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2) >
“뭐? 연기력?”
“네. 사람들이 좀 더 도와주고 싶어지게 만드셔야죠.”
“더 힘든 척을 하라는 거야?”
“아니요. 우음, 예를 들면······.”
잠시 말을 흐린 율.
그녀의 시선이 언덕 아래로 향했다.
“여기서 한번 굴러 떨어져 보는 건 어때요?”
황당한 제안에 민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 나한테 불만 있냐?”
“에이, 설마요.”
“여기서 구르면 아픈 걸로는 안 끝난다고!”
민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항의하자, 율은 중간 부근을 가리켰다.
“그럼 그냥 저기 중간 부근에서 구르는 걸로 합의를 보죠.”
“그게 그거잖아!”
“아무튼 연기력이 부족해요. 이대로는 실전에 투입될 수 없어요.”
미간을 찌푸린 율이 리어카를 톡톡 두드렸다.
“자, 한 번만 더 연습해 봐요.”
“······.”
그녀가 방긋 웃었다.
천사 같은 미소였지만 민호에게 있어선 더할 나위 없이 사악하게 보였다.
***
그로부터 약 3시간 후.
민호는 여전히 언덕길을 오르는 중이었다.
“흐엑! 히에엑······!”
벌어진 입에서 기운 빠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당장 주저앉고 싶었지만 참았다.
앞으로 몇 발짝만 더 가면 목적지였으니까.
민호는 힘을 내서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휘청-
“어, 어어?”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민호의 몸은 서서히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를 인지한 민호는 황급히 양 다리에 힘을 준 뒤, 허리를 앞으로 굽혔다.
“흐으읍! 끄허억!”
그 결과, 리어카와 함께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허리와 다리가 부러질 것만 같이 아팠다.
“끄응! 빌어먹을 리어카. 더럽게 무겁네.”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착한 민호가 허리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때 잠자코 어깨에 앉아있던 율이 일침을 가했다.
“주인님! 말투 신경 쓰셔야죠!”
“염병할, 리어카! 더럽게 무겁네. 아이구, 아이구! 내 허리······.”
“음,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에요. 다음 멘트!”
율이 민호의 곁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민호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보게, 젊은이. 미안한데 나 좀······.”
“컷!”
율은 손가락으로 민호의 코를 톡 쳤다.
“주인님, 지금 책 읽어요? 요즘 세상에 누가 젊은이라고 불러요?”
“그럼 뭐라고 불러?”
“총각 정도면 되겠네요. 자, 기합 넣고 다시 가 봐요!”
율의 조언에 민호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표정 연기를 펼치며 말했다.
“이보게, 총각. 미안한데 나 좀······.”
“컷!”
“아, 또 왜?!”
“이보게라는 단어가 너무 올드해요. 아예 빼는 게 좋겠어요.”
“그럼 아까 말할 때 한 번에 말하던가!”
“그땐 캐치하지 못했어요. 자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만 더 가요!”
활짝 웃은 율이 의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2시간 정도가 더 지난 뒤.
아침 운동을 나온 학생들이 민호를 도와 언덕을 오른 걸 끝으로, 비로소 길었던 연습이 끝났다.
***
일요일 늦은 밤.
민호는 동석이 거주하는 달동네로 향했다.
아직 자정이 되지 않았음에도 거리는 조용했다. 게다가 불규칙적으로 깜박이는 가로등은 동네를 더욱 을씨년스럽게 물들였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하지만 민호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어······.”
동네의 초입부에 선 민호가 눈앞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높고 가파르고 긴 언덕.
도로는 비포장. 중간 중간에는 돌부리까지 삐죽 솟아나 있다.
게다가 깨진 유리병이나 수북이 쌓인 돌조각들이 비장미를 더했다.
“······이 언덕,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거 맞지?”
민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젯밤, 민호가 연습했던 곳이 튜토리얼 모드라면 여긴 하드코어 모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에 이런 곳에서 굴렀다가는······.”
말을 흐린 민호가 머리를 황급히 흔들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주인님!”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던 율이 민호의 곁으로 돌아왔다.
“조금 있으면 대상이 이 근처를 지날 거예요.”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민호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율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관찰자의 보고를 통해서요.”
“관찰자?”
“저희와 같은 신의 대리인이에요. 주로 대상을 관찰해서 다른 대리인들에게 정보를 알리는 역할을 하죠.”
율의 대답에 민호는 대충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종의 정찰병 같은 느낌인가?”
“으음, 뭐 비슷해요.”
삐리리리리-
그때 율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전화기가 울렸다.
“네, 여보세요.”
-······대상이 그쪽으로 향했다.
전화기 너머에서 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낮게 가라앉은 남성의 목소리.
“거리는 어느 정도나 돼요?”
-앞으로 2분 안에 도착할 거다.
“고마워요. 준비할게요.”
감사인사를 끝으로 율은 전화를 끊었다.
“방금 통화한 사람이 관찰자야?”
“네, 그보다 일단 준비하죠. 대상이 오고 있다고 하니까요.”
그 말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첫 임무가 시작된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민호는 비장한 얼굴로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
“주인님, 얼굴 펴세요.”
“······알겠어.”
너무 비장했던 모양이었다.
양손으로 뺨을 두드린 민호는 조금씩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리어카가 요란스럽게 흔들렸다.
덩달아 민호의 가슴도 덜컹거렸다.
리어카를 끌고 언덕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저벅-
‘왔다!’
리어카 손잡이를 잡은 민호의 팔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멀리서부터 동석이 걸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모습.
이를 지켜보던 율이 초조한 듯 소리쳤다.
“주인님! 아무것도 안 하면 대상이 그냥 지나가 버릴 거예요!”
그녀의 말은 옳았다.
실제로 동석은 그저 땅만 보며 묵묵히 걷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민호는 걱정하지 않았다.
‘괜찮아. 이쪽을 보지 않는다면······.’
보게 만들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한 민호는 몸을 조금 과할 정도로 기울였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리어카에서 폐지와 고철 일부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와르르르- 쿠웅!
요란스러운 소음이 적막한 거리를 물들였다.
그리고 동석의 발이 멈췄다.
‘좋아!’
이를 눈치 챈 민호는 목청을 가다듬고는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구, 허리야. 이놈의 리어카는 또 왜 말썽이여?”
그의 행동과 말투는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민호는 바닥에 흩뿌려진 폐지와 고철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구겼다.
“에휴, 이걸 언제 다 줍누.”
민호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는 한편, 민호는 저 멀리 있는 동석을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사람이 좋은 동석이라면 분명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민호의 예상은 빗나갔다.
‘어?’
잠시 리어카를 쳐다보던 동석이 돌연 몸을 틀어버린 것.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민호는 당황했다.
‘아니, 그냥 가면 곤란한데?’
민호는 허둥지둥 거리며 동석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그거 보세요.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한다니까요?”
율의 목소리와 함께.
쿵!
그녀가 리어카를 걷어찼다.
“······엥?”
민호가 멍하니 중얼거렸고.
동시에 리어카가 그대로 뒤로 기울었다.
덜컹!
덩달아 민호의 몸도 순간적으로 기울어졌다.
이어 리어카는 민호를 매단 채, 그대로 아래를 향해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어어어!?”
당황한 민호는 황급히 하체에 힘을 줘서 버텼다. 하지만 그의 힘만으로 리어카를 멈추는 건 불가능했다.
삐끗-
“큭!”
설상가상으로 발목까지 접질렸다.
영락없이 리어카와 함께 굴러 떨어지려는 그 순간!
쿠웅!
갑자기 강한 충격음이 들렸다.
잠시 후,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며 구르던 리어카가 서서히 멈췄다.
“끄응······.”
이어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어, 어르신. 괜찮으세요?”
바로 동석이었다.
<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2)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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