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5) >
“흐아아아암.”
월요일 아침부터 민호는 늘어지게 하품을 내뱉었다. 전날 동석에게 기적을 전달하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이었다.
“으으, 졸려 죽겠네.”
게다가 오늘은 강의가 4개나 있는 날.
민호는 피곤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임무를 완료했습니다.]
“우왓! 깜짝이야!”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민호가 화들짝 놀랐다.
[고유능력의 발동을 허가합니다.]
천계시스템을 관리하는 선녀, 비단의 목소리.
동시에 그의 눈앞에 작은 메시지가 나타났다.
=====
[흡수(吸收) 발동]
-기적: ‘청정유’를 일부 흡수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였습니다.
=====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일순간 반짝였다.
잠시 후, 새로운 메시지가 등장했다.
=====
[신체 강화]
*모든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
*상승률: +10%
[기억력 강화]
*기억력이 대폭 강화된다.
*상승률: +30%
=====
이를 본 민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시에 민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바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피로가 깨끗이 사라진 것. 거기에 약간이지만 활력이 넘쳤다.
마치 잠을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아마 신체 능력이 상승된 덕분인 것 같았다.
“아, 이게 이런 능력이었구나.”
기적을 소량 흡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능력.
민호는 그제야 ‘흡수’라는 능력이 어떤 건지 깨달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가설이 민호의 뇌리를 스쳤다.
“잠깐, 그럼 혹시 전귀(錢鬼)와 비슷한 기적을 받는다면······.”
“그 능력의 일부를 흡수할 수 있어요.”
불쑥 등장한 율이 민호의 말을 이어 받았다.
그 말에 민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보다 엄청 좋은 능력이잖아?!”
“그럼요. 무려 갑(甲)등급의 능력인 걸요?”
율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놀라운 사실에 민호가 연신 감탄을 내뱉던 그때!
“잠깐만. 임무를 완료했다는 소리는 동석 삼촌 어머님의 치매가 나았다는 소리야?”
“맞아요.”
명쾌한 율의 대답에 민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민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이제 다시 일터로 복귀하시려나?”
민호가 동석을 떠올리던 그때.
돌연 그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근데 넌 지금 뭐하냐?”
민호의 어깨에 쪼그려 앉은 율이 자그마한 수첩에 뭔가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민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율은 수첩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기록해요. 이게 제 임무니까요.”
그제야 민호는 처음 율이 스스로를 소개할 때, ‘기록자’라고 소개했던 걸 떠올렸다.
열심히 기록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민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는 다시 강의실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다시 비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달자님의 성적을 집계합니다.]
[현재 달성도: 2/100]
[공덕 획득: +200]
눈앞에 자그마한 창이 나타났다.
달성도와 공헌도라는 단어와 각 항목의 수치가 보였다. 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민호는 생소한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달성도?”
공덕은 들어서 뭔지 안다.
하지만 달성도에 대해선 율에게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러자 비단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답변했다.
[달성도는 임무의 난이도에 따라 지급되는 보너스 점수입니다.]
[달성도를 목표치까지 달성하면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소원? 그럼 뭐든지 들어주는 거야?”
“네, 불법적인 것만 아니면요.”
이번에 대답을 한 건 율이었다.
그 말에 민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단순한 부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원을 들어준다면 말이 다르다.
하물며 신이 들어주는 소원 아닌가?
이 일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중.
다시 비단의 말이 이어졌다.
[임무 완료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아! 맞아. 보상이 있었지.”
민호가 손바닥을 가볍게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돈으로 받을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은근한 어조로 말을 잇던 민호가 기대감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비단의 대답이 들려왔다.
[맞습니다.]
[보상을 금전으로 환전하시겠습니까?]
“응. 부탁할게.”
민호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환전을 완료했습니다.]
[전달자님께 59,180원이 지급됩니다.]
투두둑-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호의 손바닥으로 각양각색의 지폐들이 떨어졌다.
다섯 개의 동전은 덤이었다.
“······엥?”
손에 놓인 돈을 멍하니 바라보던 민호.
잠시 후, 민호가 입을 열었다.
“잘못 준 거 아냐? 생각보다 보수가 좀 짠데?”
따지듯 묻자 비단은 예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상 지급되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
[정상 지급되었습니다.]
“······.”
무슨 말을 해도 똑같은 대답이 돌아오자 민호는 입을 닫았다.
그는 목소리만 들리는 비단 대신, 옆에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율을 흘겨봤다.
“······율아.”
“율이는 바빠요. 기록 중이에요.”
율은 분명 아까 전 기록을 끝마쳤을 수첩을 다시 꺼내들었다. 그러자 민호는 말없이 율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율의 볼을 꼬집은 채, 좌우로 잡아당겼다.
“으갸아아아! 우이임 머하은 잇이에어?!”
“꽤 많이 준다며! 보상으로 꽤 많이 준다며!”
민호가 분노로 가득 찬 일갈을 토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율은 울상이 된 얼굴로 탱탱하게 부어오른 볼을 만지작거렸다.
“히잉, 어쩔 수 없어요. 주인님은 이제 막 전달자를 시작하셨잖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죠! 인간들도 경력이 쌓일수록 돈을 많이 받잖아요? 전달자도 마찬가지에요. 등급이 오를수록 환전 액수가 커진다구요.”
율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민호는 곧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등급이 오르면 얼마나 받는데?”
“음, 제 기억에 따르면 스위스에서 활동했던 3급 전달자의 경우, 임무를 완수하면 평균 60만원에서 70만원을 수령했었어요.”
한 건에 60만원이면 나쁘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민호의 구겨진 얼굴은 펴질 기미를 안 보였다.
나중에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지금 당장 그에게 떨어진 돈은 고작 6만원 남짓한 액수였으니까.
민호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에휴, 어차피 부업이었으니까 그러려니 해야 하나.”
한숨과 함께 체념하던 그때.
[추가 보상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지금 확인하시겠습니까?]
잊고 있었던 비단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가 보상은 또 뭐야?”
“아, 깜박 잊고 말을 못 드렸네요.”
그때 율이 손바닥을 마주하며 외쳤다.
“임무 완료 보상은 임무의 난이도에 따라 개수가 결정돼요. 별이 2개면 보상도 2개고, 별이 5개면 보상도 5개가 되죠.”
“그럼 이번 임무는 별 2개짜리 난이도였으니까······.”
“당연히 보상도 두 번 받으실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민호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보상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민호는 고민에 빠졌다.
[추가 보상도 금전으로 환전해드릴까요?]
“으음······.”
낮은 신음을 내뱉은 민호.
잠시 고민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금전 말고 다른 건 없어?”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실망한 직후였다.
민호는 돈 말고 다른 보상의 종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율이 반색하며 외쳤다.
“당연히 있죠! 청정유처럼 특별한 효능이 있는 보물로 받을 수도 있고, 공덕치로도 받을 수 있어요. 또 능력으로도 받을 수 있죠.”
“내가 가진 흡수 능력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맞아요! 대신 등급은 좀 낮지만요.”
“응? 등급이 낮다는 게 무슨 소리야?”
“우음, 리스트를 보는 게 이해가 빠를 거예요.”
율이 두꺼운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민호는 책자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
B-01) 이름 없는 전령의 축복
*등급: 임(壬)
*이동속도가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상승률: +5%
B-02) 거리의 구걸하는 신
*등급: 임(壬)
*길 위에서 돈을 얻을 확률이 증가한다.
*상승률: +7%
B-03) 아귀(餓鬼)의 손가락
*등급: 신(辛)
*섭취하는 음식의 칼로리가 소폭 감소한다.
*감소율: +4%
=====
“······죄다 미묘한 것들뿐이네.”
등급이 낮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됐다.
민호는 책자를 덮은 뒤, 율을 돌아봤다.
“이것도 10번 이후는 뽑기로 얻을 수 있는 거야?”
“맞아요! 운이 좋으면 을(乙)등급의 능력도 얻을 수 있죠.”
“천분의 1의 확률로 말이지.”
민호가 피식 웃었다.
책자에 적힌 능력은 무려 3천 개에 달했다.
하지만 을(乙)등급 능력은 오직 세 개 뿐.
“그래도 혹시 이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
리스트를 보던 민호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그의 시선은 고유능력을 선택할 때 봤던 ‘전귀’에 고정되어 있었다.
“후후, 제가 봤을 때 주인님은 이미 운을 다 쓰셨어요. 잘 나와 봐야 이 정도가 한계라고 봐요.”
율이 섭취 칼로리를 줄이는 ‘아귀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에 민호는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결정한 듯 중얼거렸다.
“능력을 뽑을게.”
그러자 바로 비단의 음성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그럼 능력 뽑기를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돌연 비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능력을 뽑았습니다.]
[추가 보상의 지급이 완료되었습니다.]
평소 답지 않게 감정의 동요를 보이는 비단의 목소리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큭!”
순간적으로 왼쪽 눈에 느껴진 찌릿한 통증.
잠시 후, 그의 눈앞에 작은 사각형 창이 나타났다.
=====
B-333) 심안(心眼)
*등급: 을(乙)
*특정 대상(인간)의 마음속을 하루 동안 3번 엿볼 수 있다.
=====
새로운 능력의 등급은 을(乙).
이를 본 민호와 율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 전귀가 아니네.”
“말도 안 돼!”
둘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율은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듯 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 어떻게 이게 나올 수가 있어요!? 천분의 일의 확률이라구요?!”
“내가 운이 좋은가보지.”
민호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왼쪽 눈을 몇 차례 깜박거린 그는 다시 율을 돌아봤다.
“근데 이건 어떻게 쓰는 능력이야?”
마음을 읽는 능력을 얻은 건 좋았다.
하지만 사용법이 나와 있지 않았기에 민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과 관련된 능력은 보통 대상을 지그시 바라보면 자동으로 발동해요.”
“그래? 그럼 어디······.”
율의 대답에 민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중 그의 시야에 두 남녀가 들어왔다.
“오빠, 우리 이번 주말엔 어디 갈까?”
“음, 저번에 가고 싶다던 그 카페는 어때?”
“헤헤. 좋아! 그럼 거기 갔다가 저녁에는······.”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앳된 커플.
그들을 발견한 민호는 잠자코 율의 설명을 떠올렸다.
“대상을 지그시 바라보라고 했지?”
민호는 남자 쪽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자 얼마 후.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얘는 주말에 친구들은 안 만나나?]
[대체 왜 나만 만나려는 거야?]
[맘 편히 게임 좀 하나 싶었는데, 에휴.]
바로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풍선이 남자의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
순식간에 나타난 말풍선은 곧 점점 옅어지며 사라졌다.
“와, 겉보기에는 엄청 다정해보였는데······.”
“어땠는데요?”
율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민호는 자신이 본 남자의 마음속을 말해줬다.
“그보다 세 번이라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민호가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점점 멀어지는 커플의 등 뒤를 쫓던 중.
문득 민호의 시선이 학교 정문에 걸린 시계로 가 닿았다.
“헉! 뭐야? 시간이 왜 이렇게 됐어?!”
시계는 9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를 본 민호는 깜짝 놀라 외쳤고, 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주인님께서 멍하니 서 계셨으니까요.”
“그럼 말을 해줘야지! 젠장, 늦었다!”
월요일부터 지각하게 생겼다.
정신을 차린 민호는 부리나케 강의실을 향해 달려갔다.
<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5)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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