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7. 행복의 가치 (1) >
Chapter 7.
행복의 가치
4월의 마지막 토요일, 광진 유원지.
주말이 으레 그렇듯, 유원지에는 소풍을 나온 커플과 가족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유원지의 상인들도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있습니다!”
“뿌로로 풍선 팝니다! 다른 풍선도 많습니다.”
여기저기서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광경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돌연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기자, 사람들이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났기 때문이었다. 상인들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씩 모습을 감췄다.
“후유. 덥다, 더워.”
그 중에는 민호도 있었다.
그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쨍하게 뜬 태양 너머로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이제 5월이 다 되가는데 왜 이렇게 덥냐?”
민호가 손등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러자 율이 쪼르르 날아와 손으로 부채질을 해줬다.
“이러면 좀 시원하세요?”
“간에 기별도 안 간다.”
율의 귀여운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민호는 손가락을 뻗어 율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민호의 손길에 율은 배시시 웃은 뒤, 그의 어깨 위로 날아가 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뭔가를 떠올린 듯, 무릎을 탁 치며 말을 이었다.
“아, 맞아. 일기예보에 따르면 다음 주부터는 더 더워진다던데요?”
“진짜? 하아, 비나 한바탕 쏟아졌으면 좋겠다.”
“저번 주에는 비 때문에 빨래가 안 마른다고, 해가 좀 쨍쨍하면 좋겠다고 하셨잖아요.”
“원래 사람 마음은 간사한 법이야.”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
돌연 둘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아저씨!”
이제 막 여섯 일곱 살이나 됐음직한 아이
방실방실 웃던 아이가 민호에게 천 원짜리 세 장을 건넸다.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초코 맛으로요.”
“그래, 잠깐만 기다려.”
돈을 받아든 민호는 곁에 있던 아이스크림 기계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잠시 후, 민호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아이에게 건넸다.
“자, 여기 있다.”
“고맙습니다! 히히.”
아이스크림을 받아든 아이는 부모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민호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그의 귓가로 율의 목소리가 와 닿았다.
“설마 임무를 하러 와서까지 일할 생각을 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 장소가 광진 유원지라는 걸 알게 된 민호가 제일 먼저 한 일. 그것은 바로 유원지 내의 일일 알바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민호는 저녁까지 아이스크림이나 솜사탕 등을 판매하는 상점 알바를 맡게 됐다.
“어차피 대상은 저녁 무렵에나 온다며?”
“네. 그건 그렇지만······.”
“그럼 그냥 멍하니 기다리느니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게 낫지.”
민호는 천연덕스런 얼굴로 대꾸했다.
가만히 있어봐야 돈 한 푼 나오지 않는다. 그럼 이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돈을 버는 게 더 현명하고 효율적이다. 민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돌연 그의 귓가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 혹시 너 민호 아니냐?”
무뚝뚝하지만 정감이 섞인 말투.
바로 동석이었다.
“삼촌!”
동석을 발견한 민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머니 모시고 잠깐 나왔어.”
그 말과 함께 민호는 그제야 동석과 손을 꼭 잡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앗! 안녕하세요, 어르신! 동석 삼촌 밑에서 일했던 공민호라고 합니다.”
“아이구, 반가워요. 우리 동석이 잘 좀 부탁해요.”
“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잘 보여야죠.”
민호의 공손한 대답에 동석의 모친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동석은 다시 민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는 넌 여기서 뭐해? 이제 여기서 일하기로 한 거야?”
“아니요. 오늘만 대타로 일하는 거예요. 친구가 하도 부탁해서요.”
민호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율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뭔가 거슬리는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민호는 애써 무시했다. 그러고는 모친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처음 민호는 동석이 모친의 병간호에서 벗어났으니, 다시 일터로 복귀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싶습니다.’
그 말이 동석의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직원들이 모은 돈도 다시 돌려줬다. 그 이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예종대 후문 부근에 작은 상가를 하나 얻어 분식집을 차렸다고 했다.
함께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민호는 마음이 놓였다.
그때 동석과 모친의 대화가 민호의 상념을 깨뜨렸다.
“어머니,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에이. 먹긴 뭘 먹어? 집에 가면 김밥 남은 것도 있잖어.”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나 드세요. 저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옥수수도 있고······.”
동석은 민호의 옆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옥수수를 가리켰다. 버터가 스며들어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군옥수수였다.
“옥수수 하나 드릴까요?”
“아, 혹시 이거 네가 파는 거야?”
동석이 그제야 깨달은 듯 되물었다.
민호는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면 맘껏 고르세요. 제가 쏘겠습니다.”
“됐다. 벼룩의 간을 빼먹고 말지, 어떻게 너한테 얻어먹겠냐? 그냥 솜사탕이나 하나 줘.”
“솜사탕이요?”
“우리 어머니가 좋아하시거든.”
동석의 말에 민호는 반사적으로 그의 모친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흘흘, 다 늙어서 주책이지만 요즘 솜사탕이 그렇게 달고 맛있더구먼.”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제대로 하나 만들어드릴게요.”
민호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잠시 후, 일반적인 것보다 두 배는 더 큰 솜사탕이 만들어졌다. 민호의 현란한 손놀림에 동석은 입을 살짝 벌리며 감탄했다.
“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제가 손재주가 좋아서 이런 건 또 잘하죠.”
넉살좋게 대답한 민호는 동석의 모친에게 솜사탕을 건넸다.
“자, 여기 있습니다.”
“호호, 고마우이.”
“얼마냐? 계산해야지.”
“됐어요. 그보다 이것도 가져가세요. 아, 이것도요.”
지갑을 꺼내려는 동석을 제지한 민호.
그는 가판대에 있는 옥수수와 맥반석 오징어를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석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뭐? 그거 파는 거 아냐?”
“서비습니다.”
“하지만······.”
“에이, 괜찮아요. 정 그러시면 다음에 떡볶이나 한 그릇 만들어주세요.”
씨익 웃은 민호가 동석에게 봉투를 건넸다.
결국 동석은 마지못해 민호의 호의를 받아들었다.
“그래. 고맙다. 잘 먹을게. 나중에 꼭 놀러 와라. 배터질 때까지 먹여주마.”
“넵, 꼭 가겠습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후 동석이 자리를 뜨자 잠자코 있던 율이 입을 열었다.
“돈 벌러 오셨다더니 왕창 쓰기만 했네요.”
“삼촌한테는 그래도 돼.”
민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에게 받은 도움은 이보다 훨씬 크고 많았으니까.
지갑에서 돈을 꺼내 판매금액을 메운 민호는, 저 멀리 있는 동석과 그의 모친을 바라봤다. 두 모자(母子)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함께 걸음을 맞추며 걸어갔다. 그 모습은 퍽이나 사이가 좋아보였다.
“행복해 보이시네.”
민호는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자신이 전달해준 기적으로 인해, 동석은 웃음을 되찾았다. 식당을 하던 순자도 사업이 번창해 최근에는 맛 집으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민호는 새삼스럽게 전달자가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오늘 할 임무나 좀 더 살펴볼까.”
행복해하는 동석을 떠올리자 괜스레 의욕이 났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민호는 오늘 아침, 비단에게서 받은 임무를 눈앞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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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94년 9월 4일생
-오시(午時)에 태어난 문선민(文善慜)
*기적: 가왕(哥王)의 목캔디
*마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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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기적을 받을 이는 민호 또래의 청년.
그는 매주 주말 저녁이 되면 이곳, 광진 유원지로 나와 홀로 노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전달할 기적 역시, 노래와 관련이 있는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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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왕(哥王)의 목캔디]
*등급: 병(丙)
*시대를 풍미한 가왕의 목소리가 집약된 사탕
*복용 시,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실력이 성장한다.
*지속 시간: 최대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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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잘 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능력.
게다가 오늘 아침, 즉석에서 계획도 세워뒀다. 공연 도중, 근처에서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대상이 도와준다면 기적을 전달해주고, 돕지 않는다면 전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걸로 이 임무는 어떻게든 되겠지.”
민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두 번째 임무인데······.”
말을 흐린 민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후, 그는 두 번째로 받은 임무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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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서 기적을 회수하라.
*대상:
-88년 11월 13일생
-축시(丑時)에 태어난 오정환(吳靜奐)
*회수 기적: 웅녀(熊女)의 팔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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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임무에 비하면 훨씬 난이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민호는 기적을 회수하는 임무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좀 부담이 되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이건 너무해요. 원래 별 3개짜리 난이도는 7급부터 받을 수 있는데······.”
그때 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잠시 후, 그녀는 뭔가를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천계에 항의해야겠어요!”
율은 마치 자신에게 불합리한 일이 닥친 것처럼 화를 냈다.
그 모습이 퍽이나 기특하고 고마워서, 민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떻게 하는지도 대강 들었으니까.”
처음 하는 임무라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민호는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진하에게서 기적을 회수하는 방법에 대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먼저 최후의 시험을 치른다고 했지.”
기적을 회수할 때는 전달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치른다. 비록 기적을 악용해서 악덕을 쌓긴 했지만, 그래도 원래는 기적을 받을 정도로 선인(善人)이었기 때문이다.
즉, 일종의 갱생의 기회를 주는 셈이다.
시험을 통과하면 임무를 보류하고 좀 더 유예기간을 준다. 이후 대상이 다시 선인의 길로 발을 들여놓으면, 임무는 자동으로 취소된다.
“하지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전달자가 보기에, 대상이 선인으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이 들면 즉각 기적을 회수한다. 말을 흐린 민호는 품속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 정도 크기의 호리병.
이게 바로 기적을 회수할 때 쓰는 보물이었다.
“이걸 그냥 가져다대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 그럼 자동으로 기적이 빨려 들어올 거예요.”
율의 대답에 민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호리병을 품 안에 넣던 무렵.
문득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앗······!”
뒤이어 들려온 외마디 감탄사.
찰나의 순간에 들려온 탄성이었지만 분명 민호가 알고 있는 음성이었다. 이에 민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어?”
새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
그녀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의 미인이었다. 또 민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여성이기도 했다.
< Chapter 7. 행복의 가치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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