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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52화 (15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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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렌치아 군대의 본영으로 돌아간 아르투르는 주요 인사들을 모두 불러 모은 후, 지금 시내의 상황과 자신의 조치를 전달했다.

“식량 공급의 재개로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여전히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건재하다. 그나마 기세가 꺾었을 때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다들 생각해둔 방안 있나?”

가장 먼저 답한 것은 샤를로트였다. 그녀는 지금 상황에 무척 만족하는 태도였다.

“아주 잘해줬어. 아르투르. 이제 레니에 장군과 내가 시내로 들어가면 민심을 완전히 돌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아타나시우스를 고립시킨 뒤, 사면을 조건으로 도시를 떠나는 형식을 시도해보는 게 좋겠어.”

힐데군드는 신기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에, 여기 애들은 확실히 무르구나. 사면 같은 걸 이야기하고서도 살아남을 수가 있네. 그놈, 네 생각처럼 대화가 통할 놈이 아니야. 그냥 빠르게 대가리 쪼갤 생각이나 하는 게 어때?”

무릎을 슬쩍 구부려 몸을 낮추어 보이며 깍듯이 예를 표하는 샤를로트.

“마담. 지적하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면을 조건으로 도시를 떠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면, 아타나시우스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정치적으로 쓸 만한 수가 될 거에요.”

“잠깐, 사면은 빼놓고 이야기하지. 그 사이비 수도승에 대해선 확실하게 죄를 물을 거야. 다만 민심을 장악하는 문제는… 마음에 드는 방법이군. 자신 있어? 녀석의 군중 장악력이 아주 뛰어나던데.”

자신 있는 미소를 짓는 샤를로트.

“우리 라이랜더 가문은 피오렌치아의 명문 귀족으로서 대중들과 오랫동안 함께 해왔지. 마지막 남은 가문원인 내 이야긴 충분히 먹힐만할 거야. 거기에 청년들의 사랑을 받는 레니에 대장이 군대와 함께 입성한다면 민심의 향방은 이쪽으로 한 번에 기울어버릴 거라고. 아타나시우스의 처리는 두 번째 문제고.”

못 마땅한 눈으로 잠자코 회의를 지켜보던 레니에 대장이 끼어들었다.

“아가씨, 그 전에 우리가 교황 특사께 확실히 약속을 받을 것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 드렸을 텐데요. 계속 이런 식이라면 특사께 협력할 수 없다고요.”

한숨을 쉬는 샤를로트.

“그 이야긴 상황이 정리되면 이야기하자고….”

곧장 고개를 돌려 아르투르를 직시하는 레니에.

“아뇨. 지금 여쭙겠습니다. 아르투르 공, 교황 특사의 자격으로서 피오렌치아에 오신 것이 맞지요? 공께서 성하께 피오렌치아를 영지로 받았다는 이상한 소문을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지요?”

레니에 대장은 맑지만, 날카로운 눈매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르투르는 눈을 맞대며 그를 살피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특출 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호감형의 중년 군인. 그 외에는 도드라지는 어떤 특색도 없었다. 어느 곳에나 흔히 있을 법한 동네 아저씨가 군인 노릇을 하고 있을 뿐, 위대한 군주나 무인들에서 느껴지는 기세나 위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시시한 사내라면, 내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는 보이는 것보다 큰 사람이야. 카밀과 케이가 그랬듯이 말이야.’

진심에는 진심으로 답해주어야 하는 법.

“자네가 들은 소문은 사실에 근접하네. 아직 공식적으로 작위를 받진 않았네만, 그런 계획은 있거든.”

대답을 들은 레니에는 눈썹을 꿈틀거렸고, 샤를로트는 대체 왜 지금 말하느냐는 답답한 시선을 보내왔지만 아르투르의 말은 이어졌다.

“자네가 좋아할 지, 더 나빠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레무리아 반도 전역에 대한 왕권을 주장할걸세. 피오렌치아는 수도로 염두 해두고 있지. 이미 교황 성하께서 직접 약속하신 부분이니, 실제로 영토만 확보하면 그렇게 진행 될 걸세. 피오렌치아의 상황을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고.”

레니에의 뒤틀려가는 표정은 그의 심경 변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노, 다음에는 좌절이었다. 근처에 선 레오폴트는 막사의 벽에 기댄 채 그를 비웃고 있었지만, 반면 아르투르는 진지한 표정으로 레니에를 바라보았다.

“자네 같은 자유 도시의 시민들에겐 왕을 모시게 된다는 게 받아들이기 힘든 의미라는 걸 알고 있다네. 그러니 어떤 선택도 강요하진 않겠네. 만약 자네가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준다면, 마찬가지로 나도 자네가 청하는 바를 들어주겠네. 왕이라고 일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야.”

레니에는 목소리 밑에 노기를 내리깐 채,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요! 저희 피오렌치아 인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지 않으시고는 절대 충성을 받으실 수는 없습니다. 공에 대한 보상을 바라신다면 들어드릴 것이고, 영토를 원하신다면 합리적인 선에서 내어드릴 겁니다. 하지만 저희의 충성을 받으실 수는 없을 겁니다.”

아르투르 역시 지지 않고 그를 마주 보았다.

“나는 피오레 가문보다는 훨씬 나은 지배자가 될 자신이 있네. 자네가 바라는 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이 아니었던가? 나는 좋은 왕이 될 걸세. 적어도 그걸 위해서 내 모든 걸 다 바칠 준비가 되어있단 말이지. 지금 두라노 인들이 나를 국부라고 부르더군. 내 통치가 꽤 괜찮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레니에의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뇨! 절대 아닙니다! 왕국은 절대로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맞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제 자식들이, 우리 동네의 청년들이 평온히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일 뿐이지요. 하지만 왕국은 절대 평범한 사람을 위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아르투르도 맹렬히 반박했다.

“어째서 자네는 눈앞에 보인 현실을 부정하는가? 지금 피오렌치아는 광인의 손에 다스려지고 있지만, 왕국들은 혼란을 겪을지언정 굳건하게 버티고 있네. 탁월한 능력과 덕성을 갖춘 자가 평범한 이들을 지배하는 건 서로를 위해 좋은 일일세. 그게 신의 섭리지.”

허탈하게 웃음 짓는 레니에.

“공께서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르투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그렇다네. 나는 자네보다 우월하네. 자네는 내 두 배가 넘는 삶을 살았지만 무력으로도, 군략으로도 내게 견줄 바가 되지 못하지. 그건 자네가 무능한 게 아니야. 타고 난거지. 오직 가장 위대한 혈통의 전사들만이 내게 견줄 수 있네. 이를 탁월함 외에 달리 뭐라고 설명하겠나?”

쓴웃음을 짓는 레니에.

“어떻게 사람을 잘 죽이는 것이 어찌 남들보다 탁월하단 말이 됩니까? 그건 길 가의 도적들조차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미덕에 대해 말해볼까? 이것만큼은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나는 언제나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웠어. 그르다고 생각하는 일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러기 위해 목숨도 걸었네. 그래. 솔직해지지. 나는 영웅을, 왕을 자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아르투르는 오른손의 검지를 들어 레니에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그대는 과연 영웅을 자처할 수 있는가?! 성실하고 좋은 지휘관이니 병사들의 사랑은 받았겠지,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그들이 우러러보는 위대한 자가 되어본 적이 있냐는 묻는 것일세. 자네의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본 적도 없겠지.”

레니에는 지금껏 참아온 화를 단번에 터뜨렸다. 그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아르투르의 눈을 뚜렷히 올려다보면서, 지지 않고 소리쳤다.

“공께서 위대한 기사라는 점을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위대한 제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같이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사랑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거지요. 위대한 제왕들은 민생을 파탄에 몰아넣고, 그들의 공허한 꿈을 위해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 뿐입니다! 제 고향이 그런 꼴이 되도록 내버려둘 것 같습니까?!”

허나, 아르투르는 같이 화를 내는 대신 품격 있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가능한 한 많은 자치권을 부여할 거다. 그대가 합류한다면 더 좋은 조건이 될 테지. 짐을 의무조차 망각하는 얼간이들과 함께 묶지 마라. 짐은 명예로서 왕국을 다스릴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자에겐 권리와 상응하는 의무를 부여할 것이며, 남을 섬기는 자들에겐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게 할 테다. 짐이 세울 왕조는 다를 것이다!”

막사 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며 다른 참가자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레오폴트는 아주 불쾌한 표정이었고, 오래전부터 레니에를 따라온 젊은 장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북구인들만 싸움이 벌어질까 싶어 기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그만 나불거리고 싸우는 건가?-

토르스탄이 슬쩍 힐데군드에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 그러게. 언제처럼 계집애들처럼 입이나 털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 달리, 레니에는 긴장이 고조되기 전 숨을 몰아쉬며 몇 걸음 물러났다. 아르투르도 이에 화답해서 다시 부드러운 표정을 연기했다.

“짐의 정당성에 대해서 설득하진 않겠다. 늘 그랬듯 결과로 보여주지. 내일 바로 아타나시우스를 쳐서 무정부 상태를 끝내고 질서를 되찾아 오리라. 그대가 수 달 간 손쓰지 못하고 망해가던 도시를 짐의 손으로 구원하는 걸 목격하면, 자네의 생각도 변할 수도 있겠지.”

“그야 질서는 되찾으시겠지요! 왕들은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으니까요. 폐하께서 광신도라고 마구 베어대는 이들, 그들은 모두 시민입니다. 우리의 친구, 가족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들을 상대로 군대가 창을 겨누라고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

아르투르는 굉장히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짐은 지금 교황 성하의 대리인으로서 온 것이다. 대관식도 못 받은 왕위는 제쳐두고라도, 교회와 성하의 권위라면 마땅히 존중해야하는 것 아닌가?”

더욱 단호히 답하는 레니에.

“네! 교황 성하가 아니라 발타리아께서 직접 오셔도 그렇게는 안됩니다! 좀 길을 헤매며 가더라도 광신도들의 마음을 돌리고야 말 겁니다. 결국 저희 피오렌치아 인들은 단 한 사람도, 시민 단 한 명도 폐하를 도울 일은 없을 겁니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이 삽시간에 되살아나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주변으로 적의가 퍼져나가려는 도중, 샤를로트가 말했다.

“유감이지만, 내가 그 첫 번째가 될 것 같군요. 레니에 대장.”

레니에는 잘못 들은 것처럼 눈을 고개를 돌려 샤를로트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숨을 쉬는 샤를로트.

“우리들의 도시도 바뀔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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