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 새천사 보육원 (3) >
“오랜만이네. 재작년 겨울 이후로 처음 보는 건가?”
“네? 아······.”
갑작스럽게 들려온 민호의 목소리.
하영은 화들짝 놀란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으응. 그, 그런 것 같아요.”
고개를 푹 숙인 하영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 우리 사이에 무슨 존댓말이야.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그, 그치만 조금 어색해서······.”
“하긴 꽤 오랫동안 못 봤으니까.”
민호는 금세 납득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지 않은 게 2년 전이다.
게다가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의 중학교 졸업식에서였다.
사이가 충분히 어색해질만한 공백이리라.
“아아, 그러고 보니 이제 고등학교 졸업했겠구나.”
민호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대학 다니고 있는 건가? 어디 대학교인지 물어봐도 돼?”
하영은 올해로 딱 스무 살이다.
이를 떠올린 민호가 조심스럽게 묻자, 하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예, 예종대 피아노과요.”
“그래, 예종대면 나름 음대로 유명하니······. 뭐? 예종대?”
민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너 우리 학교였어? 그런데 왜 말을······.”
말을 잇던 민호가 재빨리 입을 닫았다.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에 놀라서 하영과 장기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걸 잠시 망각했었다. 그러자 그때, 하영이 우물쭈물 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휴대폰을 바꿨는데요. 주소록이 다 날아가서······.”
하영은 조그맣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그간 있었던 자초지종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의 말은 이랬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휴대폰을 잃어버려 번호가 전부 날아가게 된 것. 그래서 부랴부랴 새로운 휴대폰을 사려고 했지만 이제 고3이 되는 애가 무슨 휴대폰이냐며 부모님이 반대를 한 탓에 살 수가 없었다.
하영이 휴대폰을 다시 살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수능이 끝난 날. 하지만 번호는 이미 깨끗하게 날아간 뒤였고, 하영은 차선책으로 보육원에 연락을 해 민호의 번호를 구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민호에게 연락은 닿지 않았다. 해당 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떴던 탓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민호는 문득 작년 겨울 무렵을 떠올렸다.
‘딱 내가 휴대폰을 바꿨을 때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민호가 휴대폰과 번호를 바꾼 뒤 일주일 후에 하영이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당연히 연락이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연락을 할 수가 없었어요. 죄송해요.”
길게 이어지던 하영의 이야기가 끝났다.
이를 듣던 민호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민호가 하영을 지그시 바라봤다.
‘일부러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구나.’
그 생각과 함께 민호는 안도했다.
하영이 다른 입양된 아이들과는 달랐다는 사실에. 그리고 아직까지 민호를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그래서 민호는 하영을 마주보며 씨익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다행이네.”
“네, 맞아요. 다행, 정말 다행이에요.”
하영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이야? 너희 집, 여기서 멀지 않았나?”
“아, 그게 저 그러니까, 그게······. 호, 혹시나 해서요.”
“뭐가?”
민호가 되묻자 하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혹시 오빠가 여기 오지 않았을까 해서······.”
“뭐?”
민호가 되묻던 그때.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하영 누나는 매주 왔어!”
“그리고 올 때마다 민호 형을 찾았지.”
“얘, 얘들아!”
하영이 깜짝 놀란 듯 허둥거렸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귀까지 새빨개졌다.
그 모습에 민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이거 괜히 미안하네. 내가 좀 더 빨리 엄마한테 연락을 드렸으면······.”
“아니에요! 애초에 제가 휴대폰을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고개를 번쩍 든 하영이 양손을 내저었다.
동시에 둘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가만히 서로를 보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비록 2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둘에게는 공백이 있어도 금세 메꿀 수 있는 추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민호는 하영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채 씨익 웃었다.
“앞으로는 자주 보자.”
“······네, 오빠.”
하영도 마찬가지로 배시시 웃었다.
무척이나 예쁜 미소였다.
그때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우와! 여기 과자 엄청 많아!”
“누나! 우리 이거 먹어도 돼?”
뒤늦게 하영이 가져온 쿠키를 발견한 아이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 귀여운 모습에 하영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다 같이 먹자.”
“와아!”
“과자 파티다!”
“자자, 줄 서. 너무 막 집지 말고. 한 사람당 하나씩만 가져가자. 너무 단 건 몸에 안 좋으니까.”
하영은 많이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아이들을 줄 세웠다.
민호를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똑 부러진 태도였다.
그 모습을 보던 민호가 몸을 돌렸다.
“그럼 내가 엄마 모셔올게. 먼저 먹고 있어.”
지금 이 시간에 혜란이 있을 곳은 뻔했다.
성당과 연결된 통로를 지나 기도실 입구에 다다를 무렵, 비스듬히 열린 문 너머에서 혜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희도 곤란합니다. 일방적으로 이러시면······.”
문 앞에 멈춰선 민호는 틈새로 보이는 혜란을 바라봤다.
그녀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뭐지?’
혜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던 것.
게다가 그녀는 꽤나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저런 모습은 나도 몇 번 본적 없는데······.’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네? 아니, 잠깐만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혜란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상대방이 멋대로 전화를 끊은 듯했다. 그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던 민호는 문득 혜란과 코코아를 마실 때, 그녀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렸다.
‘한 번 알아볼까.’
혜란을 보던 민호가 두 눈에 힘을 줬다.
그러자 바로 심안이 발동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어.]
[어떻게 사람을 물건처럼 그렇게······.]
[우리 은호, 불쌍해서 어떡해.]
‘은호?’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다.
잠시 후, 민호는 곧 그게 누구인지 떠올렸다.
‘아, 맞아. 그 아이구나.’
채은호. 이제 막 백 일이 지났을 무렵, 보육원 앞에 버려졌던 아이.
민호와 비슷하게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라 유독 기억에 남았었다.
‘근데 은호는 2년 전에 입양 갔을 텐데?’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문을 열고 기도실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혜란이 고개를 돌렸다.
“아, 민호구나.”
방문자가 민호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혜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마주보던 민호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응? 무슨 일이라니?”
“은호한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혜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어쩌다 보니 듣게 됐어요. 그러니까 말해주세요.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혜란에게 다가온 민호가 진지한 얼굴로 재촉했다.
그러자 얼마 후, 혜란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처음부터 전부 다요.”
민호의 대답에 혜란은 어두워진 얼굴로 조금씩 말을 꺼냈다.
채은호. 민호와 비슷한 사정으로 보육원에 오게 된 그는 2년 전쯤에 나름 유복한 가정으로 입양이 됐다.
여기까지는 민호도 알고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다음 말이 이어지자 민호의 두 눈은 휘둥그레 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파양을 하겠다고 하는구나.”
“네? 파양이요?”
민호가 놀란 듯 묻자 혜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집에 딸만 셋인데, 남편과 시댁에서 계속 아들을 원했다고 해. 그런데 불임이 찾아와서 더 이상 임신이 어렵게 되자 차선책으로 여기에 와서 은호를 입양해 갔던 거야.”
자식들이 뻔히 있는데 아들을 원한다는 이유로 입양을 하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유였다.
“그리고 문제가 하나 생겼단다.”
“무슨 문제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에 아들을 출산했다고 하는구나.”
그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임이었다가 임신을 한 건 축하할만한 일이지, 문제가 아닌 탓이었다.
그때, 문득 민호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자, 잠깐만요. 그럼 설마 파양을 하려는 이유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민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혜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아들이 생겼으니 이제 은호는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겠지.”
“고작 그런 이유로 파양을 한다고요?”
“그래, 다섯 살이면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라고 하면서.”
“무슨 그딴 개 같은 소리를······!”
콰앙!
얼굴을 와락 구긴 민호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혜란은 머리를 감싸 안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서 곤란하다고 했지만, 저쪽이 워낙 강경하게 나오는구나. 후우, 원칙적으로는 당연히 안 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은호를 저쪽에 계속 놔두면······.”
혜란이 뒷말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을 원해서 입양까지 한 극단적인 집안. 그런데 그 집안에 아들이 태어났다. 그럼 기존에 입양을 해 온 아들은 눈엣가시처럼 보일 터.
파양이 되지 않는다면 친아들과 비교해 차별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막말로 학대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하아, 미안하다. 괜히 신경만 쓰이게 한 것 같네. 이건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렴.”
“하지만······.”
“괜찮아. 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맙구나. 마음이 조금 나아졌어.”
혜란이 미소를 지었다.
애써 지은 것이 역력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제 일어나자.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혜란은 기도실을 나섰다. 말없이 이를 보던 민호는 꽉 움켜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혜란의 어깨가 평소보다 더욱 좁고 초라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그러던 그때, 진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우우웅-!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던 민호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음?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어쩐 일이세요.”
-그게 조금 특이한 임무가 내려와서 말이지.
“특이한 임무요?”
-응. 이번 임무의 대상은 나이가 좀 어리다.
말을 멈춘 진하.
잠시 후, 종이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그의 말이 이어졌다.
-나이는 만 3살. 이름은 채은호라고 하고······.
“채은호요!?”
진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민호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어? 어, 맞아. 채은호. 혹시 아는 애야?
격렬한 민호의 반응에 진하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동명이인일 지도 모르지만······.”
말을 흐린 민호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대강 늘어놨다. 잠자코 이를 듣던 진하는 곧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음, 내가 알아본 정보와 대강 맞는 것 같네.
진하의 목소리를 끝으로 민호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임무의 대상이 은호라는 소리는 곧 은호가 기적을 받는다는 소리였으니까.
“혹시 어떤 기적인가요?”
양부모가 은호를 친아들로 인정하는 기적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니면 은호가 원래 친아들이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기적일 수도 있으리라.
민호는 기대감이 어린 얼굴로 진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 후, 진하의 입이 열렸다.
-그 부분이 좀 특이해. 뭐냐면······.
그러던 그때!
[임무 리스트를 활성화합니다.]
[새로운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비단의 목소리가 민호의 뇌리를 울렸다.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 Chapter 4. 새천사 보육원 (3)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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