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두 번째 임무 (4) >
“사, 사장님.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짜악-!
“이거 안 치워?!”
은희가 순자의 손을 거칠게 후려쳤다.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그녀는 표독스런 목소리로 외쳤다.
“그 더러운 손을 어디다 갖다 대는 거야?! 이게 얼마짜리 옷인 줄 알아?”
“저, 저는 그저······.”
“하여간 못 배운 것들은 이래서 안 돼. 그러니까 이런 지저분한 곳에서 살지.”
연달아 이어지는 모욕적인 폭언.
당사자가 아님에도 민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은희는 민호의 존재 자체도 인식하지 못한 듯, 여전히 날이 선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무튼 다음 주에 부동산 강씨 데리고 올 거니까 그때까지 방 뺄 준비나 해!”
그 말을 끝으로 은희는 문을 나섰다.
힘없이 닫히는 출입문을 바라보며 순자는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하아.”
잠시 후, 체념이 섞인 한숨이 들려왔다.
주방으로 돌아가는 순자의 어깨가 유독 쳐져보였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를 보자, 곧 세 개의 말풍선이 튀어나왔다.
[힘들어. 이제 그만두고 싶어.]
[흐윽! 민경 아빠, 보고 싶어요.]
[그래도 우리 딸, 대학까지 보내려면······.]
집주인의 횡포로 인해 멀쩡한 가게에서 쫓겨나게 생긴 상황.
이 절망적인 상황에 순자는 속으로 흐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나뿐인 딸을 떠올린 그녀는 다시 힘을 냈다. 이 모습을 보며 민호는 품속에 넣어둔 미미부를 꽉 움켜쥐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민호가 주문한 쭈꾸미 비빔밥이 나왔다.
돌솥에 담긴 비빔밥은 평범했다.
아무 식당에서나 팔법한 비주얼.
하지만 민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잠자코 수저를 들었다.
우적우적-
조용히 식사를 이어나가는 민호.
이를 잠자코 보던 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때요?”
“음, 그냥 평범하네.”
대답을 이어나가던 민호가 돌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건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잖아.”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당장 다음 주까지 월세를 마련하지 못하면 장사 접고 나가야할 판인데 고작 이런 부적 하나로 모든 일이 해결될까?”
민호는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요리를 잘하게 된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당장 가게에서 내쫓긴다면 뭘 해서 먹고 살라는 말인가?
그러자 그때, 율은 민호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린 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활짝 웃었다.
“아, 그건 걱정 안하셔도 돼요.”
“어째서?”
“그야 기적은 대상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바라는 게 형상화된 거니까요.”
“엥? 그래?”
처음 듣는 사실에 민호는 눈을 크게 떴다.
“네! 만약 대상이 월세를 마련할 돈을 원했다면 돈과 관련된 기적이 주어졌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기적이 나온 걸 보면, 대상은 지금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네요.”
일리가 있는 율의 대답.
민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우린 이 기적을 대상에게 전달하는 것만 생각하면 돼요!”
이어진 율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일단 기적을 전달해야 그 이후의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미미부를 움켜쥔 민호의 눈이 밝게 빛났다.
***
그리고 다음날.
민호는 다시 순자네 식당을 찾았다.
두 번째 임무에 앞선 율의 계획은 단순했다.
우선 노인으로 변한 민호가 노숙자 신분으로 식당을 방문한다. 그리고 돈이 없다며 밥과 간장 정도만 구걸을 하고, 식사를 대접받으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기적을 전달한다.
이게 율이 세운 계획이었다.
하지만 민호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식사를 하는 것.
아무리 임무를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순자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돈을 내지 않는 게 양심에 찔렸다. 그리고 민호의 이런 고민에 율은 뭐가 문제냐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왜냐면 주인님은 신의 대리인이니까요.”
날개를 팔랑이며 날아오른 율이 방긋 웃었다.
“그리고 이런 거추장스러운 행동을 하는 건, 일종의 시험이에요.”
“시험?”
“대상이 정말로 기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시험하는 거죠.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산신령도 대상의 선함을 확인하고 기적을 준 것처럼 말이에요.”
이어진 율의 설명에 민호는 문득 금도끼와 은도끼에 나오는 산신령 이야기를 떠올렸다. 동시에 율의 말이 이어졌다.
“주인님도 신의 대리인으로서 대상을 시험하는 것에 불과해요. 그러니까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율의 말을 듣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시험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네 말대로 하자.”
“네!”
활기찬 율의 대답을 들으며 민호는 다시 발을 내딛었다.
이제 눈앞에 있는 건물 모퉁이만 돌면 순자네 식당이 나온다. 크게 심호흡을 한 민호는 곧장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율아.”
멍하니 흘러나온 목소리.
민호의 시선은 순자네 식당에 가 닿았다.
“여기 원래 이렇게 장사 잘 됐나?”
정확히 말하면 식당 앞에 있는 수많은 인파에 고정됐다.
식당 앞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황당한 풍경에 민호는 물론이거니와 율까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러게요. 이건 듣지 못한 정보인데······.”
당황하던 율이 날개를 팔랑이며 날아올랐다.
“잠깐만요! 제가 한 번 살짝 보고 올게요.”
그 말을 끝으로 율은 인파를 비집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그때.
민호의 귓가로 줄을 서있던 노인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나저나 괜찮은감?”
“뭐가 말이여?”
70대로 보이는 두 할아버지.
허름한 행색의 둘은 식당 쪽을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우 사장, 요즘 벌이도 안 좋은 것 같던데.”
“그려. 나도 그렇다곤 들었는데 그래도 이 일은 계속 할 거라는구먼.”
‘이 일?’
무슨 일을 말하는 거지?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의 대화만으로 자세한 건 알 수 없었다.
민호는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신령님이 있으면 이런 사람한테 복을 줘야 하는디 말이여.”
“그러니깨. 우 사장처럼 착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러나 이어진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아무런 정보도 파악하지 못한 민호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때, 얼굴을 한껏 찌푸린 율이 돌아왔다.
“망했어요. 설마 이런 수를 쓸 줄이야······.”
율이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이 인파는 식당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맞았다.
그럼 이 사람들이 왜 이런 평범한 식당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는 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간판 아래에 있는 낡은 현수막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매주 일요일 점심, 1000원 정식 판매>
<맛있게 드시고 형편이 되는 분만 돈을 지불해주세요.>
‘이 일이라는 게······.’
민호는 그저 멍하니 현수막을 쳐다봤다.
“휴, 작전을 다시 세워야할지도 모르겠네요.”
한편 율은 당혹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정신을 차린 민호가 입을 열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네? 하지만 이대로라면 시험의 의미가······.”
“저 현수막이 사실이라면 매주 일요일마다 이런 활동을 해 오신 거잖아?”
“그, 그렇죠.”
“그것도 본인의 형편이 어려운데도 말이지.”
입을 닫은 민호가 식당 안에서 분주히 돌아다니는 순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잠시 후.
굳게 닫혔던 그의 입이 열렸다.
“난 저 분을 시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한 끼 식사를 천원에 판매하는 식당.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돈도 안 받는다.
이는 분명한 선행이었다.
소외계층에 대한 일종의 봉사활동.
그리고 실제로 식당 앞에 줄을 선 이들은 대부분 근방의 독거노인들, 혹은 노숙자들뿐이었다.
순자네 식당은 벌이도, 형편도 좋지 않으면서 이런 활동을 해왔다.
그것도 매주.
그 사실 하나만으로 민호는 이미 순자는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음, 주인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고민하던 율도 민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후딱 가서 부적이나 주자.”
그렇게 판단한 민호는 대열을 이탈했다.
이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어머, 이 근처에선 못 보던 분이시네요.”
“어, 아니 나는······.”
돌연 순자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이에 민호가 당황하던 그때!
순자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괜찮아요. 자, 여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민경아!”
“지금 가요!”
주방에서 앳된 얼굴의 소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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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민경
*나이: -
*공덕: 981
*악덕: 16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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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테 안경을 쓴 수수한 외모의 소녀.
민경은 민호의 앞에 식사가 담긴 쟁반을 내려놓았다.
달그락-
“헤헤, 많이 드세요.”
밝은 웃음을 끝으로 민경은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쌀밥에 된장국, 김치와 콩나물무침, 그리고 분홍색 소시지 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
“······.”
민호는 말없이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맛.
하지만 따뜻한 맛이 느껴졌다.
메뉴 이름처럼 마치 집 밥을 먹듯 편안했다. 민호가 묵묵히 식사를 이어나가던 중, 순자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식사는 좀 괜찮으세요?”
“아주 맛있네. 그런데······.”
말을 멈춘 민호가 주위를 둘러봤다.
좁은 가게 안에 가득 찬 손님. 밖에서 앉아 묵묵히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잠시 쳐다보던 민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싸게 팔아도 남는 게 있나 걱정이 좀 드는구먼.”
“사실 남는 건 없죠. 그래도 예전에 다 도움을 받았거든요.”
“도움이라면······?”
“제가 어렵고 힘들 때 힘이 되어 주셨어요.”
순자는 담담한 목소리로 과거에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때는 몇 년 전.
순자가 아직 식당을 차리기 전.
그녀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려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에도 자살을 생각하길 십여 번.
희망도 빛도 보이지 않는 삶 속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민 이들이 있었다.
‘구청인가 동사무소에서 김치를 줬는데 자네도 좀 가져가.’
‘밥을 먹어야 힘을 내지. 나눠줄테니까 꼭 챙겨먹어야 혀.’
‘은혜는 무슨. 다 내 딸 같아서 그런 게지. 아프지 말고, 응?’
바로 이웃들이었다.
이웃에 사는 독거노인들. 그들의 도움으로 순자는 조금씩 힘을 냈다. 그리고 남편의 산재가 인정되어 보험금을 수령하면서 순자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발을 빼낼 수 있었다.
“여기 계신 분들께는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어요. 그래서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뿐이에요.”
이야기를 마친 순자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또 왜,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잖아요?”
“허허, 그렇구먼.”
그 미소에 민호도 마주보며 웃었다.
순자의 말대로 그녀에게는 복이 찾아왔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기적이.
드르륵-
그러던 중 민호의 옆에서 식사를 하던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호만큼이나 허름한 옷차림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운 식기를 주방 앞에 공손히 내려놨다.
그러더니 이내 어둡게 물든 얼굴로 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사장님. 요즘 벌이가 영 신통치 않아서······.”
“그런 말씀 마세요. 식사는 괜찮으셨나요?”
“그럼요. 사장님 덕분에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노인은 없는 이를 내밀며 밝게 웃었다.
그 말을 끝으로도 노인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민호는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러던 중 잠자코 있던 율이 민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주인님. 저희도 슬슬 움직이죠.”
임무의 시작을 알리는 한 마디.
민호는 노인이 그랬던 것처럼 식기를 주방에 반납했다. 그리고 그 옆에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5천 원짜리 두 장과 동전이 전부였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민호는 식당 입구에 있는 순자에게 다가갔다.
“밥 잘 먹었네.”
“벌써요? 차린 게 없어서 맛있게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뭘,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지. 그리고 이거 받게.”
민호가 준비해둔 미미부를 내밀었다.
알록달록한 문양이 귀엽게 새겨진 부적.
얼떨결에 이를 받아든 순자는 커다란 눈을 몇 차례 깜박였다.
“어머? 이게 뭐예요?”
“효능이 좋은 부적일세. 몸에 지니고 있으면 복이 찾아올 거야.”
“정말요? 이런 귀한 걸 제게 주셔도······.”
“그 부적은 처음부터 임자 것이었네. 난 그냥 전해주기만 할 뿐이지.”
“네?”
“잘 먹고 가네. 복 많이 받고.”
그 말을 끝으로 민호는 밖으로 향했다.
순자는 사라져가는 민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에게 손을 뻗던 그때!
“엄마! 김치 다 떨어져가요!”
주방에서 민경의 외침이 들려왔다.
순자가 주춤거린 사이, 민호는 인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어, 어어! 지금 갈게!”
정신이 든 순자는 미미부를 앞치마에 대충 쑤셔 박은 뒤, 주방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주머니에 넣어뒀던 부적이 반짝이더니, 그녀의 몸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는 것을.
< Chapter 3. 두 번째 임무 (4)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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