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6. 공덕 상점 (1) >
Chapter 6.
공덕 상점
4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민호는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을 빤히 응시했다.
평범하게 생긴 가위와 실타래.
하지만 그 능력마저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
[녹이 슨 절연의 가위]
*종류: 보물
*인연을 끊는 신비한 가위.
*인연의 실 한 가닥을 끊고, 기억을 옅게 만든다.
*최대 사용 횟수: 1/1
[낡은 인연의 실타래]
*종류: 보물
*인연을 새롭게 만드는 실타래.
*새로운 인연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최대 사용 횟수: 1/1
*두 보물을 함께 보유할 경우 세트효과 발동
*세트효과: 인연의 실을 관측할 수 있다.
=====
세 번째 임무 대상이었던 은호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 흡수 능력으로 얻은 보상.
그때 잠자코 있던 민호의 입이 열렸다.
“기적이 장비인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흡수가 되는구나.”
민호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율이 돌연 고개를 흔들었다.
“아, 이건 장비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엥? 그럼?”
“등급 때문에 그래요.”
율은 귀엽게 헛기침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이번 기적의 등급은 둘 다 갑(甲)이었잖아요? 주인님이 가진 능력도 마찬가지로 같은 등급이구요.”
“흡수 능력과 동급의 기적이라면, 장비가 아니라 능력이어도 이렇게 소모품으로 지급된다는 소리야?”
“네, 맞아요.”
율의 대답을 들은 민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곧 결론을 내렸다.
“으음, 이건 당분간 쓸 일이 없겠다.”
인연을 끊고 다시 잇는다는 것.
이는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는 힘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당장 은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민호는 서랍 속에 가위와 실타래를 넣어놓으려 했다.
그러자 그때, 율이 재빨리 보물을 낚아챘다.
“앗! 그럼 제가 보관해드릴게요.”
율은 보물을 봇짐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어 민호를 쳐다본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용을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그래.”
민호는 피식 웃었다.
잠시 창밖을 보던 중,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비단이 말이야.”
민호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많이 바쁘긴 한가보다. 아직도 보상을 안 주네.”
임무를 완료한지 벌써 4일째다.
하지만 민호는 기적을 흡수한 것 빼고는 아직 보상을 수령하지 못했다. 이에 테이블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율이 맞장구를 쳤다.
“네, 듣기로는 뭔가 뒷수습을 하느라 일이 밀려있다고는 하는데······.”
그러던 그때였다.
[전달자님의 성적을 집계합니다.]
[현재 달성도: 5/100]
[공덕 획득: +200]
“양반은 못 되는구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장한 비단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기록자의 말대로 일이 조금 밀려있었습니다.]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비단의 음성은 평소와 달랐다.
무미건조한 음성이 아닌, 진심어린 미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괜찮아. 일은 다 처리했어?”
[아직 조금 남았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보상 먼저 지급하겠습니다.]
그 이후 잠시 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잠시 후, 비단은 깜박 잊고 있었다는 듯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 보상을 드리기에 앞서, 몇 가지 안내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전달자님은 최초 3개 임무를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공로를 인정받아 등급이 상승되었습니다.]
“오, 진짜?”
민호가 놀란 듯 반문하자 비단이 긍정했다.
[네, 전달자님의 상태창을 확인해보세요.]
그 말에 민호는 곧장 스스로의 상태창을 띄웠다.
=====
*등급: 8급
*이름: 공민호
*나이: 만 24세
*직책: 신의 대리인: [전달자]
*공덕: 462 [봉인]
*악덕: 0 [봉인]
*성향: 중립(中立)
*달성도: 5/100
*고유능력: [흡수吸收], [심안心眼]
*추가능력: [신체 강화], [기억력 강화], [요리사의 손]
=====
처음 전달자가 됐을 때에 비해, 상태창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던 중.
민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근데 내 공덕이 조금 모자란 것 같은데?”
민호는 지금까지 세 가지 임무를 완료했다.
그 결과, 총 500에 달하는 공덕을 얻었다. 그런데 상태창에 나온 공덕은 그보다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공덕 내역을 조회하겠습니다.]
=====
*임무로 얻은 공덕: +500
*가이드 팁으로 소모된 공덕: -50
*기타 활동으로 얻은 공덕: +12
*조회 결과: 정상
=====
공덕 내역을 살펴보던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이드 팁은 또 뭐야?”
아마 저게 공덕이 부족해진 원인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민호가 묻자 비단은 즉각 대답했다.
[기록자에게 지급되는 수당입니다.]
고개를 돌린 민호가 율을 쳐다봤다.
그녀는 멋쩍게 웃었고, 민호는 그제야 옛 기억을 떠올렸다.
“아, 맞아. 예전에 말했었지?”
“헤헤, 네.”
기록자는 전달자가 보상으로 받은 공덕의 10퍼센트를 수당으로 챙긴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들었던 사실이었다. 이에 민호는 납득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그러고 보니······.”
문득 민호의 뇌리를 스쳐 지나는 게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등급이 올랐으니까 혹시 보상으로 받는 금전도 늘어난 거 아니야?”
예전에 율이 말한 적 있었다.
등급이 높을수록 환전 가능한 금전의 액수가 커진다고.
그리고 민호의 추측은 정확했다.
[네, 맞습니다.]
“진짜? 얼마나 늘어났어?”
민호가 반색하며 물었다.
[현재 전달자님이 수령 가능한 액수를 집계합니다.]
[집계 완료: 90,350원]
[보상을 금전으로 환전하시겠습니까?]
9급 전달자였을 때 받았던 돈은 6만 원 남짓.
단숨에 3만 원 이상이 올랐다.
이 정도면 당일 알바를 하루 뛰었을 때 받을 수 있는 금액과 비슷했다.
“응, 일단 첫 번째 보상만 금전으로 부탁해.”
민호는 나름 만족한 듯 웃었다.
[환전을 완료했습니다.]
[전달자님께 90,350원이 지급됩니다.]
툭! 투둑-
민호의 눈앞에 화폐와 동전이 떨어졌다.
[추가 보상을 선택해주세요.]
이어진 비단의 말에 민호는 두말할 것도 없다는 듯 씨익 웃었다.
“당연히 능력 뽑기지.”
민호는 아직 전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비단은 바로 뽑기에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그럼 능력 뽑기를 시작합니다.]
“제발 이번에야말로 전귀가 걸리기를······!”
기도하듯 양손을 공손하게 모은 민호.
그가 간절히 중얼거렸다.
잠시 후, 민호의 귓가로 비단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당혹스러움과 착잡함이 적절히 섞인 한숨이었다.
[능력을 뽑았습니다.]
[추가 보상의 지급이 완료되었습니다.]
민호의 앞에 새로운 능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B-874) 증폭(增幅)
*단계: 상급
*등급: 을(乙)
*모든 능력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증폭량: +50%
전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운도 지지리 없지. 또 꽝이네.”
그러자 그때 율이 민호를 불렀다.
“······주인님.”
“응?”
“혹시 전생에 옥황상제님 아들이었어요?”
“뭔 소리야? 그랬으면 금수저로 태어났겠지.”
민호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제 갓 8급이 된 전달자가 갑(甲)급의 고유 능력에 을(乙)급의 능력을 두 개나 갖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예요!”
율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능력이 매번 이렇게 좋게 나올 수 있어요?! 조작 아니에요?”
“야, 조작이 가능했으면 전귀부터 뽑았어.”
“그러니까 이건 그딴 쓰레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능력이라니까요?! 가지고 계신 능력 몇 개만 살펴보시면 바로 알 거예요.”
율의 성화에 이기지 못한 민호는 마지못해 능력 몇 개를 눈앞에 띄웠다.
그러고는 곧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신체 강화]
*모든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
*상승률: +10(+5)%
*[상급 증폭] 효과가 발동 중이다.
[기억력 강화]
*기억력이 대폭 강화된다.
*상승률: 30(+15)%
*[상급 증폭] 효과가 발동 중이다.
=====
민호는 그제야 증폭 능력의 사기성을 깨달았다.
“와, 미쳤네.”
“그렇죠? 그것도 상급 증폭이에요. 상급!”
“하급 증폭도 있어?”
“네. 그건 증폭률이 달랑 10%밖에 안 돼요.”
“음, 확실히 좋은 걸 뽑긴 뽑았구나.”
“그렇다니까요!”
율이 거보라는 듯 외쳤다.
“아, 그럼 혹시······.”
눈을 휘둥그레 뜬 민호가 서둘러 새로운 능력창을 꺼냈다.
=====
999) 흡수(吸收)
*등급: 갑(甲)
*임무를 완수한 뒤, 기적을 일부 흡수한다.
*흡수율: 10~30%
=====
“엥?”
“왜 그러세요?”
“이건 왜 증폭이 적용되지 않지?”
고유능력 흡수의 상태창을 본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율은 뭔가를 눈치 챈 얼굴로 물었다.
“혹시 흡수 능력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응.”
“등급이 높아서 그래요.”
“상급 증폭보다 등급이 높아서?”
“네. 참고로 말씀드리면 증폭 효과는 동급의 능력에도 적용이 안 돼요.”
확실히 그랬다.
심안(心眼)에도 증폭 효과가 적용되지 않았으니까. 이를 확인한 민호는 살짝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어쩔 수 없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이니까.”
민호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무렵.
갑자기 비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안내 사항이 하나 더 남았습니다.]
“뭔데?”
민호가 묻자 비단이 곧장 대답했다.
묘하게 기뻐하는 목소리로.
[8급부터는 ‘공덕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 Chapter 6. 공덕 상점 (1) > 끝
ⓒ 남철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