 안마 해드릴게요.”

씩씩하게 팔을 걷어붙인 율이 민호의 어깨를 주물렀다.

“좀 어떠세요?”

“으어어, 시원하네.”

이제는 꽤나 안정된 악력.

피로가 풀리는 마사지에 민호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아, 맞다. 그리고 이거요.”

“이게 뭐야?”

“헤헤, 제가 아침에 뽑아봤어요.”

율이 건넨 것은 [불완전한 예언의 상자]에서 뽑은 쪽지.

쪽지에는 늘 그렇듯 애매모호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새로운 인연, 새로운 가족>

이를 본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밖에 나갈 생각 자체가 없는데 무슨 인연이 생긴다는 거지.”

오늘 민호의 일정은 단순했다.

라면을 먹고, 소화가 되면 다시 잘 거다.

어제 상당히 무리한 탓에 오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잠만 자고 싶었다.

보글보글-

그러던 차에 라면이 완성됐다.

라면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민호는 방구석에 있던 낡은 TV를 켰다.

[다음 소식입니다.]

TV를 켜자마자 나온 건 뉴스채널.

라면 먹으면서 볼만한 방송은 아니다. 민호는 채널을 돌리기 위해 리모컨을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어진 아나운서의 말에 민호의 얼굴은 그대로 굳었다.

[주말 사이에 조금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광진 유원지에서 조련사로 일하던 A씨가 지난 토요일, 술에 취해 늑대를 풀어놔 소동이 일었던 건데요.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김민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김민현 기자.]

[네, 김민현입니다. 지난 토요일 밤 11시 경, 조련사 A씨는 만취한 상태로 늑대 한 마리를 유원지에 풀어놨습니다.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는데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어제 임무와 관련된 보도.

민호는 라면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뉴스를 바라봤다.

그는 보도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관찰자한테서도 문자가 왔었어요.”

율이 민호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그곳엔 진하가 보내놓은 문자로 가득했다.

-네가 말했던 대로 처리했다.

-이 정도면 못해도 5년 이상은 살 거다.

-그리고 흔적은 내가 지워뒀으니 염려 말고.

진하가 뒷수습을 잘 마무리해준 듯했다.

민호는 속으로 진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래도 5년은 너무 짧은데······.”

민호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다.

정환은 늑대를 풀어 사람을 해하려고 했다.

게다가 피해자는 민호도 잘 알고 있는 사람.

눈물로 범벅이 되었던 소혜의 얼굴을 떠올리자 민호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금 더 패줄 걸 그랬나?”

“그랬다간 천계에서 수배가 걸렸을 거예요.”

민호가 매섭게 중얼거리자 율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제도 위험했다구요. 거기서 조금 더 때렸으면 악덕이 계속 쌓여서······.”

이어지는 율의 잔소리를 들으며 민호는 늦은 식사를 끝마쳤다.

“아, 배부르다.”

민호는 벽에 등을 기댔다.

그러던 중 민호의 시선이 테이블 위로 향했다.

“저건······.”

눈을 가늘게 좁힌 민호.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바로 기적을 회수하는 호리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마자 문득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네놈, 전달자 새끼였구나!’

정환은 민호가 꺼낸 호리병을 보자마자 그렇게 외쳤다.

이는 전달자라는 존재, 나아가 호리병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뒤늦게 떠오른 의문이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내가 전달자라는 걸 알았지?”

민호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율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마 어딘가에서 들었을 거예요.”

“어디서 들어?”

민호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는단 말인가?

“물론 같은 마인(魔人)에게서죠. 마인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든요.”

그녀의 입에서 다시 튀어나온 마인이란 단어.

민호는 자세를 고쳐 앉은 뒤에 물었다.

“그런 녀석들이 더 있는 거야?”

“네. 이 나라에만 수십 명도 넘을 걸요?”

“진짜?”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민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자 율은 안심하라는 듯 말을 덧붙였다.

“걱정 마세요. 사실 전달자는 마인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요. 마인을 상대하는 건 토벌자들의 임무니까요. 단지 어제가 조금 특수한 경우였을 뿐이에요.”

마인은 어제 만났던 늑대와 비슷했다.

평소라면 결코 마주칠 일이 없는 존재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됐다.

그러던 중 문득 새로운 단어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잠깐, 그러고 보니 토벌자는 또 뭐야?”

어제 민호가 특별 임무를 부여받을 당시.

율은 비단에게 ‘이 임무는 토벌자의 임무잖아요!’라며 항의했다.

“혹시 그것도 신의 대리인 중에 하나인가?”

민호의 추측에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신의 힘을 빌려 마인을 토벌하고 수배자를 쫓는 자들이에요. 인간계로 따지면 경찰 같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죠.”

전달자, 관찰자, 토벌자.

율의 말에 따르면 이 셋은 사실상 한 팀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중에는 서로 협력하거나 연계하여 수행해야하는 임무도 하달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민호가 돌연 입을 열었다.

“듣다보니까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뭔데요?”

“마인이 그렇게 많으면 왜 천계에선 직접 나서지 않는 거야? 예를 들면 신이라거나······.”

“신님은 이미 세상에 간섭하고 있어요. 주인님이 바로 그 증거잖아요?”

확실히 민호와 같은 대리인을 둔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 간섭을 한다는 말이긴 했다.

그러나 그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내 말은 좀 더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느냐는 거지.”

신은 전지전능하다.

그렇기에 숨어있는 마인들을 한 번에 찾아내, 일거에 쓸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민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곧 율이 입을 열었다.

“아마 바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이번에도 바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 건데?”

천계도 그렇고 신도 그렇고, 뭐가 그렇게 바쁘단 말인가? 민호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율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야 무한에 가까운 세계를 관리하시니까요.”

“엥?”

“설마 신님이 관리하는 세계가 이곳만 있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율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어 그녀는 양팔을 가득 벌린 채 말을 이었다.

“신님은 인간의 숫자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세계를 관리하세요. 그래서 각 세계에 따로 대리인을 두시는 거구요.”

일리가 있는 율의 말에 민호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한 세계를 관리하는 일에 비하면, 수십여 명의 마인 정도는 굉장히 사소하게 느껴질 테니까.

마인에 대한 대화가 끝나갈 무렵

돌연 민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임무 완료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비단의 목소리.

동시에 민호가 무릎을 탁하고 쳤다.

“아, 맞다.”

깜박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어제 집에 도착했을 때, 비단에게서 임무 완료 보상을 고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어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녹초가 된 상태. 그래서 민호는 늘 하던 대로 부탁한다는 말을 끝으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환전과 능력 뽑기를 각각 2회씩 했습니다.]

민호가 고르는 보상은 늘 같았다.

최대한 많은 능력을 뽑는 것.

모든 보상 중에서 능력이 가장 효율이 좋은 탓이었다.

“어디보자. 어떤 능력이 나왔을까?”

민호는 기대감이 깃든 눈을 반짝였다.

“그 전에 흡수로 얻은 능력부터 보세요.”

율의 말에 민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앞에 시스템 창을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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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의 잔향(殘香)]

*동물과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동물에게서 다소 호감을 얻는다.

*대화 이해력: 20%

*동물 호감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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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쓸모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민호는 조련사도 아닐뿐더러, 평상시 보는 동물이라곤 개와 고양이, 비둘기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흥미가 조금 동했다.

“한 번 시험해보고 싶네.”

지금껏 얻은 능력들 중에서 가장 초능력다운 능력이었다.

민호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처럼 반짝였다.

“그럼 이제 뭘 뽑았는지 살펴볼까?”

그의 시선이 임무 완료 보상으로 받은 능력으로 향했다.

먼저 첫 번째로 얻은 능력이었다.

=====

B-299) 공덕 상승

*단계: 중급

*등급: 병(丙)

*공덕 획득율이 추가로 상승한다.

*획득율: +20(+10)%

*[상급 증폭] 효과가 발동 중이다.

=====

능력을 살펴보기가 무섭게.

별안간 율이 두 눈을 마구 반짝였다.

“저는 이 능력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해요.”

열렬한 반응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네게 돌아가는 공덕이 늘어서 그런 거지?”

“헤헤, 들켰나요?”

율은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민호가 임무를 완수하면 율은 공덕의 10퍼센트를 가져간다.

그리고 [공덕 상승]능력으로 인해 수급되는 공덕의 양이 늘어나면, 당연히 율에게 돌아가는 공덕도 증가하게 된다.

율이 좋아하는 것도 당연했다.

“뭐, 나도 괜찮은 능력이라고 생각해.”

이번 능력은 민호도 적잖이 만족했다.

공덕 상점을 알기 전에 얻었다면 쓸모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얻은 능력은······.”

민호의 눈동자가 그 옆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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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801) 일격필살(一擊必殺)

*등급: 병(丙)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일격을 퍼붓는다.

*파괴력: 기본 근력의 500(+250)%

*소모 공덕: 20

*쿨타임: 12시간 / 1회

*[상급 증폭] 효과가 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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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능력을 본 민호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단 일격에 한해 초인적인 괴력을 낼 수 있는 능력.

객관적으로 보면 꽤 쓸 만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단, 민호가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면 말이다.

“와, 이건 진짜 어디에 써먹어야 될지 모르겠네.”

몇 분 동안 고민을 해봤지만 도무지 존재 이유를 알 수가 없는 능력이었다.

이에 민호가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리던 그때.

잠자코 있던 율이 입을 열었다.

“저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요?”

“응? 어떤 면에서?”

“호신용으로요.”

그 말에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본 근력의 8배에 달하는 힘으로 사람을 친다?

그건 더 이상 호신용이 아니었다.

“······내가 천계에 수배당하는 걸 보고 싶은 거야?”

민호가 뚱한 목소리로 묻자 율은 작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니에요. 우음, 예를 들면 마인과 마주칠 때라거나?”

“아, 그런 쪽에서?”

그렇다면 호신용이라는 말도 이해가 간다.

어제처럼 늑대를 부리는 마인이 또 있을 수도 있으니까.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다시 비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Chapter 9. 동료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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