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7. 행복의 가치 (3) >
시간은 흘러 어느덧 오후 6시.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이 돼서야 민호의 알바가 끝났다.
“수고했어. 자, 여기 일당.”
“감사합니다.”
민호는 사장이 건네준 흰 봉투를 품에 넣었다.
그때 사장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보니까 일 잘하던데······. 계속 나올 생각은 없나?”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까 직원이랑 트러블이 좀 생겨서요.”
“직원? 누구?”
“오정환이라는 사람이요. 조련사 복장 입고 있던······.”
“아, 그 성질 더러운 양반이구먼.”
사장이 순간적으로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잘 아시는 분인가요?”
“알다마다. 여기서 그 양반 모르면 간첩이야.”
사장은 얼굴을 찌푸린 채 정환의 이야기를 꺼냈다.
조련사 오정환.
그는 이곳 유원지의 조련사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남자였다.
사나운 맹수도 그의 앞에선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피웠으며, 동물들을 다루는 묘기 또한 실로 환상적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펼치는 공연에 열광했고, 그에 비례해 정환은 점점 유명세를 탔다. 예전에는 TV에도 고정적으로 출연할 정도였다.
“근데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변하더라고.”
“언제부터요?”
“글쎄. 작년 이맘때부터였나?”
사장이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원래 정환은 겸손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순박하고 동물을 좋아하는 청년.
하지만 작년 이맘때부터 성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진하에게서 들었던 정보와도 어느 정도 일치했다.
-변화의 조짐은 재작년 겨울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점점 성격이 예민해지다가 히스테리도 곧잘 부렸다는군.
그러던 중 기억을 더듬던 사장이 뭔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었다.
“맞아. 또 소문으로는 동물을 막 학대한다거나 그렇다는 얘기도 들리긴 했었어.”
“동물을 학대해요?”
“응. 뭐 결국엔 증거가 없어서 헛소문으로 끝났지만.”
사장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원······. 쯧쯧.”
사장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그러고는 곧 민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튼 더운데 수고 많았네. 나중에 시간되면 또 나오고.”
“넵,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세요.”
공손한 작별 인사를 끝으로, 민호는 상점가를 벗어났다.
그러자 율이 배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 임무 시작인가요?”
“그래.”
“어떤 임무부터 하실 거예요?”
“일단 쉬운 것부터 처리하자.”
그 말과 함께 민호는 공원 뒤편으로 이동했다. 으슥한 곳이라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이에 민호는 곧장 도깨비 수염을 붙였다.
“완벽하네.”
얼굴이 노인으로 변한 것을 확인한 민호가 씨익 웃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사전에 계획 했던 대로 대상을 시험하고 기적을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분수 광장은 저쪽이네요.”
민호의 어깨에서 날아오른 율이 동쪽을 가리켰다.
***
오늘 첫 임무의 대상, 문선민.
그는 매주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연주를 한다.
장소는 그때마다 다르지만, 가장 많이 공연한 장소가 바로 저 곳, 분수 광장. 그래서 민호는 대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분수 광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바닥에서 시원하게 솟구치는 물줄기를 맞아가며 즐겁게 웃는 아이들.
손을 잡은 채, 노을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는 커플.
벤치에 앉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노부부까지.
분수 광장은 산책을 하러 나온 가족들로 북적였다.
“어디보자. 대충 이쯤일 텐데······.”
민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을 훑으며 하나하나 상태창을 띄워봤지만 선민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에이, 여기는 꽝인가 보다.”
그렇게 중얼거린 민호가 몸을 돌리던 그때!
율이 민호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주인님. 혹시 저 사람 아니에요?”
“누구?”
“저기요! 저 커다란 개를 끌고 있는 사람이요.”
민호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율의 말대로 커다란 개를 끌고 다가오는 한 청년이 있었다.
=====
*이름: 문선민
*나이: -
*공덕: 2,409
*악덕: 19
*성향: -
=====
“진짜네? 그런데······.”
그는 민호가 찾던 선민이 맞았다.
그런데 선민을 보던 민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갈색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다듬은 선민은 커다란 기타 케이스를 등에 맨 모습이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다만 신경 쓰이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해가 다 저물어가는 저녁임에도 선민이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지팡이로 바닥을 더듬으며 걷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에 민호는 눈이 점점 커졌다.
“설마······.”
그때 선민이 민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민호는 선민과 함께 있는 개의 등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고 적인 글귀를 발견했다.
“눈이 안 보이는 건가?”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때 선민이 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광장 중앙부근에 놓인 빈 벤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벤치가 눈앞에 있음에도, 선민은 손을 더듬거리며 조심스럽게 벤치에 앉았다.
그 광경은 민호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어? 진짜네요. 이런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
율도 깜짝 놀랐다는 듯 말했다.
한편 벤치에 앉은 선민은 등에 맨 기타를 꺼내 들었다.
의자에 앉을 때와는 달리, 능숙한 솜씨였다.
“아, 아아.”
선민이 목을 가볍게 풀었다.
잠시 후, 헛기침과 함께 그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첫 노래를 시작했다.
“음~ 그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가요였다.
선민의 노랫소리에 광장을 오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음을 멈췄다. 민호 역시 멀리서 이를 지켜봤다. 그렇게 첫 노래가 끝나자 몇몇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민이 고개를 숙이며 싱긋 웃었다.
물로 목을 가볍게 축인 그는 다시 기타를 잡았다. 두 번째 노래를 시작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민의 노래를 들을 생각이 없는 듯, 다시 저마다 대화를 나누거나 자리를 떠났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의 노래 실력이 평범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퍼포먼스가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공연.
선민의 공연에는 관객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무언가가 없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사랑을 시작했죠~”
두 번째 공연이 시작됐지만 선민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던 중 민호와 마찬가지로 선민을 지켜보던 율이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물었다.
“이제 어쩌죠?”
민호와 율이 세운 계획은 선민의 눈앞에서 동정심을 유발해, 그의 도움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민은 앞을 보지 못했다.
그럼 기껏 세운 계획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민호의 입이 열렸다.
“왜 눈이 보이게 해달라고 빌지 않았을까?”
“네?”
뜬금없는 말에 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민호는 선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노래 실력보다는 시력을 되찾는 게 먼저라고 생각되지 않아?”
민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노래도 재능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노래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예를 들면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거나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력은 아니었다.
시력을 회복시키는 건 노래를 잘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수술을 하면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겠지만 기증자를 찾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울뿐더러, 설령 수술을 해도 백 퍼센트 성공한다고 장담하기 힘들었다.
“우음, 글쎄요. 그 식당 아주머니한테 전달했을 때랑 비슷한 케이스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노래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되는데······.”
선민을 바라보는 민호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그가 혼란스러운 심정을 숨기지 못하던 그때.
갑자기 자그마한 꼬마아이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제 막 예닐곱 정도나 되었을까?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그 남자아이는 선민을 향해 돌연 휴대폰을 불쑥 내밀었다.
“아저씨! 혹시 이거 연주해줄 수 있어요?”
“응? 무슨 노래?”
“이거요, 이거!”
아이가 휴대폰을 선민의 눈앞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선민은 그제야 휴대폰의 존재를 인식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한테 소리 좀 키워줄래? 아저씨가 눈이 잘 안 보이거든.”
그 말에 아이는 곧장 볼륨을 올렸다.
동시에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저 아이 또래에게 요즘 한창 유행하는 동요의 멜로디였다. 선민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곧 손가락으로 줄을 튕겼다.
딴딴 딴-
“이렇게 하면 되니?”
“우와! 네, 맞아요!”
아이의 얼굴이 밝게 물들었다.
동시에 선민은 연주를 시작했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던 것과 똑같은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아이는 흥이 난 듯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기 숭어. 뚜루루뚜루. 귀여운 뚜루루뚜루~”
뒤뚱거리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아이.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던지 오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즉석에서 시작된 작은 공연이 끝나자 아이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외쳤다.
“아저씨 혹시 가수에요?”
“아니, 그냥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아저씨야.”
“아닌데, 완전 가수 같았는데······.”
“하하, 고맙다. 덕분에 힘이 좀 나네.”
웃음을 터뜨린 선민이 빙그레 웃었다.
그때 아이의 어머니처럼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아이를 불렀다.
“희민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인사드리고.”
“네! 아저씨, 노래 정말 좋았어요. 헤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렴.”
선민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가 사라지자 선민은 다시 노래를 재개했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만 갔다. 시간이 흘러 일곱 번째 곡을 불렀을 때는 박수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선민은 노래를 계속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물로 목을 축인 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한숨소리.
고개를 든 선민은 어딘가 개운치 못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던 선민은 가만히 앉아있는 안내견에게 손을 뻗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갈까?”
“멍!”
안내견은 마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민은 기타를 케이스에 집어넣으며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율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요.”
대상이 앞을 보지 못하면 계획은 무용지물이다.
차선책도 생각해온 게 없었기에 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계획을 세우고 다음에 다시 오는 게······.”
그런데 그때, 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인님?”
대답이 없던 민호가 별안간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선민이 앉은 벤치.
“주인님! 자, 잠깐만요.”
민호의 돌발행동에 율은 황급히 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보다 민호의 걸음이 좀 더 빨랐다.
한편, 민호의 접근을 인식한 선민이 고개를 돌리던 순간!
민호의 입이 열렸다.
“노래 잘 들었네.”
“네? 아, 감사합니다.”
“미안하지만 혹시 신청곡 받아줄 수 있나?”
공연은 끝났다.
이미 기타 케이스까지 전부 챙겼고, 이제 막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노래를 들려달라는 부탁을 하면 한 번쯤은 망설이기 마련일 터.
하지만 선민은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은 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는 곡이라면 얼마든지요.”
다시 자리에 앉은 선민이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민호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떤 노래가 듣고 싶으신가요?”
< Chapter 7. 행복의 가치 (3) > 끝
ⓒ 남철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