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4. 새천사 보육원 (1) >
Chapter 4. 새천사 보육원
금요일 오후.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짝짝짝짝-
민호의 말을 끝으로 강의실 안은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수업이 끝나자 민호는 자리로 돌아와 짐을 정리했다. 그때 함께 발표를 준비했던 용석이 다가왔다.
“형,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무슨, 네가 다 했지. 내 억지에도 잘 따라 와줬고.”
“에이, 억지라뇨. 완전 예언 수준이었죠. 설마 둘 다 탈주할 줄을 몰랐는데······.”
용석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료조사를 맡았던 신입생 둘이 저번 주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던 탓이었다. 용석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입생들의 연락을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민호의 대답은 달랐다.
‘처음부터 할 생각 없는 애들이었어. 그냥 둘이서 하자.’
묘한 확신에 가득 찬 말.
잠시 고민하던 용석은 속는 셈치고 민호의 말에 따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옳았다.
“게다가 오늘 수업도 안 나온 것 같더라고요.”
“수강 철회했거나 그냥 버린 거겠지. 아직 신입생이니까.”
그 대답을 끝으로 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보다 밥이나 먹으러가자. 배고프다.”
“아, 넵.”
용석이 냉큼 따라 나왔다.
강의실을 나선 둘은 학교 후문 쪽에 있는 학생식당으로 향했다. 시설이 다소 노후화되었지만 그곳이 가장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형.”
“엉?”
“이번 전공 시험, 유독 어렵지 않았어요?”
“일문학의 이해?”
“네, 완전 책 한 권을 달달 외워야 풀 수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었잖아요.”
그 말에 민호는 오늘 오전에 본 시험을 떠올렸다.
용석의 말 대로 시험의 난이도는 다소 높았다. 아니, 무식했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책을 달달 외우지 않은 이상, 만점을 받기 어려운 시험.
“에휴, 우리가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누가 이런 무식한 문제를 냈는지······.”
연거푸 한숨을 내뱉는 용석.
그의 모습을 보며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럭저럭 풀만했는데?’
물론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민호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역시 기억력이 강화된 덕분인가?’
첫 번째 임무의 기적, 청정유를 일부 흡수한 이후.
민호의 기억력과 신체 능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민호가 유독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기억력 쪽이었다.
‘두 번 정도만 반복해서 보면 다 외워지니까.’
책을 몇 번 읽기만 하면 그 내용이 전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민호는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였고, 덕분에 이번 시험에서 꽤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다.
‘이러다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민호의 가슴이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그때, 그의 들뜬 마음을 차게 가라앉히는 것이 있었다.
멈칫-
그것은 학생식당 출입문 앞에 붙은 공지.
[내부 공사로 인해 사흘 간 쉽니다.]
[우리 협동조합]
“켁! 문을 닫았을 줄은 몰랐는데.”
용석은 미간을 살찍 찌푸렸다.
그러고는 민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밖에 나가서 드실래요? 아니면······.”
허나 용석은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별안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툭- 투두둑!
비는 점점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민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밥은 다음에 먹자. 들어가서 쉬어라.”
“아, 넵! 형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용석의 인사를 끝으로 민호는 자취방을 향해 내달렸다.
***
끼이익-
자취방의 문이 열리자 율이 민호를 반겼다.
“주인님, 어서 오세요! 앗!”
민호를 발견한 율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온 몸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던 탓이었다.
“으,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리냐?”
민호가 완전히 젖어버린 셔츠를 짜내며 얼굴을 구겼다.
그러자 율이 재빨리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얼른 들어와서 씻으세요! 감기 걸리겠어요.”
“그래. 좀 으슬으슬하네.”
고개를 끄덕인 민호는 곧장 욕실로 향했다.
잠시 후,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온 민호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후아, 비를 맞았더니 좀 지치네.”
“우산 안 가져 가셨어요?”
“응. 오늘은 비 온다는 말이 없었거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던 중.
돌연 민호의 뱃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설마 아직 식사도 안 하신 거예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머리를 긁적인 민호가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이어 창밖을 내다본 민호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오늘은 그냥 라면이나 끓여먹어야겠다.”
마음 같아서는 밖에 나가서 국밥이라도 먹고 싶었지만, 쏟아지는 비를 보니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민호는 찌그러진 냄비에 물을 대충 담은 뒤, 불을 붙인 버너 위에 올려놨다.
보글보글-
물이 끊자 라면과 스프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곧 얼큰한 냄새가 방 안을 맴돌았다.
굶주린 배를 자극하는 냄새를 맡으며 민호는 라면 봉지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때, 민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구겨진 채 휴지통에 들어가 있는 쪽지.
오늘 아침, 예언의 상자에서 뽑았던 쪽지였다.
그리고 쪽지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는 날>
민호에게는 추억이라고 부를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아침에는 꽝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옛 추억이라······.”
그런데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노라니, 뭔가 기억이 날 듯 말듯했다.
“뭐였지? 분명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주인님! 물, 물 넘쳐요!”
그때 들려온 율의 다급한 목소리. 이에 정신을 차린 민호는 황급히 버너의 불을 껐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작은 메시지 창 하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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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발동: [요리사의 손]
-요리의 맛이 +20% 향상됩니다.
-추억의 맛을 느끼는 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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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민호가 얼빠진 소리를 내자 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아니, 요리사의 손이라는 게 발동했다고 해서.”
“진짜요? 그럼 요리가 더 맛있어졌겠네요!”
“맛있어봤자 라면이지.”
피식 웃은 민호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들었다. 평소처럼 끊였는데 유독 탱탱하게 보이는 면발. 그 먹음직스런 모습에 민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곧장 면발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후룩! 후루룩!
면발은 상당히 쫄깃했다. 게다가 국물도 아주 잘 배어들었다. 첫 입을 맛있게 해치운 민호는 라면의 맛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거 완전 분식집에서 먹는 거랑 똑같은데?”
대충 끓여도 분식집에서 파는 그럴듯한 라면이 나온다는 사실에 민호는 적잖이 만족했다.
“어디, 국물도 한 번 마셔볼까.”
후루루룩-
불향이 미미하게 묻어나는 얼큰한 맛.
국물도 분식집에서 먹는 라면과 정확히 일치했다. 민호는 손등으로 입가 주변을 닦으며 기분 좋은 탄성을 터뜨렸다.
“크! 국물 맛도 완전 끝내주는······.”
그러던 그때, 민호의 머릿속에 있던 희뿌연 안개가 일순간 걷혔다.
“······아.”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그에게 얼마 없는 추억 중 하나.
‘야! 오늘 비 온대!’
‘진짜?’
‘와! 라면 먹는 날이다!’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윤색되어버린 옛 기억이 마치 비디오처럼 생생하게 보였다.
“맞아. 그랬지. 그랬었어. 비가 오는 날엔 다 같이 모여서······.”
모두 함께 라면을 만들고, 배가 터질 때까지 라면을 먹었다.
왜냐면 비 오는 날은 라면 파티를 하는 날로 정해져 있었으니까.
“모름지기 비 오는 날에는 얼큰한 걸 먹어줘야 한다고 했었나?”
당시 보육 원장이었던 신부님의 철학을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땐 그게 뭔 소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이해가 잘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이외에도 라면 파티를 하는 날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보육원에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날.
그게 민호 또래의 아이든, 아니면 보육 원장을 보조하는 직원이든. 새로운 가족이 늘어나면 비가 오든 말든 상관없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라면 파티를 벌였다.
잊고 지냈던 기억을 떠올린 민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추억의 맛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민호는 게 눈 감추듯 라면을 해치웠다. 그러고는 벽에 걸린 달력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슬슬 한 번 가볼 때가 됐네.”
“어디를요?”
율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민호는 말없이 씨익 웃었다. 잠시 후, 민호의 입에서 그리움이 묻어나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우리 집.”
***
다음날.
새벽 알바를 마친 민호는 그 길로 성북구로 향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그의 양손에는 수북하게 담긴 과자와 라면 봉지가 들려있었다.
얼마 후 민호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성당과 함께 있는 작은 건물.
“새천사 보육원?”
“독립하기 전까지 내가 살던 곳이야.”
마찬가지로 건물을 바라본 민호가 숨을 가볍게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온 게 작년 가을이었으니까······.’
꽤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제법 긴장이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민호는 태연하게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왔고 곧 보육원의 출입문이 열렸다.
“네, 나갑니다!”
벨소리보다 훨씬 낯익은 목소리.
밖으로 나온 이는 50대 후반 정도의 늙은 수녀였다.
이어 현관문 앞에 서있는 민호를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머, 민호구나.”
“안녕하세요.”
그녀가 대번에 자신을 알아보자 민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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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혜란
*나이: -
*공덕: 5,817
*악덕: 13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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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
그녀는 새천사 보육원의 3대 원장이었다. 그리고 어린 민호를 제 손으로 키우다시피 했던 장본인이기도 했다.
민호에게 있어 혜란은 가족 그 자체였다.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이라도 있니?”
“아뇨. 그냥 시험도 끝나고 해서 겸사겸사 와봤어요. 아, 이거 선물이요.”
“그냥 와도 되는데 뭘 이런 걸 사왔어.”
“오랜만에 오는데 빈손으로 오긴 그래서요.”
민호는 머쓱한 듯 웃었다.
그러자 그에게 다가온 혜란은 민호를 가볍게 껴안았다.
“빈손으로 와도 돼. 네가 와주는 것만으로도 기쁘단다.”
귓가에 와 닿는 따뜻한 목소리.
혜란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참, 내 정신 좀 봐. 일단 들어오렴. 아직 식사 안 했지? 같이 밥 먹자.”
그때 혜란이 민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모습에 민호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엄마.”
< Chapter 4. 새천사 보육원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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