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두 번째 임무 (2) >
“혀, 형사요?”
죄를 지은 것도 없건만 민호는 순간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걸 느꼈다.
경찰이라는 신분과 진하의 험상궂은 얼굴 탓이었다.
그때 돌연 진하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어, 네, 네!”
그의 외모에 압도당한 민호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
둘이 향한 곳은 교내에 있는 카페.
주변 시선을 의식해 둘은 사람이 없는 테라스 쪽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민호는 진하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러자 전달자가 가진 기본 능력, 전달자의 눈이 발동했다.
=====
*이름: 강진하
*나이: -
*공덕: 1,870
*악덕: 36
*성향: -
=====
‘악덕에 비해서 공덕이 꽤 높네.’
물론 동석 삼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럼 나쁜 사람은 아니란 소린가?’
민호가 제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그때.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진하가 입을 열었다.
“바쁠 텐데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황급히 정신을 차린 민호.
그는 진하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보다 형사님이 절 찾으시는 이유가······?”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네? 저를요?”
“예.”
진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 혹시 제가 무슨 사건에 연루됐나요?”
“아닙니다.”
“그럼 저를 왜······.”
민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진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겸사겸사 보고할 것도 있고, 새로운 전달자가 누군지 궁금해서요.”
“······!”
민호가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입에서 들려온 ‘전달자’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율이 방긋 웃었다.
“괜찮아요, 주인님! 이 사람은 저희들의 동료니까요!”
“동료라고?”
민호의 질문에 답한 것은 진하였다.
“예, 관찰자를 맡고 있습니다.”
“아!”
이제야 기억났다.
동석에게 기적을 전달하던 날, 율과 대화를 주고받던 그 목소리.
진하의 목소리는 그때 들었던 그것과 같았다.
“전달자에게 있어 관찰자는 누구보다 도움이 되는 동료에요. 임무와 관련해서 많은 도움을 주니까요.”
이어진 율의 설명에 민호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외쳤다.
“그럼 진작 알려줬어야지!”
“헤헤, 뭔가 재밌을 거 같아서······. 꺅!”
그 괘씸한 말에 민호의 딱밤이 벼락처럼 율의 이마를 가격했다.
“앞으로는 그냥 바로바로 알려줘. 알겠어?”
“히잉, 네에······.”
이마를 감싼 율이 울상을 지었다.
한편 진하가 관찰자라는 걸 알게 된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아까보단 조금 더 편해진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게 할 보고라는 건 뭔가요?”
“박동석 씨에 대한 사후(事後) 관찰 보고입니다.”
“네? 동석 삼촌이 왜······.”
민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러자 진하는 손사래를 치며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심각한 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결과 보고니까요.”
그의 말대로 동석 삼촌에 대한 관찰 보고는 평범했다. 그저 기적을 전달한 뒤, 동석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게 전부였다.
“······이상으로 박동석 씨에 대한 관찰은 종료했습니다.”
진하는 십여 분에 걸쳐 동석의 행적에 대해 보고했다. 보고가 끝난 뒤, 커피로 목을 축이는 그를 바라보며 민호는 질린 듯이 물었다.
“임무가 끝날 때 마다 그렇게 관찰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거든요.”
“그렇군요. 아, 그보다 말 편하게 하세요. 저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데······.”
“음, 그게 편하다면 그러자.”
진하가 흔쾌히 민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저도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도 되죠?”
“삼촌은 무슨. 나 아직 서른셋이야. 형이라고 불러.”
“알겠어요. 형.”
말을 놓자 대화는 한결 편해졌다.
그러자 민호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형, 그런데 그 사후 관찰은 왜 하는 거예요?”
“대상이 기적을 엉뚱한 곳에 쓰지 않는지 감시하는 거지.”
“엉뚱한 곳이요?”
“으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진하의 간단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달자에게서 기적을 전달받은 대상.
전달 직후, 대상은 신비하고 특별한 능력을 얻은 것에 매우 기뻐했다.
그것도 잠시, 곧 기적을 불순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적을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듯한 예시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꽤 일어났었어.”
“진짜요?!”
민호가 놀란 듯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럼 그 경우엔 어떻게 해요? 기적을 다시 뺏을 수도 없고······.”
“정답이다.”
“네? 뭐가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기적을 다시 회수해.”
줬다가 다시 뺏는 것만큼 치사한 일은 없다지만, 이 경우에는 응당 그렇게 해야만 했다.
공덕의 보상으로 준 기적을 악용해 악덕이 쌓인다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럼 그 기적은 형이 회수하시는 건가요?”
관찰자는 기적을 전달받은 대상을 사후에도 관찰한다.
그렇기에 대상이 기적을 제대로 사용하는지, 아니면 악용하는지 판단하는 건 관찰자의 임무이리라. 그래서 민호는 관찰자가 기적을 회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려온 대답은 예상과 조금 달랐다.
“아니, 회수는 전달자가 한다.”
“······네?”
“기적과 직접 접촉하는 건 전달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기록자에게 듣지 못했나?”
“완전 금시초문인데요.”
멍하니 중얼거린 민호가 율을 돌아봤다.
율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며 대답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굳이 설명하는 건 좀 그래서······. 나, 나중에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설명하려고 했어요! 진짜에요!”
민호가 다시 딱밤을 먹이려 하자, 율은 황급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를 가만히 보던 민호는 진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형.”
“응?”
“기록자를 바꾸는 게 가능할까요?”
“······음,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마 힘들 것 같다.”
진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이후, 둘은 다양한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민호가 질문을 하면 진하가 대답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꽤 길게 이어진 대화가 끝나갈 무렵.
민호는 문득 진하를 빤히 응시했다.
그의 마음을 살짝 엿보기 위함이었다.
[싹싹하고 괜찮은 성격이네.]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저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겠어.]
다행히 진하는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민호의 시선을 잡아끈 부분이 있었다.
‘저번과 같은 일?’
그 부분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에 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진하의 말이 이어졌다.
“이제 막 전달자가 돼서 혼란스러울 텐데 의외로 적응력이 빨라서 다행이군.”
“에이, 적응한 척 하는 거죠. 솔직히 아직도 정신없긴 해요.”
민호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마찬가지로 피식 웃음을 터뜨린 진하는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하긴. 그럼 모르는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 줘. 시간 날 때 답장해주마.”
“오, 감사합니다. 제 번호도 알려드릴게요.”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한 것을 끝으로, 진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네, 형. 들어가세요.”
전달자와 관찰자.
신의 대리인들의 만남은 그렇게 끝났다. 진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민호는 아직도 하늘 높이 떠있는 율을 바라봤다.
“율아.”
“······때릴 거죠?”
“안 때릴게.”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래.”
민호의 허락을 받은 율은 그제야 천천히 그의 어깨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민호는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전달자가 있었어?”
“당연하죠. 전달자는 전 세계 각지에 고루 퍼져있으니까요. 아, 물론 이 나라에는 주인님이 유일한 전달자에요.”
질문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의 대답이다.
이에 민호는 질문을 정정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내 이전의 전달자에 대해 묻는 거야.”
“네, 당연히 있었겠죠?”
“그럼 그 전달자가 뭘 했는지 기록된 게 있어? 행적이라거나 사건이라거나······.”
“음, 잠깐만요. 한 번 살펴볼게요.”
봇짐에서 수첩을 꺼낸 율이 페이지를 마구 넘겼다. 잠시 후, 율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이상하네.”
“왜?”
“기록이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93년도부터 18년도까지요.”
약 26년 치의 기록이 없다는 말에 민호는 황당한 듯 물었다.
“그럼 그 시기엔 전달자가 없었다는 거야?”
“아니에요. 전달자는 항상 있었을 텐데······. 제가 천계에 연락해서 한 번 물어볼게요.”
율의 모습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에 민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기록되지 않은 전달자라고?’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증폭된 궁금증을 해결 못해서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이상할 정도로 찝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민호는 잠자코 율의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그로부터 이틀 후.
마지막 강의를 남겨둔 금요일 정오 무렵.
“으으, 이제 하나만 더 하면 주말이구나.”
빈 강의실에 홀로 앉은 민호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그때 가방에서 율이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이번 주말도 일하러 가세요?”
“아니, 이번에는 쉰대. 사장님이 볼일이 있다고 하시더라고.”
민호는 어젯밤에 받은 문자를 떠올렸다.
이에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 율은 순간 뭔가를 떠올린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주인님. 저번에 얘기한 예전 전달자에 대해 천계에 물어봤는데요.”
기다렸던 이야기가 나오자 민호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하지만 율의 대답은 그가 원했던 게 아니었다.
“제 등급으로는 열람할 수 없는 정보였어요. 죄송해요.”
율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민호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구나. 역시 진하 형한테 물어봐야하나?”
진하는 이전 전달자와 관련된 정보를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겠지.
‘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만약 질문을 한다면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밝혀야하는데, 그럼 진하의 마음속을 멋대로 읽은 게 들통 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좀 더 친해지면 은근슬쩍 물어봐야겠어.’
민호가 그렇게 결론을 짓던 무렵.
우웅-!
책상에 둔 스마트폰이 가늘게 진동했다. 이를 집어든 민호는 문자의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눈을 살짝 치켜떴다.
“진하 형?”
문자의 발신인은 진하.
그가 보낸 문자는 지극히 간결했다.
-새로운 임무가 하달됐다.
< Chapter 3. 두 번째 임무 (2) > 끝
ⓒ 남철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