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두 번째 임무 (3) >
새로운 임무라는 단어에 민호의 눈이 반짝였다.
이어 진하의 문자가 연달아 도착했다.
-대상의 이름은 우순자.
-나이는 만 43세.
-강동구 성내동 쪽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오는 문자.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보던 민호는 돌연 율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혹시 두 번째 임무에 관한 정보야?”
“네, 맞아요.”
진하의 문자를 살펴본 율이 방긋 웃었다.
그러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난 아직 임무를 못 받았는데?”
“임무는 원래 관찰자가 먼저 받아요. 그래야 대상의 정보를 수집하니까요.”
“그럼 동석 삼촌 때도 그랬어?”
“네! 하지만 그땐 관찰자가 주인님의 연락처를 몰라서 제게 대신 연락했었어요.”
활기찬 율의 대답에 민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진하의 문자에 집중했다.
-남편은 일찍이 사고로 잃은 걸로 추정.
-슬하에는 딸이 하나 있다.
-딸은 인근 고등학교 1학년생.
“진하 형, 문자 보내는 속도 엄청 느리네.”
“그럴 만도 하죠. 손가락이 주인님보다 두 배는 커보였잖아요.”
1분에 하나씩 오는 문자 속도에 민호와 율이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가정 형편은 썩 좋지 않은 듯.
-하지만 사람 자체는 선해 보인다.
-참고로 쭈꾸미 볶음은 주문하지 말 것. 별로 맛이 없다.
“······이건 농담이라고 보낸 건가?”
마지막 문자에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래도 진하가 보내준 정보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꽤 도움이 되어보였다.
그리고 그때.
[임무 리스트를 활성화합니다.]
[새로운 임무가 하달되었습니다.]
드디어 민호에게도 임무가 내려왔다.
=====
*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74년 5월 23일생
-술시戌時에 태어난 우순자(禹順子)
*기적: 미미부(美味符)
*마감: 없음
=====
“미미부?”
귀여운 이름에 민호는 풋 하고 웃었다.
동시에 이어진 비단의 목소리.
[기적(奇跡)이 지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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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부(美味符)]
*등급: 병(丙)
*미식(美食)의 정령이 깃든 부적
*소지 시, 요리 실력이 성장한다.
*해당 장비는 대상에게 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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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상에게 전할 기적은 요리 실력을 성장케 만드는 부적.
부적의 설명을 읽던 민호는 그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단어를 발견했다.
“귀속된다는 건 무슨 소리지?”
“대상의 몸에 녹아든다는 소리에요.”
“녹아들어?!”
민호가 놀란 목소리로 묻자 율은 괜찮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인체에는 무해하니 괜찮을 거예요. 아마도?”
“그렇게 말하니까 더 불안한데······.”
미묘한 얼굴로 말을 흐리던 민호.
그러던 중 일순간 진하의 말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경우, 기적을 다시 회수하지.’
진하의 말에 따르면 전달자는 기적을 회수해야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기적이 대상의 몸속에 녹아든다면? 그럼 어떻게 기적을 회수한단 말인가? 의문이 든 민호는 곧장 율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율은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기적을 회수하는 건 귀속 여부와 상관없이 가능하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귀속 기능이 있는 건 대상과 관련 없는, 타인에게 양도될 때를 방지하기 위해서거든요!”
상세한 설명에 민호는 별다른 반문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웅-!
-임무를 받았나?
진하의 문자였다.
이에 민호는 바로 손가락을 놀려 답장했다.
=넵. 방금 받았습니다.
-전달 예정 시각을 알려줄래?
=주말에 시간이 비니까 내일 한 번 가볼게요.
-오케이. 확인했다.
진하와의 대화는 그걸로 끝났다.
***
그리고 다음날.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민호는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어디보자. 지도로 보면 이 근처인데······.”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민호가 말을 흐렸다.
지도상으로는 분명 이 근처였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식당으로 추정되는 곳은 보이지 않은 탓이다.
보이는 건 꽃집과 학원, 부동산들이 전부다.
그러던 그때 율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앗! 혹시 저기 아니에요?”
“뭐? 어디?”
“저기요. 저 꽃집이랑 부동산 사이요!”
그곳을 바라본 민호는 코웃음을 쳤다.
꽃집과 부동산 사이는 무척이나 협소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나있는 골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에이, 설마. 저런 곳이 식당일 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 민호는 일단 율이 말한 곳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맺힌 웃음기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여기네?”
민호가 멍한 눈으로 간판을 응시했다.
<순자네 식당>
낡고 허름한 간판.
이어 민호의 시선이 식당 내부로 향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네 개의 소형 테이블. 그마저도 식당 내부가 워낙 협소해보여 숨이 콱 틀어 막힐 것처럼 답답해보였다.
임무가 아니었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며 낡은 식당.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임무를 자각한 민호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출입문에 매달아둔 종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그러자 주방 쪽에서 후덕한 인상을 가진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아, 네.”
“여기 앉으세요. 금방 물 가져다 드릴게요.”
사투리가 조금 섞인 억양.
민호를 구석 테이블로 안내한 그녀는 곧장 주방으로 사라졌다. 민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순자의 상태창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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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우순자
*나이: -
*공덕: 2,281
*악덕: 8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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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공덕이 엄청 높구나.’
민호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그러던 중 잠자코 있던 율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주인님.”
“응?”
“식사는 뭐로 드실 거예요?”
“쭈꾸미만 빼고 아무거나.”
진하의 정보를 떠올린 민호가 즉답했다.
그러자 율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메뉴판을 가리켰다.
“근데 쭈꾸미 빼면 남는 건 술이랑 음료 밖에 없는데요?”
쭈꾸미 볶음, 쭈꾸미 전골, 쭈꾸미 비빔밥.
순자네 식당은 온통 쭈꾸미가 들어간 음식 밖에 없었다.
“······이러면 조언의 의미가 없잖아.”
민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제일 무난한 비빔밥으로 먹자.”
메뉴를 정한 민호는 손을 들어 주문을 했다.
물을 내온 순자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서자 민호는 목을 축이며 가게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그때.
딸랑-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 아!”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어 인사를 하던 순자의 얼굴이 굳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온 이.
그녀는 순자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었다.
“쯧, 벽지 좀 갈고 살지. 더러워서 참.”
부티 나는 옷을 걸친 여성.
출입문 쪽에 선 여성은 식당 안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더러운 오물을 본 표정이었다.
“이봐요, 아줌마. 내가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야겠어요?”
고개를 돌려 순자를 쳐다본 여성이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순자는 면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게······.”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안 받으면 해결될 줄 알았어?”
“정말 죄송해요. 제가 전화를 두고 와서······.”
“입 아프니까 긴말할 필요 없고, 밀린 월세는 준비 됐어요?”
둘의 대화에서 민호는 중년 여성이 건물주라는 걸 눈치 챘다.
한편 밀린 월세라는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순자의 얼굴은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 그게 일주일만 더 주시면······.”
“또! 또 일주일! 그 일주일이 지금 4주가 되고 두 달이 넘었잖아요!”
얼굴을 와락 구긴 집주인이 목청을 높였다.
그때 이를 지켜보던 민호가 말없이 집주인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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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유은희
*나이: -
*공덕: 217
*악덕: 82(+5)
*성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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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의 공덕은 엄청 낮았다.
순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정도로.
‘악덕도 꽤 높은 편이야.’
집주인인 유은희는 지금까지 민호가 봐온 사람들 중에 가장 악덕이 높았다. 그리고 민호가 주목한 부분은 하나가 더 있었다.
‘이번에도 저런 게 보이네.’
바로 괄호 안에 있는 숫자.
괄호 안의 숫자는 동석에게서도 보였었다.
이에 의문을 참지 못한 민호는 작은 목소리로 율을 불렀다.
“율아.”
“네?”
“궁금한 게 있는데.”
잠시 말을 멈춘 민호가 율을 쳐다봤다.
“상태창의 악덕 수치 옆에, 괄호로 표기된 숫자는 뭐야?”
“아, 그거요? 간단해요. 곧 악덕을 쌓게 될 수 있다고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일종의 적립 예정 포인트 같은 느낌이죠.”
알기 쉽게 예시까지 들어줬다.
그 말에 민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요? 혹시 아까 그 못되게 생긴 아줌마한테서 보셨어요?”
“응. 한 5정도.”
“그 정도면 보통 타인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경우네요.”
율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문득 얼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잠깐, 그럼 악덕이 한 번에 100이 넘게 쌓이는 건······.”
“그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을 때에요. 살인이나 패륜, 자살 등을 뜻해요.”
이어진 율의 대답에 민호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다.
치매를 앓는 노모.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모든 걸 놓은 것처럼 지쳐보이던 얼굴.
동석 삼촌의 일을 떠올린 민호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다면······.’
동석 삼촌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 뻔했다. 이를 자각한 민호는 그런 최악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야.’
잠시 후,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민호는 다시 순자와 은희를 쳐다봤다.
은희는 여전히 시끄러운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었고, 순자는 그런 은희의 앞에서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퍽이나 딱해보였기에 민호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은희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심안을 발동했다.
[흥! 지가 무슨 수로 월세를 낼 거야?]
[못 낼 형편인 거 알고 3배나 올렸는데.]
[그보다 이 기집애는 이딴 자리에서 무슨 카페를 한다는 거지?]
민호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단 세 마디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해. 돈 없으면 장사 접고 방 빼요! 여기 들어올 사람 아줌마 말고도 많으니까.”
그때 은희의 최후통첩이 들려왔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몸을 휙 돌렸다. 당장이라도 식당에서 나갈 기세였다.
그러자 순자는 다급히 은희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 Chapter 3. 두 번째 임무 (3)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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