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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57화 (15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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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모여든 광장에선 아타나시우스의 공개 재판이 이뤄지고 있었다. 피오렌치아 인들은 지금의 혼란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자 했으며, 적만 가득하고 친구는 없는 아타나시우스는 그 대상으로 아주 적합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한 때는 선지자라고 추앙 받았던 노인이 이제는 거짓 예언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며 길거리로 끌려나왔다. 노인과 그의 추종자들은 이젠 도시를 파탄으로 몰아넣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냉소를 지으며 묵묵히 걸어 나갈 뿐이었다.

그에게 가까운 이를 희생당한 이들은 자기 손으로 아타나시우스를 죽이겠다고 줄을 뚫고 들어오려고 난리를 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스터, 정말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해결될 일일까요? 동조한 이들은 훨씬 많잖아요.”

케이는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아르투르를 바라보았다. 지금 끌려나온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일파만 해도 백여 명에 달했지만, 동조한 시민은 수만 명에 달했다. 피오렌치아 전체 인구수에 비하면 다수라고 보긴 어렵지만 결코 적다고도 하긴 어려웠다.

“지금 앞장서서 돌을 던지는 가운데선 한때 아타나시우스를 열정적으로 따르던 이들도 많아요. 억울한 희생자들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서던 이들이, 이제는 자기가 숭배하던 예언자를 탄압하는군요. 옳은 일을 하시기 위해선 더 본보기를 보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케이에게는 아타나시우스 일파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깊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고문을 방불케 하는 끔찍하고 비 인륜적인 방법들이었다. 카밀이 대신해서 입을 열려고 할 때, 아르투르가 먼저 말했다. 남의 입을 빌어 떳떳하지 못한 일을 변호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었으니까.

“네 말이 맞다. 그들은 속았을 뿐이니 무고하다느니, 더 큰 대의를 위해 참아야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진 않겠다. 도시를 참사로 몰아넣은 사람은 저 백 명을 훨씬 넘고, 응당 정의만을 따진다면 처벌의 범위를 더 넓혀야겠지.”

아르투르의 말에 케이가 원망 어린 목소리 되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까? 정략적인 계산 때문입니까? 시민들의 피를 손에 더 묻히면 정복자로 비춰지시는 게 두려워서요?”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투르.

“정치적 이득도 중요한 이유지.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지금 통치자라면 마땅히 향후의 질서 유지도 고려해야한다.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측근들만 처벌하기로 한 내 결정에 주요 세력들이 동의한 건 그런 이유야. 이 시점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면 정치적 불안정이 생겨날 것이고, 결과적으로 동조자들을 방치하는 것보다 더 큰 불의를 저질러야 할 거야.”

“하지만 제게는 항상 명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잖아요?.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불가능을 향해 도전하시겠다고 하셨고요.”

케이의 실망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아르투르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렇다고 민간인 수천 명을 끌어내서 처형하는 게 명예롭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방랑 기사일 때와 군주로서 통치할 때는 판단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어.”

케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적이 자주 없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분노하고 있었다. 여정을 시작한 이래 자신이 성장했던 것처럼, 케이도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일행을 하며 만나온 모든 사람들을 통해 경험을 흡수하고 있었고, 훌륭한 기사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그가 분노해야할 일에 성을 내는 게 흡족했고, 한층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케이, 지금의 뜨거운 가슴을 기억해두어라. 네가 앞으로 무엇이 되건, 불의에 대한 분노는 너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될 거다. 하지만 너도 언젠가 다른 사람의 목숨이 걸린 결정을 내려야하는 날이 올 거고, 그 때가 되면 날 이해하게 될 거다. 말로는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내 결정이 완벽하진 않겠지. 너는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되길 바란다.”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케이. 영리한 녀석이니 결국엔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테지. 받아들일지는 저 아이의 몫이지만.

아르투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장 한 가운데로 성큼 걸어갔다. 눈앞에는 아타나시우스가 쇠사슬에 꽁꽁 묶여 무릎 꿇려져 있었으며, 오른편에는 도시의 유력자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있었다.

‘지금 우리 유력자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건 아타나시우스에 대한 분노뿐이란 걸 감안하면 상의도 필요 없는 재판이었지.’

자신의 역할은 교황 특사로서 재판을 주재하는 것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와 아타나시우스에 대해 공식적으로 고발 했으며, 그를 뒷받침할 무수할 증거와 증인이 나왔다. 늙은 수도승은 내내 이죽거릴 뿐이었다.

형식적인 절차가 끝나자, 아르투르는 수도승의 앞으로 걸어가 최종 심문을 했다.

“묻겠다. 그대는 어째서 그토록 잔인한 방법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였는가?”

아르투르의 냉혹한 시선을 받았지만, 아타나시우스는 오히려 결연한 표정으로 아르투르와 배심원단을 바라보았다.

“웃기는 군. 아무렇지도 않게 수천, 수만 명을 죽여 온 자들이 고작 수백 명 가지고 이토록 증오를 보내는 게 말이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지 않아 다가올 종말에 비하면 수백 명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르투르는 내심 웃었다. 바로 목을 쳐도 모자랄 판에 재판이란 절차까지 거친 건 대중에게 놈의 사상이 얼마나 허황되었고, 놈이 얼마나 형편없는 놈인지 까발리기 위함이었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이런 헛소리만 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다면 제기된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게로구나?”

“죄인 수백 명을 태워서 신과 대면할 기회를 준 것이 뭐가 죄란 말이냐! 진짜 죄는 신이 정한 섭리를 거역해서 그분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세상에 종말이 닥치고 말 것이야! 머저리들 같으니라고!”

“네 주장에 근거가 있나? 교회에선 너의 모든 말을 부정했다.”

교회라는 말에 비웃음을 짓는 아타나시우스는 오히려 기세등등한 태도로 아르투르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선 아무런 공포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 십일조를 거두는데 훨씬 신경을 많이 쓰는 그 탐욕스러운 집단 말인가? 이 권력의 개가 무엇을 알겠느냐? 나는 신께 직접 예지를 받았단 말이다! 그분이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으면 세상이 종말을 맞이하리라고! 예견된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며 하늘이 피를 흘린 것은 그 증거다!”

아타나시우스의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는 비난을 퍼붓던 대중을 일순간 침묵시켰다. 감옥 생활로 초췌해진 몸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물이 못된다는 양, 그는 당당하게 일어서 모두를 향해 카리스마를 뽐냈다.

“잘 들어라! 너희가 믿는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교회도, 왕도, 자유 도시도 다 강자들이 도전을 피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일 뿐이다! 우리 같은 약자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신께서는 우리에게 속삭이셨다. 세상은 원래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이 부정한 세상은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고 말이다!”

아르투르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지만, 오히려 비웃는 것으로 응수하였다. 이런 멍청한 헛소리를 사람들이 믿어봐야 얼마나 믿을 것이란 심산이었다. 그러나 몇몇 눈치 빠른 유력자들은 군중 사이에 미묘하게 퍼져나가는 동요를 느꼈다. 샤를로트는 불안감을 느끼며 목을 긋는 시늉을 아르투르에게 내보냈다. 당장 목을 쳐야한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아르투르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만만하게 팔짱을 꼈다.

“최후 변론이 하고 싶다면 마음껏 해라. 사형수에게 보장된 권리니까.”

아타나시우스는 미소를 드러내며 우렁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외쳤다.

“들어라! 진실에 귀를 열 준비가 된 자들이여! 나는 진실을 전하고 회개할 기회를 준 죄로 죽지만, 내가 보았던 예언은 실현될 것이다. 마침내 신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기로 결심하시는 날이 오면, 그분은 검은 날개를 펼쳐 태양을 가리시고 영원한 겨울을 몰고 오시리라. 그 날이 되면 우리는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새로운 세상에선 귀족도, 부자도 없으리니, 거짓된 세상을 멀리하고 회개하여 진정한 세상을 기다리라!”

억압 받던 자들은 마음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아타나시우스의 끔찍한 행동에 마음속으로 깊은 거부감을 느꼈지만, 홀로 수백 명을 베어 넘기는 왕족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수도승의 당당한 모습은 자신들이 마음속으로 꿈꾸면서도, 결코 하진 못할 일이었으니까.

- 제대로 당했구나. 아르투르. 놈을 다른 아이들 앞에 끌고 나오기 전에 조심했어야한다. 안칼라타르가 놈을 통해 너희들에게 경고를 한 거야. 이제 놈의 주장이 빠르게 퍼져 나갈 거다. -

머릿속으로 엘라카르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르투르는 개의치 않았다.

- 전하고 싶다면 전하라고 하십시오. 고작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룬 모든 것이 거짓말이고, 잿더미로 돌아가야 한다는 헛소리에 귀 기울일 자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

- 인간들은 연약하다. 모두가 너처럼 강인한 건 아니라서 말이지. 그들의 연약한 마음속으로 종말의 예언이 빠르게 퍼져 나갈 거다. -

- 제가 그들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걸 증명해보이면 될 일입니다. -

아르투르의 말대로 모든 이들이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복수심이 자극받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미친 자다! 당장 불에 태워버리십시오!”

배심원단은 이 자를 더 이상 대중 앞에 세워두는 건 위험하다고 보고 처형을 촉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특히 레오폴트나 샤를로트 같이 노련한 자들일수록 이 자의 말이 지닌 위험성을 깨닫고 있었다.

“재판관! 더 이상 저 미친 자가 혹세무민하는 헛소리를 퍼뜨리지 못하게 하십시오! 이단적인 믿음을 설파해 우리 사회의 근간을 붕괴시키려는 자입니다! 사형을 집행하십시오!”

그러나 아르투르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아타나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할 말은 다했나? 이제 네 주인에게 갈 시간이다.”

“큭큭. 그래… 어디, 원하는 대로 해보아라.”

늙은 수도사는 스스로 사형대 위에 결연히 목을 걸었다. 아르투르가 여명을 뽑아들고 내리치는 잠깐의 사이, 선지자의 마지막 외침이 들렸다.

“나는 진실을 전한 죄로 죽노라! 기억하라! 이 세상은 거짓말로만 가득 찬 곳이다!”

촤륵 -

늙은 수도사의 목이 허망하게 잘려나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아르투르는 그것을 집어 들어 대중 앞에 내보였다. 수많은 이들이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함성을 질렀다.

“정의가 실현되었다!”

“정의, 정의, 정의! 아르투르 만세!”

일부 사람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동자 속에서, 아타나시우스의 예언에 마음이 영향 받은 듯했다. 그러나 아르투르는 당당한 태도로 대중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들어라! 나, 교황 특사로 온 백인을 벤 아르투르가 이 자리에서 피오렌치아의 시민들에게 고한다!

교황의 특사이자, 두라노의 국부였으며 이제는 피오렌치아의 구원자로서 왕도를 밝히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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