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3. 두 번째 임무 (1) >
Chapter. 3
두 번째 임무
수십여 명의 학생들로 가득 찬 강의실.
단상 위에 서있던 교수가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자, 그럼 조끼리 모여서 얘기하세요.”
교수의 말과 함께 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민호도 자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석진용 교수의 강의는 늘 조별 수업을 하는 걸로 유명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민호는 랜덤으로 정해진 그의 조원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어디보자, 7조 멤버가······.”
민호가 칠판을 바라보던 그때!
곁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뿔테 안경을 쓴 마른 체구의 남자, 장용석.
이제 막 전역해서 학교에 복학한 그는 민호에게 얼마 없는 친한 후배였다.
“휴, 형이랑 같은 조네요. 다행이다.”
용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다행이야?”
“이 수업, 이번에 새내기들이 엄청 신청했잖아요. 저 빼고 다 새내기만 있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화석이 있으니까 다행이다?”
“에이, 믿음직한 형이 있으니까 다행인거죠.”
능청스러운 대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나머지 둘은 어딨지?”
“학번 보니까 새내기들이던데요. 7조 조원이신 분! 맨 뒤로 와주세요!”
용석이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잠시 후, 두 남녀가 민호와 용석의 앞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둘의 인사를 가볍게 받은 용석이 다시 민호를 돌아봤다.
“형, 근데 저희 조장은 어떻게 하죠?”
조별 수업에서 조장을 맡으면 가산점이 부여된다. 이에 용석이 셋을 돌아보며 묻자 민호가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학번 순으로 하자.”
“어? 형이 하실 거예요?”
용석이 깜짝 놀란 듯이 물었다.
그가 알기로 민호는 수업에 썩 의욕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제일 짬 낮은 사람이 해야지.”
“네? 여기서 짬 낮아봐야 다 새내기······.”
“새내기 빼고.”
이어진 민호의 대답에 용석은 멍한 얼굴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그럼 전데요?”
“그런 관계로 용석이가 우리 조 조장이 됐습니다. 모두 박수.”
민호가 박수를 치자, 용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민호는 용석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자 잠시 후, 용석의 주변으로 세 개의 말풍선이 튀어나왔다.
[하아, 새내기만 있는 조에서는 조장하기 싫은데.]
[음, 그래도 조장하면 가산점이······.]
[또 민호 형이 발표 하나는 진짜 잘하니 이번엔 좀 괜찮을 수도 있겠다.]
‘아주 하기 싫은 건 아닌 것 같네.’
민호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진짜 하기 싫어했다면 대신 조장을 맡아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갓 복학한 용석은 가산점에 눈이 돌아간 모양이었다.
“휴, 그럼 제가 조장을 맡을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조원들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인 용석.
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역할을 분담하겠습니다.”
용석은 수첩에 자료, PPT, 발표라는 단어를 적었다. 그러고는 펜으로 자료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일단 자료는 제가 준비할게요. 석 교수님 수업은 꽤 들어봐서 대충 어떤 쪽으로 준비하면 될지 알거든요. 그리고 발표는······.”
잠시 말을 흐린 그가 민호의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민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할게.”
“넵. 감사합니다.”
자료 수집과 발표의 담당이 정해졌다.
용석은 두 새내기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두 분께는 PPT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PPT는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과제였다.
동시에 새내기들에게 부탁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임무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용석은 배려와 효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좀······.”
“저도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어서요. 죄송해요.”
둘의 대답이 끝나자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해졌다. 용석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민호는 눈썹을 씰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석은 이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흠흠, 정 그러면 제가 PPT를 만들게요. 두 분은 제가 부탁드리는 자료를 찾아주세요.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죠?”
“음, 자료 조사 정도면······.”
새내기 남학생 하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그러자 민호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아니, 뭔 첫 수업부터 조별과제야.]
[거기다 왜 우리 조만 거의 남탕이지?]
[그나마 소희가 있어서 분위기가 좀 사네.]
이를 본 민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얘는 아웃이다.’
조별 수업에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냥 여자들이랑 놀고 싶어 하는 철부지.
민호는 남학생에 대해 그렇게 단정 짓고는 그가 말했던 소희라는 여학생을 돌아봤다.
위로 높게 올려 묶은 적갈색 머리카락.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콧날, 새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는 딱 봐도 미인이었다. 섹시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매력적인 여성. 남학생이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순간, 소희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그녀의 속마음이 말풍선으로 변해 흘러나왔다.
[흥, 예쁜 건 알아가지고 힐끔거리기는.]
[그보다 저 사람이 제일 고학번이었지?]
[잘 꼬셔놓으면 이 수업은 편하겠네.]
‘······얘, 신입생 맞아?’
민호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얘도 아웃이었다.
“그럼 저녁에 그룹채팅방 파서 초대할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석이랑 둘이서만 해야겠군.’
민호에게 있어 두 새내기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강의실을 나선 민호가 계단으로 향하던 찰나!
등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소희였다.
그녀는 민호와 눈이 마주치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시면 점심 같이 드실래요? 저 오늘은 혼자라서요.”
“······.”
민호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봤다.
만약 그가 소희의 속마음을 몰랐다면 여기서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을 터였다. 얼굴이 예쁜 후배였으니까. 흑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속마음을 읽자마자 환상은 깨졌다.
“오늘은 좀 힘듭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멍하니 서있는 소희를 뒤로 하고 민호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인문대 건물을 나서자 익숙한 얼굴이 그를 반겼다.
“주인님! 다녀오셨어요.”
바로 율이었다.
그녀의 등장에 민호는 율을 빤히 쳐다봤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율에게 심안(心眼)은 통하지 않았다.
‘역시 인간에게만 통하는구나.’
민호가 새삼스럽게 깨달을 무렵.
그의 시선을 의식한 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그렇게 보세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대답을 얼버무린 민호는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도서관.”
“히잉. 또 거기요?”
율이 김빠진다는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처음 봤을 땐 공부와는 인연이 완전 없어보이게 생겼었는데······.”
“지금 뭐라고 했냐?”
“헤헤, 주인님이 참 지적인 것 같다고 했어요.”
순식간에 변한 태도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율의 말대로 민호는 원래 공부와 인연이 있는 학생이 아니었다.
만약 오늘처럼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집에서 쉬면서 일자리나 알아봤으리라.
하지만 전달자가 되고, 첫 번째 임무를 성공하면서 그는 변했다. 정확하게는 청정유의 능력을 흡수한 이후부터였다.
‘머리가 좋아졌지.’
엄밀히 말하면 기억력이 향상된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잘 외워지지 않았던 것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심지어 잘 잊히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민호는 공부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러던 그때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였다. 이어 발신인을 확인한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석 삼촌?”
첫 번째 임무의 대상자였던 박동석.
그에게서 걸려온 갑작스런 전화에 민호는 순간 긴장했다.
“여보세요.”
-어, 민호냐? 잠깐 통화 괜찮아?
어딘가 들뜬 목소리.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다른 게 아니라 물어볼 게 있어서. 혹시 솜사탕 어디서 파는지 알아?
“솜사탕이요?”
뜬금없는 질문에 민호가 멍하니 되묻자, 동석은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응, 예전에는 공원 같은 곳에서 팔았는데 요즘은 하나도 없네.
“음, 놀이공원이나 아니면 저희 학교 앞에 있는 유원지에서는 팔 거예요.”
-아. 혹시 광진 유원지를 말하는 거야?
“맞아요. 거깁니다.”
-오, 그래. 알려줘서 고맙다.
그 대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근데 갑자기 솜사탕은 왜 찾으시는 거지?”
민호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중에 물어보기로 결정한 그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도서관 앞에 다다랐을 무렵.
민호의 시선을 잡아끈 이가 하나 나타났다.
‘키 엄청 크네.’
2미터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남자.
곤색 외투를 걸친 삼십대 초중반의 남자는 매우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로 하듯, 도서관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은 모두 그를 피해 멀찍이 돌아갔다.
민호 역시 슬금슬금 그를 피해 걸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민호와 남자의 눈이 일순간 허공에 얽혔다.
“아.”
눈을 동그랗게 뜬 남자.
그는 이내 민호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공민호 학생?”
“······네. 그런데요?”
진지하게 도망가야할지 고민하던 민호가 용기를 내서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품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어 그가 꺼내든 것은 경찰 신분증이었다.
“광진 경찰서 강력 2팀의 강진하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저 카페에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 Chapter 3. 두 번째 임무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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