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1) >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인적이 드문 거리에 인기척이 나타났다.
간헐적으로 깜박이는 가로등 아래에 일렁이는 검은 인영(人影).
그 정체는 바로 야상잠바를 걸친 민호였다.
“후우.”
민호의 입에서 뿌연 입김이 흘러나왔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민호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낡은 리어카와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
“그러니까······.”
잠시 말을 흐린 민호.
그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지금 나보고 이걸 저기까지 나르라고?”
“네!”
율이 밝게 대답하자 민호는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이유부터 들어보자.”
“이유는 간단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율의 담담한 설명이 이어졌다.
노인으로 변장해서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전달자의 임무다.
하지만 생면부지의 노인이 알 수 없는 물건을 건네준다면 누구라도 의심부터 할 게 뻔했다. 그래서 전달자들은 대상이 노인을 신뢰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기로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곤경에 처한 노인을 연기하는 거죠.”
율이 앙증맞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대상이 주인님을 도와주면, 주인님은 거기에 대한 보답으로 기적을 전달하는 거예요. 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확실히 먹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율의 설명은 알아듣기 쉬웠다.
하지만 민호는 여전히 꺼림칙한 얼굴이었다.
“의도는 알겠는데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어?”
“다른 방법도 있긴 한데 이번에는 쓸 수가 없어요.”
“어째서?”
“이 임무는 마감시간이 있잖아요.”
그녀의 말에 민호는 문득 천계에서 부여받은 임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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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임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라.
*대상:
-71년 12월 17일생
-유시酉時에 태어난 박동석(朴銅碩)
*기적: 청정유(淸定油)
*마감: 1일 4시간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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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묻고 싶었는데.”
임무를 떠올린 민호가 입을 열었다.
“왜 임무에 제한시간이 있는 거야? 혹시 이거 유통기한이 짧은 건가?”
민호는 품속에 소중히 넣어두었던 청정유를 꺼냈다.
하지만 청정유에는 딱히 유통기한 같은 게 적혀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때.
“주인님.”
활발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율이 돌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일반적인 임무에는 마감이 붙지 않아요.”
“그럼 이번 임무는 일반적인 게 아니라는 소리야?”
“네. 임무에 제한시간이 붙는다는 말은······.”
잠시 말을 흐린 율이 굳은 얼굴만큼이나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상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명부(冥府)에 들어간다는 뜻이거든요.”
“뭐?!”
민호는 화들짝 놀랐다.
“그, 그 말은 동석 삼촌이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천계 시스템의 예측에 따르면요.”
“······.”
민호는 입을 굳게 닫았다.
1일 4시간.
동석의 수명이 딱 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자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럼 그 전에 이걸 전달하면 어떻게 돼?”
“그 이후부터는 저도 몰라요. 그래도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대상에게 기적을 전달하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명부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율의 대답에 민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까지 들은 이상, 그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후우, 알겠어. 우선 연습부터 하자.”
“잘 생각하셨어요.”
결정을 내린 민호는 망설임 없이 도깨비 수염을 붙였다.
그러자 민호의 외형이 순식간에 70대 초반의 노인으로 변했다.
“이걸 저 위까지 옮기기만 하면 되는 거지?”
“네!”
민호는 결연한 표정으로 리어카를 움켜잡았다.
경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외모만 노인으로 변했을 뿐, 신체 능력은 그대로였으니까.
“흐랴아아압!”
짧은 기합과 함께 민호는 앞으로 나아갔다.
“컥!”
동시에 누가 뒤에서 목을 잡아챈 것 마냥 멈췄다.
리어카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던 탓이다.
민호는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뭐야? 왜 이렇게 무거워?”
“그야 특수 제작된 리어카거든요.”
“뭘 얼마나 특수하게 제작했길래······.”
“별 거 없어요. 일반 리어카보다 약 2배 정도 무거울 뿐이에요.”
“별 거 많잖아!”
민호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왜 이런 리어카를 끌어야 되는 건데?!”
“그야 동정을 유발하기 위해서죠.”
“동정을 유발해서 어쩌려고?”
“생각해보세요. 주인님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리어카를 끄는 노인과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겹게 언덕을 오르는 노인 중에서 누굴 더 돕고 싶을 것 같아요?”
“······.”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한숨을 내쉰 민호는 묵묵히 리어카를 잡았다.
“후우.”
쇠로 된 손잡이에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입술을 꽉 깨문 민호는 언덕 끝을 응시했다.
생각보다 무겁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끌 정도는 아니었다. 민호는 그간 공사판에서 다져진 근력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허리와 다리에 힘을 주려던 찰나!
“앗! 깜박할 뻔 했네요.”
율이 돌연 손가락을 튕겼다.
쾅! 쿵쿵! 터엉!
요란스런 소리와 함께 리어카가 묵직해졌다.
민호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리어카에 실린 것들을 쳐다봤다.
“······율아.”
“네, 주인님.”
“이건 뭐냐?”
“폐지랑 고철이요.”
“그건 아는데 그걸 왜 여기다 실어?”
“그야 텅 빈 리어카를 끌면 이상하니까요.”
“고물상에 폐지를 처분하고 귀가하는 영감님일 수도 있는 거잖아!”
“이래야 좀 더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어요.”
민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율은 단호했다.
“괜찮아요! 주인님이라면 가능할 거예요!”
율은 작은 주먹을 위로 올리며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이에 민호는 율을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하아, 그래. 이왕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민호가 이를 악물었다.
허리에 힘을 빡 준 민호가 언덕의 끝자락을 바라봤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주마!”
그의 두 눈이 강렬하게 불타올랐다.
***
늦은 밤.
조용한 언덕길.
삐그덕! 삐그덕-
낡은 리어카에서 나는 소음과 함께.
“허억, 허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한 노인이 안간힘을 쓰며 리어카를 끄는 모습.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그 광경은 길지 않았다.
끼이익!
가파른 경사를 지나 언덕의 끝에 도착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으랏차차!”
노인은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리어카를 평탄한 곳에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흐으으! 더럽게 무겁네.”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간만에 제대로 힘을 쓴 탓인지 몸에 깃든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수고하셨어요, 주인님!”
그때 율이 민호에게 쪼르르 날아왔다.
그녀는 방긋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한 번 더 해볼까요?”
“······뭐?”
“이번에는 좀 더 디테일하게 해봐요!”
“잠깐! 자, 잠깐만 기다려봐.”
당황한 민호가 황급히 율을 말렸다.
“나보고 이 짓을 또 하라고?”
“네!”
“내가 왜?!”
“그야 아직 준비가 덜 되셨으니까요.”
“뭔 소리야? 연습 제대로 했잖아?”
그 말에 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주인님이 하신 건 그냥 리어카를 여기까지 옮긴 게 전부잖아요?”
“네가 그렇게 하라며!”
민호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또 뭐가 부족한데?!”
그 외침에 율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우음, 굳이 말씀드리면 주인님은 연기력이 부족해요.”
율의 말에 민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 Chapter 2. 기적을 전하는 방법 (1)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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