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왕 아르투르-181화 (18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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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날도 아르투르는 하루를 똑같이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케이가 일어나 아르투르의 몸을 흔들어 깨운다.

“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고개를 한번 흔들어 상체를 일으켜 세운 후, 세숫대야에 받아둔 찬물에 열렬히 얼굴을 씻는다. 케이가 내미는 두꺼운 천 옷을 챙겨 입는다.

“자, 아침 구보를 시작하자.”

케이는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답했다.

“네? 오늘은 대관식 날인데, 쉬시는 편이 낫지 않나요?”

“오늘이 무슨 날 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기사고 너는 종자라는 거지. 핑계를 대며 흘리는 땀이 적어질수록, 나중에 흘려야 할 피가 늘어난다. 서둘러라!”

케이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아르투르를 뒤따라 나섰다. 차가운 겨울의 아침 공기가 그들을 맞이했지만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할 뿐이었다. 케이도 종자가 된 지 삼 년이 거의 다 다되어서 체질이 거의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르투르와 함께 하는 아침 구보가 매일 힘겹게 느껴졌다.

별장의 정원을 연병장마냥 쉬지 않고 뛴 그들은 다음으론 근육을 단련하는 격렬한 운동을 했다. 무거운 쇳덩이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전신 갑옷을 입고 팔굽혀펴기를 하며, 무게추를 달고 뛰는 기행에 가까운 수련이었다.

“헉, 헉, 더 , 더 이상은….”

힘겹게 숨을 쉬는 케이를 향해 아르투르가 호통으로 다그쳤다.

“한 개 더!”

결국 새벽 훈련이 끝날 쯤에는 케이는 만신창이가 되어 흙바닥에 퍼져버렸다가, 서둘러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달려갔다. 다른 이들은 이제야 막 하루를 시작했다.

“마스터. 대관식 날인데 아침에도 좀 기름진 걸 드시는 거 어떨까요? 오리구이 같은 거요.”

“그런 건 피로연에서 잔뜩 먹을 테니 평소처럼 닭고기나 가져 오거라.”

“네….”

케이는 자기가 수도원에 온 건지, 기사 수련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결국 대관식 날의 아침 식사는 평소와 같은 말린 고기와 빵, 따뜻한 스프였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맑은 정신으로 지도 대련을 했다. 케이가 그동안 갈고 닦은 무술을 선보이면, 아르투르가 교정해주는 방식이었다.

“이제 제법 검술을 배운 티가 나는구나. 공격도 매섭고.”

양손으로 내리친 케이의 장검을 가볍게 받아낸 아르투르가 씩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같은 나이 대 종자들에 비하면 좀 모자라더라구요.”

“막시밀리안은 너무 의식하지 말거라. 너와는 출발한 시점이나 재능이 모두 다른 녀석이니까. 지금 정도면 훌륭한 거다. 좋아. 오늘은 대관식이 있으니 일단은 여기까지 하자. 너무 풀어지진 말거라. 이틀 뒤에 바로 출전이니까.”

“알겠습니다. 마스터!”

아르투르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교황이 보내준 시종들이 대관식에 필요한 준비를 해둔 참이었다. 화려한 의복들이 한껏 준비되어 있었다. 양 손을 펼치니 그들이 다가와 잘 다려진 붉은 비단 옷을 입혀주었고, 발에는 편안하게 가공된 가죽 부츠가 신겨졌다.

그 사이, 아르투르는 가죽 벨트를 찬 후, 두 자루의 검을 각각 오른편과 왼편의 칼집에 꽂았다. 검의 크기에 딱 맞게 만들어진 보석 박힌 칼집은 마스터 대장장이 에렌이 만들어준 것으로, 표면으로 붉은 문양이 물결치며 화려함을 뽐냈다. 마지막으로 시종이 어깨에 기다란 망토를 씌워주는 것으로 준비가 끝이 나자, 시종 한 명이 전신 거울을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왕이시여, 모습이 마음에 드십니까?”

“음.”

거울 속에는 화려한 위엄을 뽐내는 젊은 군주가 있었다. 그는 남들을 압도하는 체격을 드러내는 근육질의 몸매로 서 있었고, 녹색 눈빛은 날카롭게 정면을 자신을 바라보고, 남자답게 잘 생긴 얼굴에는 적당한 흉터가 나 있어서 역전의 용사라는 분위기를 풍겼다.

“왕관만 있으면 완벽하겠군.”

“성하께서 내려주실 겁니다.”

마당으로 나서자, 케이가 에쿠잘루스를 데려다놓았다. 똑똑한 군마는 오늘이 기쁜 날인건 아는 지 흥겹게 콧김을 내뿜으며 바닥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르투르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케이, 오늘 에쿠잘루스가 용변을 봤느냐?”

“네. 잘 확인했습니다. 왕의 말이 대관식 행차로 가는데 멈춰서서 똥을 싸는 모습을 보일 순 없잖아요?”

아르투르는 푸하하- 하고 웃었다. 왕이 대관식 날 말똥 냄새를 풍긴다면 죽을 때까지 신하들의 안줏거리가 될 터였다. 그건 그것대로 재밌어보였지만, 왕국의 첫 공식 행사이니 잘 치르는 편이 좋으리라.

오른발을 내딛어 등자를 밟은 뒤, 왼발을 건너편 등자에 내디뎌서 에쿠잘루스의 등에 올라탔다. 손을 내밀어 에쿠잘루스의 머리 갈기를 쓰다듬어주자 그는 다시금 콧김을 뿜고는 타각, 타각 앞으로 나섰다.

케이도 허겁지겁 말을 몰고 와 에쿠잘루스의 뒤에 섰다. 그가 깃발을 들어 올린 후 매듭을 풀자, 깃발 속에 새겨진 붉은 용이 바람 속에서 날아오르며 포효했다. 햇빛이 선선하게 들어찬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별장의 문이 열리며 햇빛이 잔뜩 들어왔고, 환호성이 귓가에 울려 퍼졌다.

“우리들의 왕께서 오십니다!”

빼곡하게 들어선 군중이 자신을 반겨주었다.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디긴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두라노 출신의 근위병들이 배치되어 질서를 통제하고 있었다.

“받들어! 창! 국왕 폐하께서 행차하신다!”

근위병들을 통제하는 조레스의 우렁찬 외침에 두라노 근위병들이 호응해서 일제히 창을 들어올린 후, 방패를 두들기며 호응했다.

“두라노의 구원자 아르투르 만세! 레무리아의 왕 아르투르 만세! 저희의 충성을 당신께 바칩니다! 만수무강하소서!”

“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은 격렬한 환호를 내지르며 잇달아 창으로 방패를 두들겼다. 사방으로 그들의 함성과 방패를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에쿠잘루스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르투르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많은 의지를 기울여야했다. 발가벗고 춤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대들이 짐의 은혜를 잊지 않은 것처럼, 짐 역시 언제까지고 그대들의 충정을 남을 것이다! 두라노 인들이여!”

병사들이 통제하는 붉은 카펫을 따라 대성당으로 향하던 중, 광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옛 성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자신을 준엄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투르의 마음을 무겁게 한 건 그런 깎여나간 대리석 따위가 아니라,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는 수십만의 인파였다.

“신께서 아르투르 왕을 보우하시길!”

“저희에게 은총을 베푸소서! 왕이시여!”

길거리를 따라 늘어선 이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들이었다. 왕이나 귀족들과는 거의 접점이 없을, 다음 달의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자신과 눈길 한번, 말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이들이 자신에게 누구보다 열렬한 기대감을 품은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케이, 양치기들은 왕이 누군가인지에 신경을 썼느냐?”

“글쎄요? 저희가 아는 분은 페르넬 대왕님 뿐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다들 위대하고 좋은 분이라고 하니까 저희 마을도 그런 줄 알았죠.”

“저들도 마찬가지겠지. 저들도 내게 대해 가지는 건 그런 막연한 희망과 뜬소문뿐일 텐데, 어찌하여 내게 저렇게 환호하는 걸까?”

“마스터가 명망이 높으신 분이니 기대하고 있는 겁니다. 마스터께서 왕이 되시면 자기 삶의 관함이 줄어들 거라고 믿고 거고요. 하이에버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왕국도 그렇게 통치해주지 않을까하는 심정이 아닐까 싶네요.”

“하이에버라.”

아르투르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다른 이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모든 귀족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던 자들도 있었다. 그 날의 싸움 덕분에 성검이 깨어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만약 성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은 크리스티안에게 배신당해서 죽고, 카밀은 예정대로 처형되었을 것이다. 평민들은 세상에 정의가 없다며 절망하고, 세상에 원래 정의 따위는 없다며 무덤덤하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 뒤로도 자신이 난관에 처할 때마다 성검은 자신을 도와주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결코 오늘날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 같이 명예롭게 행동을 했던 이들은 이미 많았어. 단지, 일찍 죽어서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을 뿐이지. 네가 특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사생아에게 가장 귀중한 유산을 물려준 아버지를 두고 있었기에 이 자리에 이르렀을 뿐이야.’

- 네 책임이 무겁다는 것도 느꼈겠구나. -

‘네. 엘라카르시스. 당신이 얼마나 제게 많은 축복을 내려주신 건지도요. 명예를 추구하던 사람은 많았지만, 모두 죽거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대의를 저버렸습니다. 저는 그들보다 운이 좋았을 뿐이니 그들의 몫까지 제가 해내야만 합니다. 앞서 살았던 영웅들은 저만의 지배욕이나 권력욕을 실현되는 세상을 위해 싸우던 자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눈에는 무리에 껴서 같이 환호를 보내주고 있는 북구인들이 보였다.

“한 몫 잡은 것 축하한다! 아르투르! 대관식이 끝나면 한 턱 쏴!”

힐데군드는 반 농담 삼아서 낄낄 웃었고.

“기어이 해내는군! 와하하하하!”

토르스탄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일 인양 기뻐해주고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들과 함께 교회로 들어가고 싶었다. 북구인들은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했고, 자신과 마음이 정말 잘 맞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들이었고, 유쾌하고 허물이 없어 친구로서 아주 좋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아르투르는 한번 손을 흔들어 보인 후 광장을 지나쳐갔다. 본능의 목소리에 따르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수십만 인파의 기대감이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마침내 백색 대성당이 자신을 반겨주었다. 마치 천국의 일부를 재현해둔 이 경건한 성소에선 성가대가 부르는 미성의 노랫가락들이 들려왔다.

아르투르는 말에서 내려, 시종에게 고삐를 건네준 후 활짝 열린 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십 개의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하나 같이 자기 지역에서 강력한 집단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들이나 강대한 도시, 혹은 오래된 이익 단체 같은 조직들이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망설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군. 이제 와서 눈도장 찍느라 정신이 다들 없을 만하지.’

아르투르가 피식 웃고 지나치려다가, 그의 시선이 한 깃발에서 머물렀다. 그는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참석할 리가 없는 가문, 참석할 리가 없는 사람의 깃발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레무리아의 왕께 인사를 올립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녹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숙녀가 고개를 깍듯이 숙이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중년의 기사가 서서 목례를 했다. 둘 다 아르투르에게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아델라이데 백작? 당신께서 오실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숙녀가 된 백작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아르투르를 직시했다.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에 왔을 뿐이랍니다. 반드시 직접 전해드려야 할 정보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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