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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전해드립니다-4화 (4/182)

< Chapter 1. 신의 선택을 받다 (3) >

도착한 곳은 이제 막 완공된 아파트.

“자, 그럼 준비해보자고.”

이곳에서 민호가 하는 일은 단순했다.

다른 직원들을 보조해서 장비나 자재를 옮기거나 기타 잡일을 하는 것.

몸이 고된 일이지만 그래도 보수가 쏠쏠한 덕에 민호는 군말없이 일할 준비를 시작했다.

잠시 후, 작업 준비가 완료되자 사장이 직원들을 불러모았다.

“다들 오늘 끝나고 한 잔하는 거 알지?”

그 말에 직원들 몇몇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좋아. 그럼 오늘도 힘내자.”

그 말을 신호로 직원들은 작업에 착수했다.

작업장에 오기 전, 사장이 일이 많을 거라고 했던 건 빈 말이 아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유독 바빴고 그만큼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할 무렵이 돼서야.

슬슬 작업의 끝이 보였다.

“으으으! 온 몸이 쑤시네.”

장비를 정리하던 민호가 기지개를 폈다.

민호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응?”

그러던 중 민호는 기묘한 감각을 느꼈다.

누군가 나뭇가지로 어깨를 콕콕 찌르는 감촉.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팔을 걷어붙인 천율이 있었다.

“너 뭐하냐?”

“헤헤, 이렇게 하면 좀 나아지실까 싶어서요.”

천율은 병아리 발톱만한 손으로 민호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 귀여운 광경에 민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간지럽다. 그만해.”

“힘 조절도 가능해요.”

“그래봤자······. 크헉!”

순간 민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방금 전의 안마가 나뭇가지였다면 이번에는 둔기로 어깨를 강하게 맞은 수준이었다.

“아차! 죄송해요. 너무 세게 했죠?”

화들짝 놀란 천율이 힘을 줄였다.

“이, 이 정도면 어떠세요?”

이제는 제법 그럴 듯한 강도였다.

민호는 무언으로 대답했고, 천율은 말없이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리고 잠시 후.

잠자코 있던 민호의 입이 열렸다.

“야.”

“천율이에요. 율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녀의 말에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율아.”

“네, 주인님.”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잠시 말을 멈춘 민호.

고개를 돌린 그는 율과 시선을 마주했다.

“신이라는 작자가 전달자라는 존재를 선택하는 기준이 뭘까?”

민호의 말은 ‘내가 왜 신의 선택을 받은 거냐?’는 어제의 질문을 돌려 말한 것에 불과했다. 이를 알아차린 율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어,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저도 잘······.”

“대충 짐작 가는 거라도 없어?”

재차 이어진 질문에 율은 입을 꼬옥 닫았다. 그 모습에 민호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내가 말하긴 뭐하지만 난 특별한 게 없는 놈이거든. 고아에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가진 것도 없어. 그런데 신은 왜 날 선택한 걸까?”

그의 중얼거림이 끝나고 얼마 후.

굳게 닫혔던 율의 입이 열렸다.

“······음, 굳이 짐작하자면 전생의 공덕(功德)이 많아서일 거예요.”

“전생? 공덕?”

“네. 혹시 주인님은 전생을 믿으세요?”

“뭐, 있으면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지.”

민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에게 있어 전생이란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딱 그 정도 흥미에 불과했으니까.

그러자 율은 방긋 웃으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은 수많은 전생을 거쳐 태어나고, 죽는 걸 반복해요. 그러면서 공덕(功德)을 쌓거나 악덕(惡德)을 쌓곤 하죠.”

공덕과 악덕.

율은 그 중에서 우선 악덕에 대해 설명했다.

“악덕을 많이 쌓은 이들은 살아서는 끊임없는 불행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끌려가 엉겁의 세월 동안 연옥에 갇혀요. 그리고 그간의 악덕이 모두 씻겨나갈 때까지 온갖 고통 속에서 허덕이게 되죠.”

“그거 무섭네.”

“반면 공덕을 많이 쌓은 이들은 기적이나 신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녀의 대답에 민호가 질문을 던졌다.

“공덕과 악덕은 어떻게 구분하는데?”

“쉽게 생각하면 돼요. 착한 일을 하면 공덕이고 나쁜 짓을 하면 악덕이죠.”

율의 말은 간단했지만 조금 난해했다.

그래서 민호는 한 가지 예시를 들었다.

“만약에 내가 곤경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도와줬다고 치자. 그럼 이건 공덕이지?”

“그렇죠.”

“근데 그 사람이 실은 연쇄살인마였어. 그래서 내게 도움을 받은 다음, 사람을 죽였지. 그럼 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주인님은 공덕을 쌓은 거고, 살인마는 악덕을 쌓은 거죠.”

“내가 그 살인마를 도와줬는데도?”

“네. 주인님은 그 사람이 살인마라는 걸 몰랐잖아요.”

“만약 알고 도운 거면?”

“당연히 악덕이에요. 공범이잖아요?”

민호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현듯 떠오른 오류를 입 밖에 냈다.

“그럼 내가 의사인 경우라면 어때?”

“악덕이 쌓이긴 하지만 직업윤리를 존중해서 조금만 쌓여요.”

“그것참 디테일한 배려네.”

민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완전히 납득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대충 알 것 같았다.

공덕과 악덕이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

“아무튼 전달자는 공덕을 쌓은 이들에게 기적을 전달해주는, 고귀하고도 숭고한 역할을 맡은 존재에요.”

즉 전달자란 착하고 선하게 산 이들에게 신의 선물을 전달하는 존재다.

이른바 산타클로스 같은 사람.

민호가 이해한 전달자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전달자는 단순히 기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양의 공덕을 쌓는 게 가능해요. 즉, 내세(來世)를 생각한다면 이는 굉장한 기회라고 할 수 있죠.”

율은 전달자에 대한 숭고함과 위대함을 설파하면서 대답을 마무리했다.

“그 굉장한 기회를 나한테 줬다는 건, 나도 전생에 제법 공덕을 쌓았단 소리야?”

“분명 그럴 거예요. 전달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기억조차 없는 전생에서의 공덕.

그 덕분에 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하니, 민호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민호야. 공민호!”

“예?”

갑자기 훅 들린 목소리에 민호가 화들짝 놀라 답했다.동시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승혁이 보였다.

“짜식이, 뭐 하느라 불러도 대답이 없어?”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민호가 멋쩍게 웃었다.

“됐고. 그보다 너도 갈 거지?”

“네? 어디를요?”

“사장님이 한 잔 꺾자고 했잖아.”

승혁이 술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이에 민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은 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일정이 있었다.

잠시 후, 마음을 굳힌 민호는 거절의 대답을 하려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보다 승혁의 말이 한 발 앞섰다.

“사실 오늘 회식, 동석 삼촌 송별회다.”

“······송별회요?”

“그래, 동석 삼촌 오늘까지만 일한다고 하셨거든.”

“왜, 왜요?”

민호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변했다.

처음 듣는 소리였던 탓이었다.

그의 반응에 승혁은 쓰게 웃으며 민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서 얘기해줄게. 사장님! 민호도 간답니다!”

민호의 어깨를 끌어안은 승혁이 사장을 향해 소리쳤다.

얼떨결에 이끌린 민호는 저 멀리 있는 동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

작업이 끝나고 일행이 향한 곳은 자그마한 단골 호프집.

“다들 수고했고, 오늘은 맘 놓고 마셔라!”

맥주 한 잔을 치켜든 사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된 일을 끝내고 마시는 술은 무척이나 각별했다.

“건배!”

“자자, 쭉 들이켜!”

일행은 저마다 수다를 떨며 술을 들이마셨다.

순식간에 왁자지껄하게 변한 분위기.

그 속에서 민호는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를 응시했다.

‘동석 삼촌······.’

민호에게 있어 동석은 친한 아저씨 이상의 존재였다.

그에게 처음 이 일을 소개시켜준 사람.

그리고 민호를 가장 많이 도와주고 가르쳐준 사람.

일을 떠나 여러 가지 방면에서 민호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동석이었다.

아저씨 이상, 아버지 미만의 관계.

그래서 민호는 동석을 삼촌이라 불렀다.

또 민호는 스스로가 동석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언젠가 성공하면 꼭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한 사람 중 하나였다.

‘왜 갑자기 그만두시는 걸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동석은 평소와 같았다.

일할 때도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민호는 더욱 의아해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승혁은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은 몰랐다는 사실이.

그러던 그때였다.

“뭘 그렇게 보냐? 어디 예쁜 누나라도 있어?”

얼큰하게 취한 승혁이 곁에 다가와 앉았다.

“오늘 고생했다. 한 잔해라.”

“감사합니다.”

민호가 술을 공손히 받았다.

그때 승혁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뭐 고민이라도 있냐?”

“아니요. 그게 아니라······.”

말을 잇던 민호의 시선이 동석에게로 향했다.

“동석 삼촌, 그만두신다고 했던 거요.”

“아, 그거······.”

승혁이 말을 흐렸다.

소주를 들이 킨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동석 삼촌, 어머니 편찮으신 건 알고 있지?”

“아, 네.”

“최근 들어 병세가 좀 더 심해지신 모양이야. 그래서 간병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그 대답에 민호는 일순간 납득했다.

동석은 일터에서도 효자로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에휴, 하늘도 무심하시지. 삼촌이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데.”

승혁은 마치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소주를 연달아 들이켰다.

그러던 중 멀찍이 있던 사장이 다가왔다.

동석의 근처에 앉은 그는 테이블을 보더니 얼굴을 구겼다.

“뭐야? 여기는 왜 이거밖에 안 시켰어? 마음껏 먹으라고. 더 시켜! 팍팍 시켜!”

“진짜죠? 이모! 여기 치킨 크고 양 많은 놈으로 하나 추가요!”

동석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요란스럽게 소리쳤다.

다시 왁자지껄하게 변한 분위기 속에서 사장은 말없이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동석이. 한 잔 받아라.”

“예.”

빈 잔에 소주가 꽉 채워졌다.

“그간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동석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지막이니까 섭섭한 거 있으면 다 말하고.”

“그런 거 없습니다. 있었으면 진즉 말했죠.”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사장이 피식 웃었다.

잠시 후, 사장은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는 동석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사장님? 이게 무슨······.”

“받아둬. 돈 필요할 일 많을 거 아냐.”

“그, 그래도······.”

“퇴직금이라고 생각해. 이것밖에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

동석의 눈동자에 갈등의 빛이 맺혔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래,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고.”

사장이 동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때, 맞은편에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이것도 받아주십쇼.”

남자는 사장이 건넨 것과 마찬가지로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큰돈은 아니지만 동생들이랑 십시일반해서 모았습니다.”

“삼촌,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보고 싶을 겁니다, 형님.”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직원들이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에 동석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다들 정말, 정말 고맙다······.”

반쯤 흐느끼는 목소리.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민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돕고 싶다.’

동석에게는 받은 게 많다. 받은 것만 많다.

그에게 준 것은 많지 않다.

아니, 하나도 없다는 게 옳은 표현이리라.

‘삼촌을 도와주고 싶어.’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그럼에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기에.

“도울 수 있어요.”

그때, 잠자코 있던 율이 입을 열었다.

“뭐?”

민호가 멍하니 묻자 율은 활짝 웃었다.

“동석 삼촌이라는 분, 주인님께서 도울 수 있다구요!”

< Chapter 1. 신의 선택을 받다 (3) > 끝

ⓒ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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