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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31화 (31/182)

< Chapter 8. 마인(魔人) (1) >

Chapter. 8

마인(魔人)

광진 유원지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방문객에게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동물원이라고 말하리라. 입장도 무료일뿐더러 동물의 종류도 많았고 무엇보다 화려한 공연으로도 유명했으니까.

그 중에서도 오직 주말에만 펼쳐지는 돌고래 쇼는 광진 유원지의 간판 공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와, 돌고래다!”

“저기 봐! 상어도 있어!”

쇼가 시작되기 전. 공연장은 수많은 가족들로 붐볐다.

어린아이들은 흥분과 기대에 눈을 반짝였다.

“근데 저렇게 같이 두면 위험하지 않나?”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조련사가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편 어른들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고래와 상어가 같은 수조 안에 함께 있었으니까.

행여나 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은 광경이 나올까 걱정이 든 탓이다.

그때 주변이 스르륵 어두워졌다.

이어 기다리던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우와아아아아!”

공연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여기저기서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돌고래와 상어는 마치 처음부터 같은 종이었던 것처럼 함께 춤을 췄다. 게다가 뒤이어 들어온 거북이와 온갖 해양생물들도 화려한 공연에 동참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연출에 관객들은 열광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와, 괜히 간판 조련사가 아니구나.”

“멋지다! 잘 생겼다!”

열광의 도가니로 변한 관객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노인으로 변한 민호가 섞여있었다. 그는 차분한 눈빛으로 공연을 펼치는 정환의 손목을 지그시 바라봤다.

수수한 모양의 은색 팔찌.

민호가 회수해야할 기적이었다.

=====

[웅녀(熊女)의 팔찌]

*등급: 을(乙)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신화 속 팔찌

*장착 시, 모든 종류의 동물에게 사랑받는다.

*장착 시, 모든 종류의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

정환이 저런 환상적인 쇼를 펼치는 게 가능했던 이유.

바로 저 기적 덕분이었다.

“조련사에게 있어선 최고의 기적이네요.”

잠자코 있던 율이 한 마디를 보탰다. 민호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때, 기나긴 공연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인기 조련사 오정환이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멋지다!”

환호하는 관객들을 마주보며 정환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아까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

잠시 후, 정환이 무대 밖으로 사라지자 민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공연이 끝난 후, 조련사 대기실.

쾅!

누군가 문을 거칠게 발로 찼다. 정환이었다. 신경질적인 얼굴로 소파에 앉은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하, 진짜 애새끼들. 하여간 끈덕지게 달라붙는다니까.”

정환은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중얼거렸다.

“사인은 무슨 사인이야. 받으면 그냥 집구석에 던져놓을 것들이.”

연신 툴툴거리는 정환.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성이 능숙하게 그를 달랬다.

“에이, 다 선배님이 멋지셔서 그런 거죠.”

파마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성.

그녀의 명찰엔 조련사 최소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보다 물 한잔 드세요. 더워보이시는데.”

“어, 땡큐.”

소진의 칭찬에 기분이 좀 풀린 걸까?

정환은 군말 없이 목을 축였다.

잠시 후, 소진을 연신 힐끗거리던 정환이 입을 열었다.

“최소진.”

“네?”

“너 일 끝나고 뭐하냐?”

“집에 가서 쉬어야죠. 왜요?”

그 말에 정환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화색을 띠었다.

“할일 없으면 술이나 마시러 갈래?”

“술이요? 오늘 회식 있었어요?”

“회식은 아니고, 그냥 단둘이 가서 마시자고. 내가 사줄게.”

“아~ 죄송해요. 생각해보니 어제 실컷 마셔서 오늘은 좀 쉬어야할 거 같네요.”

묘하게 냉랭하게 들리는 목소리.

이어 짐을 챙긴 소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들어갈게요. 주말 잘 보내시구요.”

그 말을 끝으로 소진이 대기실을 나섰다.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정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어깨를 부르르 떤 그가 돌연 쓰레기통을 거칠게 걷어찼다.

콰앙!

“하!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존나 튕겨대네.”

씩씩거리던 정환이 벌떡 일어났다.

소진이 나간 곳을 노려보던 그의 눈에 핏발이 섰다.

“너 말고 같이 술 마실 년이 없는 줄 알아? 씨발, 진짜 더러워서······.”

욕지거리를 내뱉은 정환은 그대로 대기실을 나섰다. 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텅 빈 대기실은 적막함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아무도 없을 대기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격 정말 더럽네요.”

“그러게.”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율과 민호.

민호는 도깨비감투를 쓴 채, 줄곧 정환의 뒤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 결과, 정환의 본질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러자 그때, 허공에서 몸을 빙그르르 돌린 율이 민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테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이세요?”

“······하아, 생각 중이야. 일단 따라가자.”

민호가 닫힌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정환이 사라져간 곳을 향해 이동했다.

***

대기실을 나선 정환은 여직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집적거렸다. 술이나 가볍게 한 잔하자는 제안. 하지만 여직원들은 대부분 소진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죄송한데 제가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오늘 좀 피곤해요.”

“야근 때문에 안 돼요. 언제 끝나냐고요? 몰라요.”

평소 행실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의 제안에 응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정환의 얼굴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씨발, 이 년이고 저 년이고 진짜······.”

애꿎은 바닥을 걷어차던 정환.

한숨을 내쉰 그가 향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공원이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과자, 소시지를 사온 그는 벤치에 앉아 연신 술을 들이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곁에는 빈 소주병이 쌓여갔다. 그리고 민호와 율은 멀리서 그런 정환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율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아무래도 점점 마인(魔人)으로 변하는 것 같네요.”

“마인? 그게 뭐야?”

생소한 단어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율은 굳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기적을 받았음에도 타락에 물든 자들을 뜻해요. 저마다 모종의 이유로 성정이 포악하게 뒤틀리고 심한 경우에는 기적을 악용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기까지 하죠.”

그녀의 말에 민호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환은 아직 직접적인 피해를 일으키진 않았다. 하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조만간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인을 상대하는 건 전달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러니까 그 전에 빨리 시험을 치르고 기적을 회수해야만······.”

율이 말을 이어나가던 그때.

바스락-

정환의 근처에 있던 수풀이 가늘게 떨렸다.

잠시 후, 공원을 배회하던 유기견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었다.

정환이 먹고 있던 소시지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이를 발견한 정환은 돌연 두 눈을 반짝였다.

“이리와. 이리오렴.”

그가 소시지를 내밀자 강아지는 주춤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경계를 푼 강아지가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옳지, 그래. 자자, 와서 여기 소시지 먹고 가.”

미소를 지은 정환이 강아지에게 소시지를 내밀었다.

챱챱-

꼬리를 흔들며 소시지를 먹는 강아지.

그 광경에 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사람은 싫어하지만 동물은 좋아하는 걸까요?”

“그런 기적을 받은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네.”

율과 민호의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정환은 마치 둘의 말이 틀렸다고 증명하기라도 하듯, 대뜸 강아지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퍼억-!

“깨갱!”

“······!”

갑작스러운 상황에 민호와 율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정환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다시 발을 들었다.

그러고는 도망치려는 강아지를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퍽! 퍽퍽!

“깽! 끼이잉! 끼잉!”

“으아아아! 시끄러, 시끄러워! 닥쳐!”

귀를 틀어막은 정환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그러더니 돌연 그의 몸이 움찔거리며 떨렸다. 잠시 후, 정환은 매섭게 변한 눈매로 다시 강아지를 걷어찼다. 이어 그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좆같은 년! 개 같은 년! 네, 네까짓 게 뭐라고 날, 나를, 날 무시해?!”

우드득-!

그때 강아지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몸이 축 늘어진 강아지.

“후우, 후우!”

정환은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눈이 짜증과 분노로 번들거렸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에라, 퉤!”

정환은 강아지의 시체에 침을 뱉었다.

그것도 모자라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 발로 툭툭 건드리기까지 했다. 수풀 사이로 시체를 밀어 넣은 그는 아직 화가 덜 풀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흐으! 이걸론 안 돼. 부족해.”

정환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좀 더, 좀 더 기분을 풀 만한 게······.”

그때 그의 눈이 달빛에 비쳤다.

광기와 흥분으로 희번덕거리는 눈빛.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닌 모습이었다.

잠시 후, 그는 더욱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정환이 완전히 사라지자 민호는 쓰고 있던 도깨비감투를 벗었다.

“······율아.”

민호의 목소리가 분노로 가늘게 떨렸다.

“이래도 시험이 필요할까?”

“아뇨. 이번엔 그냥 바로 회수해도 될 것 같네요.”

율이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는 행동은 그 어떤 시험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다. 도를 넘어선 정환의 행동에 율은 분노했다.

“마인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회수하러 가요.”

민호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별안간 비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달자님.]

[특별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특별 임무?”

이 타이밍에 갑자기 무슨 특별 임무란 말인가?

민호가 의아한 듯 묻자 비단이 말을 이었다.

[네, 수락하시겠습니까?]

“일단 보여줘.”

대답이 끝나고 얼마 후.

민호의 앞에 새로운 임무창이 나타났다.

=====

*난이도: -

*임무: 영물의 복수를 저지하라.

*설명: 대상(오정환)에게 자식을 잃은 영물이 끔찍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다. 영물이 악덕을 쌓는 걸 막고, 대상의 기적을 속히 회수하라.

*임무 마감: 1시간 4분

*보상: 공덕+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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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임무는 지금껏 나온 임무와는 사뭇 달랐다.

난이도 표시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임무 내용이 기적을 전달하는 것과도 전혀 관련이 없었다. 율도 이상한 걸 눈치 챘는지, 비단을 향해 항의했다.

“잠깐만요! 이건 원래 토벌자가 할 일이잖아요. 전달자에겐 너무 위험한······.”

[토벌자는 현재 부재중입니다.]

[현재로썬 부탁할 이가 전달자님밖에 없습니다.]

[임무를 수락해주시겠습니까?]

비단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간절하고 다급한 목소리.

이유는 모르겠지만 비단은 특별임무에 언급된 영물을 꼭 구하고 싶은 듯했다.

이에 민호는 비단을 향해 물었다.

“영물을 도와주고 싶은 거야?”

그러자 잠시 후, 비단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

작지만 또렷한 대답.

민호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임무를 수락할게.”

“주인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율이 당황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민호는 결정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이걸 수락하지 않으면 회수 임무도 실패할 거야.”

자식을 잃은 부모가 할 수 있는 끔찍한 복수.

그건 아마도 대상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리라.

정환이 죽으면 임무는 실패하게 된다. 이에 민호는 영물이 정환에게 복수하기 전에 그를 막고, 기적을 회수하고자 했다.

“그리고 비단이도 우리 동료잖아.”

평소와 사뭇 다른 비단의 반응.

여기서 민호는 이번 특별임무가 그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울 땐 함께 도와야지.”

민호가 말을 덧붙이자 율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에휴. 알겠어요. 이번만큼은 예외로 두기로 해요.”

거기까지 말한 이상, 율은 더 이상 민호를 말릴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비단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에 민호는 곧장 정환이 사라진 곳을 쳐다봤다.

“그럼 서두르자.”

“네!”

정환이 모습을 감추기 직전.

달빛에 비친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좋지 않은 예감에 민호는 서둘러 발을 옮겼다.

< Chapter 8. 마인(魔人)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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