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을 전해드립니다-29화 (29/182)

< Chapter 7. 행복의 가치 (4) >

선민의 질문에 민호는 잠시 고민했다.

원래 민호는 노래를 썩 많이 듣는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중히 골라야만 했다. 잠시 망설이던 민호는 이내 동석 삼촌이 일터에서 곧잘 흥얼거렸던 노래를 떠올렸다.

“조금 옛날 노랜데, 동백 아기씨라고······.”

“아, 다행히 그 노래는 알고 있습니다.”

선민이 다행이라는 듯 웃었다.

잠시 후, 그의 손가락이 기타의 줄을 튕겼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난 이후에도 민호는 몇 차례 신청곡을 부탁했다. 귀찮을 법도 했건만 선민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민호의 요청을 들어줬다.

그러자 그때, 율이 돌연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아! 혹시 테스트를 하시는 건가요?”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율.

그녀는 민호와 선민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뭐, 조금 미묘하지만 이런 것도 테스트의 범위 안에 들어가긴 하죠.”

율은 민호가 무작정 신청곡을 연달아 요청하는 모습을 시험이라고 착각한 듯했다. 이에 민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선민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민호가 신청한 일곱 번째 신청곡이 거의 끝나갈 무렵, 광장 인근은 어느새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한 결 같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얼굴이었다.

“와, 오늘 무슨 공연한다고 했나?”

“그러게. 완전 잘 친다.”

“피아노곡도 꽤 듣기 좋구나.”

그들은 민호와 선민에게 등을 돌린 채, 맞은편에서 하는 피아노 공연을 보고 있었다. 캐주얼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연주는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끌어당겼다.

광장은 어느덧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선민을 바라보는 이는 오직 하나, 민호뿐이었다.

디리링-

그때 선민의 연주가 끝났다.

그러자 민호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말을 걸었다.

“고맙네. 덕분에 귀가 호강했어.”

“별 말씀을요. 제가 더 고맙죠.”

선민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는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옅게 웃었다.

“처음부터 계속 봐주셨잖아요? 시계탑 밑에서요.”

그 말에 민호는 깜짝 놀랐다. 앞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민호가 서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맞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알았나?”

“다른 곳에선 발자국 소리가 들렸는데 거기서는 처음부터 같은 소리만 들렸거든요.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와 대화소리, 그리고 영감님의 숨소리요.”

선민은 민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눈이 보이질 않아서 소리로 구분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렇구먼. 힘들진 않나?”

“익숙해요. 태어났을 때부터 이랬거든요.”

그가 씨익 웃었다.

솔직함이 배어있는 미소였다.

“만약에, 만약에 말일세.”

그러던 중 민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의아함이 가득 깃든 눈빛과 함께.

“눈을 뜨게 해주는 약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게 만드는 약이 있네. 두 가지 약 중에서 오직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뭘 선택하겠는가?”

“주, 주인님?!”

그때 율이 답지 않게 당황했다.

“기적에 관한 정보를 누설하면 안 돼요! 그랬다간 징계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녀는 황급히 민호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징계라는 말에도 민호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저 선민에게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선민의 입이 열렸다.

“후자요. 노래 잘하는 약.”

그 대답과 함께 민호의 표정에 금이 갔다.

선민은 마치 이를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피식거렸다.

“지금 속으로 ‘왜?’라고 생각하셨죠?”

“······허허, 들켰나보이.”

민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선민은 말없이 기타의 줄을 튕겼다.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를 시작으로 선민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전 태어날 때부터 이랬어요. 한 번도 세상을 본 적이 없었죠.”

선민은 선천적으로 앞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한 방법은 거의 전무했다.

영국에서 마이크로칩을 안구에 심어 시력을 약간이나마 회복하는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선민의 집은 그런 걸 시도해 볼 정도로 부유하지 못했다.

그렇게 선민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전 세상을 상상했어요. 태양은 이렇게 생겼겠지? 하늘은 이런 모양일 거고, 파란색은 이런 색이겠구나. 그러면서 저만의 세상을 만들어갔죠.”

세상은 만든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가르쳐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선민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게 즐거웠다. 그 증거로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엔 즐거움이 잔뜩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제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게 바로 음악이에요.”

선민이 기타를 톡톡 두드렸다.

“음악을 계속 듣고 있으면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 곡을 작곡했는지, 이런 가사를 썼는지 떠올리게 돼요. 그러면서 제 세상은 더 넓어지고, 더욱 견고해지죠.”

와아아아아-!

그때 별안간 맞은편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피아노 연주가 끝난 모양이었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광장으로 걸어 나와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모든 박수소리가 그녀를 향했다.

광장의 모든 불빛이 그녀를 비췄다.

그 덕분에 반대편 광장은 점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완전히 검게 물든 세상 속에서.

민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노래는 언제부터 부른 건가?”

“학생 때부터요. 14살부터였나?”

기억을 더듬던 선민이 씨익 웃었다.

“지금 들으면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제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물론 글로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음악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을 통해 저만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으니까, 저도 똑같이 음악으로 제 세상을 표현하려고 했죠.”

선민의 손가락이 기타 줄을 튕겼다. 조금 힘이 없어 보였다.

“근데 스케치는 할 수 있는데 나머지가 다 안 돼요.”

“나머지?”

“네. 선을 따거나 어울리는 색을 찾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 대답을 끝으로 선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보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사실 전 지금도 행복합니다. 이렇게 주말이면 공원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또 영감님처럼 제 노래를 들어주는 분도 계시니까요.”

선민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이는 미소였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숨기는 것도 없이 순수하고 행복한 미소. 그와 함께 선민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노래를 좀 더 잘 부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좀 더 제 세상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

그 대답에 민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처음 선민을 봤을 때, 그는 이 기적보단 눈을 뜨게 해주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더 선민에게 있어 필요한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선민에게 있어 더 행복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제 3자가 섣불리 판단한 것에 불과했다.

쓸데없는 오지랖이자 오만이었다.

‘······그렇구나.’

선민은 이미 행복 속에 살고 있었다.

진솔함이 묻어나오는 미소가 그 증거였다. 또 그가 진심으로 바란 것이 앞을 보는 게 아닌, 노래 실력이라는 것도 증거 중 하나였다.

‘행복의 가치는 남이 멋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냐.’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함께 민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선민을 위해서 행동했지만, 결국 그의 행복을 멋대로 판단하고 결정했다는 것에 대해서.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민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얼굴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민호는 애써 침착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흠흠, 그렇구먼. 실없는 소리 들어주느라 고마웠네.”

“뭘요. 저도 오랜만에 제 이야기를 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신청해도 되나?”

“그럼요. 이번엔 어떤 걸 들려드릴까요?”

선민이 자연스럽게 기타에 손을 가져다댔다. 그의 손가락에 있는 굳은살을 바라보며, 민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의 세상을 들려주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하, 하하.”

잠시 후,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린 선민.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얼굴과 함께, 선민은 물기가 조금 묻어나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처음이에요. 제게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말을 흐리던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선민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 민호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에게 인사를 하는 가수처럼.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선민이 기타 줄을 튕겼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까? 맞은편에서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잔잔한 멜로디가 선민의 기타 소리와 얽혀 오묘한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후우.”

선민의 긴장 섞인 한숨과 함께 민호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의 세상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기에. 무엇보다도 선민의 세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였다. 곧이어 선민이 연주하는 그의 세상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어두웠다. 그리고 조용했다.

간신히 귀를 기울여야만 멜로디가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멜로디는 점점 또렷하게 변해갔다. 이어 선민의 목소리가 노랫가락으로 변해 세상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들려주는 세상은 복잡했다.

멜로디는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좋았고, 노래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의 세상이 어떤 건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아······.’

선민의 노래가, 그가 내뱉고 있는 모든 것이 그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울 수 없었다. 멋있을 수 없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그의 노래는 아름답기 위해, 멋있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었으니까.

툭-

그때 별안간 광장 일대의 불이 모두 나갔다.

“뭐야? 정전?”

“아, 뭔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선민의 노래도 함께 멎었다. 갑작스럽게 내려앉은 어둠에 광장은 소란스럽게 변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눈을 감고 있던 두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광장 일대의 불이 복구되자, 굳게 닫혔던 민호의 입이 열렸다.

“잘 들었네. 뭐랄까, 함부로 말을 못하겠군.”

선민의 노래는 민호가 함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노래로 보여줬던 그의 세상은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그만을 위한 것이었기에.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래서 민호는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더 듣고 싶군. 자네의 세상을 말이야.”

“콜록! 감사합니다. 지금의 제게 있어선 최고의 칭찬입니다.”

민호의 말을 들은 선민이 활짝 웃었다.

조금 쉰 그의 목소리에 민호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가왕의 목캔디를 꺼냈다.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이거라도 좀 들게나.”

“아! 목캔디네요. 감사히 먹겠습니다.”

손을 뻗어 더듬더듬 목캔디를 받아든 선민.

그는 망설임 없이 곧장 가왕의 목캔디를 입에 넣었다. 민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선민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잡았다.

“언젠가 자네의 세상을 자네가 보는 만큼 듣고 싶군.”

이는 진심이었다.

그의 노래는 사람을 잡아당기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민호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선민은 사뭇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땐 반드시 초대해드릴게요. 영감님이 제 세상을 들어준 첫 번째 관객이니까요.”

“허허, 기대되는구먼.”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악수를 나눴다.

이후 선민은 기타를 챙겨 광장을 떠났다. 민호는 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것이 훌륭한 공연을 보여준 가수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선민이 사라지자 율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날이 갈수록 연기가 느는 것 같네요. 역시 주인님은 전달자 체질이에요!”

그녀의 칭찬을 들으며 민호는 도깨비 수염을 떼어냈다.

잠시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그는 몸을 돌려 율을 돌아봤다.

“율아.”

“네?”

“그건 그렇고 기적에 관해 누설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건 뭔 소리야?”

민호가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일순간 율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마치 죄인처럼 안절부절 못하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그건······. 헤헤, 제가 말하는 걸 깜박하긴 했는데······.”

그 말에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심상찮은 반응에 율은 반사적으로 이마를 가렸다.

“말할게요! 대상에게 전달자라는 걸 밝힌다거나 기적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누설할 경우, 천계에서 징계를 받아요. 징계 수위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악의 경우 수배령이 내려질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

“뭐, 잡히면 인생 망하는 거죠. 꺅!”

마치 남 일처럼 말하는 율의 모습에 민호는 곧장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민호는 이마를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은 율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런 중요한 정보는 생각나면 바로 말하라고 했지.”

“히잉, 네······.”

율이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음부턴 한 대로 안 끝날 줄 알아.”

“네, 네! 앞으로 잘 할게요!”

다시 꿀밤을 먹이려는 시늉을 하자, 율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웠기에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첫 번째 임무는 완료했으니 다음은······.”

별 3개짜리 회수 임무를 하러 갈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한 민호가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별안간 그의 앞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 Chapter 7. 행복의 가치 (4)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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