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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24화 (24/182)

< Chapter 6. 공덕 상점 (2) >

“상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비단이 넌지시 제안을 건넸다.

[네, 공덕 상점을 이용해 보시겠습니까?]

“뭐, 그래. 한 번 보기라도 하자.”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민호는 비단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민호를 감쌌다.

“뭐, 뭐야?”

갑작스런 변화에 민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 펼쳐진 곳은 새파란 공간.

바닥 아래에는 흰 구름이 넘실거렸고 사방에서는 기분을 좋게 만드는 꽃향기가 났다. 갑작스럽게 몽환적인 장소로 오게 된 민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공덕 상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처음 보는 얼굴의 여성이 서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검푸른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위로 올려 묶고,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미인.

피부는 희고 고왔으며 사뿐사뿐 옮기는 걸음걸이에는 기품이 넘쳤다.

이윽고 여성이 민호의 코앞까지 당도했을 무렵에서야, 민호는 그녀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깨달았다.

“어, 혹시 네가 비단이야?”

“네. 이 모습으론 처음 인사드리네요.”

비단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잠시 후, 그녀는 민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자,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그리 보십니까?”

“아니, 진짜 선녀처럼 예쁘다 싶어서.”

“······!”

민호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칭찬에 비단의 무표정한 얼굴이 순간적으로 깨졌다. 이어 비단은 연신 헛기침을 한 뒤,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러고는 황급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그럼 전달자님의 등급에 맞는 상점창을 개방하겠습니다.”

얼굴은 숨겼다 해도 당황한 목소리까지 숨기진 못한 듯했다. 늘 기계처럼 말하던 비단이 보여준 의외의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일단 이것 먼저 살펴봐주세요.”

비단이 내민 것은 주의사항이라고 적힌 얇은 가이드북이었다.

=====

[주의사항]

*공덕 상점은 신의 대리인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공덕 상점은 하루 1회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악덕이 500이상일 경우, 공덕 상점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공덕이 100이하일 경우, 공덕 상점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

가이드북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악한 일에 써서는 안 된다거나, 상품을 멋대로 훔쳐 달아날 경우 책임을 면치 못할 거라는 당연한 경고였기 때문이었다.

“다 보셨다면 상품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비단이 손을 내젓자, 곧 주변에 수많은 상품들이 나타났다.

“와우.”

각양각색의 능력과 보물들이 민호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 중에서도 유독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어? 돈으로도 바꿀 수 있어?”

“네. 공덕 100당, 90,350원을 환전할 수 있습니다.”

민호가 가진 공덕으로는 최대 36만원까지 얻을 수 있었다. 36만원이면 거의 2달 치 방세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이에 민호의 눈이 반짝거리던 그때, 비단의 딱딱한 음성이 이어졌다.

“다만 금전은 방문 시, 최대 1회만 환전이 가능합니다.”

그 말에 반짝거리던 민호의 눈이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일단 능력부터 좀 살펴볼게.”

능력들은 모두 구슬 형태로 압축되어 있었다.

게다가 종류만 수십 가지가 넘었다. 민호는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을지 두근거리며 상점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 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야? 왜 다 이렇게 구려?”

민호가 가진 능력에 비하면 대다수의 능력이 쓸모없거나 애매했다.

보물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현금으로 바꾸기만 해야 되나?”

민호의 생각이 점점 환전으로 기울어지던 그때.

마지막 남은 능력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응? 저건······.”

샛노랗게 빛나는 구슬.

민호가 구슬을 집어 들자 능력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

범용) 이해력 강화

*단계: 중급

*이해력이 소폭 상승한다.

*상승율: 20%

=====

그 능력을 본 순간.

민호는 문득 엊그제 도서관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최근, 부쩍 재미를 붙여 공부에 집중하던 중, 막힌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해력을 논하는 부분.

기억력이 강화된 덕분에 뭔가를 외우는 형태의 과목은 자신이 있었지만, 이해력이 필요한 과목은 예외였다. 도서관에서 몇 시간이고 책을 들여다봤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민호는 공부하는 걸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만약 기억력처럼 이해력도 강화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상상만 했던 능력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어디보자. 가격이 얼마지?’

민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판매가: 440(가이드 팁 10%포함)

그가 가진 공덕으로 아슬아슬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근데 여기도 가이드 팁이 있네?”

민호가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것도 율이한테 떨어지는 거야?”

“아뇨. 이건 제게 떨어지는 수당입니다.”

두 눈을 반짝거린 비단이 공손히 대답했다.

그 순간부터, 비단은 마치 열의에 불타는 영업사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민호가 이 능력을 원한다는 걸 알아차린 듯,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공덕 상점의 물품은 다른 이용자에 의해 매진될 수도 있습니다.”

“끄응······.”

율이 말한 적이 있다.

전달자는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닌,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들 역시 민호처럼 공덕 상점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그 사실에 민호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전달자님.”

그때 비단이 담담한 말투로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크게 질러야만 한답니다.”

비단의 말은 비단의 결심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민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이, 그래. 지르자!”

“감사합니다.”

비단은 생긋 웃었다.

동시에 민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공덕 [440]을 소모합니다.

-[이해력 강화]를 구매하셨습니다.

“좋았어!”

그간 모은 공덕이 거의 다 빠져나갔지만 민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임무를 하면 절로 모일 테니까.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을 얻었다는 사실에 민호는 적잖이 기뻐했다.

-보유 공덕이 100미만이므로 상점 이용이 불가능합니다.

-추후 다시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메시지를 끝으로.

다시 새하얀 빛이 민호를 감쌌다.

잠시 후, 눈을 뜨니 민호는 어느새 자취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율이 반갑게 민호를 맞이했다.

그녀는 민호에게 쪼르르 날아왔다.

“쇼핑은 잘 하셨나요?”

“뭐, 그럭저럭.”

민호가 씨익 웃었다.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아, 맞아. 자리를 비우고 계신 동안 전화가 왔었어요.”

“응? 누구한테?”

“관찰자요.”

율의 대답에 민호는 곧장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는 진하에게서 부재중전화가 와있음을 확인한 뒤, 곧장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달칵!

“예, 강진하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하가 전화를 받았다.

“형, 저 민호에요. 전화하셨어요?”

“어, 그래. 혹시 뉴스 봤니?”

“네? 아뇨.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대뜸 뉴스를 봤냐고 묻는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은호 군이라고 했나? 그 아이의 양부모와 관련된 소식인데.”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 부모 같지도 않은 이들이 내뱉은 말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그런 민호의 감정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하는 묵묵히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쪽 집에 화재가 났다.”

“네? 화재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민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명피해는 없지만 재산피해가 꽤 크다고 들었어. 아, 그 가족 딸들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는구나. 식중독이었던가?”

그때 민호와 함께 보고를 듣던 율이 중얼거렸다.

“······슬슬 불행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 같네요.”

악덕을 과하게 쌓은 이에게 내려지는 징벌.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불행의 늪이 시작된 것이리라.

“은호 군을 빨리 빼와서 다행이에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은호도 불행에 휩쓸릴 뻔했다. 그 전에 은호를 빼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민호는 말없이 율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튼 사후 보고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연락한 이유는 다음 임무가 내려와서 정보를 좀 공유하려고 해.”

“벌써요? 꽤 주기가 빠르네요.”

“얘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일이 좀 밀린 거 같더라.”

진하도 천계의 일을 들었는지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이번 임무는 두 개다.”

“진짜요? 어떤 임무들이에요?”

“그건······. 잠깐만. 뭐라고?”

그때 휴대폰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커다란 고함소리. 이에 진하는 혀를 낮게 차며 다시 말을 이었다.

“민호야, 미안한데 자세한 건 문자로 보내줄게. 갑자기 사건이 좀 생겨서.”

“넵, 알겠습니다.”

뚝-

민호의 대답을 끝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진하에게도 바쁜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주인님, 새로운 임무인가요?”

“응. 이번엔 두 개를 한 번에 줄 생각인가 봐.”

“진짜요? 특이하네요.”

“뭐가?”

“보통 동시 임무는 7급부터 받을 수 있거든요. 천계가 일이 많이 밀리긴 밀렸나 봐요.”

율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반면 민호는 기대가 된다는 듯 씨익 웃었다.

“뭐, 나야 좋지. 보상도 두 배로 받을 수 있으니까.”

이제 부쩍 능력을 뽑는데 맛이 들렸다.

게다가 공덕 상점의 존재까지 알게 된 터라 민호는 더욱 의욕이 넘쳤다.

그러던 그때, 별안간 노크소리가 들렸다.

< Chapter 6. 공덕 상점 (2)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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