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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97화 (19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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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의 분노가 적진을 휩쓸었다. 그가 여명을 휘두를 때마다 살점과 갑옷 잔해가 휘날렸다. 가는 곳마다 피의 폭풍이 몰아치고 사람이 고깃덩이가 되어 조각난다. 아르투르의 검격 내로 들어오는 자들은 꼼짝없이 죽었다. 그럼에도 적군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대륙 최강의 군대, 대왕의 직할군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었다.

“사방을 포위하고 동시에 쳐라! 계속 몰아쳐! 적의 왕만 잡으면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공을 세워 귀족의 반열에 오르라!”

지휘관들의 독전이 병사들을 재촉했다. 위력적인 공격이 아르투르를 향해 전방위적으로 날아들었다. 대검과 할버드, 도끼, 화살, 올가미, 쇠사슬 등 인간이 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무기가 한 사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런데 아르투르는 전혀 긴장되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분노와 흥분이 끓어올랐다. 온 몸의 신경 조직이 가득 곤두서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으며 근육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아르투르는 날아드는 모든 공격을 읽어내고 피하며, 막고, 쳐내며, 심지어는 받아쳤다.

성검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여명은 사람의 목을 쳐도 녹슬지 않는 명검이었으며, 에렌이 만들어준 갑옷은 평범한 칼과 창 따위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런 장비들은 아르투르의 대담함과 공격성, 완벽에 가까운 검술과 흉기처럼 단련된 몸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더 덤벼라, 더! 고작 이정도로는 짐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시체의 산위를 밝고 선 아르투르는 적병들의 방진을 향해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피에 굶주린 기사가 미쳐 날뛰며 진형을 뭉게버렸다. 여명의 날은 회전하는 칼날처럼 적들을 쓸어버렸다.

“저, 저 자가 사람인가?”

산전수전을 다 겪어온 숙련자들조차 피를 뒤집어쓴 아르투르의 모습을 보며 오금을 저렸다. 충분히 대담한 자들은 아르투르의 무위를 보며 가슴 속에서 감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원초적인 폭력으로 내보이는 압도적인 강함! 지금 그들은 온 세상의 무인들이 숭상해마지 않을 위대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아르투르와 합을 겨루기 위해 모여들었다.

“오오오오! 저런 자를 쓰러뜨린다면 가문의 역사에 길이 남으리!”

“비켜라! 기사왕을 쓰러뜨리는 자는 슈타우펜 가문의 프리드리히가 되리라!”

모두 헛된 짓이었다. 신입이건 경험자건, 병사건 기사건 아르투르의 일격 앞엔 평등하게 죽었다. 도전자들을 무참히 죽여버린 아르투르는 무아지경 속에서 전장의 정중앙을 휩쓸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아군의 사기는 용솟음치듯 치솟았고 적들은 절망 속에서 무기를 내던지며 도망쳤다.

“국왕 폐하 만세! 레무리아 왕국 만세! 두라노 만세!”

그들의 지도자가, 아버지가 가는 모습을 본 두라노 병사들은 와해되는 적진의 틈으로 용맹이 돌진했다. 두라노 인들은 그들의 경애하는 지도자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며 사자처럼 싸웠다.

“감히! 일개 도시 국가놈들이 우리에게 맞서겠단 말이냐!”

“아르투르 왕 만세!”

“루이스 대왕 만세!”

분명히 루이스 군대의 압도적인 조직력 앞에 두라노 군은 패배해가고 있었지만 이제 상황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아르투르가 있는 곳은 무조건 아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왕이 자리를 떠나면 밀려나거나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버텨라! 왕께서 오실 때 까지만 버텨라!”

“하! 약해빠진 놈들! 황금 방패 연대여, 전진하라! 저 벌레들을 쓸어버려라!”

중앙에서 시작된 혈투는 다른 방면에서도 목격되었다. 특히 싸움의 중심이 고지대였던 터라 아르투르의 모습은 모든 병사들에게 목격되고 있었다. 번득이던 황금 왕관은 피에 절여져 광채를 잃었으나 기사왕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전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오너라! 짐의 칼이 굶주렸노라!”

아르투르는 피에 굶주린 전쟁신처럼 버티고 서서 대항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고 있었다. 이름 높던 명문가의 깃발들이 부러지고, 그들의 시신이 나뒹구는 모습이 모든 병사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졌다.

“저분이, 저분이 우리의 왕이시다! 가자! 승리가 우리와 함께 한다! 두라노 인들이여! 앞으로!”

두라노 군의 사령관, 조레스가 깃발을 앞세우며 왕의 뒤를 따랐다.

“앞으로! 앞으로! 국부께서 우리를 이끄신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아르투르 군의 사기가 모든 전선에서 드높아지고 있었다. 전투가 막 시작했을 때, 아르투르 군은 말단부터 지휘부까지 모두 적군의 위용에 주눅들어 있었다. 적들은 강대한데 자신들은 약했다. 이길 수 없는 전투라고 생각했다.

기사왕의 추종자들은 그가 불패의 기사라면서 떠들고 다녔지만 시골 촌부도 걸러서 들을 터무니없는 이야기 천지였다. 홀로 백 인을 베었다거나 열둘의 기사를 상대했다는 걸로도 모자라 반신이나 대악마를 죽였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상처를 치유하는 성검을 지니고, 고대의 여신의 가호를 받는 게 진실이라면 그들에겐 승산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전쟁의 신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억하라! 저분이 우리의 왕이시다!”

“돌격!!!”

새로운 희망이 장병들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들의 국왕은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건재하다는 모습 자체가 그가 신의 비호를 받는다는 뜻이리라!

“국왕 폐하 만세! 피오렌치아 만세!”

피오렌치아 군단을 이끌던 레니에조차 자신이 내뱉은 말에 크게 놀랐다. 어쨌든 이 구호는 병사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의 말을 따라서 외친다!

“국왕 폐하 만세! 피오렌치아 만세!”

모든 전선에서 예상 외의 반격이 시작되자 루이스의 군대는 당황했다.

“마스터 나이트! 놈들을 죽여대도 물러나질 않습니다!”

젊은 기사들은 맹수처럼 돌진해오는 피오렌치아 군인들을 보며 당황했고, 바야르는 즉각 칼을 휘둘러 적병 세 명을 한 번에 참수한 후 전황을 둘러보았다.

“좋지 않군.”

바야르는 작게 중얼거린 후 쓰러뜨린 적을 보며 넋이 나간 애송이 기사를 끌어당겼다.

“너는 가서 대왕 폐하에게 내 말을 똑똑히 전해라! 지금 장병들은 자신들이 누굴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지 보고싶어한다! 당장 눈에 띄는 곳으로 가서 목숨 걸고 싸우시라고 해! 아르투르 놈을 상대하는 게 버거우시면 다른 전선으로 들어가시라고 해! 당장! 이대로면 질지도 모른다!”

“하, 하지만 경호 문제가….”

“멍청아! 어떤 병사도 같이 피 흘리지 않는 왕을 위해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지 않는다! 최고의 기사들이 곁에서 경호를 할 텐데 뭐가 문제란 말이냐! 당장 가!”

바야르의 불호령에 젊은 기사는 서둘러 전령으로 떠났다. 노기사는 말을 잇는 와중에도 달려드는 적군들을 쓰러뜨렸다. 피오렌치아 인을 죽이는 데는 집중할 필요도 없었다. 바야르는 칼을 붓 삼아, 적군의 피를 물감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다.

“실력도 없으면서 아득바득 덤비기만 하는 버러지 같은 놈들!”

주군에 대한 그의 못마땅함과 분노는 적들을 향한 파격적인 공세로 이어졌다. 바야르가 이끄는 기사단은 손쉽게 적들을 휩쓸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혈투가 모든 전선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피와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함과 비명이 울렸으며, 투지와 신념이 부딪쳤다.

생존 혹은 승리.

두 가지 중 하나만이 모든 사람들의 뇌리를 스쳤다. 승리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의 적을 향해 살고자 무기를 휘두르고 적들을 찔렀을 뿐이다. 푸르른 벌판은 수십만의 생명이 가진 모든 가능성과 희망, 생명을 파먹어 들어가는 괴물로 변했다.

***

“허. 저분은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아닌 것 같다니까요. 저게 뭡니까?”

언덕에 선 만프레드는 망원경으로 중앙의 전세를 살핀 후 혀를 내둘렀다. 처음 만났을 때도 홀로 백 명을 죽이는 괴물 같은 짓을 하더니 이제는 아예 전쟁의 판도를 혼자 바꾸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명백한 전설의 영역이었다.

“신들에게 사랑 받는 인간들이란 항상 저런 자들이었지.”

힐데군드는 간만에 진지한 눈빛으로 피바람을 몰아치는 아르투르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뛰어난 시력은 아르투르의 움직임을 세세히 눈에 담게 해주었다. 대의명분을 따지던 문명인들의 왕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보아온 어떤 전사들보다 광적으로 전투에 몰입해 적군의 피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기사왕보다는 광전사왕 같은데요. 저런 분 곁에서 지내는 게 안 무서우십니까?”

만프레드의 얼굴에는 왕에 대한 감탄은 물론, 불가해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났다. 대부분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여전사는 오히려 더 짜릿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가죽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면 황홀하지 않아?”

“네?”

만프레드는 문득 그녀가 북구 출신임을 상기했다.

“저게 녀석의 진짜 모습이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라고.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 아르투르는 빼앗기는 자들을 지키겠노라 떠벌리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족속이야. 다른 여자들이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야. 걔들은 다 뺏기는 쪽이니까.”

힐데군드는 열광에 휩싸인 미소를 지으며 낄낄거렸다. 만프레드는 고개를 흔들었다. 좋다고 따르는 미녀가 몇 명인데 이런 미친 여자와 제일 친밀하게 지내는 지 모를 일이었다. 하긴, 왕도 미쳤으니까 그게 되는 거겠지.

“그나저나 변경백 아저씨. 나랑 노가리나 털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지금 니 부하들 다 뒈져가고 있다고. 가서 도와야지?”

힐데군드가 턱짓으로 가리킨 지점에선 만프레드의 용병 부대가 짓이겨지고 있었다. 란트레서 가문이 이끄는 겨울 늑대들의 돌진은 광포했고 누구도 막을 수 없어보였다. 하지만 만프레드는 여유로운 태도였다.

“죽으라고 보낸 놈들이니까 거기서 죽죠. 걱정되시면 힐데군드님이 가서 도와주시죠.”

“어라? 너 동료들 잘 챙기기로 유명하던데, 다 구라였냐?’

“아, 제 동료는 금괴 기사단 휘장을 단 놈들 뿐입니다. 나머진 다 남이죠. 남.”

힐데군드는 대기 중인 만프레드의 직속 병력, 금괴 기사단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주인처럼 느긋한 태도로 왕의 싸움이나 관전하고 있을 뿐, 다가오는 북부군에게 맞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만프레드야.”

힐데군드는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말씀하시죠.”

“내가 왜 아르투르랑 애들 대가리 깨는 재미를 포기하고 여기 있게?”

그녀는 장검을 꺼내들고 장난감을 휘두르듯 허공에서 휙휙 돌리고 있었다. 인형을 가지고 노는 소녀마냥 천진난만한 태도였지만 만프레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왕이 제대로 싸우라고 보낸 위협이었다. 이번만큼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당신께서 왜 여기 와 계신 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저희가 제대로 싸우지 않을거라고 보신 폐하께 섭섭하군요. 이번 싸움은 단순히 폐하의 싸움이 아닙니다. 저희도 많은 게 걸려있죠.”

“흠. 그래?”

“네. 믿으셔도 됩니다.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 곧 반격을 시작할 겁니다. 안심 돌아가셔도 됩니다.”

“네가 냅다 튀어버리면 아르투르가 질 거란 말이지. 그러면 내 인생의 낙이 하나 사라지는 거고…… 용병료도 못 받으니 좀 많이 빡칠 것 같은데.”

“믿어보십시오. 저는 돈과 이득 앞에서는 항상 정직합니다.”

노련한 용병대장은 이채가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마주보며 말했다. 힐데군드는 만프레드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지키고자 하는 필사적인 결의를 느꼈다. 맹세는 헌신짝처럼 내던질 사내지만 자신의 이익은 세상을 다 불태워서라도 지킬 사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르투르는 만프레드가 제대로 싸우는 지 보라고 했지만…… 내가 꼭 그 녀석 말을 들어줘야 될 필요는 없잖아? 자기 혼자만 즐기게 둘 순 없지.’

힐데군드는 몸을 풀고는 전장을 향해 내려갔다.

“알아서 잘해. 난 싸우러 간다.”

“넵!”

“아르투르가 지면 니 목을 벨 거야. 잘해.”

“네? 그게 어떻게 제 책임입니까?”

“난 경고했어.”

그녀는 빙긋 웃고서는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참전하자마자 적의 대열 하나가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만프레드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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